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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다.하지만 4월 16일은 잊히지가 않는다.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분노할 것이다. 끊임 없이 진실을 요구 할 것이다.모든 고귀한 목숨의 억울함이 해소되는 그 날까지, 기억하고 또 눈물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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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을 포기하고 백수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늦은 잠까지 게임을 하고 늦잠을 잤는데 세상에 뒤집혀 있었죠 온통 뉴스에서는 그 얘기만 나오고 그 때 쓰던 태블릿 PC도 생각이 나네요 화웨이에서 나온 미디어패드 FHD 10.1인치 버전이었어요 그걸로 당시 공중파까지도 온에어 재생이 되던 티빙 어플을 통해 뉴스를 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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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10일 남은 그 때, 평소와 같이 독서실에 공부하러 아침부터 나온 그날이었다. 그러나 계속 머릿 속에 맴도는 아침의 그 뉴스. 처음으로 나는 독서실에서 핸드폰을 끄지 못하고 있었다. 시험이 10일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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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수요일이였고축구 동아리에 참여했습니다. 학교는 대부분 기숙사를 사는 기숙형학교였으며시골에있는 폐쇄적 분위기의 학교였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동아리시간에진도에서 우리와 동갑이었던 친구들이 타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교육청의 전원구조 오보문자 소식에 친구들과 함께 어떻게 그럴수있냐며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쯤이 되었을때 수백명의 친구와 시민들이실종되었다는걸 깨달았고... 너무나도 큰 사고가 났구나.... 패닉상태여서 야자시간동안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라고해도 과장이 아닐만큼의 생활을 했던 수험생도그날만큼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헌데.. 대통령은 그날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니...이게 나라입니까..그녀를 뽑은 국민들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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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날씨는 화창했지만, 식사를 하던 식당의 텔레비전에서는 끔찍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들이 탄 배의 침몰...저도 제주도 수학여행을 배를 타고 가보았던지라 얼마나 큰 배의 얼마나 큰 객실에서 아이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지 상상이 되었죠. 기대와 달리 구조는 전혀 진척이 없었고 인터넷에서 한 이미지를 보게 되었죠.배가 기울면서 객실의 출구가 머리위로 향해있고 턱끝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이미지. . .절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저는 그 날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감이 이렇게 선명한데. . . 구조에 힘써야 했던 사람들은 어쩜 그리 무책임한걸까요. 통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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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오후 출근이라 늦게 일어납니다.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보면서 잠을 깨고 침대를 나오는데, 그 날은 인터넷창을 누르자마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저는 안산 사람이고, 너무 익숙한 그 이름에 잠이 확 깨서 뉴스를 계속 찾아봤습니다.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메인에 뜨는걸 봤고, 출근 준비 후 시간이 흐르고 다시 봤을 때는 그 기사는 사실이 아니였다는 것과 점점 침몰하고 있다는 내용에 엄청 걱정스러웠습니다. 그 날 하루는 그.. 산소포켓?이 있을 수도 있으니 희망을 가져보자는 말들이 있었고 저 또한 계속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희망은 시간이 흐를 수록 절망이 되었지만 그 과정 또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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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어린이집,학교에 보내고 집안일 중이였어요 방송에서는 다들 세월호 얘기뿐이였고 전원구조라는 말에 감탄했는데 오보라고 ....뉴스보면서 실종자가 이렇게 많이 생길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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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있었을 때...백수였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시간이였지만...4월 16일에 7시간 동안 무슨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아침에 일어나서 티비를 돌리다가 속보를 보았고 그속보가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내용이였습니다. 그리고 전원 구조에서 구조인원을 번복하였다고 ytn남자 앵커가 말하는 것도 기억이나고 계속 뉴스를 보면서 구조인원을 획인하였던것도 기억 납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뉴스를 봤냐고 안타까워하고 가슴아파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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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대응으로 죄 없는 학생들이 죽었다. 그 학생들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있는데.. 대통령이 그 모든 학생들의 꿈을 짓밟아 버렸다. 나는 꼭 알고 싶다. 사라진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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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3이었습니다. 그날은 다른 날과 똑같이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자습을 하고 수업을 듣고... 그 전날과 다를 게 없던 오전이었습니다. 그날의 첫 수업은 일본어 시간이었고 일본어 선생님께서 아침에 수학여행을 갔던 친구들의 배가 가라앉았다는 기사를 알려주셨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전원이 구출되었다는 소식까지 알려주셨습니다. 반 친구들과 저는 처음엔 너무 놀랐었는데 바로 구조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와 그 애들한테 엄청나게 기억에 남을 수학여행이 되겠구나 우리는 어땠었지? 하면서 수학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고 웃고 지나갔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핸드폰을 받아들고 제가 본 뉴스는 오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이 구조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모두가 패닉 상태였습니다. 모두가 구조되길 밤새 생중계를 보면서 기도했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다른 날과 똑같이 평범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그날의 사건...늦은 대처로 이렇게 가슴 아프게, 절대 잊히지 않는 날이 되었습니다. ...정말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으신가요?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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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중일때라서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기사보구 전원구조래서 아 다행이네 하고 다시 공부했어요 ㅋㅋㅋㅋㅋ 경제학강의 듣다가 집에 밥먹으러 와서 밥먹고 폰보는데 오보인거 알고 충격먹고 다시 도서관 갔는데 집중이 너무 안돼서.. 