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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십수 년 전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중,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학원강사입니다. 그 날 저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 휴대전화로 구조자, 실종자, 사망자의 수를 수시로 확인하며 서로에게 "괜찮아, 잘 될 거야."라며 일말의 희망을 심어줬더랬습니다. 그리고 사망자 명단에 제가 아는 이름이 없어 잠시나마 안도했고, 그런 제 자신이 너무나 이기적으로 보여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한 달여 정도 수업 때마다 그 어린 나이에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아니,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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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유학중이었습니다. 우연히 TV를 틀었다 나온 소식에 놀라.. 학교도 못가고, 구조 소식만 애타게 기다리며 계속 멍하니.. TV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백명의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그렇게 가슴아팠던 날인데.. 하루종일 가슴졸이며, 타국에서 눈물만 흘렸던 날인데.. 어떻게 기억이 안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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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 지 않겠습니다!!!절대 잊어서도 않됩니다!!!이 땅에 다시는 우리 아이들을 차갑고 어두운 세상에 내몰아서도 않됩니다!!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않됩니다!!2014년 4월 16일!!!자기가 왜? 죽어야 했는지 이유도 모른체 어두컴컴한 바닷속에 잠긴 이들에게 우리가 해줄수 있는건 잊 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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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초등학교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 1교시를 마치고 잠시 휴대 폰을 보는데 진도앞바다에 배가 빠졌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사진으로 본 기사에는 구조헬기와 구조선이 모두 출동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구조인력과 곧 구조가 완료될거라는 내용. 그리고 당연히 구조할 수 있겠지 하는 믿음 혹은 구조하지 못할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못했습니다.상상도 못했지요. . 4교시를 마치고 점심에 식당에 갔는데 모두 구조되었다고 하더군요. 역시나 하며 안도하고 건강하게 몸을 추스리길 바랐습니다. 오후경에 일을 모두 마치고 가게에 들어갔는데 가게 아주머니가 비명처럼 연신 어떡해 하는 소리를 지르시길래 무슨내용인가 여쭈었더니 오보였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그때서야 휴대폰으로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모두 오보였고 아직 인원파악도 못하고 300여명이 구조되지 못한채 배가 모두 기울어 있었습니다..눈물이 나고 그 시간에 나는 밥을 먹고 있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나는 일상을 살고 있었구나 하는 죄책감과 분통함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바로 사무실로 들어와서 울분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무엇을 해야하나 고민했습니다. 일말의 기대감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역의 사람들과 긴급히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을 하였고 17일에 많은 분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18일 저녁에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촛불문화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단 하루 sns로 알렸는데 100명이 넘는 주민이 함께 눈물 흘리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금 정부와 박근혜 퇴진 대한민국에 분노하는 가장 밑바닥은 바로 죄책감일 것입니다. 그 시간에 밥을먹고 삶을 살고 있었던것. 이런 무능한 정부를 잠시라도 믿었던 것.함께한다고 해도 항상 힘이 없었던 우리.. 항상 지기만 했던 우리.. 유가족이 싸워야 하는 이 나라...이번에는 모두 되살리겠습니다. 얼마가 걸려도 몇년을 거슬러올라가도 뿌리까지 뽑아 다시는 이런 눈물, 이런 국가가 되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죄스럽고 한탄스러운 국민이 되지 않도록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너무너무 죄송하고 눈물겹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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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른채.....집을 나설때는 전원구조라는 선명하고 큰 끌씨가 텔레비젼 화면을 메우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안심하고 기쁜 마음으로 교육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채열심히 강의하고 있었습니다.....강의를 마치고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이럴수가"가 백번도 넘게 저절로 튀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눈물과 함께요소름과 공포의 전율이 온몸에 퍼져나가 움직일수 없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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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체험학습날이었습니다.한 4시쯤 빈 도시락통을 들고 전세버스에서 내려 집에오니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부모님이아무 말 없이 이리 오라고 손짓하셨어요.한참동안 정적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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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이 납니다.어느 누가 그날을 잊을 수가 있을까요?회사 출근하고 얼마후에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습니다.[속보] 세월호, 선박사고 가 났다는 뉴스알림놀란 나머지 뉴스를 클릭해서 들어가보니, 제주도를 향하던 선박이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 였습니다.회사 직원들에게도 놀래 이야기를 전해줬고얼마 후에 전원 구조 됐다는 소식이 들어와와 정말 다행이다! 라며 마음 편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왔습니다점심을 먹고오니 청천벽력같은전원구조는 오보였는다는 속보.... 배는 점점 기울어져가고, 저를 포함한 회사직원들도 속타는 마음으로 구조 했다는 소식을 기다렸습니다.