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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있었어요.업무 보느라 점심 즈음에야 기사를 봤어요.근데 그게 전원 구조됐다는 기사였어요.그땐 그게 오보인줄도 몰랐어요.그냥 다른날이랑 똑같이 직원분들이랑 점심 먹으면서 얘기했어요."그거 뉴스 보셨어요? 배 침몰했다면서요. 학생들도 많이 타고 있었대요. 근데 다 구조했대요. 다행이지 뭐에요. 진짜 큰일날 뻔 했잖아요."우리가 본 뉴스가 오보인 줄도 모르고.그대로 믿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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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여행 중에 자고 일어나니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이 온통 세월호관련이라 무슨일인지 뉴스도 찾아보다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아 괜찮구나 안심을 하고 인터넷을 껐어요. 그 날 길을 물어본 프랑스인 할머니에게 한국인이라 하자 한국의 ferry accident에 대해 들었다는 대화를 한 기억이 납니다.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도 아이들의 사고를 알았는데 대통령은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찾기가 힘드냐는 소리나 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더욱 믿기지 않아요. 그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다시 인터넷을 연결하자 아직도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충격받고 뉴스들을 찾아보며 걱정하며 잠든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걱정 하면서도 그 많은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2년이 지난 지금도 인양조차 못했다는 것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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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학교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고 있었는데 속보를 통해 침몰되었지만 전원 구조되었다는 다소 의심스러운 속보였지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린후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 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전원구조는 오보며, 아직 많은 학생들이 구조되지 못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억하기에 너무 아프고 슬프고 먹먹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꼭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도록 저도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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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던길에 인터넷 뉴스로 접했어요.제가 처음 기사를 본건 전원 구조라는 오보였고 출근길 내내 기사를 보다가 참담한 현실에 울면서 출근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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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언니는 그 때 스물하나였고, 내 나이가 고작 스물 하나라고 생각했어. 너희의 나이가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을 무렵일거야. 언니는 그 날 수업을 듣고 있었고, 옆에 앉은 동기가 나를 툭툭 치더니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어. 내가 입모양으로 뭐야? 라고 했고, 동시에 수업이 끝났어. 그리고 당장 다음주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었고. 거기서 완전구조의 기사를 보게 됐었지. 도서관을 나서고 학교 근처 자취방으로 향하는 15분 사이에, 그게 완전히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실시간으로 진도의 상황을 보면서 언니는 계속 울기만 했어. 그리고 간절히 바랐지. 제발, 제발, 제발.하느님, 이건 아니잖아요. 이게 아니잖아요.바다는 컴컴하고, 진도의 불빛들은 온통 우는 소리를 냈었어.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우리 애 좀 구해주세요. 솔직히 말하면 언니는 말도 안되는 에어포켓의 존재를 믿었어. 그리고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랬고. 있지, 언니가 울기마 했던 7시간 속에서 바람의 냄새까지 기억한다면 믿겠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머리칼을 스치던 바람과, 봄을 타고 오던 바람과, 맡은 적 없는 제주의 바람과, 별이 된 천개의 바람까지 아직도 기억한다면 믿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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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직전 뉴스 속보를 통해 세월호 침몰 소식을 보고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확인 후 집을 나섰다약 한시간 쯤 지났을까 회사에 도착해실장님이 틀어두신 컴퓨터 화면 영상을 보니전원 구조는 오보 그렇게 너희는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의 곁으로돌아오지 못했지..1년 후 광화문 광장에 국화꽃을 헌화하는데단 한번도 마주친적이 없는 너희들이었는데왈칵 눈물이 나더라..그리고 며칠 전 다시 광화문 광장에 방문에국화꽃을 헌화하며 너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어이런 무능력한 대통령을 만나 꽃이 채 피기도 전에 저버렸어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나는 평생 너희를 잊지 않을거야하늘나라에서는 꼭 예쁜 꽃 피워.. 절대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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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영화 시간에 늦어서 안산에서 택시를 탔다.라디오에서는 세월호 얘기가 나왔고남자친구와 세월호 얘기를 하자 택시기사님이 전원 구조됐다 하셨다. 즐겁게 놀러 간 수학여행에서 얼마나 놀랐을까 그래도 전원 구조 돼서 다행이라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나중에 기사로 접한 건 전원구조 오보 소식이었다.18살,내 동생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과많은 사람들이 침몰하는 배 안에 있다. 그날 내가 무슨 영화를 봤는지 남자친구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가족들과 어떤 얘기를 했는지기억나지 않는다.하지만 이 날의 세월호 기억은 생생하다.앞으로 더 밝았을 생명들의 빛이 꺼졌다.꺼뜨렸다.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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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대학교 조별 발표가 있어 정신이 없었던 와중에 친구에게서 카톡을 받았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놀란 마음으로 뉴스를 검색해보니, 사고가 났지만 모두 무사히 구조 되었다고 하였다. 