폰 계속 보다 결국 하루치 공부량 못채우고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때려치고 집와서 또 기사 찾아읽으면서 울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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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본관에서 암센터로 넘어가는 길에 안과외래 앞에 있는 TV모니터에서 뉴스봤어요.그리고 내 일을 묵묵히 할수 밖에 없었지만 잊을수가 없네요. 미안합니다. 평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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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저의 친언니가 그 전날 제주도를 가서 더 기억에 남죠 저희 언니는 비록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갔지만 만약 배를 타고 갔더라면.. 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세월호를 잊은적이 단 한순간도 없습니다 어떻게 잊습니까 잊을수가 없죠 아니 못잊습니다 저희 언니 사는곳도 단원고 근처입니다 우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고 합니다... 아들아 딸아 울부짓는 소리가 매일 매일 들린다고 합니다 저도 웁니다 마음속으로도 울고 세월호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진실을 밝혀 주세요 1000일 이나 되었지만 1000일 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진실은 아직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진상규명 필요합니다 꼭 밝혀 주세요 기도합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아이들과 그들 얼마나 춥고 무섭고 가족들이 보고싶을까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진짜 가만히 있었을 그들을 생각하면 참 말이 안나옵니다 제발 꼭 밝혀 주시고 인양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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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나쁜 제가 몇일전 일도 기억못하는제가 그날만큼은 정확하고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출근해서 동료들과 전원구조라는 보도듣고 다행이라며 안심하고있다 오보라고 정정보도 나왔을때 너무놀라 하루종일 일을 못했었네요..슬픔의 날. 죽을때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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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아빠가 데려다 주시는 차로 학교로 등교를 했습니다.저는 그때 휴대폰이 고장나서 휴대폰이 없는 상태로 학교를 갔습니다.그런데 친구들이 기사를 보더니 저에게 단원고에서 언니 오빠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저는 저와 아주 친한 언니가 단원고라는 사실을 깨닫고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집에 가서도 언니에게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해보았는데 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뉴스를 보면서 기도 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현재 3년이 지나도 저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전원구조라고 저희를 속였던 기자들..저는 그말만 믿고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좋아했는데 오보라고 기사가 다시 나는 순간 어이가 없고 화부터 났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학생들을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노은 사람들을 꼭 처벌해야 합니다. 꼭 기억하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미안합니다..할 수 있는게 없어서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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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당신들이 한 일은 뭔가요?...시간이 지나면 잊혀 질줄 알았나요?거짓말로 덮을수 있다고 생각했나요?국민이 닭대가리 인줄 알았나요?20140416살아 있는 동안 저 날짜는 절대로 잊지 못할겁니다.언젠가는 누군가 양심선언 할 겁니다.반드시...유족분들에게 다시 한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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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요? 저는 사회복지 실습을 위해 그 날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 돌보고 아이들 간식과 저녁을 준비하는 것을 도왔지요. 그래도 정신은 온통 뉴스와 포털 사이트 소식에 가 있었네요.누구에게는 생애 처음이었을 제주도 여행이 마지막 참혹한 일이 되어버린 그 날을 왜 청와대 사는 그 사람은 작년인지, 재작년인지도 헷갈려 하는 걸까요? 사죄와 책임은커녕 유가족들을 말로 여러 번 죽이는 이 작태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전 국민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그 날 잊을 수 없습니다. 유가족들이, 촛불을 든 시민들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여 명명백백 밝혀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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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같은 대학에서 한 동기가 되어 함께 캠퍼스를 걸어다녔을 동갑내기 친구들.수험시절 잠깐이나마 잊었다는게 미안해진다.이제는 편히 지내고있기를. 잊혀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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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당일,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른채 관광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중학교 3학년에 들어 가는 첫 여행이자 첫 수련회였습니다.공부라는 것은 모른채 한창 게임에 빠져있을 나이,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더 좋아하는 저는 그 관광버스에서 누구보다 빨리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같이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줬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참담한 심정으로 수련회 가는 길을 걱정했습니다.그런데 수련회에 도착하고 3학년 학생이 모두 모여 앉았을때, 그때부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심각한 사건이라고.그날 저녁, 활동을 마치고 수련회 선생님들이 예정되어 있지 않던 집결을 하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영상들을 틀어주면서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그날 저도, 그 자리에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그 뉴스가, 대한민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선생님들은 부모님들이 걱정하실까봐 수련회에서 걷던 핸드폰을 다시 나누어주었습니다.제가 제대로 더 알려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분들에게 너무 죄송합니다.해가 거듭될수록 자꾸 생각이 납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그런데 대통령은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부시술할 날짜 기억은 합니다. 이럴 리가 있습니까??빠른 시일 내에 세월호에 관련된 진실이 규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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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직장에서 동료들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합니다. 쉬는 시간 틈틈이 뉴스를 보며 다 구한 줄 알았는데 우왕좌왕하는 뉴스 보도와 침몰하는 세월호 영상을 보면서 "설마....!?"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정부에서 헬기를 동원하든 해군을 동원하든 힘을 쓰겠지, 저대로 내버려두지 않겠지...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온 박대통령의 그 날 행보와 말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헛되고 부질없는 바램이었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