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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공부하던 당시에 사건이 터졌고, 그 일이 있기 몇 년 전에 벌어진 유람선 침몰 사건이 황당하다고 이야기했던 그 나라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받고 부끄러워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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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날 저는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평소때와 다름없이 끄적끄적 학교로 갔습니다. OA수업은 2시에 시작하고 교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세월호 침몰 전원구조 이야기를 꺼내서 저는 그때 세월호 참사에대해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원구조가 되었다는 말에 별생각없이 수업끝나고 방에들어가 YTN을 틀었는데 전원구조가 오보라고 밝혀져있고 침몰된 배 구조 현장이 생중계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그날 종일 티비앞에서 뉴스만 보았습니다. 그날을 기억못한다는건 말도안됩니다. 충격과 공포로 뇌리에 박힌 그 날을 기억못한다는것은 인간적 정서를 가진사람이 아니라고밖에는 할말이없습니다. 모든 국민들의 뇌리에 박힌 그 날 청와대 관계자들도 사람이라면 분명 다 기억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7시간 그날 무슨일이있었는지 하루빨리 실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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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까지 술마시고 택시로 출근 하면서 차량dmb에서 어떤 배가 기울어 있고 아나운서의 긴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환한 대낮이고 바다도 잔잔해 보여 해경과 해군 그리고 국가도 밥값은 해야 되기에 어렵지않게 구조가 되겠지 생각하고 숙취로 인해 솔직히 신경을 끊었다.배는 이제는 뒤집혀 있고 배안에는 300명이 여전히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남은 술기운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 나라에 대한 믿음도 완전히 같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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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25명의 초등학교 아이들과 교실에 있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뒤집어진 배의 바닥을 보면서, 한 명의 언니 오빠들이라도 구출되는 뉴스를 가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모든 아이들이 울었습니다. 그 눈물은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능한 구출작전에 대한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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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소식에 안도했는데 오보라니 안타깝고 참담했고 아무것도 하지않은 정부와 국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한다는 헌법상의 책무를 져버린 박근혜대통령에게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날을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스러져간 꽃다운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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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하고업무를 보던 중 주위 동료로부터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의 배가 침몰했다는이야기를 듣고 인터넷 기사를 찾아봤습니다.그리곤 전원구출이라는 기사에 잠시나마안도를 했고, 그게 아닌걸 알고나선더 큰 걱정이 들었습니다.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못한것이이렇게 미안하고 죄스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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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해외에 잠시 거주중이어서 상황 파악을 며칠 지나서야 했습니다. 알고보니 현지 시간으로 제 생일즈음이었습니다. 감기에 걸려 집에서 끙끙 앓으면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챙겨보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너무나 크고, 살아있는 아이들이 서서히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으로서 너무나 죄스럽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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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무능한 어쩌면 고의적이 아니라면 믿기 힘든, 아니 고의라도 믿기힘든 역사의 날이다. 진실을 밝히고 교과서에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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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속보가 보이길래 무엇인가 했다. 바다로 배가 가라앉고 있고 자막으로는 탑승객을 전원 구출했다고 한다.다행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언론은 잘못 집계했다고 하고 가라앉는 배에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일을 하는 도중에도 일이 잡히지 않고 걱정이 앞섰다.조치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며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었다. 과연 국가가 보답해준 것이 무엇인가.지금 대한민국은 불완전한 민주주의에서 완성으로 가는 성장통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성숙해진 우리들이 미성숙한 국가통치자를 지워버릴 것이다.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이러한 미래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 - 윤동주 "서시" 中박근혜는 7시간동안의 행적을 명명백백 밝힐 것을 국민의 어명을 받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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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1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와서 컴퓨터 인터넷 뉴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봤다. 그런데 점심시간 쯤에는 그것이 잘못된 소식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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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1월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보냈습니다. 상상 밖이었던 이별과 부재는 오로지 견뎌야할 남은 자의 몫이었습니다. 4월의 손짓에도 마음은 겨울 어디 쯤을 헤매고 있었던 그 날 아침 출근하고 얼마 안되서 직장동료로부터 사고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수학여행 가던 고2 학생들이라는 소식에 "어떻게 해"라는 말만 나왔습니다. 그러나 곧 전원구조라는 기사가 떴다는 말에 안도하였습니다. 고2 때 큰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추억과 배안에서의 설레임이 생생하여 다른 무엇을 보태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구조시스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후 즈음 들려 온 소식은 전원구조가 아니라고 했고 학생 1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학생의 부모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생각했고 배 위에 승객이 많아 구조가 늦어지는 것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 날 제 7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곧 구조된 학생들과 학부모의 상봉장면을 기대하며 퇴근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이들은 물속에 갇혀 죽어갔습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국가의 어떤 구조도 없이 학살당했습니다. 밤낮으로 울었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도 울음은 시시때때로 덮쳐왔습니다. 