그날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요?저희 부모님도, 같이 일하는 분들도 다 그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진실은 언제나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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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출근 시키고 인터넷을 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생방송으로 모든 과정을 지켜 봤습니다. 너무도 이상한 점이 많아서 뉴스를 내내 업데이트 하면서 봤습니다. 모든 애들이 생존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요...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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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게 일어났는데 집에 아무도 없기에 티비를 틀었습니다. 그냥 습관처럼요.자막으로 전원구조라는 말이 떠서 아 다행이다.하고 생각하고 독서실로 나섰던 기억이 납니다...그리고 오후 늦게쯤 다시 인터넷기사를 보니 많은게 달라져있더라구요.배가 비교적 많이 가라앉지않았을때부터 모두 가라앉는것까지 티비화면으로 본 것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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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당일 제가 일하던 곳의 외근이 잡혀있어서 다른 곳으로 출근하는 날이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여객선침몰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스마트폰 기사로 알게 되었고, 크게 놀라서 어떻게 하냐고 하며 계속 기사를 주시하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니, 식당에 있던 큰 티비에 계속적으로 세월호가 바다에 떠있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고, 밑에는 현재 구조중이라는 말이 나오다가 거의 구조가 다 되었다는 말이 나와 다행이라는 말을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서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거의 구조가 다 되었다는 말이 오보였으며, 아직 뱃속에 아이들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연속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과 함께 서둘러 구조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사람들이 왜 너는 니가 뱃속에 있는 것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느냐고 할정도로 부들부들 떨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 침몰해가는 배의 사진을 보았을때, 아이들에게 빨리 뛰어들어라고 한마디만 했었어도 아이들은 적어도 이렇게 아무런 힘조차 써보지 못하고 죽진 않았을 것이며, 적어도 대통령의 7시간동안의 그 공백으로 인하여 VIP를 위한 동영상촬영이 우선이라며 해경에게 제대로 된 구조활동조차 빠른 시간에 착수하지 못하게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모두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한시가 중요했던 순간에도 제 숨통만이 중요했던 모든 사람들, 책임지고 단죄되어야 마땅합니다.저는 기억합니다. 일곱시간그 이후의 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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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갔었어요.학원 사무실 TV에서 분명 다 구조됐다는 뉴스 자막 보고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운전 연습하고 집에 갔는데... 집에 가니까 뉴스가... 분명 다 구조됐다고 했었는데...... 너무 멍해서 대체 이게 현실이야 뭐야 믿겨지지가 않았어요.아무 상관 없는 나도 그랬는데 가족분들은 어땠을까.... 너무 미안해요. 미안해... 그냥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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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새직장에서 출근한지 한달도 안되었을때 식당에서 원장님이랑 식사중이였습니다. 텔레비전기 켜져있었는데 세월호 뉴스가 생생하게 나오며 다 구조되었다고 한거.. 아직도 생생해요 거기다 저는 안산사람이라서. 그 다음날은 온동네가 조용했었던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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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제가 기억하는 것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봤을 때 참 재미없었던 수업을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전 수업이 너무 재미없어서 교수님 몰래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세월호 뉴스가 뜨길래 보니까 전원 구조라고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하고 무심하게 넘긴 다음 다른 뉴스를 보다 다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자, 저는 다시 폰을 봤습니다. 그리고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오보라는걸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 중대한 사안을 확인도 안 하고 보낼 수가 있는 거죠? 그 이후로 아무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저 뉴스만 계속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그리 하니 참 지치더군요. 이걸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900일 넘는 시간 동안 해온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세월호 사건이 터진 날 7시간, 그 7시간이라는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해명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자리를 비운 7분이라는 짧은 시간때문에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도 말이죠. 7시간. 그 시간에 대통령이 제대로 할 일을 했더라면 세월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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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아르바이트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창문도 없는 고시원 단칸방에서 지내던 그때. 고작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에게 혹여나 피해가 갈까, 언제나처럼 티브이를 음소거 한 상태로 켰다. 가장 먼저 눈이 간 타이틀은 "전원 구조". 그럼 그렇지,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여느날과 같이 공부할거리들을 주섬주섬 챙기려는데 자꾸만 번복되는 뉴스.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 점점 아찔해져가고 음량도 잔뜩 높여버리곤 나가려던 채비도 관뒀다. 