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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2014년4월16일 수학여행을다녀왔습니다.왜같은수학여행인데 단원고언니오빠들은 왜아직도 돌아오지못할까요 왜!무슨이유로 죄가없는 학생들과여행자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버스에서뉴스를보면서 전원구조 이글을보면서 친구들과함께 다행이다 말을하였지만 그게실수?라고요? 사람들목숨이장난입니까? 사람목숨이장난이면 박근혜대통령과 최순실관련된사람다 죽어도 슬픈사람몇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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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실습 중에 소식을 듣고 당연히 구조되겠지 저렇게 티비에서 생중계를 해주는데...했지요. 전원구조라길래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삼백명이나 실종되었더라구요. 그래도 곧 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는 이 나라와 정부에 대한 그런 믿음이 있었어. 그런데 밤이 되도록 찾지를 못하고 다음날 그 다음날 기다려도 구조자 한 명 없는걸 보고 패닉에 빠졌지. 다시보니까 박근혜 정부는 아예 구할 생각이 없는 거였어. 다시봐도 눈물납니다. 그 생떼같은 애들 보내고 부모님들은 어찌 사시는지. 기억합니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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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는 친구가 그날 단체주문이있어 일손이 부족하다해서 아침일찍 그 집에 갔습니다. 가기전 아침에 단신으로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기사를 본듯도... 친구집 거실에서 열심히 도시락에 과일도 담고 오랜지 주스도 짜고 있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티비를 켜놓아 뭐라고 한마디 하면서 티비 화면을 보는데 계속 여객선침몰 이야기가 나오면서, 전원 구조되었다는 자막이 뜨더군요. 안심하며 도시락싸던거 마져 싸고 배달하고...배달한 도시락을 그곳(병원이었어요. 강동성*병원)에서 모두 먹기를 기다렸어요. 병원 근처 커피솝에서, 그 후 용기를 찾고, 친구집에 들러서 반찬 남은거 싸갖고 오후 4시 넘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그 날의 그 도시락에 음식 담으며 티비 화면에 보이던 세월호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사진처럼 머리속에 찍혀있는데, 어찌 저 파렴치한 인간들은 기억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누구의 말처럼 그 전날로 돌아가서 아이들 한명한명에게 절대 그 배에 타지 말라고 말하고 다니고픈 마음. 눈물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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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이 되어 남습니다.대한민국 모두의 부모와 모두의 친구 동생들이 똑똑히 지켜봤습니다.더러운 정치의 희생양들을 우리는 평생 기억 해야 됩니다.박근혜를 능지처참 하여 21세기의 임당수에 빠져 희생 당한 우리 자식들의 넋을 달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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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릴 수 있었음에도 구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리고 여전히 진실을 밝히지 않는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알리지 않는 청와대 권력자들과 거기에 빌 붙어사는 자들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그 아이들의 부모들의 차이는 단지 그 아이둘이 나의 친 혈육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우리들의 자식이었다.누가 자식을 죽인자를 용서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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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가 나는 해외였고, 밤에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보고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무 생각 없이 국내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그때부터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잠에 빠져있던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과의 사투를, 또한 얼마나 무책임 한 사람들이 자기 직무를 모른 척 했었는지..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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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공부하던 당시에 사건이 터졌고, 그 일이 있기 몇 년 전에 벌어진 유람선 침몰 사건이 황당하다고 이야기했던 그 나라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받고 부끄러워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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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날 저는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평소때와 다름없이 끄적끄적 학교로 갔습니다. OA수업은 2시에 시작하고 교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세월호 침몰 전원구조 이야기를 꺼내서 저는 그때 세월호 참사에대해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원구조가 되었다는 말에 별생각없이 수업끝나고 방에들어가 YTN을 틀었는데 전원구조가 오보라고 밝혀져있고 침몰된 배 구조 현장이 생중계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그날 종일 티비앞에서 뉴스만 보았습니다. 그날을 기억못한다는건 말도안됩니다. 충격과 공포로 뇌리에 박힌 그 날을 기억못한다는것은 인간적 정서를 가진사람이 아니라고밖에는 할말이없습니다. 모든 국민들의 뇌리에 박힌 그 날 청와대 관계자들도 사람이라면 분명 다 기억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7시간 그날 무슨일이있었는지 하루빨리 실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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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까지 술마시고 택시로 출근 하면서 차량dmb에서 어떤 배가 기울어 있고 아나운서의 긴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환한 대낮이고 바다도 잔잔해 보여 해경과 해군 그리고 국가도 밥값은 해야 되기에 어렵지않게 구조가 되겠지 생각하고 숙취로 인해 솔직히 신경을 끊었다.배는 이제는 뒤집혀 있고 배안에는 300명이 여전히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남은 술기운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 나라에 대한 믿음도 완전히 같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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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25명의 초등학교 아이들과 교실에 있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뒤집어진 배의 바닥을 보면서, 한 명의 언니 오빠들이라도 구출되는 뉴스를 가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모든 아이들이 울었습니다. 그 눈물은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능한 구출작전에 대한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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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소식에 안도했는데 오보라니 안타깝고 참담했고 아무것도 하지않은 정부와 국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한다는 헌법상의 책무를 져버린 박근혜대통령에게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날을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스러져간 꽃다운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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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하고업무를 보던 중 주위 동료로부터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의 배가 침몰했다는이야기를 듣고 인터넷 기사를 찾아봤습니다.그리곤 전원구출이라는 기사에 잠시나마안도를 했고, 그게 아닌걸 알고나선더 큰 걱정이 들었습니다.