가족을 갑작스레 보낸 아픔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더해져 유가족의 감정에 이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유가족에 대한 저열한 횡포와 탄압은 슬픔을 넘어 깊은 분노와 물음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정의가 있는 것인지? , 인간됨이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 그 이후 제 삶은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세월호 분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수학여행 아침 설레임 가득했을 아이들을 볼 용기가 없고 차마 이대로 보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를 인양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그 연루자들을 모두 단죄할 때 이 땅의 정의는 다시 첫걸음을 뗀 것입니다. 다시 정의가 세워진 그 날 아이들을 보겠습니다. 자식잃은 부모의 애간장이 녹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른다면 몇 번은 차고 넘쳤을 테지요. 세월호 모든 가족들 사랑합니다. 더 크게 웃고 더 뜨겁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보내지 않았으니 이별 또한 없는 것, 아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으니까 아이들 몫만큼 더 당당하고 행복하셔야 합니다. 늘 마음으로나마 함께 하겠습니다그 날 7시간을 잊은 자는 악마입니다. 그러나 그 날 제 7시간은 생생하고 또렷합니다. 그 7시간은 정의가 강물처럼 되살아오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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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이 안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하고 저는 왜? 어떻게? 그날을 잊을수 있지? 나처럼 매일매일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그날, 슈퍼에서 만나 서로 눈물글썽이며 이야기를 나눈 동네아줌마가 누구였는지도, 첫 뉴스를 접하고 혹 지인의 아이가 없을까 전전긍긍하며 전화통화를 한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쓰나미같은 하루를 보낸 저녁에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즐거운 일상을 밴드글에 올린 지인이 누구였는지도, 내가 그에게 갑작스럽게 분노하며 쏟아냈던 혼잣말까지도 기억합니다. 너무 사사로운 일들이라구요? 맞아요. 정말 사사로운 일, 어제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사사로운 일상의 반복인 주부의 삶에서도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일만은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날이 기억안날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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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전 둘째를 임신하고 있어서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갔다가 대기실에서 앉아서 뉴스에서 처음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너무놀라서 계속 뉴스를 보고 있다 검진을 받고도너무 걱정이 돼서 집을 못가고 뉴스를 계속보고 있다전원구조라는 소식이 나오자 그걸보고 집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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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후 전원 구조했다고 들었을때 무척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게 아니라는게 알려지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전 세월호와는 어떤 열관도 없지만 이상하게 그 말만 나오면 눈물이 나고 화가 납니다 우리 어른들이 조금만 신경썼으면 그런 안타까운 일은 없어요 앞으로 죽을때까지 잊지말고 기억하겠습니다 마음에 꼭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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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에 믿을수 없는 뉴스를 접하고 제가 처음든 생각은 큰일이지만 아직 사람을 구할수 있겠구나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이후에 우왕좌왕하는 언론보도와 정부의 발표 어떤것이 진실인지 알기 힘든 상황에서 어느순간 알게된 희생자들의 소식.혼자 살고 잠시 일을 쉬고있을때여서 집에서 하루종일 뉴스만 바라보고 있던. 나혼자 발 동동구르던 그기억 이제는 알고 싶습니다. 왜 내 예상과 달리 세월호는 그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냈는가. 세월호 7시간 뿐만이 아니라.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그 모든것들. 그것의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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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된 첫 아이를 안고서 tv를 통해 사고장면을 처음 본 그 순간이 너무나 생생합니다.하루 종일 tv를 끄지 못한채, tv에서 눈을떼지 못한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들이 어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을 지켜보며, 생때같은 아이들이 그렇게 가는것을 바라만보며, 무너지는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내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고 했던 그 하루가 너무나 생생해 잊혀지지 않습니다.다른 날엔 무얼했나 기억나지 않아도 그날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그날의 제 감정까지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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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근직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업무상 컴퓨터에 앉아 있는게 힘들었었죠그런데중간중간 걱정이 되어 검색했던 뉴스, 그던 화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생방송으로 그 장면을 보아야했던 순간....너무나 죄송합니다. 2년이 넘도록 아니 4개월만 있으면만 3년주년인데..실종자는 아직도 있고 더 있을 수도 있는 일인데...아직도 세월호는 아직 그곳에 있다니..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건 아닌가..하구요최근 뉴스를 보다가 "아직 있다"는 곡을 알게 되었죠.. 만2주년이 되어 초등학생들이그린 그림도 보았구요..삶에 바빠서 뉴스 보는 시간도 아끼고 살았던 시간..이제는 달라지겠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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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두 아이 육아하면서 워낙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보니 생긴 건망증... 목말라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도 왜 냉장고 문을 열었는지도 그 짧은 새에 잊어버리고 다시 냉장고를 닫아버릴 만큼 정신없어진 나도 그날 4월 16일에 뭘 했는지 똑똑히 기억합니다. 정신없이 아이들 아침밥 먹이고 유치원 보내고 나서 습관적으로 오전 뉴스를 틀었는데 거기 세월호가 침몰중이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어요. 수백명의 아이들과 민간인이 탑승한 배가 침몰 중이라는 뉴스에 크게 놀랐지만, 머지않아 큰 글씨로 "전원구조"라는 뉴스 타이틀이 뜨기에 안도했던 기억이 선명하구요. 그날 밤 탈출 생존자보다 실종자 명단이 더 많이 나와 의아해하면서도 몹시 충격이었던 기억도 또렷합니다. 아무리 건망증이 심하여도, 4월 16일 만큼은 그날의 해가 질때까지 저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과, 뉴스로 보고 들었던 장면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있을 만큼 선명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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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잊지 않을께복수는 반드시 할께박근혜를 비롯한 7시간 부역자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진실을 밝히고 죄를 물을께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악마같은 존재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최선을 다할께 사랑하다 미안하다 부디 편히 잠들길 바란다 다음 세상은 이런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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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며 세월호가 조금씩 기울어진것을 들었습니다.제가 뉴스를 접했을때 는 정말 배가 많이 기울지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들이 모두 구조될것이라고 믿고있었습니다.하지만 그 당연함에 비웃기라도하듯 구조를 하지않고 멀리서 지켜만 보고 찍는 모습을 보며 의구심이 들었고 답답함도 느껴지더라구요.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하지않도록 대한민국의 수장을 뽑을때 어른들만만듣고 무조건 1번만 찍으면 침몰할 수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