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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나는 겁이 많아졌습니다.남편은 그런 저를 두고 일어나지않을 일에 걱정하는것은 참 바보같은 짓이라고 했습니다. 그 날 아침은 다른 날 아침과 다르지않았습니다. 항상 그러했듯 전쟁같은 아침을 보냈습니다. 15개월된 아이의 손을 잡고 봄에 핀 꽃들을 구경하며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밥 잘먹고 재밌게 놀으라며 아이에게 일러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그리고 생활정보 프로를 기대하며 TV를 켰고 청소를 하기위해 어질러진 아이 장난감을 치우던 순간이었습니다.뉴스 속보에 세월호는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습니다. 누구나 그랬듯 저도 생각했습니다.어머, 어떡해. 설마. 구해낼거야. 거봐, 전원구조래.그러나..., TV 한구석의 숫자가 자꾸만 올라갑니다.그날의 일상이 아주 잠깐 멈춰진 순간입니다.그들의 가족들도 내가 아이에게 했던것처럼 재밌게 보내다 오라고, 밥 잘챙겨먹으라고 당부하며 보냈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을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역시 평소와 같던 아침이 제가 느낀 것에 100배 1000배 , 감히 말할수없을 만큼 무너졌을겁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언젠가 차를 타고가던 때에상상했던적이 있습니다.만약 예상치못한 교통사고가 난다면 내 사지가 다 잘려나가면서도 목숨이 붙어있어 고통을 겪어야한다해도, 아이만큼은 다치지않기를. 아이에게 차가 덮쳐온다면 내 몸이 으스러져 차를 막아도 좋으니 아이는 아프지않기를. 모든 순간이 겁이 나고 걱정이 되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되어보니까요... 나의 4.16참사는 죄송하게도 아주 잠깐 멈춘 일상이겠지만, 그들의 가족에게는 아직까지 멈춰져있을겁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저처럼 겁이 많은 가족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소중하니까요. 무엇이라도 하고싶었던 그 마음을 백분의 일쯤 아니 천만분의 일쯤 짐작해봅니다. 나는 아이가 하원한 뒤 평소와 같이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그러지 못함에 비통하고 가슴쳤을겁니다. 제발 나머지 미수습자 분들도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가족들 품에 안길수있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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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저는 어느중학교에서 행정실무사를 했었지요그날도 어김없이 무한반복되는 일상의 시작학기초라 일도 많고 하니 출근하자마자 교무실 컴퓨터앞에 앉아서 점심시간 전까지는 꼬박 컴퓨터앞을 못떠납니다. 일을 시작하던 그쯔음 속보를 보고 첨엔 믿기지않았고 조금지나 구했다는 소식에 한숨돌리고 다시 일을 하면서도 구했으니 다행이네..란생각이들더라구요 학교에서근무하다보니 그시기에는 학생들이 여행가는것에 많이 들떠있어서 학교가 시끌벅적해져요 그런아이들을보면 순수하고 귀엽지요~하지만 현실은 오보...그때서야 어떻게란생각만 할수밖에 없는 저에게 답답했고 계속 컴퓨터만 바라보는거말곤 할수있는게 없으니 참담하였고 그래도 해경도있고,해군도있고,,,하니 당연히 구할수있다는 생각만 하고있었는데..나라를 믿고있었는데......결론은 그뒤로 학교에는 관련공문이 쇄도하였습니다그공문들을 보면서 이렇게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는것처럼 구조에 더 신경좀 쓰지...란 생각이 들었고 책임을회피하려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심정뿐이였습니다..아이들의 소중한생명보다 중요한것이 도대체 뭘지....매일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은 기억력이 좋지않다지만, 그 날의 기분,감정, 불안,걱정 이런마음은 절대 잊혀지지 않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지않은 나라!!이것또한 절대 잊혀지지 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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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 있나요?정말 간절하게 살아있기를 바래고 또 바랬던 그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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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 저는 고2였고 선생님들께서 학생들 수학여행가는 배가 침몰했는데 다 구조 됐다고 말하셔서 별 일아닌가보다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구조 완료 되었다는 뉴스도 봄) 저녁에 집에와보니 사태는 너무나 심각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물속에 잠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날에는 비가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 구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뉴스에서 본 것도 기억합니다. 답답함과 더디고 찜찜한 구조현장에 저희가족 모두 한숨과 눈물을 흘리며 심각하게 티비를 보고있었습니다. 먼저 나온 선장과 그무리들 , 생존자들의 휴대폰들을 못쓰게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해경들 .. 진상규명이 절실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 아이들을 물속으로 집어삼켰단 말입니까. 충분히 아이들은 어른들이 대처를 잘했다면 그 시간동안 살 수 있었습니다. 하루 빨리 밝혀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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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출근을 하고 바삐 오전 업무를 마치고 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에 갔습니다.점심 주문을 하고 음식 나오길 기다리며 티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배가 가라 앉아 있는 화면을 보고 이게 뉴스에서 나올 장면이 아닌데 하며 바라본 기억이 있습니다.설마 설마 했는데... 