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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 인천의 한 여고2학년 수학여행 담당자였습니다5월달쯤에 제주도 수학여행 을 계획하고 비행기표까지 예약했었습니다 ᆞ 우리학교도 교장측근을 통해 배로가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내가 거절 하였습니다 ᆞ그 배안의 희생자는 나와 우리학교아이들이 될수도 있었습니다 ᆞ그들은 그 시간에 어느 학교든 끌어들였을것이고 참 안타까운일입니다 ᆞ그날 일을 못하고 인터넷을 통해 구조상황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ᆞ 처음에 전원구조라는 말도안되는 허위보도도 있었습니다 . 3월에 부임하여 책임자로 나섰던 교감선생님의 죽음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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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온 국민이 모두 배가 침몰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배가 침몰하는데 ,저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그 답답함과 참담함이 아직도 생생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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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당시 인천남구청 미디어홍보실 마을방송담당 전문계약직 공무원이였습니다. 당시 누가 tv를 켰는디는 모르지만 어떤배가 기울어 있었고, 아이들의 카톡도 방송이 되고 있었어요.아 ! 배가 문제네, 저 정도면 나오겠구나 생각나고해경이 그 해역에 있다 등.. 승객 전인원 구출 뉴스를 보고 점심을 먹으러간것이 기억 납니다.그 이후 사건은 눈물로 가슴에 뭍어야할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전 지금도 이 트라우마가 너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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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세월호와 노란색이 힘들다고 합니다. 이제 그만 하라고 합니다.그러나 우린 잊지 않고 마치 우리 대신 먼저 간 그들에게 빛을 진 기분으로 이 나라를 바꾸어 더이상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시국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보탤것입니다.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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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잤다.불면증 때문에 보통 새벽에 잠이 들고 늦게 일어나서 집에 같이 있는 엄마랑은 아침식사를 같이 해 본 적이 없다. 많은 날들의 똑같은 하루였다.부엌쪽에서 달그락거리며 식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늦은 아침겸 점심을 챙겨 먹는데, 엄마가 큰 방쪽에서 뉴스얘기를 하셨다. 애들이 타고 가던 배가 뒤집어졌다고..난, 엄마가 뉴스를 잘 못 들으신건 아닐까 잠깐의 의심을 했다. 그런 큰배가 뒤집어지기도 하나?곧 , 다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소원하던 엄마와 내가 간만에 같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기뻐했다.근데, 아니었다.그 날 하루종일 tv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설마 구하겠지..설마....설마....그 꽃같은 아이들이 물속으로 잠기는 걸 봐야만 했다.내가 뭘 잘못한거지? 세월호를 보며 난 끊임없이 물었다.내가 뭘 잘못한거지? 어쩌다가 이 나라는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되었나..내가 뭘 잘못했나..우리는 도대체 뭘 잘 못했나.그 날 이후로 한동안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마주치는 중고등학생들을 볼 때마다 울컥울컥하는 자신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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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들이 다 나올수있다고 믿었어.믿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은 모두 고등학교 2학년이었지. 그런데 어떻게 "생존"이라는 단어로 너희들의 앞날을 판가름하게 된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린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성인이 되고 사회에서 생활하다가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하지만 너희들을 볼 수 없게 되어서 슬프고 또 미안해. 2016년, 내가 성인이 된 지금,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싶어서 가만히 있지않을려고 해.여전히 미안한 날들이지만, 기억할게.걱정마. 잊지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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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별반 다르지않은 하루의 시작.....아침 일찍 출근해야한다는 남편 깨우고, 애들 등교시키고....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의미없이 리모컨을 손에 들었고.....난 그 날 부터 더이상 봄햇살에 설레이지도 않고 거리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의 향기에 눈을 감지도 않는다. 그냥 어서 4월이 지나 가서 내가 숨을 쉬는것이 덜 미안하기만 바랄뿐.....내 큰 아이가 세월호 아이들의 멈춰버린 나이가 됐다.....절대 너희들을 잊지않을께.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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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계로 세미나 가기전 동료들과 다같이 밥을먹는데 뉴스에 세월호가나왔어요그큰배가 바다위에둥둥 떠있길래 당연히 다구하겠구나 둥둥떠있으니까 지금다 나오라해서 헬기띄우고 해군가고 그럼 다나오겠구나 별걱정하지않고 세미나장에간 그날저녁 슬픈소식을 들었고 말이안된다고생각했어요지금도 부모된마음으로 내자식이었다면..