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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기억합니다.분명히......(미 동부시간으로 밤) 큼지막한 유기농 배추 한 포기 사가지고 온 날입니다. 깜박 절여두는것을 잊고 놔두었다가 잠자기 전 소금이라도 뿌려둬야겠다 싶어서 TV를 켰습니다.일반 채널대신 그날 한국 방송으로 돌렸던 이유는 김치도 담고 이런저런 다듬을 것들이 있어 모처럼 우리 방송을 튼 것이었지요.TV를 켜니 크나큰 배가 들어오더군요. "전원구조" 라는 단어를 보면서 어쩌다가.....그런데 참 불행중 다행이다 여겼지요. 그리고 배추를 소금물에 담그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TV를 켰습니다........이후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미어지는 슬픔과 분노로~ 그 전날 절여둔 배추를 어떻게 했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망연자실 했던것 밖에는...... 배추를 절일 때 마다 그 아픔이 그날 그대로 똑같이 언제나 아프게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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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점을 먹습니다그래서 식사 준비중에 뉴스를 첨 접했죠다 구했다남편이 그랬어요저건 아니야 저렇게 빨리 구할수 없다그리고 식사준비중에암초에 부딪힌건 같다고 뉴스가 나오더라구요화면에 파란 페인트가 벗겨져서 하얗게 드러난 자국이 있더라구요앵커가 흰 매직으로 동그라미를 치며 여기가 암초에 부딪힌 자국이라고 식구들이 저거 이상하다왜 자국이 동그랗냐(유성마냥 끈 자국이 없었어요)저건 배가 가다가 암초에 부딪힌게 아니라 마치 암초가 날아와 밖힌 자국 같잖냐아마 11시 30분 즈음 제가 그랬을거예요여보 저것들이 아이들 안살려주려나봐해병대 도착했다는 뉴스가 없어(점심 먹으러 갔다는 말에 쌍욕을)그때 부터 전 눈물바람저녁에 강당에서 유가족 중 한분이해지는데 아이들이 아직 바다에 있다고우는거 보고 전 그냥 앓아 누웠어요아이가 중환자실에 의식 불명으로 일주일 있었던 그날 저녁이 오버랩 되면서 더이상 견뎌내지를 못한거죠세월호는 우리모두의 아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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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침에 일어났는데 남편이 한국에 몇 백명을 실은 배가 뒤집어 진다고.. CNN 한 장면을 보면서 아니 저게 어찌된 일인가.. 구조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인터넷을 보면서 한참을 헤메다가 그래도... 21세기에 인명은 다 구조되겠지 싶어서 혼자 밑도 끝도 없이 안심하고 일갔어요... 너무 충격적이라 일하면서 설마 설마.. 눈물도 나지 않더라구요. 집에 왔는데 아직도 구조를 못했다하고 배는 뒤집어지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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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인터넷으로 수업을 하시다가 검색을 위해서 네이버에 들어갔을 때 처음 접한 것을 기억합니다. 전원구조라하여 안심하고 수업이 끝난 후 점심을 먹고 이빨을 닦으며 컴퓨터로 검색을 했고 저희 반 전체는 칠판에 띄워진 큰 화면에 서 실종자 300이상을 보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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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여느때와 같이 무심코 네이버를 들어가서 본 "전원구출", 다행이네 하고 무시했지만, 바에 출근해서 튼 CNN에서 나오는 끔찍한 비극... 그리고 하루하루 더 심해지는 비극... 일개 학생인 내가 기억하는데, 최고 권력자,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되는 지도자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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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후 오침시간에세월호가 가라앉아간다는 뉴스를 접하고 기도했습니다. 다 구할 수 있다고 다 살아야한다고 다 살아서 다시 지긋 지긋한 학교도가고 분식집에서 맛있는것도 먹고 웃으면서 죽을뻔했다고 장난처럼 이야기도 하길바라며그런데 그날 티비 속에서 꽃이 지고있었습니다. 아직 다 피우지 못한 어여쁜 꽃들이 그렇게 져버렸습니다.그리고 그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한마리의 아니 수백마리의 야당,여당,대통령,..정치인이라는 탈을 쓴 닭들을기억합니다. 그날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 어른들에 대한 신뢰도 같이 가라앉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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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만나러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20여분 타고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양희은씨가 처음엔 사고소식,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전했어요. 그러고는 버스에서 내려 낯선 압구정동 길을 좀 헤매다가 친구가 알려준 식당으로 가서 친구들 만나고 브런치 먹으며 이런 일이 있는데 전원 구도됐대 이러면서 놀다가 또다시 버스를 타고 오후에 집에 왔어요. 그때까지도 참사에 대해 알지 못한 채 티비를 켰는데 구조는 커녕 구조 중이라고 비치는 화면에는 커다란 배만 뒤집어져 있고 아무도 안보이고. 그날 티비생중계로 아이들 죽어가는 걸 지켜본 셈이 되었고, 몇날밤 악몽을 꿨어요. 내가 배에 타고 있고 어린 내 아이들이 손을 내미는데 잡아주지 못하고 결국 나도 아이들도 물에 잠기는...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해서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며 눈물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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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기억합니다.