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해야 합니다잊지 말아야 합니다진실이 우뚝설때까지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그건 우리가지금도내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그날 100일이 안된 아기를 안고서 얼마나 울었나 모릅니다. 아이들의 한이 조속히 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직장에선 TV를 틀어 놓기 때문에 그날 방송 뉴스를 전부 볼 수 있었습니다. 뉴스에선 전원 구출이라는 방송을 하다가 나중에는 튕겨 나가거나, 지시를 듣지 않고 탈출한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원 죽었다고 하더군요.무슨 연극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그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져가는 배에서 승무원, 사회, 국가라는 시스템을 믿고, 또 믿고 기다리다가 얌전히 수장된 것이요.물에 빠져보신 적 있습니까?마시려는 공기 대신 물만 들이키고, 이대로 죽는다! 라는 생각만 듭니다.아니 죽는다는 생각 자체도 못 합니다.살기 위해! 공기를 마시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죽을 힘을 다하니까요.기다리라는 개소리를 믿으며 나갈 구멍이라곤 없는,그 거대한 강철관에서 절망에 빠진 채죽어 간 사람들,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속에서 평생을 살아갈 사람들,가족을 잃으신 사람들,자신의 일상도 마다하고 한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현장에서 분골쇄신하신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기억 안납니다.""기억 나지 않습니다."누가 죽인 겁니까?이 것은 국가, 정부에 의한 대량학살입니다.옳은 것을 옳다고 못하고,바른 것을 바르다 못하고,흰 색에 검은 색을 섞고,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세상을 만든 싸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들이 사회에 군림하게 둬서는 절대 안됩니다.
-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그 참사를....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진실이 규명될때까지 언제까지나 잊지 않겠습니다. 그 험한 세월을 살아 남아주신 유족분들께 너무나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
4월 16 일 오전 9시 20분쯤~난 언제나 처럼 그날도 유치원생 아이들을 태우기위해 운전대를 잡고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그때 라디오에서 들리는 세월호 소식!뒤에 타고있던 선생님이 걱정이되서 "어떻하냐?"며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박근혜를 부정선거로 정권을 훔쳐간 여자라며 계속 집회를 쫒아다니던 내가 어떤 부분을 믿었는지 그 순간 선생님에게 라디오에 이렇게까지 나왔는데 곧 구조가 되겠지요~ 라며 그냥 지나가는 말을 하고 그날 일에만 열중했다.그리고 한참을 지나서 라디오를 다시 틀었을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이게 과연 현실인가?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한심한 나라였었나?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상적인 나라라면 일어날수 없는 일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면서 아주 살짝 고민을 시작했다.지금 집회에선 부정선거를 말하고 있는데 이 사건때문에 혹시라도 이슈가 넘어가지는 않을까?혹시 국정원에서 이런 노림수로 학살을 벌인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접해 졌다.하지만 그것도 잠시!저 수 많은 생명이 이 세상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떠난게 아닌가. 그런데 난 뭘 생각하는거냐? 한심한 놈!그래서 그날후로는 내가 가능한 시간이면 빠짐없이 세월호 집회에 참석을 했다.오늘날까지도...덕분에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집회는 빠지게 되었지만 상관없다.이 세상에서 생명보다 소중한건 없으니까!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올때까지는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회사에 있었어요.업무 보느라 점심 즈음에야 기사를 봤어요.근데 그게 전원 구조됐다는 기사였어요.그땐 그게 오보인줄도 몰랐어요.그냥 다른날이랑 똑같이 직원분들이랑 점심 먹으면서 얘기했어요."그거 뉴스 보셨어요? 배 침몰했다면서요. 학생들도 많이 타고 있었대요. 근데 다 구조했대요. 다행이지 뭐에요. 진짜 큰일날 뻔 했잖아요."우리가 본 뉴스가 오보인 줄도 모르고.그대로 믿었어요.
