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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와 다름 없는 교실안이었어요한창 입시를 준비하던 저, 그리고 같은 교실에어김없이 앉아있던 내 친구들수업시간 도중에 핸드폰 뉴스로 소식을 접했어요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아직까지도 너무 남 일 같지가 않죠수학여행을 간다고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 전날 밤 가방을 싸며 학교생활에서의 작지만 큰 일탈이 얼마나 기대됐을까뉴스를 접한 후 수업 내용도 책 속의 글자도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어요계속 책상 속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새로고침하고 구조 완료되었다는 글자만을 기다렸죠선생님들도 모두 이해 하신다는 듯넘어가주시고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연신 걱정되는 기색을 보이셨죠아무 것도 없었어요같은 반 같은 교실 아이들 모두 울면서, 너무 속상해 하면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어서그마저도 이뤄지지 않아서7시간 아니 7주가 넘게 지나도록맘 속에서 잊혀지지 않아요그 시간들 그 눈물들 그 간절한 기도들같은 대한민국의 학생이었고 비슷한 꿈을바라보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것미안해요 아직까지도 참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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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친구들과 닭볶음탕을 먹고 있었습니다뉴스를 보자마자 눈물이 차올랐고 어떡해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같이 있던친구들도 같았습니다 수업에 집중하지못하고 계속 관련속보만 찾아보았습니다 사망자만 늘어나는 걸보며 정말 아득했고 당장내가 할수있는일이 없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정부의 무능함에 화가 났습니다 매년 4월16일이 되면 그때의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뭐하나 제대로 밝혀지지않은 상황에 분노도 함께 치밀어옵니다 우린 다 기억합니다 절대 잊지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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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쯔음의 여느때와 같이 늦으막히 일어났어요. 늘 같은시작으로 sns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죠.그리고 읽게된 글하나 "전원구조" 그러나 다른글을 보니 1명이 사망하고 전원구조이라고 봤습니다. 생각했죠 무슨일이 있었길에 1명이 죽었지? 심각한일이었던거 아닐까 하지만 많은사람들이 구조 되었으니 괜찮겠지 생각했죠.. 그때하고있던 알바를 하러갔습니다. 같이 일하던 분들과 이야기하며 배가 사고가 났는데 전원구조래요 다행이죠? 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4시간도 안되는시간이지만 핸드폰 볼시간도 없었죠. 마치고 나와 다시본 sns는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단 몇시간만에 세상이 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그후로 몇일간 티비 뉴스를 믿지못해 보지못했습니다. 대체언론들을 보며 자고 일어나서 다시보고 기도하고 바라고 또바라는 날들이었죠. 그리고 지금은 압니다. 세상이 달라진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을 알게된 날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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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제 동생의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좋은 기분으로 일어났어요. 그러다 습관처럼 티비를 틀었는데 뉴스에서 배 사고가 났다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순간 놀라서 다른 채널도 틀어봤는데 전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이야기 뿐이었어요. 보니까 승객 규모가 너무 큰 배였어요. 그러니 그런 배가 가라앉는다는게 잘 믿어지지 않았죠...이제 금방 구조되겠지.. 싶었는데 한편으론 너무 불안하고 걱정이 됐어요. 그래도 진심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속 지켜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더라고요. 무엇이 이상했냐면...정부에서 구조를 도우려는 사람들을 막더라고요. 주변에 상당한 구조력을 갖춘 미군이 즉각적으로 돕겠다며 헬기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에서 거절하고, 민간잠수사들의 구조도 제한하고 희생자 가족분들의 요구는 단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계속 딴소리만하고 변명만하고...정말 이상했어요. 사람이 죽는다는데 왜이렇게 따지는게 많고 안되는게 많은건지 정말 이해할수가 없었어요. 심한말이지만 당시에 제대로 구조하지않고 다른 검은 속내를 숨기고 있는듯한 그들을 전부 죽이고 싶었어요.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목숨과 그들의 목숨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신은 없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리 나쁜 사람들은 죽임당하지않고! 대대손손 국민을 농락하고 호위호식하는데 힘 없는 국민들만 그 손에 죽어나가니까요...제가 정말 화가 났던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여당의원들이 적극적 구조를 지원하는 척 팽목항에 오더니 사진만 찍고가고 서남수 교육부장관이라는 사람은 팽목항까지 가서 귀빈의자에 앉아 컵라면만 쳐먹고... 안행부에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이고 청와대에서는 사고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고!! 구조할 마음이 없고!! 절실히 살리고자했던 가족들과 국민들의 마음을 대수롭지않게 가볍게 밟아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상한 민간구조업체를 선정해서 구조를 진행하는것부터가 어이가 없었어요. 언딘이라는 그 회사요...