몸서리가쳐지고 눈물 나고 가슴아프고 아까워요 그예쁜아이들이..그러니 그부모님들은 상상도 안되죠 그고통이..돈하고바꿀수없는게자식이잖아요 내목숨과바꿀수있는것이 자식이잖아요정말 그날의 진실이밝혀져서 부모님들의 한을풀어주셨으면좋겠어요그날이후로 저는 이나라가 밉고싫습니다 믿음은깨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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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학교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반에 수업을들어오신 선생님께서 수학여행간 언니오빠들이 탔던 배가 침몰했다고 하셔서 반친구들 선생님들 모두 걱정하고 매 시간마다 그 얘기만 계속하던 중 얼마 지나서 세월호 배를 인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들은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 모두 안심하고 기뻐하였으나 방과후에 뉴스기사는 여러번 바뀌어있었다. 너무 화가났고 옆에동네에 사는 입장에서 너무 슬펐다. 정부에 대책은 학생들이 봤을때도 답답할만큼 느렸고 멍청했다. 그리고 몇 주뒤에 분향소를 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언니오빠들 사진이 걸려있는 걸 보고 너무 눈물이 났다 주변 공기 조차 무거웠고 차가웠다. 세월호 피해자들의 부모님들 께서는 서있는 것 조차 힘들어보이셨던 걸로기억한다. 우리는 세월호사건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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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은지 한달 뒤였어요. 해외에 살고있어, 세월호 뉴스를 접하고 정말 많이 걱정하고, 안타까웠고, 내 아이들같아 많이 울었습니다.구해주겠지..구할수 있겠지..왜 빨리 안움직이는거야! 미국과 일본 도움은 왜 안받는거야! 지금 정치싸움할때야? 사람들이 갇혀있는데..뭐 이런 나라가 다있어?외국친구들까지 걱정하면서 물어보는데..내나라가 쪽팔리고, 무능한 정부에 화가나고...그 아까운 생명들이 안타까웠습니다.잊을수 없어요. 내 아이들 키우는 동안 항상..언제나 기억할꺼예요.그 가족들의 슬픔을 무엇으로 달랠수 있을까요. 세월호의 아이들이..그 안타까운 생명들이 왜 그리 허무하게 져야했는지..대한민국은 책임지고 이유를 알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아이들도 안심하고 키울수 있을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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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합니다. 믿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고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믿고 싶었고누구라도 한명이라도 구조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날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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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바다에 하얗고 아주 큰 배가 기울어져 있고......배에서 나오는 사람도 거의 없고, 달랑 헬기 한척, 해경 한척... ㅠㅠ설마 1시간 안으로 다 구하겠지, 배가 고장 났나봐, 태풍도 아니고 배가 반쪽난것도, 폭파된것도 아니니....저 큰배가 가라앉기 전에 사람들 무사히 나올꺼야. 당연하지.....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생존자 인원은 계속 틀리고, 해경은 어선 빼라고 경고 방송 내보내고.....수학여행가는 학생들이 엄청 있다는데, 저걸 우째 저걸 우째 하면서 마음 졸였는데....설마 설마 하던 일이 몇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서서히 바닷속으로 사람들을 집어삼키며 들어가버리는 배를 보면서,아무것도 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분노,아무것도 할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는 국민.매일아침 10시 브리핑에 나와서 거짓말만 해대던 공무원들....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안잊혀 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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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황망하고 당황스러운 사실 앞에서진실로 믿기 힘든 장면 앞에서사그라져 가는 우리의 영혼들을 보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에 항상 미안하고 괴로웠습니다.이제 제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건 오직 기억하는 것.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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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습니다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진실은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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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이냐 고의냐 처음부터 이 두 가지 답 중 하나이거나 둘 다였음을 직감할 수 있던 사건. 오전 오보 보고 안심하고 일하다가 직원들이 오보 사실 알려주고서야 다시 인터넷 확인했는데 어업지도선과 어선들만 용감히 구조에 나서는 장면과 선장과 선원들만 구조한 해경의 작태가 지금도 선합니다. 