-
프랑스여행 중에 자고 일어나니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이 온통 세월호관련이라 무슨일인지 뉴스도 찾아보다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아 괜찮구나 안심을 하고 인터넷을 껐어요. 그 날 길을 물어본 프랑스인 할머니에게 한국인이라 하자 한국의 ferry accident에 대해 들었다는 대화를 한 기억이 납니다.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도 아이들의 사고를 알았는데 대통령은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찾기가 힘드냐는 소리나 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더욱 믿기지 않아요. 그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다시 인터넷을 연결하자 아직도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충격받고 뉴스들을 찾아보며 걱정하며 잠든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걱정 하면서도 그 많은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2년이 지난 지금도 인양조차 못했다는 것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그날 저는 학교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고 있었는데 속보를 통해 침몰되었지만 전원 구조되었다는 다소 의심스러운 속보였지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린후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 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전원구조는 오보며, 아직 많은 학생들이 구조되지 못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억하기에 너무 아프고 슬프고 먹먹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꼭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도록 저도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던길에 인터넷 뉴스로 접했어요.제가 처음 기사를 본건 전원 구조라는 오보였고 출근길 내내 기사를 보다가 참담한 현실에 울면서 출근했었어요.
-
애들아, 언니는 그 때 스물하나였고, 내 나이가 고작 스물 하나라고 생각했어. 너희의 나이가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을 무렵일거야. 언니는 그 날 수업을 듣고 있었고, 옆에 앉은 동기가 나를 툭툭 치더니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어. 내가 입모양으로 뭐야? 라고 했고, 동시에 수업이 끝났어. 그리고 당장 다음주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었고. 거기서 완전구조의 기사를 보게 됐었지. 도서관을 나서고 학교 근처 자취방으로 향하는 15분 사이에, 그게 완전히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실시간으로 진도의 상황을 보면서 언니는 계속 울기만 했어. 그리고 간절히 바랐지. 제발, 제발, 제발.하느님, 이건 아니잖아요. 이게 아니잖아요.바다는 컴컴하고, 진도의 불빛들은 온통 우는 소리를 냈었어.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우리 애 좀 구해주세요. 솔직히 말하면 언니는 말도 안되는 에어포켓의 존재를 믿었어. 그리고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랬고. 있지, 언니가 울기마 했던 7시간 속에서 바람의 냄새까지 기억한다면 믿겠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머리칼을 스치던 바람과, 봄을 타고 오던 바람과, 맡은 적 없는 제주의 바람과, 별이 된 천개의 바람까지 아직도 기억한다면 믿겠니.
-
출근 직전 뉴스 속보를 통해 세월호 침몰 소식을 보고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확인 후 집을 나섰다약 한시간 쯤 지났을까 회사에 도착해실장님이 틀어두신 컴퓨터 화면 영상을 보니전원 구조는 오보 그렇게 너희는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의 곁으로돌아오지 못했지..1년 후 광화문 광장에 국화꽃을 헌화하는데단 한번도 마주친적이 없는 너희들이었는데왈칵 눈물이 나더라..그리고 며칠 전 다시 광화문 광장에 방문에국화꽃을 헌화하며 너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어이런 무능력한 대통령을 만나 꽃이 채 피기도 전에 저버렸어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나는 평생 너희를 잊지 않을거야하늘나라에서는 꼭 예쁜 꽃 피워.. 절대 잊지 않을게
-
그날 아침 영화 시간에 늦어서 안산에서 택시를 탔다.라디오에서는 세월호 얘기가 나왔고남자친구와 세월호 얘기를 하자 택시기사님이 전원 구조됐다 하셨다. 즐겁게 놀러 간 수학여행에서 얼마나 놀랐을까 그래도 전원 구조 돼서 다행이라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나중에 기사로 접한 건 전원구조 오보 소식이었다.18살,내 동생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과많은 사람들이 침몰하는 배 안에 있다. 그날 내가 무슨 영화를 봤는지 남자친구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가족들과 어떤 얘기를 했는지기억나지 않는다.하지만 이 날의 세월호 기억은 생생하다.앞으로 더 밝았을 생명들의 빛이 꺼졌다.꺼뜨렸다.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
그 날, 대학교 조별 발표가 있어 정신이 없었던 와중에 친구에게서 카톡을 받았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놀란 마음으로 뉴스를 검색해보니, 사고가 났지만 모두 무사히 구조 되었다고 하였다. 구조 되었다니 다행이네 라며 간단히 생각한 뒤, 수업을 듣고 발표를 진행하였다.발표를 마친 후 쉬는 시간에 교수님이 사고 이야기를 꺼냈다. 사고가 난 건 안타깝지만 사상자없이 모두 구조되었대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다시 뉴스를 클릭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침몰하고 있던 배의 사진이었다.모두 구조되었다는 것은 오보라며 아직 세월호 안에 몇 백 명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세월호는 아직 눈 앞에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면서 눈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온갖 이야기가 떠돌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어떤 말을 신뢰할 수 있는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은 점점 지나갔다.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하며 며칠에 걸쳐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요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없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는데, 언제까지 세월호를 이야기 할 거냐면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세월호는 부패한 권력이 낳은 인재이다. 당연히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 모든 희생자들이 평화와 안식을 얻기를 기도하며,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
어느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다가 인터넷 뉴스로 보게 된 세월호 사고 소식.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에 별 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겼다. 오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해경이 도착했으니 별 피해없이 다 구조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땐 몰랐다. 많은 사람들에게 춥고, 아프고, 힘든 나날이 될 시발점이었다는 것을. 하루종일 스마트폰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내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세상은 춥고, 아프고, 힘이 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기억해야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그 믿음으로, 우리는 그 날의 기억을 잊지말아야 한다.