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 의도적인 무능력이 너무나 티가나서 더 분노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망자는 점점 늘어났고..가족분들은 너무나 힘들어하시고...모두의 슬픔이 분노가 되어갔죠. 참사를 지켜보던 모든 국민의 마음이 같았을 거예요. 구조하면서 중간에 다이빙벨이라는 기구를 이용해서 더 적극적인 구조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었는데 그것마저 정부에 외면당하고.. 산소주입을 하겠다더니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배 안에 생존자가 있을수도 있는데 정부에선 어떠한 행동도 없었고 가라앉은 배를 버려뒀습니다. 저는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만 계속 되니까 이 나라에선 누구도 믿으면 안되겠다는 다짐까지 하게되더라고요. 세월호 참사 그 날과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하나 둘씩 밝혀지는 더러운 진실들을 마주하며...저는 세월호가 우리들 기억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그걸 믿고 오지않을 구조를 기다렸던 승객들이 곧 제 자신이었고 제 가족이었음을 알기에 더 잊을 수 없어요. 그 날.. 우는것 밖에 못해서 미안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 없는 사람이어서 많이 미안했어요. 땅을 치고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어요. 저는 정말 진실을 알고싶어요. 국민은 진실을 원해요. 간절히 진실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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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7시간을 휴대폰도 없이 학원에서 보내던 때였다. 그 날도 다름이 없었고 나는 모든 일과를 끝내고 출출함에 아는 언니와 함께 학원 옆의 타코야끼 점을 찾았다. 그 가게 안에서 마주한 현실은 너무 버거웠다. 뒤늦게 알게 된 소식에 차마 음식이 목에 턱하니 걸리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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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중간고사 준비중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중이었는데 하도 공부가 하기 싫어서 휴대폰을 들었어요. 네이버 실검창에 세월호가 있었어요. 세월호가 가라앉았다고, 그리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 기사를 보고 저는 "구조됐다니 다행이네" 하고 덤덤히 창을 닫았어요. 다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내가 탄 배도 아니고, 내 가족이나 친구가 겪은 일이 아니고, 저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다음주에 있을 시험이 더 중요하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았어요. 도서관을 나서며 휴대폰을 봤을때 그게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상상이 되질 않았어요. 제 일이 아니라고 안일했던 제 자신이 너무 미워요. 저는 세월호를 떠올릴 때 마다 죄책감을 느낍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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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그 때 야자를 하면서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친구들과 서로 노래를 추천해주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타이타닉 노래를 추천받았습니다.추천받은 노래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공부를 하고 쉬는 시간에 폰을 보느라 늦게 접했는데 보자마자 얼마나 울었는 지 모릅니다.그날의 기억을 이렇게나마 떠올려봅니다.하늘에서 아름답게 꽃피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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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출근을 하던 차안에서 전원구조라는 말을 들었다. 안심했다. 일터로 가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오후가 됐는데 오보였다고. 300명 넘는 이들이 배에 갇혀 있다고. 가르치던 학생과 서로 쳐다보며 기막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주변에 있던 배들이 사람을 구하지 않고 있다고. 새월호에 사람이 그냥 있다고. 할말을 잃었다. 나는 그때 안산 단원구에 있었다. 세월호에서 304명이 죽어갈때.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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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시험을 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티비에서 처음 접한 뉴스 세월호 침몰 및 전원구조그렇구나.. 하고 피로를 풀기위해 자고 일어났더니사망,실종,생존이라는 표그제서야 이게 뭐지 하며 찾아보고는무사히 돌아와주길..그저 계속 기도한 기억밖에 없어요미안해요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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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예쁘고 날씨도 풀렸지만 아직은 으슬으슬했던, 여느날처럼 수업이 듣기싫었던 날. 세시간 연강을 듣던 중 사고속보를 접했고, 쉬는 시간에 전원구조했다는 오보를 접했습니다. 친구들과 저는 그래도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절대 잊지못할 수학여행이겠네~ 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그날 오후,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실종자수와 사망자수...계속해서 진행되는 뉴스속보들...그때의 상실감과 참혹함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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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 퇴사를 결심한지 한 달. 