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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가 사람들이 잠겨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모두 구조되었다는 오보를 전했을 때도 별 관심이 없었다."당연하다"라고 생각했다.국가가 몇 백 명의 사람을 그냥 잠겨가게 내버려둘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는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런 나라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이라고.그러나 희망적인 오보를 끝으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2년 하고도 반이 훌쩍 지나서야, 그때 나라의 수장이라는 이가 그들을 구조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많은 천박한 이들이 남은 자들의 목소리를 돈벌이로 치부하며 더 큰 상처를 남긴 뒤였다.그들처럼 천박한 나 역시 "지겹다"라고 생각하며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만나는 서명 요청을 외면하고 난 뒤였다.쉬지 않고 목소리를 낸 사람들 덕분에 늦게나마 진실의 한자락을 붙잡고 기도한다.죄송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먼 곳에서나마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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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4월 16일여느 때와 같이 라디오를 듣고 있었어요. 배가 좌초되고 있다는 메시지들이 올라오고 라디오진행자가 전원 구조 되었다는 말을 했어요. 다행이다 싶었는데..그건 오보.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던 그날.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아이들의 영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그런데 책임을 저야하는 사람들이 그 아픔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폄하하고 묵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처벌하고 끝까지 밝혀서 희생자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줘야합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세상에서 살게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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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한국을찾은 나는 간만에 몆일간의 여행을 지인들과 같이하며 기장멸치축제에 갈 생각으로 준비하던중 행사가 세월호 사건떄문에 취소되었다는 말에 실망을 하고 방문계획을 접었습니다. 다 구조했다는데 왜 취소하냐며.. 한국에 있는동안 뉴스를 잘 접하지 않았던 나는 세월호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습니다.배가 거의 잠겼을때서야 뉴스를 본 나는 잘못된 오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배안에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세월호떄문에 축제를 못가 실망했던 내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디라도 숨고싶습니다..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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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고 자리에 앉아있다인터넷에서 세월호 소식을 접하고 tv를 켰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무기력함에 말을 잃었습니다. 자연스레 두 손을 붙잡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찾던 신을 찾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tv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일 뿐이었고 이제 와 생각해보면 바라만 봐야 했던 그 일이 너무나도 끔찍해. 두 눈을 감게 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었고 아이들은 기다렸습니다. 바라만 봐야 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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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16 아직도 선명하다전원구조 됐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보도가 몇시간도 안되어 거짓이었다는걸 알게됐다 4.16 이후 계속되는 언론의 쓰레기 같은 짓거리에 어이가 없었고 그리고 나는 더이상 언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내 아이를 잃는다면 그 마음 추스리기도 어려울텐데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원망조차 못하게 만들었던 언레기들정권에 부역질한 언레기들 기억하고 반드시 처벌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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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일하는도중에 소식을듣고별일없겠지 금방구조되겠지 전원구조 소식에 안심하고 일했는데퇴근후 집에서 뉴스를틀었을때 그 절망감 안타까움이란..10년 20년 100년뒤에도 영원히 18살일 너희들에게.. 어른들이 미안해.. 미안합니다잊지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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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청문회장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다는 바로 그 날... 기억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 그 날.. 난 회사에서 라이브 뉴스를 보며 상황을 체크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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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기억합니다.비가 조금 내리던 흐린날이었어요.회사 출장을 나왔다 밥을 먹으러갔을때 식당 티비로 뉴스를 봤습니다. 전원 구조뉴스에 농담삼아 "저 학생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수학여행을 보내겠구나. 정말 다행이다."라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일을하다 전원구조가 오보였음을 알았습니다.평생 기억에 남을 그 수학여행이 그날의 그 친구들이 아닌 바로 제가 되었습니다.그 날의 식당안 함께있던 지인. 먹었던 메뉴. 그리고 제가했던 그 말... 그 말이 정말이길 아직도 바라지만 그렇게 될 수없기에 미안합니다.그 순간을 평생 기억하며 부끄럽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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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서 잠기며 고통에 잠기며 슬픔에 잠겼던 단원고 언니 오빠 분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수학여행이 마냥 좋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단원고 언니 오빠들 중 저랑 관련된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하지만 죄도 없이 고통에 잠기며 돌아가셨던 분들이 기억 속에 잊혀지질 않습니다 우리는 잊지 않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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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날의 기억은 너무 흐릿하다...여느때처럼 난 출근을 했고 먼가 사고가 났다는 얘길 들었고 구조를 한다는 얘길 들은것 같다.멀쩡히 떠있는 배에 구조하러 갔다면 저기 망망 대해에 떠 있던 타이타닉호 처럼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을거라고.... 