-
여느때와 다름없이 무관심하게 지나가려고 했었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이 캄캄한 바다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나는 도저히 그 기분을 상상조차할 스 없습니다.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출근길 직장인에게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서, 등산하러 지하철 타시는 등산객들에게서 세월호를 봅니다. 나는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잊지않았습니다.
-
그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세월호 소식을 접했고 교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이게 웬 일이야 하며 얘기하며 바빴는데,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고 그 티비 화면을 바라보면서 도무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피기도 전에 져버린 아이들, 내 나이대의 친구들,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할 것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 공부중인 학생입니다. 매일이 같은 고시생은 어제도 기억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 날만은 아닙니다. 눈을 감으면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같이 점심 먹던 친구의 모습, 학교 식당에서 내가 앉았던 자리, 가라앉는 세월호가 비춰지고 있는 식당 내 티비... 오전에 공부하는 동안엔 몰랐던 사고 사실과 그 규모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날부터 시작된 정부에 대한 불신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세월호만큼 마음의 짐도 여전합니다.그날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변명입니다. 그때도 지금도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제가 또렷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을겁니다. 그때도 지금도
-
고3 때였는데 처음 기사가 났을때 학교 단체가 웅성웅성 했어요 담임선생님은 전원 구조가 됐다는 기사가 올라왔으니 너무 걱정하지말고 얼른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는데 그게 오보라는 기사가 나왔고 결국 그 날 점심은 넘어가지 않아 남겼었어요..같은 지역은 아니지만 바로 옆 지역의 학교여서 친구 몇몇은 단원고에 다니기도 했었어요 저녁때 그 친구들한테 연락했었는데 동아리 후배가 연락이 안된다며 울고있어서 같이 울었어요 또래기도 하고 가까운 학교에서 그런 사고가 나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저는 아직도 그때가 생생해요 잊지 않았습니다. 항상 기억하고 있어요
-
과사에 프린트를 하러 가서 컴퓨터를 켰는데 네이버 실검에 익숙한 이름의 학교가 떠있었습니다.놀라긴했지만 별일아니겠지 .. 하며 클릭했는데 단원고 아이들이 탄 배가 침수되고있지만 전원 구조했다. 라는 기사 놀란가슴을 쓸어내리며 전원구조라니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학교와 집 거리가 멀어 버스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 집으로 와서 자연스럽게 티비를 켰습니다. 전원구조는 오보였어요. 그때부터 지옥같던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번 집근처에서 보던 교복 어쩌면 나와 같은버스를 타고 같은 길을 걸었을 아이들... 온나라가 비탄에 빠졌고 안산시는 죽은 도시같았습니다. 저또한 그랬고요 며칠을 뉴스를 보며 울다 잠들었습니다. 내일은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내일은.. 내일은.. 아직도 몇 아이들과 선생님은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했습니다나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비통함을... 마음이 찢어지던 그날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
공부중이었는데 점심먹으면서 들은 라디오는 다 살았다고 했어요. 정말 큰일이었는데 구조되었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