며칠만 더 출근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 날도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습니다. 업무 메일을 대충 처리하고 무심코 포털 사이트를 연 순간, 고등학교 수학여행 학생들을 실은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가 떴습니다.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어요. 어떡하냐고 큰일 났다고. 큰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사무실 직원들 모두 놀라서 검색을 시작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게 뜬 속보. "전원 구조." 누군가가 외쳤어요. 다행이다, 전원 구조됐대! 그렇게 큰 배에 있던 사람들을 이렇게 빨리 다 구할 수 있나? 우리나라 재난 시스템 좋네~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 사무실 사람들은 평소와 같이 회의도 하고 업무를 진행했어요.그리고 다소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접한 정정 보도...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실제로 구출된 학생과 승객은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그 때부터 밤이 되어 퇴근할 때까지,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뉴스 새로고침만 수백 번 누른 것 같네요. 한 명의 구조자라도 있을까, 종교가 없지만 무작정 기도하는 마음으로 클릭을 했지만 끝내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배가 완전히 뒤집혀 파란색 끝부분만이 동동 떠 있던 모습, 그마저도 물 속으로 가라앉을 때의 충격과 공포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관계자들 책임자들, 기억이 나지 않는다구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기억을 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당신들의 정치 생명이 걸린 전무후무한 참사인데,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당신들이 왜 기억이 안 나겠습니까? 기억하기 싫은 거겠지요.사람들의 이런 글도, 몇 주째 이어지는 촛불도 당신들에게는 그저 미개한 개, 돼지들이 잠시 꽥꽥대는 소음으로만 여겨지겠지요. 하지만 똑똑히 두고 보십시오. 당신들이 하찮게 여기던 개 돼지들이, 사실은 한 명 한 명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는 시민들이, 세상을 바꾸고 당신들을 끌어내릴 것입니다. 침몰하는 배에 탄 것은 바로 당신들입니다.당신들 때문에 그대로 물 속에 잠겨버린 학생들, 승객들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용서도 구하지 마십시오. 용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 이하의 존재인 당신들은 그럴 자격조차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가만히 있으십시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을 것이고, 당신들의 악행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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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가 오후에 있어 아침에 잠깐 눈을 떴을 때 휴대폰 뉴스 속보가 왔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고 구조중이라고. 잠결에도 큰일이다 싶어 바로 뉴스를 찾아보니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다행이다 생각하며 아이들 수학여행에 평생 잊지못할 사고지만 추억으로 남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 일어나 준비를 하며 tv를 켜니 아침에 본 뉴스 내용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더는 평범한 일상적인 날이 아니었다. 당시엔 구조자 현재는 생존자가 배에 탑승한 인원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였고 아직도 아이들이 배안에 있는지 구조되어 병원에 이송되어 있는지 우왕자왕하였고 그시간까지 정부는 그 어떤 공식발표도 없었던거 같았다. 배는 아침 이른시간부터 침몰중이라도 했는데....뉴스가 틀어져 았는 tv앞에서 움질일 수 없었다. 배가 뒤집혀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아이들이 있다는데 정확히 몇명이 탑승해 있는지 숫자도 오락가락 구조자 숫자도 달라지는 상황에 그래도 구조자가 더 많아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상적인 그저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자 했으나 손에서 휴대폰을 들고 뉴스 속보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학생들 부모님들이 진도로 속히 가고 있다는 뉴스, 아이들이 이병원 저병원으로 이송되어 인원 파악이 어렵다는 소식, 배안에 있는 아이들이 보낸 메시지들... 그리고 바닷속으로 완전히 침몰한 세월호.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있는지 현실감각이 둔해졌다. 생존자 실종자 사망자 숫자가 문신처럼 떠있는 뉴스. 생존자는 왜저렇게 적고 실종자는 왜 구하지 못했는지 왜왜왜만 난무하던 외침. 그리고 제발 숫자가 올라가질 않길 바라는 사망자 수... 민간 잠수부와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침몰된 배 안에서 아이들과 일반 탑승객을 구조 할 것이라 그래도 그정도 국력은 있을것이다 믿어왔다. 큰 배에는 에어포켓이라는게 있다니까 어딘가 옹기종기 모여 구조를 간절히 기다릴 아이들이 무사히 구조되길 기도했고 바랬다.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도 그저 나에겐 평범했던 하루가 지옥 그 어느 언저리 같았다. 모두 믿을 수 없어서 거짓말 같던 진실들. 참사 2일이 지난 시점 세월호 뉴스 아래 달린 댓글을 잊을 수 없다. 부디 실종자 숫자 그대로 사망자 숫자가 되길 바란다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지금은 그토록 바라지만 당시엔 부정하고 싶던 진실이었다. 그만큼 기적이란것을 바라왔지만 이나라엔 바라지 말아야할 것임을 이제야 안다.