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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동생들 챙겨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눈에들어온 화면. 기울어져가는 세월호. 아나운서의 말 전원구조. 밥먹으며 너네도 부모가되면 걱정된다며. 다행이다 라며 밥먹고 나와서 일하고 퇴근후 뒤늦은 뉴스를 보니내 7시간의 무관심이.....다 나왔을꺼란 믿음이. 조그만 아이의 아빠로써 ㅠㅠ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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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8시간의 시차가 있는 곳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던 중 세월호 사건이 터졌습니다. 고난주간이라 인터넷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교회 카톡방에 사고에 대한 메세지가 떠서, 놀라 찾아보고 경악했습니다. 공강시간 강의동 홀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게 외국인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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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tv 로 속보가 뜬 것을 봤었고 전원 구조에서 실종 300여명로 바뀐 것을 보고 하루종일 인터넷 기사를 찾아본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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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어이없고 화가나는 순간이었습니다.가장 먼저 아이들을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순간에...무엇이 그리도 급했기에...아니 사람보다 급한게 무엇이었기에..그 장면을 보고만 있어야 했을까요...많이 무뎌져서 눈물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뉴스를 보고 눈물이 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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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반만에 휴무라 부모님댁에 내려갔고 종일 빈둥빈둥 누워있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으며 거실로 불려왔습니다. 도저히 혼자서는 못보겠다며 떨리던 엄마 목소리와 티비가득 반쯤 기울어진 배에 놀라 숨을 멈췄던게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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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었습니다.그날 저는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평소에는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를 하지만 그날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앞문 바로 뒷자리에 앉아핸드폰 뉴스로 사고 소식을 보았습니다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뉴스 봤냐고 묻고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승객들 전원구출했다는 말을 듣고다행이라는 말을 했습니다.그리고 전원구출이 오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승객들 어떻게 하냐고...왜 이렇게 무능력 한거냐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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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이라 수업이 별로 없다보니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tv를 보고 계시다가 큰 사고가 났다며 말씀해주셨던 게 기억나네요.처음엔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나와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얼마 뒤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보며 놀라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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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비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 TV를 켰는데 세월호 사고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덜 깨 저게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하며 가족들에게 사고 소식을 전했고 그 날 하루 종일 뉴스를 보면서 아무 것도 못 했던 기억이 납니다. 뉴스를 보는 내내 반복되는 현장의 비슷한 상황 보도 속에서, 구조 되었다는 소식은 커녕 배가 가라앉는 상황만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고 이 즈음이면 나올만한 정부의 입장 발표 뉴스도 보지 못 해 의아했습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가 제 기억에 남은 큰 사고입니다. 9.11 사태도 실시간 뉴스로 한참 본 기억이 납니다. 성수대교 사고 뿐 아니라 삼풍백화점 사고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뉴스에 생존자, 구조자, 혹은 사망자 명단이 흘렀고 정부의 입장이나 구조 현황 발표가 꾸준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년이 넘는 전의 이야기도 기억납니다. 이렇게 큰 사고를 어떻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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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햇살은 내리쬐고 공기는 고요히 흐르고 미세먼지가 좀 있었던 그날. 오전에 책모임을 하기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던 그날. 이야기 하는 중에 세월호 소식을 접했던 그날. 얼마지나지않아 전원구조됐다는 소식에 가슴 쓸어내려던 그날. 그러나 오보라는 말에 가슴 무너졌던 그날. 그날이후 두아들의 엄마인 나는 텅빈 눈으로 TV만 보고 아직 있을 아이들과 사람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은 세월호의 시간, 그 전과 그 후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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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 먹으며 전원구조 뉴스를 보고 다행이다 하며 넘어가고 있었는데 2시쯤에 어떻게 되었나 업무 중 잠깐 뉴스사이트를 들어가봤더니 전원구조 오보였다는 뉴스 제목이 눈에 들어와 정신이 멍해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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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처음 뉴스를 접했지요.분명 내가 본 사무실 tv화면에는 기울어진 배 주변에 해경선이 있었고,나는 정말 어떤 의심도 없이 당연히 구할수 있겠구나 싶었죠.점심식사 중에 전원 구출했다는 뉴스,그 후 오보소식, 점점 가라앉고 있는 배를 보며 아이 셋을 키우는 아빠로서 가슴이 미어졌으며 무너져 내렸으며 통곡했었네요.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눈물이 나 미칠 지경인데..당신들은 그날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구요??내 자식이 목숨같이 소중하다면 내 옆집에 자식도 목숨처럼 소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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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그날은 녹색어머니 봉사활동날이었습니다.다른날보다 일찍 나와서 봉사활동을 하고난 후 아이 학교 녹색어머니실에서 뉴스를 접했고, 모든 엄마들이 많이 놀랐습니다.내내 뉴스를 틀어놓고 운전을 하며 출근했고, 사무실에서도 뉴스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전원구조" 뉴스에 "아, 그래도 우리나라가 살만하구나"라는 안심을 했습니다만, 곧 오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아이들이 죽어가는 화면을 하루종일 틀어주던 방송사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그날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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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사고가 났다고 기사를 보여줬습니다곧 전원 구조 기사를 봤지요다행이다 , 가벼운 사고였나보네 하고 넘기고 보니 침몰 소식이 들리고 , 인근 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는 중이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안산의 대학이라 단원고에 다녔고, 동생, 친척이 다니고 있는 사람도 많은 곳이고, 안산 사는 친구들이 여기저기 연락해보는 것을 그저 초조하게 보고있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던 뉴스가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자왕하는 상황을 보며 까마득한 현실에 절망했던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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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으로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메일과 각종 업무를 처리하면서 보낸 오전이 지난 오후 점심시간.....