그냥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그런데 현실은...충분히 살릴수 있던 304명의 목숨을 너무나 어의없게 날려버리고 말았다.7시간 후에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며 나타난 그분... 여전히 그날의 일을 직접 얘기하지 않는 그분과 함께...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흐릿한 2014년 그날의 기억이 부끄러운 만큼 침몰하지 않는 진실만큼은 꼭 규명되어 뇌리에 새길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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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전원 구조라는 말에 안심했다가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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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주간정신교육을 받는 날이었습니다.보통 본부중대 계원은 일을 하는데, 그 날 전주부터 빠짐 없이 참가하라는 말이 있었기에 정신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50분간의 교육이 끝나면 생활관에서 쉬었는데, 처음에는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보았고 그 다음 쉬는시간에는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그렇게 무사히 잘 끝났다고 생각하고, 점심을 먹고 일과를 하다모니 상황이 바뀌어 있었습니다.그렇게, 군인이었던 저는 나라를 지킨다는게 무엇인지 그 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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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체험학습가는 버스안에서 사고기사를 접했습니다. 다른 교사들과 아이들 안전벨트 등 체크하면서 기사 를 계속 확인했습니다.전원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다행이네하면서 아이들과 활동을 하였습니다. 아이들 과 즐겁게 활동을 마치고 하원시킨뒤에야 다시 보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더군요. 왜? 라는 의문만 계속해서 들었고 그 의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른 왜? 라는 의문이 해소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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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12월 19일에는 뭐했는지 기억이 전혀 안납니다하지만2년 전 4월 16일은 뭐했는지 기억이 뚜렷합니다아침에 독서실로 발길을 향하기 전 뉴스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모두가 주목하고 있으니 당연히 별일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 후 공부에 집중했습니다저녁에 영어학원으로 갔습니다 강사님이 세월호에 대해 언급을 하셨습니다저의 생각과는 달리 사태는 심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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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다. 회사사내식당이라많은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고 다들 뉴스에서 나오는 지금은 기가막힌 그 장면을 태연히 보고 있었다. 서서히 잠겨드는 배를 보면서 전원구출이란 자막에 다행이네 하고 가벼히 넘기다 . . 늘어나는 실종자 수. . 줄어드는 생존자들. . 아비규환. .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 너무미안하다. 미안해. . 지켜주지 못 해서 너무미안해. . 다음 생에는. . 이런일이없도록노력할게. . 살인하는 방관자가 되지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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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저에게 그저 평범한 하루였어요. 그날도 아침에 수업이 있어서 씻고 옷을입고 수업에 갔지요. 수업이 시작되고 쉬는 시간즈음 교수님이 들어와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더라, 그 안에 학생들이 타있다는데 다행이 전원 구조라 하더라,, 고 하셨지요. 그래서 여객선 침몰이라니 하면서도 전원 구조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했습니다. 하지만 전원 구조는 오보였지요. 매일같이 울었고 기도했습니다. 매일이 4.16인것 처럼 말이지요. 잊혀지지 않을것 같아요. 그리고 잊지도 않을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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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식사하러 식당에 가면서 뉴스를 봤다.어느 심리학자가 이야기 하던데 한국인은 너무 엄청남 사건들을 겪으면서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일면 공감이 됐다.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일제시대, 한국전쟁, 유신독제 , 월남전, 광주사태... 그리고 그와중에 벌어진 사건사고들이 제대로 치유받은 적이 있었던가?뉴스에서 다행이 모두 구조했다는 소식과 그 뉴스가 오보였으며 고등학교 2학념 학생들이 희생자의 대부분이었다는 뉴스에도 나는 그저 그런 일상의 하루를 보냈으면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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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가 끝난 후 나는 방송실의 문을 열었다.그곳에는 기울어진 배한척과그걸 유심히 지켜보는 친구들이 함께있었다.그때까지는 몰랐다. 그들이 살아돌아오지 못할 것을.그리고 PD가 되겠다는 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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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아침마다 영어 라디오를 들었다 9시부터.... 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뉴스 생방송을 틀었다. 저녁반 아르바이트생이 부스에 와서 무슨일이냐고... 어쩌냐고... 나는 고1때 2박3일 대형선박을 타는 행사에 참석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배웠던 대피법 구명조끼착용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고1때 그렇게 배워와서 고2가 되어 저기에 있었으면 내가 다 도와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속상했다.. 그때 인연이 닿은 애들한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도 울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꿈을 꾼다 그때의 기억과 7시간이 뒤범벅되어서..... 잊을 수가 없는 나의 기억과 7시간. 절대 잊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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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없는 학교가기 싫어하는 대학원생이었어요. 항상 하던데로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면서 티비를 켰더니 침몰뉴스와 함께 전원 구조라는 말이 속보로 나오더라구요. "와~우리나라가 어쩐일로 일처리가 빨랐지?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정말 놀랬겠구나~다들 수고가 많았네~" 하는 안도와함께 티비를 껐고 학교에서 또 일상생활이 이어지다 뉴스를 보게됐어요. 오보였다구요........ 한달 반 뒤에 정말 친한 언니와 안부 인사를 오랜만에 주고받다가 사촌동생이 단원고 수학여행 희생자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언니에게 울면서 미안하다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미안해요...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