구조 되었다니 다행이네 라며 간단히 생각한 뒤, 수업을 듣고 발표를 진행하였다.발표를 마친 후 쉬는 시간에 교수님이 사고 이야기를 꺼냈다. 사고가 난 건 안타깝지만 사상자없이 모두 구조되었대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다시 뉴스를 클릭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침몰하고 있던 배의 사진이었다.모두 구조되었다는 것은 오보라며 아직 세월호 안에 몇 백 명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세월호는 아직 눈 앞에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면서 눈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온갖 이야기가 떠돌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어떤 말을 신뢰할 수 있는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은 점점 지나갔다.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하며 며칠에 걸쳐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요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없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는데, 언제까지 세월호를 이야기 할 거냐면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세월호는 부패한 권력이 낳은 인재이다. 당연히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 모든 희생자들이 평화와 안식을 얻기를 기도하며,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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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다가 인터넷 뉴스로 보게 된 세월호 사고 소식.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에 별 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겼다. 오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해경이 도착했으니 별 피해없이 다 구조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땐 몰랐다. 많은 사람들에게 춥고, 아프고, 힘든 나날이 될 시발점이었다는 것을. 하루종일 스마트폰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내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세상은 춥고, 아프고, 힘이 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기억해야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그 믿음으로, 우리는 그 날의 기억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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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없이 무관심하게 지나가려고 했었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이 캄캄한 바다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나는 도저히 그 기분을 상상조차할 스 없습니다.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출근길 직장인에게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서, 등산하러 지하철 타시는 등산객들에게서 세월호를 봅니다. 나는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잊지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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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세월호 소식을 접했고 교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이게 웬 일이야 하며 얘기하며 바빴는데,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고 그 티비 화면을 바라보면서 도무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피기도 전에 져버린 아이들, 내 나이대의 친구들,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할 것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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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아직까지 공부중인 학생입니다. 매일이 같은 고시생은 어제도 기억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 날만은 아닙니다. 눈을 감으면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같이 점심 먹던 친구의 모습, 학교 식당에서 내가 앉았던 자리, 가라앉는 세월호가 비춰지고 있는 식당 내 티비... 오전에 공부하는 동안엔 몰랐던 사고 사실과 그 규모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날부터 시작된 정부에 대한 불신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세월호만큼 마음의 짐도 여전합니다.그날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변명입니다. 그때도 지금도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제가 또렷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을겁니다. 그때도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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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였는데 처음 기사가 났을때 학교 단체가 웅성웅성 했어요 담임선생님은 전원 구조가 됐다는 기사가 올라왔으니 너무 걱정하지말고 얼른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는데 그게 오보라는 기사가 나왔고 결국 그 날 점심은 넘어가지 않아 남겼었어요..같은 지역은 아니지만 바로 옆 지역의 학교여서 친구 몇몇은 단원고에 다니기도 했었어요 저녁때 그 친구들한테 연락했었는데 동아리 후배가 연락이 안된다며 울고있어서 같이 울었어요 또래기도 하고 가까운 학교에서 그런 사고가 나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저는 아직도 그때가 생생해요 잊지 않았습니다. 항상 기억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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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사에 프린트를 하러 가서 컴퓨터를 켰는데 네이버 실검에 익숙한 이름의 학교가 떠있었습니다.놀라긴했지만 별일아니겠지 .. 하며 클릭했는데 단원고 아이들이 탄 배가 침수되고있지만 전원 구조했다. 라는 기사 놀란가슴을 쓸어내리며 전원구조라니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학교와 집 거리가 멀어 버스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 집으로 와서 자연스럽게 티비를 켰습니다. 