그날 휴가였는데 집에는 얘기안하고 출근해서 목욕탕 갔었습니다 탕에 들어갔다 나오니 수학여행 가는길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전원구조 그런 기사도 떴었고요그 시간이 10시반 정도 됐을거 같네요같이 계시던 아주머니들이 애들 수학여행 갈때 꼭 이런 사고가 난다고 말씀하시던거 기억나네요그리고 계속된 구출자 오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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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당시 전 상근예비역 군인신분으로 동사무소있는 동대에 출근해서 동대장님과 뉴스를 보면서 사건을 접했습니다.. 입대전 여객선에 근무했던 해기사로써 펴지지않는 구명뗏목과 너무도 한산한 갑판을 보며 일이 터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론의 전원구조도 못미더웠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날 정해진 일과(예비군 입출내역을 주로관리합니다. 전입 3명 전출 1명 해외여행출국1명이 당일 내역입니다.)를 끝내고 퇴근해 집으로와 다시 뉴스를 보니 혹시나했던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원구조오보.....그날 저녁을 거르고 계속 뉴스만 봤었습니다. 군인으로써 매일 똑같이 보내는 제가 기억합니다. 근데 vip를 응대한 당신이 모른다는건.....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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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특보를 보면서 ......이게 뭔일이야? 아이고 아이들 어떻해!!!아침부터 저녁까지 화면에서 눈을 뗄수없었습니다울 아들이 그때 20살 이라 이런생각을했습니다울아들도 저뱃속에 있었으면...생각하니 울컥! 세월호가족들 애타는 심정이 즉시로 전달되어왔습니다남편과 팽목항도 찾아갔습니다 바다를 보면서 아이들의 울부짖음을 느꼈습니다 살려달라고...그 어린 아이들을 춥고거친 무서운 바다에 수장을..너무 가슴아프고 그대로 보고만있는 정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화면만 바라보고 발만동동거릴뿐..끝내 배가 물에 잠길때 그때도 믿기지 않았습니다우리 딸 작은차에는 지금도 세월호 스티커를 붙이고 다닙니다 "잊지 않을께요~기억하겠습니다."지나는 몇몇차들도 노오란 리본 스티커를 붙인차도있고 우리 목사님은 아예 2014년 그날부터 양복에 노란리본을 달고 한번도 떼지않고 다니십니다우리에게 나눠주기도하셨답니다잊지 않겠습니다기억하겠습니다우리 아이들이 하늘에서 편히 쉬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래봅니다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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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거주하던시절 뉴스와 담쌓고 지내던 저는 세월호의 침몰을 현지 회사동료를 통해 듣게되었습니다. 너희 나라에 큰 배가 뒤집혀서 큰일이난것같다고 얼른 확인해보라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뉴스를 찾아보니 한국 언론은 온통 세월호 이야기였고 카톡역시 그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누군가 구출되겠지 하는 바람으로 삼일 밤낮을 뉴스만 틀고 기도했던 그날들이 기억납니다. 몇일째 같은 얘기만 반복 혹은 번복 하는 공영방송에 질려 다른 채널들을 보게되었고 실종자 가족들이 있던 체육관을 생중계하는 방송을 보게되었습니다. 공중파에서 보여주지않는 실제 현황과 체육관에 있는 가족들에게 뉴스를 오보라며 믿지말라며 고개숙이고 사과하던 경찰담당자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실감한 것 같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민낯을.. 아직까지도 뭐가 중한지 모르고 국민을 우롱하는 지도자와 자식을 가슴에 묻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유족들을 동시에 보며 할수있는 일이 없어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나 자괴감이 들곤 합니다. 저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않아도 세월호사건을 잊지 않으며 아이들을 지켜주지못해 미안한 마음을 안고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가끔 세월호 뉴스를 보며 울다 잠들며 악몽에 몸서리치면서 일어나던 그날들을 기억합니다. 사회에 무관심했던 저를 정치에 눈뜨게 하고 헬조선의 한 시민으로서 세상약자의 편에 서게만든 이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잊는단 말입니까. 저는 잊지못합니다. 헬조선에서 피우지 못한 우리 꽃같은 아이들은 지금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모두 잊고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지만 아직 이땅에서 숨쉬는 저는 이 날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무너져가는 우리나라가 현명한 국민들로 인해 정의를 구현하는 그날이 어서 오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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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동생들 챙겨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눈에들어온 화면. 기울어져가는 세월호. 아나운서의 말 전원구조. 밥먹으며 너네도 부모가되면 걱정된다며. 다행이다 라며 밥먹고 나와서 일하고 퇴근후 뒤늦은 뉴스를 보니내 7시간의 무관심이.....다 나왔을꺼란 믿음이. 조그만 아이의 아빠로써 ㅠㅠ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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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8시간의 시차가 있는 곳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던 중 세월호 사건이 터졌습니다. 