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장실 청소를 하다가 교장실 티비로 뉴스를 보았다.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뒤집어졌는데 전원 구출했다는 뉴스였다. 마침 다음달에 수학여행일정이 있었기에 남일같지 않았다. 같이 청소하던 친구와 교장선생님과 오보를 보면서 안도했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원 구출은 오보였고 아직도 실종중이라고 했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유가족과 희생자들에게 입에 담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인간인것인지 의심되었고 지겹다는 말들이 너무 슬펐다. 자식팔아 로또 당첨되었다는 말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인가? 못 구한 것이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 뒤로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누가 왜 무엇때문에 구하지 않은것일까?
-
세월호....처음 관련 사건을 봤을때가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갔다 선배한테 제주도로 오던 배가 난파됐는데 인명사고는 없다더라...라고 해서 별일 아니구나...하고 앉아서 실험 준비를 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교수님께서 들어오시더니 빨리 뉴스보라고....큰일았다고....지금 애들이 타고있던 배에 사고가 났다고 하더군요......정말 충격이였으며 우리나라가 이렇게 무능하구나....를 느낀 하루였으며 절망했고 분노했습니다. 어떻게 그 날이 기억이 안날 수 있는 지 이해가 안됩니다!
-
저는 오전 사장님과 출장을 갔었습니다용인 원삼쪽 출발전 학생들이 타고있던 배가 바다에 빠졌더라는 이야기를 사장님과 나누었고-돌아오는길 다 구출했다는 기사를 사장님이 보면서 큰배에 사람이 많이 탔지만 당연히 다 구했구나..싶었습니다..당시 운전중이라 직접 확인은 못하고..사무실 들어와서 확인했죠그런데 그게 오보랍니다...당황.....그리고 저녁에 집에가니 와이프 친구도 그배에 타고 있다고 합니다...그리고 하루이틀사흘...몇일뒤 친구는 주검으로 돌아 왔습니다..인솔교사인로 따라간 역사 선생님이고 갖 결혼해서 임신한 와이프를 두고 아이들과 하늘나라로 갔죠..
-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그날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날을 우리애가 그속에있다고 생각하면서 가라앉는 배를보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두번다시 이런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죠~~
-
그 날에 기사를 처음 본건 학교에서 였다. 학교에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들어갔는데 뉴스가 떠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생존자가 몇 명인지 확인만 하고 있었다.
-
그날 저는 인터넷 뉴스로 대학 조교일을 하며 처음 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원 구조 되었다는 뉴스를 믿었고 당연히 마음을 놓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전원구조는 오보였으며 많은 이들이 여전히 좌초되어가는 배에 갇혀서 떨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실시간으로 퍼져가는 루머와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과 불안으로 그날 하루의 모든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고는 있으나 산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재를 낳은 무력한 정부에 대한 분노였고, 이러한 와중에도 자극적이고 화제성이 높은 기사들을 쏟아내는 언론들에 대한 조소였으며 이 사회의 모순에 대한 허탈감과 나의 모국과 함께 할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암담함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그때의 그 복잡한 감정이 덮쳐와 잊을 수 없지만 애써 마음 한켠에 그날의 기억을 접어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골든타임에 무력했던 정부는 그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며 심지어 그들 스스로 억측이나 루머라고 주장하는 의혹들에 대해 제대로 된 해명조차 못한채 국민들과의 담을 높게 쌓았습니다. 이러한 정부를 보며 또, 이때다 싶어서 세월호사건과 여러가지 사건들을 정치적 이슈로 자신의 이득을 위해 활용하려고만 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그저 기억 한켠에 접어두고만 있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이러한 사건과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명확한 진상규명을 외쳐야 하며, 적절한 메뉴얼과 대책을 수립하여야 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사건과 사고에 대해 사람보다 다른 어떤 것들이 우선되는 정치인들은 이번 일을 뼈에 새겨 반성하고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
오전에 운전면허 주행 두번째 시험을 보았다. 시험 초반 신호위반으로 어처구니 없이 떨어지고 출근을 했다. 전원 구조라고 메신저 속보에 떴던게 기억난다. 그때까지 난 심각한 사고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나른하고 지루한 오후 근무시간을 보내고 칼 퇴근했던 것 같다. 집에 와서 뉴스를 보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되었다.