평소와 같이 헬스장-러닝머신에서 TV를 보았을때의 당혹/황당/먹먹함...어떤 단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순간...마치 영화의 장면일꺼라는 부정하고 싶은 그 순간....TV에서 눈을 땔수 없었고이후 사무실에서도 아무일도 하지 못한채 멍하니...그리고 간절함으로 뉴스속보를 보고 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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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4월 16일 저는 10시부터 11시반까지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속보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당연히 전부 구조 되겠지" 하며 별것 아닌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접하고, "다행이네"했으나 결국엔 오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가안전 체계와 비상사태에 대한 대처에 매우 실망했습니다.사무실에 앉아서 계속 일은 하고 있었는데, 특히나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들이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업무에 집중이 잘 안됐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국민들은....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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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열었던 포털사이트.속보가 떴습니다.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탄 배가 진도 근처 바다에서 좌초 됐다고.잠시 후 잔원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그런데 퇴근 후 접한 소식들은 온통 비보.배와 함께 속수무책으로 가라앉았다던 아이들.이미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그저 안타까워하고, 눈물 흘리고, 아파할 뿐.그 때까지만 해도 재해라고 생각했습니다.곧이어 시작된 진실 공방.어떤 언론은 차마 상상할 수도 없던 이야기를 진실이라 했고, 어떤 언론은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자며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거쳤다고 했습니다.피해자들이 납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명확한 원인도 밝히지 못하고, 책임자들의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세월이 지났습니다.기억은 옅어지고 진실을 알고자 했던 의지 또한 약해졌지만,세월호. 한 마디에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은 답답하기만 합니다.우리는 병들었다고 생각합니다.일상을 영위하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져 외면했던 현실로 인해 마음의 병이 생기고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그럼에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잊지 않는 것.사건을. 세월호의 승객들을. 최선을 다했던 일부의 승무원들을.당장의 비난을 막기 위해 감추고 포장했던 진실이 어떻게 돌아오는지를.무능하고 무책임한 한사람, 한사람에서 시작되는 비극을.꼭 기억하고.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도록 할겁니다.잊혀지지 않기에.정확히 기억하고 싶은.세월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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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입사동기 대리님과 함께 외부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교육 듣느라 뉴스를 제대로 확인 못 해서 대리님이 말씀해주신 뒤에야 알게 되었죠. 곧 포털사이트를 뒤져 뉴스들을 보기 시작했고 대리님과 저, 같은 교육장에 있던 사람들은 초반만 해도 별다른 일 없이 강의를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사고 뉴스라고 생각했고 분명 구조대가 갔겠지 하는 생각, 그리고 곧 전원구조라는 (오보였지만)보도가 떴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고 곧 강의장은 세월호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로 가득해졌습니다. 저는 그래도 아 지금 저기 날씨 상황이 안좋아서 구조가 늦어지는 거겠지, 결국 큰 희생 없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나 안일했던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그 이후 강의시간에 들어온 강사님은 우선 묵념을 하고 강의를 시작했고, 그날은 그렇게 오래오래 아프게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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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으로 부산대학병원 10층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네요...티비에서 계속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는데 얼마나 허망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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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뉴스를 좀 보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YTN어플에서 오는 알림을 다 받아 읽었었어요. 그날도 뉴스알림들이 쏟아졌고, 사무실에서 틈틈이 폰을 몰래 훔쳐보던 중 배가 침몰해서 몇백명이 위험하단 알림을 보고 소리내서 놀랠뻔했어요. 그런데 곧 전원구출이라는 알림이 오더라구요. 아 다행이다 별일아니네 하고 다시 일을 했는데 좀이따가 오보라는 알림이 또 떠서 굉장히 황당하더군요! 탑승객 중에 수학여행가던 고등학생들이 많다고 해서 심란한 마음에 하루종일 일이 잡히질 않았어요. 고등학교 친구들이 괜히 생각나 카톡으로 말을 걸어 다같이 세월호 학생들을 걱정했지요. 다들 고등학생이던 시절이 있었고, 뭔가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본적이 있었으니까 남일처럼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비록 입시스트레스에 항상 피곤하긴 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그 모든 것을 함께하던 친구들이 있어서 즐거웠는데, 아직도 그 두근거리던 어린 마음이 생생한데.. 그것을 앗아가버린 사고라니.. 정말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입을 모아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때 자주가던 커뮤니티에서는 누군가 세월호 탑승자를 빙자해서 거짓댓글을 남겼다가 무척 욕을 먹었었어요. 점심시간에는 밥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회사지하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갔던거같아요. 런닝머신만 30분을 했는데 앞에 놓은 TV를 뉴스채널로 돌려놓고 계속해서 생존자 명수를 확인하고 있었어요. 절망적인 숫자에 눈물을 참으면서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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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입학이 확정되고 여느 때처럼 대학교 도서관에 있다가 스마트폰으로 세월호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호에 관한 뉴스가 오보라는 사실...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황당했습니다.언론이 많이 망가졌다. 그리고 기자가 기레기라고 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설마설마 했지만.. 이런 중요한 뉴스가 오보로 나갔다는 사실에... 정말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하지만 지금 7시간의 미스테리가 거의 풀려가고 있음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어른으로써 다짐하고 또 다짐해 봅니다.단원고 아이들아, 이제 너희들이 왜 그렇게 하늘 높은 곳에 갑자기 가게되었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