전원구조는 오보였어요. 그때부터 지옥같던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번 집근처에서 보던 교복 어쩌면 나와 같은버스를 타고 같은 길을 걸었을 아이들... 온나라가 비탄에 빠졌고 안산시는 죽은 도시같았습니다. 저또한 그랬고요 며칠을 뉴스를 보며 울다 잠들었습니다. 내일은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내일은.. 내일은.. 아직도 몇 아이들과 선생님은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했습니다나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비통함을... 마음이 찢어지던 그날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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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중이었는데 점심먹으면서 들은 라디오는 다 살았다고 했어요. 정말 큰일이었는데 구조되었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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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 학교 1학년 일본인입니다.일본에서는 사건에 대해서 잊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나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얼마나 무서운 생각을 했을까요?내가 번역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한국어가 틀렸는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나라가 달라도 우리는 같은 인간입니다.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 비참함을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내 마음이 여러분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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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즐거울 일도 슬플일 없이 지루하고 똑같이 흘러가던 날이내 인생에 잊혀질 수 없고, 쉽게 다른 무언갈 할수도, 편히 잠들 수도 없었던 시간.하루종일 휴대폰과 TV를 보면서이 모든게 꿈이길 간절하게 바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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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TV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라고 했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얼마 후, 정정보도가 나왔다.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배 안에 갇혀있다고 했다. 나는 끝까지 해경이 구해낼 것이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날이 크게 춥구나 밤이 아니었기에 물 속에 있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런데, 그 뒤로 왜 구하지 못한 실종자, 사망자들의 수는 줄지 않는 것일까... 왜지...시간을 계속 흘러갔다. 해가 저물었고, 나는 아직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너무나 어리고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 이쁜 동생들이. 왜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가야 했는지. 왜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들을 이렇게 떠나보내야만 했는지. 도대체 이렇게 만든 놈들은 누구인지. 화가 나서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꾸 욕이 새어나왔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암울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제대로된 사과나 위로의 말을 들은 적도 없다.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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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정말 평범한 날이었다. 평소처럼 일어나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던 평범한 날. 조금 특별했던건 오전 중에 수 백명이 탄 선박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 옆 자리에서 같이 일하는 언니가 처음 기사를 보여줬을 땐 헤드라인에 전원구조라고 정확히 박혀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고 다행이다라는 말을 감히 내뱉었었다. 그런데 유난히 복통이 심해 일찍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4시. 뉴스엔 반쯤 물에 잠긴 선박의 모습이 실려있었다. 10명만 생존하고,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종된 채 말이다. 아마 그 분들에게도 그 날 아침은 전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냥 평범하게 흐린 날씨였고, 그냥 평범한 선박이었다. 그리고 조금 특별했던 건 배가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일테다. 우린 다 기억한다. 그 당황스럽고, 슬프고, 화가 나고, 마음이 미어터지던 날의 사건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고,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아마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평범한 아침, 평범한 업무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 아니면 어쩌면 계획된 아침, 계획된 업무 시간이었을 수도. 어찌 됐던 당신뿐만 아닌 우리는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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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 02버스에서 친구에 말에 처음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 어떡해.. 배가 가라앉았대"이 한마디만 듣고는 그냥 바다가 거칠어서 어선 하나가 난파됐나보다.. 인명피해는 없어야 할텐데... 이런 단순한 생각을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핸드폰을 보니 거대한 배였고 여객선이었고 아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수학여행이고......그랬습니다 ....하루종일 맘이 무겁다가 집에 가서 혼자 티비를 켜 뉴스를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뉴스를 보며 그렇게 펑펑 소리내 울어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며칠간 계속 그랬죠.여론 조작에 괜히 거부감을 갖고 이 비극에 좀 더 가까이 공감하고 동참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내가 바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