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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에 모팀장님과 뉴스를 통해 아이들이 다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소통이 잘 못되어 온나라의 비극을 안겨준 그날을 잊지 못할듯.. 꽃도 못피워보고 간 학생들에게 미안할뿐입니다.이젠 국민이 나서서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정부를 감시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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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세월호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할 것입니다. 해결되고 증명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TV를 보다가도 비슷한 장면이나 어머니 또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아들 또는 딸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반사적으로 세월호 부모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치료해주는 이는 누구여야 하나요. 국가는 왜 이 엄청난 일을 3년이 다 되도록 궁금증 하나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는 걸까요. 대통령의 7시간은 당신 자신의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의 7시간이며, 모두의 의문이며, 모두의 상처로 남았습니다. 철저한 진실규명만이 그간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아물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는 남겨진 세월호 부모님 편에 설 것입니다. 매일매일 약속합니다. 노란 리본 앞에서 맹세합니다.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하는 행위의 위대함을 증명해 보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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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이었습니다언제나 그랬듯 뉴스속 이야기는 남의일만 같았고 모든것은 일상으로 되돌아가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서촌 어귀에서 점심식사를 했던 것 같아요. 그 날의 7시간은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인턴이긴 했지만 마치 나도 그 사회속 일원인 것 마냥 지나간 시간이었어요.하지만 나도 정직원이 되지 못했고, 아이들도 돌아오지 못했어요.아이들을 밝혀주는 촛불만이 아직 광화문에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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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어느 덧 3주년에 다가오기까지 반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시크릿 7시간으로 인하여 304명의 소중한 목숨들이 떠났습니다. 결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며 슬슬 겨나오는데 분노한 민심을 외면한 댓가를 치르게 할겁니다. 대통령의 7시간을 밝히지 않는 한 박근혜 게이트도 끝나지 않을 것이며 세월호 희생자들도 맘편히 하늘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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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넘어가서 물기둥을 뿜어내는 상황을 TV를 통해 다들 보고 있었다.처음에는 전원 구조라는 방송그러나 수백명의 실종자 숫자 가 화면 상단에 계속 나타나는 모습온 국민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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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째의 밤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집에 왔습니다. 아침부터 자면 밤에 잠을 잘 수 없어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안 자려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젼에서 속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깜 짝 놀랐지만, 전원 구조했다는 속보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뉴스를 다시 보니 구조를 못 했다는. . 배는 다 잠기고... 얼마나 미안했는지..너무 죄스러웠습니다. 절대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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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국에서 거주하는 유학생입니다.아마 제 기억으로는,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했을거에요, 짧게 짧게 뉴스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의 말씀을 통해서 들었거든요. 분노와 슬픔이 치밀어 올랐지만, 한번 펑펑 울고 울고 나서 어쩔수 없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그냥 넘어 갔던것 같습니다. 용서해주세요.평생 잊지 않기로 다짐했었는데, 지난 2년간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던 저의 모습을 되돌아보니 부끄럽습니다. 죄송해요. 앞으로 평생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꼭 그 7시간의 진실을 밝혀지길 간절히 기도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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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상이 흘렀는데도 지금도 그때를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안타까움에 눈물이 얼마동안은 얼마나 울고 지냈는지 ~~ 우리 아이들 그 암흑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살아 돌아가길 빌고빌었을까 생각하면 ㅠㅠ 그런데 이런 아이들의 희생을 가벼히 생각하는 대통령이 있으니 자기 사욕만 챙기는 현실이 참 할말없게 만듭니다. 많은 국민들이 주권을 주장하고 한사람한사람의 쓴소리도 가벼히 여기지않고 소중히 생각해주는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는 국민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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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는 학교에 있었는데... 학교 도착하고 보니 주변 친구들이 배가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건인가 하는 생각에 휴대폰으로 잠깐 뉴스를 봤는데, 불과 몇년밖에는 나이차이도 나지 않는 고등 선배들이 배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전원 구조라는 말에 안심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 뉴스를 보니 어이 없게도 틀 때마다 구출자 수가 계속 바뀌는 등 이상한 보도가 나왔다. 결국 배가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 선배들이 차디 찬 물속에서 생을 마친 것이 너무 안타까울 뿐아니라, 같은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하며 살다가 날개를 펼치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간 그분들에 대해 너무나 죄송하다. 부디 하늘에서는 마음 편히 지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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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엄마도 그 날 수학여행을 가셨어요. 저희 엄마는 진도에서 선생님을 하고 계시고 저는 그 당시 수업중이었는데, 수업도중에 선생님이 진도에서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딱 전해 듣자마자 우리 엄마가 떠올랐어요. 저희 엄마도 똑같은 날 진도에서 학생들 데리고 배타고 수학여행 가셨거든요. 안산에서 출항한 배였다는걸 못들은 상태였어요. 처음에 1~2분동안은 머릿속으로 정말 많은 생각이 지나갔는데, 설마 우리 엄마일까.. 오늘 아침에 별로 좋은 말 하고 나오지도 않았는데 설마 이게 마지막이 되진 않겠지.. 등등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했던 모진말들이 다 생각나면서 수업시간 도중에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이게 마지막이라면 정말 후회도 많고 엄마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것 같단 생각이들고 정말 별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저 혼자 수업을 중단하고 선생님하고 엄마한테 전화해보기로 했는데 엄마랑 전화연결도 안되고 그랬어요. 절망적이였죠. 