아~~ 정말 진짜야? 그때 그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까먹기 대장인 저도 그 화면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진실이 밝혀 질때까지 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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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가 사람들이 잠겨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모두 구조되었다는 오보를 전했을 때도 별 관심이 없었다."당연하다"라고 생각했다.국가가 몇 백 명의 사람을 그냥 잠겨가게 내버려둘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는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런 나라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이라고.그러나 희망적인 오보를 끝으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2년 하고도 반이 훌쩍 지나서야, 그때 나라의 수장이라는 이가 그들을 구조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많은 천박한 이들이 남은 자들의 목소리를 돈벌이로 치부하며 더 큰 상처를 남긴 뒤였다.그들처럼 천박한 나 역시 "지겹다"라고 생각하며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만나는 서명 요청을 외면하고 난 뒤였다.쉬지 않고 목소리를 낸 사람들 덕분에 늦게나마 진실의 한자락을 붙잡고 기도한다.죄송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먼 곳에서나마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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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4월 16일여느 때와 같이 라디오를 듣고 있었어요. 배가 좌초되고 있다는 메시지들이 올라오고 라디오진행자가 전원 구조 되었다는 말을 했어요. 다행이다 싶었는데..그건 오보.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던 그날.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아이들의 영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그런데 책임을 저야하는 사람들이 그 아픔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폄하하고 묵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처벌하고 끝까지 밝혀서 희생자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줘야합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세상에서 살게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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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한국을찾은 나는 간만에 몆일간의 여행을 지인들과 같이하며 기장멸치축제에 갈 생각으로 준비하던중 행사가 세월호 사건떄문에 취소되었다는 말에 실망을 하고 방문계획을 접었습니다. 다 구조했다는데 왜 취소하냐며.. 한국에 있는동안 뉴스를 잘 접하지 않았던 나는 세월호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습니다.배가 거의 잠겼을때서야 뉴스를 본 나는 잘못된 오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배안에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세월호떄문에 축제를 못가 실망했던 내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디라도 숨고싶습니다..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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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고 자리에 앉아있다인터넷에서 세월호 소식을 접하고 tv를 켰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무기력함에 말을 잃었습니다. 자연스레 두 손을 붙잡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찾던 신을 찾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tv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일 뿐이었고 이제 와 생각해보면 바라만 봐야 했던 그 일이 너무나도 끔찍해. 두 눈을 감게 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었고 아이들은 기다렸습니다. 바라만 봐야 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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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16 아직도 선명하다전원구조 됐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보도가 몇시간도 안되어 거짓이었다는걸 알게됐다 4.16 이후 계속되는 언론의 쓰레기 같은 짓거리에 어이가 없었고 그리고 나는 더이상 언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내 아이를 잃는다면 그 마음 추스리기도 어려울텐데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원망조차 못하게 만들었던 언레기들정권에 부역질한 언레기들 기억하고 반드시 처벌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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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일하는도중에 소식을듣고별일없겠지 금방구조되겠지 전원구조 소식에 안심하고 일했는데퇴근후 집에서 뉴스를틀었을때 그 절망감 안타까움이란..10년 20년 100년뒤에도 영원히 18살일 너희들에게.. 어른들이 미안해.. 미안합니다잊지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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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청문회장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다는 바로 그 날... 