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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엄마도 그 날 수학여행을 가셨어요. 저희 엄마는 진도에서 선생님을 하고 계시고 저는 그 당시 수업중이었는데, 수업도중에 선생님이 진도에서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딱 전해 듣자마자 우리 엄마가 떠올랐어요. 저희 엄마도 똑같은 날 진도에서 학생들 데리고 배타고 수학여행 가셨거든요. 안산에서 출항한 배였다는걸 못들은 상태였어요. 처음에 1~2분동안은 머릿속으로 정말 많은 생각이 지나갔는데, 설마 우리 엄마일까.. 오늘 아침에 별로 좋은 말 하고 나오지도 않았는데 설마 이게 마지막이 되진 않겠지.. 등등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했던 모진말들이 다 생각나면서 수업시간 도중에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이게 마지막이라면 정말 후회도 많고 엄마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것 같단 생각이들고 정말 별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저 혼자 수업을 중단하고 선생님하고 엄마한테 전화해보기로 했는데 엄마랑 전화연결도 안되고 그랬어요. 절망적이였죠. 그리고 안산에서 출발한 배란 소식을 듣고 그 다음엔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예요. 있어서는 안될 역대급 오보. 그리고 끊이지 않는 언론의 거짓말들까지...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정말 뚜렷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한테 어디서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 저희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세월호 생각밖에 없었던 것, 집에와서 이젠 믿지못할 언론사 채널을 켜놓고 가슴졸이며 같이 울던것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을것 입니다. 잊지 못할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떻게 이런 일을 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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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며 아무생각도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tv보다가 하늘보다가 tv보다가 하늘보다가 하면서 일도 못하고 흐르는 눈물만 하염없이 닦아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직도 그때 생각을하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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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된 첫째 아이와 함께 새집으로 이사온 다음날이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새집에서, 남편이 출근한 뒤에 조용한 시간을 아이와 둘이 보내며 뉴스를 보고 있는데 세월호 보도가 나더군요. "전원 구조"라기에 "별일이네, 다행이다.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겠구나" 싶었습니다. 하루 종일 배가 점점 가라앉는 게 생중계 되고 있는데,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그 날 이후로 믿을 수 없는 뉴스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지요. 아이러니하고 구슬프게도, 그 날을 생각하면 전 깔끔하게 정리된 집과 그 집안으로 들어오던 따스한 기운. 그리고 해맑게 놀고 있던 제 첫째 아이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답니다.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기억이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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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 사고에 대해 굉장히 늦게 안 편입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학교가 일찍 끝난 후 돌아와 집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일어난 후 티비를 틀었더니 뉴스가 나오더군요. 커다란 배가 바다에 잠겨가는 모습이요. 처음엔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큰 사고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볼 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이 사고가 얼마나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고인지가 실감났습니다. 저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채 피지 못한 수 많은 꽃들이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 앉았습니다. 꽃잎은 흩어졌지만 그 씨앗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심어졌습니다.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우리의 촛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진실은 절대 가라앉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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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병원 수술실 앞에서 친정엄마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기하는동안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TV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죠. 다행히 모두 구조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나 오후 뉴스에 다시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로도 며칠동안 밤을 새가며 구조소식을 기다리며 TV앞을 떠나지 못했죠.결국 더이상의 구조자가 있다는 뉴스를 접하지 못했고 안타까운 마음에 한동안 공황상태처럼 지냈어요.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제가 그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다시한번 고인들의 명곡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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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생에서 힘든 시기 중 하나를 보내고 있을 때였어요. 