그리고 안산에서 출발한 배란 소식을 듣고 그 다음엔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예요. 있어서는 안될 역대급 오보. 그리고 끊이지 않는 언론의 거짓말들까지...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정말 뚜렷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한테 어디서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 저희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세월호 생각밖에 없었던 것, 집에와서 이젠 믿지못할 언론사 채널을 켜놓고 가슴졸이며 같이 울던것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을것 입니다. 잊지 못할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떻게 이런 일을 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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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며 아무생각도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tv보다가 하늘보다가 tv보다가 하늘보다가 하면서 일도 못하고 흐르는 눈물만 하염없이 닦아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직도 그때 생각을하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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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된 첫째 아이와 함께 새집으로 이사온 다음날이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새집에서, 남편이 출근한 뒤에 조용한 시간을 아이와 둘이 보내며 뉴스를 보고 있는데 세월호 보도가 나더군요. "전원 구조"라기에 "별일이네, 다행이다.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겠구나" 싶었습니다. 하루 종일 배가 점점 가라앉는 게 생중계 되고 있는데,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그 날 이후로 믿을 수 없는 뉴스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지요. 아이러니하고 구슬프게도, 그 날을 생각하면 전 깔끔하게 정리된 집과 그 집안으로 들어오던 따스한 기운. 그리고 해맑게 놀고 있던 제 첫째 아이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답니다.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기억이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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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 사고에 대해 굉장히 늦게 안 편입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학교가 일찍 끝난 후 돌아와 집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일어난 후 티비를 틀었더니 뉴스가 나오더군요. 커다란 배가 바다에 잠겨가는 모습이요. 처음엔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큰 사고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볼 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이 사고가 얼마나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고인지가 실감났습니다. 저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채 피지 못한 수 많은 꽃들이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 앉았습니다. 꽃잎은 흩어졌지만 그 씨앗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심어졌습니다.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우리의 촛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진실은 절대 가라앉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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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병원 수술실 앞에서 친정엄마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기하는동안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TV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죠. 다행히 모두 구조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나 오후 뉴스에 다시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로도 며칠동안 밤을 새가며 구조소식을 기다리며 TV앞을 떠나지 못했죠.결국 더이상의 구조자가 있다는 뉴스를 접하지 못했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동안 공황상태처럼 지냈어요.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제가 그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다시한번 고인들의 명곡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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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생에서 힘든 시기 중 하나를 보내고 있을 때였어요. 누구를 믿어야할 지도 모르겠고 언제 나아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깊은 어둠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되었던 그 시기 중 어느 하루에 소식을 접했습니다.그래서 사실 부끄럽게도 그날의 7시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아요. 수면패턴에 문제가 있어 아마 구조되었다는 오보는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아직 구조가 되지 않았다는 속보를 보는데 나도 세상도 같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어요.. 그날부터 며칠간 하릴없이 멍하니 뉴스를 보다말다 했던 거 같아요. 그때 이후로 나는 많이 괜찮아졌는데, 아직도 우리는 괜찮아지지 못했고 너무나도 아픈 세상에 살고 있네요. 그때는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너무 미안합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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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을리가 있습니까. 직업 특성상 남들보다 조금 늦은 출근길에 들었던 그 비보를요. 그 날 제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생각나는걸요. 제법 맑았던 날씨도요. 기억 안 난다는 자들은 대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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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시간에 사고소식을 듣고 전원 구조라는 소싣에 동료들과 다랭이라고 하는 순간 귀를 의심케한 소식에 먹먹해지는 가슴으로 뉴스만 쳐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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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 구조됐다길래 그러줄만 알았습니다 아무생각없이 학원도 가고 집에 갔습니다 그리고 티비를 틀고 뉴스를 봤습니다 헬리콥터소리와 배가 뒤집힌 사진이 떴고 그냥 멍하니 뉴스만 봤습니다 그날은 절대 잊지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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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를 보던도중 이메일확인을 위하여 인터넷을 키자 실시간검색어 1위인 세월호 침몰이 떠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원구조라고 떻지만 그것은 거짓부렁이 오보었다는것을 알고 매우 황당했습니다. 오보도 무슨 그런 잔인한 오보가 있나 했던 저의 감정이 아직도 절절히 기억에남습니다. 어찌 7시간을 기억못할수있습니까. 어제일도 기억못하는 저조차 그날의 일이 생생히기억에남는데 대통령이라는사람이 말입니다. 당신은 대통령이아닙니다. 절대 당신은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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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11:00am , 아침 등굣길 4호선 사당역 안에서 전원 구조라고? 아, 그럼 별 거 아닌가 보네"4/16 18:00pm, 시험 공부 하던 중 저녁을 먹던 식당 안에서 "뭐라고?"4/16 22:30am, 하교 후 현관문을 열자 보이는 엄마의 눈물"엄마..어떡해?........어떡해?"그 날의 기억이 너무 생생합니다. 기억이 나지않는다는 그 말, 정말 무책임합니다. 우리는 잊지 않습니다.잊었다고 말하지 마세요. 잊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