-
그날 오전 뉴스에서 침몰하는 배를 보았습니다. 이후 출근해서 시시각각 침몰해 가는 배를 인터넷 뉴스로 보았습니다. 저는 그 날의 허망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발을 구르고 뉴스를 클릭하며 설마, 를 외치며 제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저는 기억합니다 2014년 4월 16일을
-
그날은 나와 내 남자친구가 호주 동부의 외딴 시골 농장에 쳐박혀서 귤을 신나게 따고 있던 날 중에 하루였다. 새벽에 나갔다가 오후에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을 보다가 사고소식을 알았다. 쏟아지는 기사에, 전원구조 오보에, 이것저것 뒤죽박죽 섞인 정보에 무슨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었고, 그 먼 곳에서 티비도 없이 둘이서 스마트폰에만 의지해 기사를 보면서 전전긍긍했었다. 그 날 하루종일 구조현황 기사만 보면서 보냈다. 다음 날 농장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이랑 이 상황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화를 냈던 기억도 있다.
-
2014년 4월 16일 오전 그때 만해도 몰랐습니다..모두 다 구조된 줄 알았습니다.하지만 몇 시간 후 마주친 진실 ,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 했습니다. 하지만 놀랄 시간도 없이 국민에게 들려온 또 하나의 사실 참사 후 7시간 동안 국가 원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젠 행동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
저는 그 당시 캐나다 벤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어요. 한국뉴스는 저녁에 잠시 티비로 볼 뿐이었죠. 그 날도 친척들과 모여있는데 스마트폰으로 전해오는 소식에 처음엔 너무 놀랐고, 전원 구조 라난 말에 안도하기도 했죠. 다음 날 아침 일찍 학교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트위터를 보며 참 많이 울었어요...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지금도 눈물이 나요.
-
회사에 있었어요 아직도 생생합니다. 같이 일하던 언니와 점심을 먹으러 갔어요. 속이 안좋아 죽집에 갔는데 뉴스가 나오고 있었어요. 배가 침몰했다고....... 7시간.. 더이상 무기력하다고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항상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
그날은 오전부터 서둘러 이비인후과에 갔어요. 목이 너무 아파서 늦게 가면 사람들이 많을까봐요. 진료를 받고 약국으로 들어갔어요. 그때 나오던 충격적인 ytn뉴스..약국엔 할아버지 한분 할머니 두분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엄마가 있었어요. 약사 한분과 접수받으시는 분까지..저를 포함한 모두 "어쩌나 어쩌나"하며 아무것도 못하고 한참을 봤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뉴스속보를 틀어놓고 집안일도 미룬채 가라앉는 배를 보았네요. 하루종일 관련 기사를 읽고 보고 들었네요..
-
마음도 아프고, 눈물도 나고, 생각만 해도 너무 춥고 속상한데, 그것에 대한 진상규명도 안되고 7시간에 대해서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아직도, -물 속에 잠겨있는 그들을 기억하고, 대응하지 않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확실히 기억하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
저는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과연 배안에서 사람들이 보냈다는 카톡이 진짜나 유언비어냐를 놓고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리고 밤이 되면 추워서 사람들이 못버틸텐데 너무 안타까워했었습니다.
-
강남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던중, 같은팀 과장님이 인터넷 뉴스를 보시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같은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어떻게 하냐며 함께 걱정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관련 뉴스를 계속해서 지켜봤습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이었지만 사무실 직원들의 걱정, 가족들과 함께 했던 저녁 메뉴, 뉴스를 보며 안타까워했던 형의 말들까지 저는 그날의 장면들을 기억합니다.
-
그 당시 저는 어렸고, 유일하게 이해했던 것은 커다란 배가 침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안에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전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했습니다. "어쩌지.. 다들 구조되겠지?" 다들 이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전원 구조라는 소리를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리고 지금, 그 실체를 듣고 나니 그 당시로 시간이 다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왜 나랑 저 언니오빠들이랑 똑같이 학교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데 한 쪽은 편하게.앉아있고 한 쪽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우리가 과연 몇년이 지나도 이 참담한 사건을 잊을 수 있을까? " 절대 아닙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잊을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고 기억하겠습니다.
-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나는 그 다음 날 알았다.듣고 나서도 믿기지 않았고, 에어포켓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 조차도 유독성 가스였다는 보도를 보고 분노하고 실망했다.
-
그땐 대통령이니 침착한거구나 싶었는데이제 알겠네요너무나 소름끼치고 무서운 악마라는 것을
-
아침에 소식을 접했지만, 전원구조 했다는 말에 안심하며 출근했던 기억이 나네요."대단하네.~어쩐 일로 이렇게 신속하게 모두 구조를 했지~"하며 말이죠. 출근해서도 모두 다행이다...란 얘기를 했지만, 점심 이후 부터는 모두가 넋이 나가 있었던 것 같아요."왜 저러고 있냐고...~""도대체 대통령은 어디 있는 거냐고~""왜 아무도 구하지 않는 거냐고..."그렇게 티비만 바라 보며 배가 사라지는 걸 보았네요....그렇게 모두가 아이들이, 선생님들이, 어떤 가족들이 죽어가는 걸 생중계로 눈물 흘리며,조바심내며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