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못한것이이렇게 미안하고 죄스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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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해외에 잠시 거주중이어서 상황 파악을 며칠 지나서야 했습니다. 알고보니 현지 시간으로 제 생일즈음이었습니다. 감기에 걸려 집에서 끙끙 앓으면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챙겨보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너무나 크고, 살아있는 아이들이 서서히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으로서 너무나 죄스럽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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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무능한 어쩌면 고의적이 아니라면 믿기 힘든, 아니 고의라도 믿기힘든 역사의 날이다. 진실을 밝히고 교과서에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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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속보가 보이길래 무엇인가 했다. 바다로 배가 가라앉고 있고 자막으로는 탑승객을 전원 구출했다고 한다.다행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언론은 잘못 집계했다고 하고 가라앉는 배에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일을 하는 도중에도 일이 잡히지 않고 걱정이 앞섰다.조치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며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었다. 과연 국가가 보답해준 것이 무엇인가.지금 대한민국은 불완전한 민주주의에서 완성으로 가는 성장통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성숙해진 우리들이 미성숙한 국가통치자를 지워버릴 것이다.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이러한 미래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 - 윤동주 "서시" 中박근혜는 7시간동안의 행적을 명명백백 밝힐 것을 국민의 어명을 받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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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1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와서 컴퓨터 인터넷 뉴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봤다. 그런데 점심시간 쯤에는 그것이 잘못된 소식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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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1월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보냈습니다. 상상 밖이었던 이별과 부재는 오로지 견뎌야할 남은 자의 몫이었습니다. 4월의 손짓에도 마음은 겨울 어디 쯤을 헤매고 있었던 그 날 아침 출근하고 얼마 안되서 직장동료로부터 사고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수학여행 가던 고2 학생들이라는 소식에 "어떻게 해"라는 말만 나왔습니다. 그러나 곧 전원구조라는 기사가 떴다는 말에 안도하였습니다. 고2 때 큰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추억과 배안에서의 설레임이 생생하여 다른 무엇을 보태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구조시스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후 즈음 들려 온 소식은 전원구조가 아니라고 했고 학생 1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학생의 부모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생각했고 배 위에 승객이 많아 구조가 늦어지는 것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 날 제 7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곧 구조된 학생들과 학부모의 상봉장면을 기대하며 퇴근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이들은 물속에 갇혀 죽어갔습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국가의 어떤 구조도 없이 학살당했습니다. 밤낮으로 울었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도 울음은 시시때때로 덮쳐왔습니다. 가족을 갑작스레 보낸 아픔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더해져 유가족의 감정에 이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유가족에 대한 저열한 횡포와 탄압은 슬픔을 넘어 깊은 분노와 물음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정의가 있는 것인지? , 인간됨이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 그 이후 제 삶은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세월호 분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수학여행 아침 설레임 가득했을 아이들을 볼 용기가 없고 차마 이대로 보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를 인양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그 연루자들을 모두 단죄할 때 이 땅의 정의는 다시 첫걸음을 뗀 것입니다. 다시 정의가 세워진 그 날 아이들을 보겠습니다. 자식잃은 부모의 애간장이 녹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른다면 몇 번은 차고 넘쳤을 테지요. 세월호 모든 가족들 사랑합니다. 더 크게 웃고 더 뜨겁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보내지 않았으니 이별 또한 없는 것, 아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으니까 아이들 몫만큼 더 당당하고 행복하셔야 합니다. 늘 마음으로나마 함께 하겠습니다그 날 7시간을 잊은 자는 악마입니다. 그러나 그 날 제 7시간은 생생하고 또렷합니다. 그 7시간은 정의가 강물처럼 되살아오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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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이 안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하고 저는 왜? 어떻게? 그날을 잊을수 있지? 나처럼 매일매일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그날, 슈퍼에서 만나 서로 눈물글썽이며 이야기를 나눈 동네아줌마가 누구였는지도, 첫 뉴스를 접하고 혹 지인의 아이가 없을까 전전긍긍하며 전화통화를 한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쓰나미같은 하루를 보낸 저녁에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즐거운 일상을 밴드글에 올린 지인이 누구였는지도, 내가 그에게 갑작스럽게 분노하며 쏟아냈던 혼잣말까지도 기억합니다. 너무 사사로운 일들이라구요? 맞아요. 정말 사사로운 일, 어제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사사로운 일상의 반복인 주부의 삶에서도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일만은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날이 기억안날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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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전 둘째를 임신하고 있어서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갔다가 대기실에서 앉아서 뉴스에서 처음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너무놀라서 계속 뉴스를 보고 있다 검진을 받고도너무 걱정이 돼서 집을 못가고 뉴스를 계속보고 있다전원구조라는 소식이 나오자 그걸보고 집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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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후 전원 구조했다고 들었을때 무척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게 아니라는게 알려지면서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전 세월호와는 어떤 열관도 없지만 이상하게 그 말만 나오면 눈물이 나고 화가 납니다 우리 어른들이 조금만 신경썼으면 그런 안타까운 일은 없어요 앞으로 죽을때까지 잊지말고 기억하겠습니다 마음에 꼭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