누구를 믿어야할 지도 모르겠고 언제 나아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깊은 어둠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되었던 그 시기 중 어느 하루에 소식을 접했습니다.그래서 사실 부끄럽게도 그날의 7시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아요. 수면패턴에 문제가 있어 아마 구조되었다는 오보는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아직 구조가 되지 않았다는 속보를 보는데 나도 세상도 같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어요.. 그날부터 며칠간 하릴없이 멍하니 뉴스를 보다말다 했던 거 같아요. 그때 이후로 나는 많이 괜찮아졌는데, 아직도 우리는 괜찮아지지 못했고 너무나도 아픈 세상에 살고 있네요. 그때는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너무 미안합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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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을리가 있습니까. 직업 특성상 남들보다 조금 늦은 출근길에 들었던 그 비보를요. 그 날 제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생각나는걸요. 제법 맑았던 날씨도요. 기억 안 난다는 자들은 대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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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시간에 사고소식을 듣고 전원 구조라는 소싣에 동료들과 다랭이라고 하는 순간 귀를 의심케한 소식에 먹먹해지는 가슴으로 뉴스만 쳐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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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 구조됐다길래 그러줄만 알았습니다 아무생각없이 학원도 가고 집에 갔습니다 그리고 티비를 틀고 뉴스를 봤습니다 헬리콥터소리와 배가 뒤집힌 사진이 떴고 그냥 멍하니 뉴스만 봤습니다 그날은 절대 잊지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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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를 보던도중 이메일확인을 위하여 인터넷을 키자 실시간검색어 1위인 세월호 침몰이 떠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원구조라고 떻지만 그것은 거짓부렁이 오보었다는것을 알고 매우 황당했습니다. 오보도 무슨 그런 잔인한 오보가 있나 했던 저의 감정이 아직도 절절히 기억에남습니다. 어찌 7시간을 기억못할수있습니까. 어제일도 기억못하는 저조차 그날의 일이 생생히기억에남는데 대통령이라는사람이 말입니다. 당신은 대통령이아닙니다. 절대 당신은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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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11:00am , 아침 등굣길 4호선 사당역 안에서 전원 구조라고? 아, 그럼 별 거 아닌가 보네"4/16 18:00pm, 시험 공부 하던 중 저녁을 먹던 식당 안에서 "뭐라고?"4/16 22:30am, 하교 후 현관문을 열자 보이는 엄마의 눈물"엄마..어떡해?........어떡해?"그 날의 기억이 너무 생생합니다. 기억이 나지않는다는 그 말, 정말 무책임합니다. 우리는 잊지 않습니다.잊었다고 말하지 마세요.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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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상 춤을 춰왔고 지금도 추고있습니다그날..평소와 다름없이 학원 수업을 준비하다가 믿기 힘든 뉴스를 보게되었습니다.희망을 가지고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내 가족일처럼 손발이 벌벌 떨리고 이유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1시간..2시간.. 3시간 4시간..쉴세없이 쏟아지는 기사와 뉴스속에 희망을 찾으려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그렇게 하루 이틀 ...피말리는 시간속에..정부의 무능력한 대처....결국 아무것도 할수없다는 생각에 깊은 무기력함에 빠졌습니다.생계를 책임지던 수업을 할수없을정도로..힘들었습니다. 이렇게 큰 슬픔속에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는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몇년이 지난 아직도 ....그날이 너무 슬프고 힘이듭니다. 사람이라면 , 양심이있다면 제발 그날의 진실을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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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나이. 저희 학년은 다음주에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었습니다. 수학 여행 갈 날만 기다리는 중이었어요.신기하게 너무나도 맑았어요. 너무너무 고요하고 평화로웠어요. 햇살이 따뜻하고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하얗고. 참 포근하고 나른하다. 4월 16일도 역시 어제처럼 참 평범하구나 했습니다. 심심해서 들어간 트위터에 세월호가 떠있었습니다.거실에선 공중파 뉴스로 세월호 소식이 나오고 있었구요. 뉴스는 금방 모두가 안전하게 구조될것 처럼 지껄이고 있었지만 저는 불안했습니다. 왜, 저는 그 촉이라는거 잘 안 믿는 편인데 정말 강렬하게 확신이 드는 때가 있어요. 진짜 불안했습니다. 아니야. 아닌것 같아. 저거 아닌것 같아. 뉴스 이상해. 왜 그러는지 저조차도 잘 모르겠는데 제 마음이 자꾸 아니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이래요.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고 놓지 못하겠는 핸드폰 에선 sns 에서 빠르게 퍼지는 세월호, 단원고 학생들에 관한 사실과 루머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었습니다. 거짓말. 정말 거짓말이었어요.2014년부터 지금 2016년까지 저는요.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비워버린 휴지곽만 셀 수도 없어요. 2014년 4월 16일에는 그저 사람 목숨가지고 장난치는 루머 생성자들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제 자신 때문에 울었었는데 지금은 분노가 더 차오르네요. 기억 못한다는 당신은 거짓말쟁입니다. 최악이에요.아마 죽어서도 그 아이들은 못볼 거예요.