고난주간이라 인터넷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교회 카톡방에 사고에 대한 메세지가 떠서, 놀라 찾아보고 경악했습니다. 공강시간 강의동 홀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게 외국인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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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tv 로 속보가 뜬 것을 봤었고 전원 구조에서 실종 300여명로 바뀐 것을 보고 하루종일 인터넷 기사를 찾아본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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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어이없고 화가나는 순간이었습니다.가장 먼저 아이들을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순간에...무엇이 그리도 급했기에...아니 사람보다 급한게 무엇이었기에..그 장면을 보고만 있어야 했을까요...많이 무뎌져서 눈물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뉴스를 보고 눈물이 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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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반만에 휴무라 부모님댁에 내려갔고 종일 빈둥빈둥 누워있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으며 거실로 불려왔습니다. 도저히 혼자서는 못보겠다며 떨리던 엄마 목소리와 티비가득 반쯤 기울어진 배에 놀라 숨을 멈췄던게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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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었습니다.그날 저는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평소에는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를 하지만 그날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앞문 바로 뒷자리에 앉아핸드폰 뉴스로 사고 소식을 보았습니다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뉴스 봤냐고 묻고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승객들 전원구출했다는 말을 듣고다행이라는 말을 했습니다.그리고 전원구출이 오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승객들 어떻게 하냐고...왜 이렇게 무능력 한거냐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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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이라 수업이 별로 없다보니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tv를 보고 계시다가 큰 사고가 났다며 말씀해주셨던 게 기억나네요.처음엔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나와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얼마 뒤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보며 놀라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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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비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 TV를 켰는데 세월호 사고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덜 깨 저게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하며 가족들에게 사고 소식을 전했고 그 날 하루 종일 뉴스를 보면서 아무 것도 못 했던 기억이 납니다. 뉴스를 보는 내내 반복되는 현장의 비슷한 상황 보도 속에서, 구조 되었다는 소식은 커녕 배가 가라앉는 상황만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고 이 즈음이면 나올만한 정부의 입장 발표 뉴스도 보지 못 해 의아했습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가 제 기억에 남은 큰 사고입니다. 9.11 사태도 실시간 뉴스로 한참 본 기억이 납니다. 성수대교 사고 뿐 아니라 삼풍백화점 사고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뉴스에 생존자, 구조자, 혹은 사망자 명단이 흘렀고 정부의 입장이나 구조 현황 발표가 꾸준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년이 넘는 전의 이야기도 기억납니다. 이렇게 큰 사고를 어떻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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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햇살은 내리쬐고 공기는 고요히 흐르고 미세먼지가 좀 있었던 그날. 오전에 책모임을 하기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던 그날. 이야기 하는 중에 세월호 소식을 접했던 그날. 얼마지나지않아 전원구조됐다는 소식에 가슴 쓸어내려던 그날. 그러나 오보라는 말에 가슴 무너졌던 그날. 그날이후 두아들의 엄마인 나는 텅빈 눈으로 TV만 보고 아직 있을 아이들과 사람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은 세월호의 시간, 그 전과 그 후로 나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