기억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 그 날.. 난 회사에서 라이브 뉴스를 보며 상황을 체크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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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기억합니다.비가 조금 내리던 흐린날이었어요.회사 출장을 나왔다 밥을 먹으러갔을때 식당 티비로 뉴스를 봤습니다. 전원 구조뉴스에 농담삼아 "저 학생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수학여행을 보내겠구나. 정말 다행이다."라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일을하다 전원구조가 오보였음을 알았습니다.평생 기억에 남을 그 수학여행이 그날의 그 친구들이 아닌 바로 제가 되었습니다.그 날의 식당안 함께있던 지인. 먹었던 메뉴. 그리고 제가했던 그 말... 그 말이 정말이길 아직도 바라지만 그렇게 될 수없기에 미안합니다.그 순간을 평생 기억하며 부끄럽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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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서 잠기며 고통에 잠기며 슬픔에 잠겼던 단원고 언니 오빠 분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수학여행이 마냥 좋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단원고 언니 오빠들 중 저랑 관련된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하지만 죄도 없이 고통에 잠기며 돌아가셨던 분들이 기억 속에 잊혀지질 않습니다 우리는 잊지 않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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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날의 기억은 너무 흐릿하다...여느때처럼 난 출근을 했고 먼가 사고가 났다는 얘길 들었고 구조를 한다는 얘길 들은것 같다.멀쩡히 떠있는 배에 구조하러 갔다면 저기 망망 대해에 떠 있던 타이타닉호 처럼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을거라고.... 그냥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그런데 현실은...충분히 살릴수 있던 304명의 목숨을 너무나 어의없게 날려버리고 말았다.7시간 후에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며 나타난 그분... 여전히 그날의 일을 직접 얘기하지 않는 그분과 함께...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흐릿한 2014년 그날의 기억이 부끄러운 만큼 침몰하지 않는 진실만큼은 꼭 규명되어 뇌리에 새길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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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전원 구조라는 말에 안심했다가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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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주간정신교육을 받는 날이었습니다.보통 본부중대 계원은 일을 하는데, 그 날 전주부터 빠짐 없이 참가하라는 말이 있었기에 정신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50분간의 교육이 끝나면 생활관에서 쉬었는데, 처음에는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보았고 그 다음 쉬는시간에는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그렇게 무사히 잘 끝났다고 생각하고, 점심을 먹고 일과를 하다모니 상황이 바뀌어 있었습니다.그렇게, 군인이었던 저는 나라를 지킨다는게 무엇인지 그 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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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체험학습가는 버스안에서 사고기사를 접했습니다. 다른 교사들과 아이들 안전벨트 등 체크하면서 기사 를 계속 확인했습니다.전원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다행이네하면서 아이들과 활동을 하였습니다. 아이들 과 즐겁게 활동을 마치고 하원시킨뒤에야 다시 보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더군요. 왜? 라는 의문만 계속해서 들었고 그 의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른 왜? 라는 의문이 해소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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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12월 19일에는 뭐했는지 기억이 전혀 안납니다하지만2년 전 4월 16일은 뭐했는지 기억이 뚜렷합니다아침에 독서실로 발길을 향하기 전 뉴스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모두가 주목하고 있으니 당연히 별일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 후 공부에 집중했습니다저녁에 영어학원으로 갔습니다 강사님이 세월호에 대해 언급을 하셨습니다저의 생각과는 달리 사태는 심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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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다. 회사사내식당이라많은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고 다들 뉴스에서 나오는 지금은 기가막힌 그 장면을 태연히 보고 있었다. 서서히 잠겨드는 배를 보면서 전원구출이란 자막에 다행이네 하고 가벼히 넘기다 . . 늘어나는 실종자 수. . 줄어드는 생존자들. . 아비규환. .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 너무미안하다. 미안해. . 지켜주지 못 해서 너무미안해. . 다음 생에는. . 이런일이없도록노력할게. . 살인하는 방관자가 되지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