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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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저녁시간에 급식실에서 줄을 서있다가 태블릿을 꺼내어 뉴스를 보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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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온통 TV를 통해 비추어지는 세월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계속 거실과 부엌을 왔다갔다 하면서 밥그릇 하나 설겆이 하다가 TV 한번 보다가..... 그러다 전원구출...이라는 자막을 보고 아! 정말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얼마 후 오보로 알려지고 몇명을 구했다는 소식을 계속 접하면서 날은 저물고.. 그럼 남아있는 사람들은 언제 구하나..걱정하면서 하루를 보냈던 그 날.. 절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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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 학교 선생님께서 얘기를 해주셔서 소식을 들었고 다들 구조가되길 바라고있었습다나와 동갑에 같은 처지에 아이들이 구조가 되길 바라고있었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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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이었던 대학생이었습니다.학교 강의를 듣던중에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았습니다.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안도했습니다.하지만, 몇시간 뒤 제가 학교 도서관에서 본 뉴스는 이전의 내용과 달랐습니다.전원구조라는 말과 달리 실종자들의 수가 늘어갔고, 기사 사진에는 세월호의 모습이 가득했습니다.그 기사, 뉴스를 보면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척 슬프고 아팠습니다. 제가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답답했습니다.제가 보고있는 사실들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집중이 되지 않아 결국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TV뉴스를 시청했습니다.실종자의 수는 변하지 않고 늘어만 갔습니다.제 동생과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 그리고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그 날 그 뉴스를 보면서 가족들을 할말을 잃고 슬픔에 잠겼습니다.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때,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있던 정부에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우리는 4월 16일 그 날을 기억합니다.그 날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우리가 느꼈던 감정들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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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눈물부터 납니다.돌이켜보면 저는 그날 살인 현장을 목격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회사와 학교, 어린이집에 보내고 커피 한 잔 들고 쇼파에 앉은 시각 9시! 큰 배가 기울고 있다는 뉴스 속보에 다행이다 안도했습니다. 갑자기 뒤집힌 것이 아니니 모두 구조할 시간이 충분히 있다 생각했으니까요. 구명조끼가 충분해야 하는데...하고 걱정했지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질 줄은 정말 생각조차 못했습니다.그러나 1시간 간격으로 뉴스를 체크하면서 왜? 어째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배위로 나와 있었어도,누구라도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쳐 알려 주었어도,유리창을 깰 망치 하나라도 들고 구조에 나섰다면, 아니구조할 마음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이건 살인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의문이 남고 사건은폐의 흔적이 남아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지금도 샤워하다 찬물에 깜짝 놀랄 때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마음 아픕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어떻게 잊어집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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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다 수업 중에 세월호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사고를 듣고 나서 반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때만 해도 단순 사곤 줄 알고 모두 구조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매시간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께서 세월호 소식을 알려주시는 것을 듣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거기 안에 계셨던 분들의 마지막 소식이 담긴 문자 내용을 보고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암울했고, 슬펐고, 원망했고, 무능했고... 저는 이제 곧 그들과 같은 나이가 됩니다. 아직도 세월호만 생각하면 먹먹해 옵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고 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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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 여행중이 였습니다. 우리는 여유롭게 구경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을 생각에 설레고 들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 후로는 그 어떤 것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대신 무엇을 하더라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웃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만족하는 것도 죄를 짓는 기분이 였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그 때, 그 감정 어떻게 잊을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