나는 평생을 그날의 충격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기억이, 잊지 않는것이 지켜주지 못한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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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sns에서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세월호가 기울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것은 큰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가라앉은 것도 아니고 기울어진 상태에서 설마 구조를 하지 못할까... 당연히 다 구조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그 정도 기술력이 없을까...그런데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렇게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았고 미수습자가 있고 7시간의 공백과 미흡한 대처의 실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나의 삶에 집중하다보면 잊혀지기 쉽지만, 노란리본을 달며 함께 분노하고 아파하며 기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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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아침 출근하기 전 잠깐 쉬면서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했었던 것 같습니다.그러다가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구조됐단 소식을 접하고나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오보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오히려 희생자들만 계속 늘어나고 구조자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구조 소식을 기다렸고 다음날 다시 세월호 기사를 봤지만 돌아온 것은 기적적인 구조가 아닌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희생자들 소식이었습니다...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시신만 계속 발견되니 제 마음은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하기만 했습니다.제가 거의 20년간 살았던 안산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못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절대로 그 때의 그 아픔을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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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너무 지루해서 핸드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는데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라는 기사를 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학 여행을 가던 학생들 전원 구조라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학생들도 전원 구조라니까 다른 승객들도 곧 구조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고 설마 다른 일 생기겠어? 라는 생각으로 학원에서 수업를 들었습니다.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핸드폰을 켜 인터넷 뉴스를 보는 중 아까 올라온 그 기사는 오보 였고 아직도 그 배 안에는 탈출하지 못한 학생들과 승객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제 일인 것 마냥 걱정되고 마음도 안 좋았어요. 제가 그 학생들과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19살 학생이었기 때문이 었을까요? 2014년 4월 16일 정말 잊혀지지 않습니다. 17일 학교를 가서도 친구들과 내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고 쉬는 시간에도 인터넷 뉴스를 틀어 구조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고 심지어 밥 먹을 때도 세월호 이야기 뿐이였고 집에 와서 티비 틀고 뉴스 보고 그 때는 정말 세월호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이 나서 엄마 아빠가 체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하셨어요. 19살이었던 그 때도 이렇게 생각했었지만 21살이 된 지금 다시 생각을 해봐도 정말 다시는 그런 마음 아픈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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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그 어떤 날처럼 평범하게 9시 수업, 10시 반 수업을 마치고 학식에서 혼자 끼니를 때우면서 얼핏 연구실 단위로 식사하러 온 사람들끼리 배가 침몰했다라고 주워들은 기억이 납니다.선박이 침몰하는 사건은 흔하지는 않지만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보다 생존 확률이 높겠지 하고 생각하며 뉴스 보도에서 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해경 선박, 해군 함정/선박이 총 동원되어서 구출 작전을 실시하고 있을거라고 믿고 오후까지 제출해야되는 과제만 열심히 했습니다. 당연히 모두 구조 될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선박은 안전 규정을 위배하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당연히 관련 기관은 구출작전에 매진할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2년 8개월이 지나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2014년 4월 16일. 절대로 잊지 않을겁니다. 진실은 결코 침몰시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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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나는 저 아이들과 같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설문조사를 한다고 간 컴퓨터실에서 사고 소식을 처음 보았다. 그 때가 딱 제일 친한 중학교때 친구가 제주도로 수학여행 갔을 때라서 더 놀랐다. 