모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진실은 저너머에 있지만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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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그저그런 평일이었고, 일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뉴스를 보셨던 국장님이 세월호 얘기를 하셨고이어진 전원구조 오보를 믿고 모두가 안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그러나 곧 오보였음이 밝혀지고 구조가, 대처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울분이 터져나왔습니다.계속 일을 하는 중이라 틈틈이 뉴스를 보고퇴근 후에도 구조현장을 지켜보았습니다.수학여행 가던중이던 단원고 학생들 뿐아니라동창모임, 이사가족 등 많은사람들...그 때는 전혀 모르는 이들이 아닌 내 동생들,친구들, 부모님과 같이 느껴졌고나도 이렇게 고통스럽고 안타깝고 슬픈데유가족들은 그 마음이 어떨까 감히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잊지 못합니다.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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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아침에 골프 클래스에 참여하여 클래스가 끝나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기전 클래스에서 접한 뉴스를 보고는 그때는 아마 오보가 나오던 시간이였던것 같아요. 학생수도 300명이 아닌 얼마 안 되는 인원이였고 그나마 구조가 곧 될거라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또래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오후 느즈막히 집으로 들어오니 인원은 300명이 넘었고, 구조한 인원이 0명이라는 기가막힌 뉴스를 보면서 그 시간 이후 계속 뉴스를 청취하며 마음이 너무 아파 골프 클래스를 몇일 빠지기도 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먹먹합니다. 제 주변 몇다리를 건너도 세월호 희생자는 없습니다. 그런 저도 마음이 너무 아픈데,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오죽 하시겠습니까... 300명이 넘는 인원중에서 그래도 150명은 그래도 50명은 그래도 단 한명은 구하겠지... 라며 늦은 새벽에 잠들었던 그날일... 잠시 자고 다시 맞이한 이틀째 아침에 구조자 현황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단 한명도 못 구하다니...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최고의 의료 장비를 갖추고 있고 IT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이건 기술이 없어 못 구한게 결코 아닙니다. 컨트럴 타워의 무능으로 "안" 구한겁니다. 그날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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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병원 레지던트였고 교수님과 아침회진을 돌며 침몰장면을 병실에 틀어진 티비로 보았습니다. 처음병실 티비에서는 지나가다 후진국에서 일어난일인가?그냥 지나갔고 두번째병실 세번째병실 온 병원 병실에 아픈 환자 보호자들이 안타까워하며 그 장면을 보고있었기에 우리의 꽃같은 아이들을 태운 우리나라여객선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회진은 보통30 분에서 1시간 정도걸리는데 그시간동안 점점 배가 가라앉는 모습 ㅜㅜ 에어포켓이 있다는 이야기에 큰기대하고 하루를 숨죽였지만 오후 회진때도 환자들은 슬퍼하며 그자리에 똑같은 자세로 티비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달전의 하루는 기억나지 않습니다.하지만 분명 저날은 어제꾼 악몽처럼 생생히 기억납니다.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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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배가 침몰했데" "어? 그래서" 아무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사고였겠지. 내 삶 살아가기 바쁜 와중 진실을 마주 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점점 드러나는 믿을 수 없는 의혹들 이 공포 속에 가만히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볻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 주었고 진실을 밝히려 했습니다. 벌써 2017년이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참사가 일어난지 3주기 이 긴 시간동안 우린 무엇을 찾았을까요. 다시금 들어나는 7시간을 비롯해 많은 침묵된 사실들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늦었다고 끝이라고.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끝없는 싸움이 시작된지 어느새 몇 년 째 이젠 진실된 삶을 찾아 세상에 촛불을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촛불 시민이라면 진실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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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었던 그날..... 뉴스를 접했습니다. 언론에서 보도되어 지는 그 내용으로만 듣고, 보고,.....사람들과 그 내용으로만 이야기 나누고 ....걱정하고...응원하고....그러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을 무렵...."다이빙벨"을 통해서 그 날의 일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나 또한 너무 방관하는 자세로 있던건 아닌지... 진심으로 그 부모님들을 위로해 드린건 아닌지...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또한... 이런 현실과 정부에 다시한번 실망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때 그 당시의 일들이...진실이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우리 국민들이 잊고 있지 않는다면...진실은 밝혀질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