우두커니 쪽방에 서서 몇 시간을 아니야,아닐거야. 내가 너무 햇빛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오래 지내서 잠이 덜 깬걸거야, 지금도 꿈일거야, 부정하고 또 부정하던 그때. 할수 있는거라곤 티브이를 내내 켜두고 지켜보는것 밖에 할 수 없던 그때. 차라리 지금이 꿈이었으면, 했던 그때. 아직도 잊지를 못합니다. 아니 잊을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변함이 없다는것이, 속수무책으로 흘러버린 지금이 너무나도 두렵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함부로 말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한번 더 눈을 흘겨서라도 잊지말자고 당부라도 하겠습니다. 무력한 사람이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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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출장중에 우연히 한국 방송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가 곧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다행이라고 하며 거래처로 나와서 미팅하고 저녁에 혹시나 궁금해서 뉴스보고 그냥 망연자실했습니다.어떻게 저렇게 구조에 무능할수 있을까...너무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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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기간이었어요. 다음날에 중요한 실습시험이 있어서 저는 방에서 공부를 하다가 간단히 식사를 때울 겸 기숙사 매점에 갔어요. 일어난지 별로 안 되어서 정확하지 몇 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전원구조가 되었다는 기사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아요. 평소 즐겨먹는 치즈라면을 들고 매점 바로 옆에 있는 컴퓨터실에 가서 라면을 먹으며 우연히 기사를 봤고 처음에는 전원구조 되었다는 말에 안도하다가 점점 침몰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어요. 아무도 없는 컴퓨터실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어요. 다른 학과들은 시험이 끝나 기숙사가 텅텅 빈 날이었고 그날 시험공부는 하나도 못하고 헬스를 하면서도 계속 티비를 보고, 방에 돌아와서도 멍하게 휴대폰만 본 기억이 나요. 그 다음날에 시험이 끝나고 교수님이 마음이 아파서 계속 우셨다는 말씀에 친구들과 동감했던 것까지도 기억이 나네요. 제가 경험한 시험기간 중 가장 우울하고 슬프고 가슴 아픈 시험기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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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일을 하고 잠시 쉴 겸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소식을 접했다. 그 뒤 컴퓨터를 끌 수 없었다. 계속 같은 장면만 내 보내는 것 같은 화면에 미칠 거 같았다. 배만 점점 가라앉고 있었고 주위에 선박은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도대체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는 거야? 답답하고 화가나서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계속 보고 있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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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서 밥을 먹고 교복을 입는 일상은 평범하다. 그 날 아침도 언제나처럼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4월 16일은 평범하지 않은 "그 날" 이 되었다. SNS 타임라인에 침몰하는 배 사진이 밀려들어왔다. 그 안에 갇혀 있을 동갑내기 친구들 백여 명의 얼굴은 사진 속에 찍혀있지 않았다. 전원 구조 보도와 이어지는, 결코 반갑지 않은 오보 정정 보도... 그날 나의 일상은 유독 더디고 힘겹게 진행되었다. 잘 켜두지 않는 우리 집 TV는 하루종일 뉴스를 읽었다.물 속에 빠진 수채화의 빛깔이 선명치 않게 흐려지듯, 기억은 서서히 사람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그러나 침잠한 과거 속 유난히 돌출된, 밤새도록 번뜩이는 한 장의 기억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 침몰을 거부하는 4월 16일의 유화 그림 한 장. 그를 훼손하려 애쓰는 위작가들의 붓질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노란 빛으로 타는 슬픔.그 그림. 누가 그렸는가? 누가, 왜 그렸는가?잔인한 화가는, 촛불 앞에 얼굴을 드러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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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고3담임을 했던 저는 그날 수업을 마치고 난 후 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 학생들을 인솔하여 제주도 수학 여행을 종종 다녀왔던 저인지라 그날 그 시간에 꽃같은 아이들이 물속에 그대로 잠기던 그 영상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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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고있었습니다. 아침에 한참 일하고나서 잠시 쉬기위해 아무 생각없이 휴대폰을 켜 인터넷 창을 보았습니다. 그 때 제 눈에 들어온 기사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전원구조" 오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중학생인 제 동생도 수학여행을 떠난 날이었기 때문에 순간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하지만 제 동생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전원구조 되었다니, 안심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죠.그리고 몇 시간 뒤에 다시 쉬면서 핸드폰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새 전원구조는 오보였다며, 아직 배 안에는 300명의 아이들이 갇혀있다는 소식이 보였습니다. 그 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내가 이렇게 평화롭게 일 하고있는 순간에도 지금 진도 앞바다 에서는 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실시간으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지금 이 순간 배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섭고 괴로울지,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하니 너무 괴로웠습니다.이 비극이 일어난지 벌써 2년을 훌쩍 지나 내년 4월이면 3년입니다. 아직도 배에서 수습하지 못한 희생자들도 있고, 진실은 여전히 깜깜한 바닷속에 잠겨있습니다.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리고 배와 함께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밝혀질 때까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