친구는 비행기를 탔다고 해서 안심하고 별 일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결국은 그게 별일이 되어버렸다. 뉴스를 보는 순간 눈에 보이는 갈 믿고 싶지 않았고, 바닷물이 보이는 순간 언젠가 보았던 TV 프로가 떠올랐다. 그 프로는 분명 힘 센 장정들이 5월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데 저체온증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분명 3시간정도만 수영을 해도 저체온증으로 위급해지거나 그것이 아니라도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그리고 뉴스에서 사건 발생 후 반나절이 지났다고 했을 때는 차라리 눈을 의심하고 싶었다. 이미 가망이 없다는 생각을 먼저 했고, 언제부턴가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아마 친구를 붙잡고 "해병대 훈련받는 사람들도 세시간만에 저체온증 걸린다는데, 쟤네는 어쩌냐" 하고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날 우리 반은 틈만 나면 텔레비전으로 구조 중계를 보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계속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이 고장나서 MBC밖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필사적으로 틀고있던 반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리고, 야자 도중 옆반에 오셔서 하신 수학선생님의 "야자를 왜 하냐, 열심히 살지 말아라" 라는 말도 기억난다. 친구에게 전해들은 말이었는데도 그게 그렇게 슬프게 들렸었다. 그날이 엄마 생신이었는데도 엄마께 축하인사를 드릴 수가 없었다. 엄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신데 태어나서 감사한 마음보다도 저 뉴스에 나온 선생님들처럼 엄마도 위험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저 선생님의 자녀분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더 서글퍼졌었다. 며칠 간 계속 구조작업을 봤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 간 마음을 다독거렸다. 그리고 사망한 학생들의 문자와 카카오톡 내용을 봤을 때, 다독거림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반 TV가 아닌 옆반 TV에서 문자 내용을 읽고 울컥하는 아나운서와 함께 울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내 고등학교 2학년 4월 16일을. 그때의 나는 내가 왜 우는 지도 모르고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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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쉬는시간 갑자기 누가 다급하게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갔다가 사고났대!" 말해서 친구들이 다 놀랐었어요. 다음 시간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은 다들 인터넷 연결하셔서 실시간으로 상황 보여주시고 몇몇 분은 저기 아는 선생님도 계신다면서 걱정했어요. 옆에 친구들은 같은 교회 언니 단원고 다니는데 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전원구조라고 나와서 다들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보도였다고 해서 다들 욕하고 울고 분노했어요. 저희 학교는 단원고랑 멀리 떨어져서 피해 학생들을 아는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학교 선생님들은 다 옛날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 선생님들, 옛날 제자들같이 아끼는 사람이더라구요. 아직도 그때 울먹이던 선생님의 표정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지금도 제 친구 학교에서는 "가라앉는다" 같이 세월호와 조금이라도 연상되는 말을 하면 표정이 삭 굳고 조용해진다고 합니다. 2014년 4월의 어느날, 그날의 7시간은 너무 충격적이고 안타까워서 누구에게는 7년, 아니 70년, 몇십년이 지나든 7분전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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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당시 우리 학교는 수련회를가서 이틀째가 되던 날, 수련 활동을 마치고숙소로 돌아와서 뉴스가 전해졌다. 그러고 3일 째가 되던 날 집에 돌아 와 한참동안 멍 하니 서서세월호 뉴스를 보고 방에 들어 가 울었다.나랑 아예 연관도 없는 일이였지만 왜 그렇게내가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였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곳에 갇혀서 두려웠을 것을 생각하고,나는 이렇게 생각없이 수련 활동을 다녀 왔는데저런 큰 일이 벌어졌다는게 믿을 수 없었음그래서 제발 모두가 구조가 되길 빌었고, 계속기도도 했다. 그 이후로 우리 학교에서 수학여행이랑 다 취소가 되고 나는 지금 고3까지 왔는데우린 거의 소풍 같은거 못 다니고 있음진짜 세월호 진실을 파헤쳐서 그래도 작은 희망을 가지고 빨리 인양 했으면 좋겠다.그 당시 뉴스에서는 세월호를 인양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7개월 인가 9개월이라고 했지만 몇년이 지난 지금도 인양을 하지 않는다. 아직도 세월호 사건이 터진게 엊그제 일만 같다. 그렇게 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 버리고 잊어 버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제발 진실이 파헤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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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문제로 학교 자퇴하고 너무 힘들어서 집에서 울고 있었어. 나랑 동갑인 친구들이 바다에 빠졌다고 뉴스가 나와서 시간 갈수록 점점 더 울었던거 같아.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 나는 건강도 완쾌하고 설레는 20살을 보내고, 이제 못다한 공부도 다시 하고 있는데, 너희의 억울함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구나. 포기하지 않을게. 친구들아.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