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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준비중에 말도 안되는 뉴스를 들었고...전원구조라는 말에 안심했었고...오보라는 말에 화가 났었고...체육관에 채워진 그 많은 얼굴을 보면서 오열했었습니다...먹먹하다는 말조차 사치같아 아무말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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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해보면 아니 그날은 기억할 것도 없이 그냥 떠오른다. 전원구조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안심하고 지나쳤다. 흘려지나갔던 그 시간 그때, 생사를 오고가던 그때 그 시간.. 나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반성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 분들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오보를 믿었던 나를 미워했다. 그것이 진실이다. 7시간의 진실을 왜 말하지 못하는가양심 아니 생각이 있다면 진실을 말하고 평생 벌받으면 된다. 절대 어려운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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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접한 뉴스속보. 다 구조됐다는 방송.그러나... 그러나...거짓가슴이 찢어졌습니다.20140416 기억할께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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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가슴아픕니다..뭐라 할 말이 없어요시간이 해결해술 수 없는 힘겹고도 슬픈 역사인 것 같습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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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해서 일을하는데,세월호가 실시간검색 1위였어요.관심없어 클릭안했는데 계속 떠 있어서들어가보니 ㅜㅜ 정말 그냥 볼 수는 없었어요.그때가 수요일인걸로 기억해요.일하면서 계속 검색해보고 뉴스보고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어요. 잊지맙시다.명명백백 사실은 다 밝혀질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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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연극하고있습니다. 그날은 지방공연이 있어서 분당으로 갔습니다. 집에 티비가 없어 네이버로 수학여행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왔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봤습니다.안도의 한숨을 쉬고, 사고에 관심가졌던 마음을 돌려 공연준비에 집중했습니다.공연이 끝나고 팀원들이랑 밥먹으러 식당에가서 티비를 보는데 아직까지 구하지못했고 배는 계속 기울어간다는 뉴스내용이 계속 보도됩니다.전원구조 라고 했었는데 이상하다 싶었습니다.이튿날, 오늘은 다 구조되겠지~얘들아 쫌만참아.라고 생각했습니다...3일째가 되었습니다. 잠이 안옵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나이롱 신자라 평소에 잘 하지도안던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날짜가 계속 지나가는데 바뀌는건 없고, 혼란만 가중되고, 아이들한테 아무것도 해줄수있는게 없다는 자책감과 미안함에 힘들었습니다.랩 가사를 써서 마로니에 촛불집회때, 광화문 집회때 외쳐보기도 했지만 마음속에 부끄러움은 더욱 커졌습니다.3일째 되던날 들었던 자책감과 미안함이 2016.12.30 지금까지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을, 진실을 향하겠습니다. 먹고살기바쁘다는 핑계 대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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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 있는데진도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했다고 짤막하게 뉴스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 뉴스의 자막이랑 자료화면 다 기억합니다다 구조했다고 하길래 안심하고 다른 일 하고 있었더니.. 오후에 속보가 진행되었더라구요실종자 몇백명.. 어이가 없었습니다.분명 뉴스로 다 구조됐다고 나왔습니다국민들은 믿고 있었습니다VIP는 주사를 맞고 올림머리를 하며 침몰해가는 세월호를 방치해뒀습니다기억이 안난다니요국민들은 그날 기억하고 있습니다아무리 그들이 모른다 한들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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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출근 똑같은 일상. 점심 뭐먹을까 고민중한 직원이 뛰쳐들어왔지... 큰일 났다.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다 애들 다죽겠다. 그날 밥도 안먹고 퇴근 시간 까지 티비만 봤지...ㅜㅜ몇날 며칠 티비 컴퓨터 세월호만 봤는데 기억이 안난다? 유병언 살아있는거 아냐?ㄹ혜씨는 기억 안난다면서요? 그러지마요 .. 속에서 천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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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 창이 공항에서 뉴스를 봤습니다. 가족여행을 갔다가 본 뉴스가 얼마나 황당하던지...부끄럽기도 하고... 왜 저렇게나 사망자가 많은지 이해가 안됐는데...그 이유가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때문이더군요. 아름다운 우리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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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14주차였고 알바하러가는길에 버스에서 뉴스를 보았습니다연이어 전원 다구했다 오보였다 소식을들으면서 옆자리언니와 배와 있을지도모르는 캡슐에대해 얘기하며 기도했습니다간식으로 먹은빵과 딸기우유도 기억하고퇴근하고 나서 신랑을만나 대형마트가서 장을보았습니다매일 반복되던 똑같은날의 일상이었으나어제인듯 생생히 기억합니다그때는 애를 낳기전이라 잘몰랐습니다가슴찢어지는 고통이 어떤것인지...지금 25개월이 된 지금 ...제가 별이된아이들의 엄마였다면 어떤심경일까 매일 생각하며 눈물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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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버스를 타고 출근했지만 그날따라 늦게 나와서 택시를 탔다. 거의 다 왔을 때쯤 라디오에서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했고 승객들은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기사 아저씨는 "큰일날 뻔했네." 를 반복하셨고, 나는 "그래도 다행이에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렸다.학원 문을 열고 좀 있다 원장님과 원장님 친구분께서 오셨다. 원장님 친구분이 뉴스 봤냐고, 수학여행 가는 애들 탄 배가 침몰했다고 하셔서 "그거 전원 구조됐다던데요?" 라고 되물었다. 그분은 아니라고, 오보였다고 하셨다. 오보를 낼 게 따로 있지 뭘 그런 걸 오보로 내나 싶었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오보가 쏟아졌고 정확한 탑승자마저 파악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실종자 수가 구조자 수를 넘었다. 그 날 맨 처음 들었던 소식은 체육복 차림의 아이가 발견됐는데 알고 보니 친구에게서 빌린 거라 시신이 유가족을 잘못 찾아갔다는 이야기였다. 그 날 저녁에 누군가 구조됐다는 기사를 접한 후로 더 이상 내가 기다리던 뉴스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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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보고 너무 놀라서 일하면서 계속 네이버 뉴스 클릭 클릭.. 연구실 책상에서 연구원들과 첨에는 시시콜콜 얘기하던 기억나요.. 그러다가 오후 쯤 진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뉴스보고 다 멍.. 벙쪄서.. 연구실쌤중 하나는 친척 안산 산다고 고딩정도되는데 전화해보시고 그 학교는 아니라해서 안심하고.. 그 당일 부터 진짜 근 한달간 전 잠 잘 못잤어요..눈만 감으면 발부터 찬물이 차오르는 느낌때문에.. 제가 죄책감들고, 애키우는 맘이 같아서 그런지.. 지금 이글 쓰는데도 눈물이 나네요..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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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4년 4월 16일 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사고 소식을 반 단톡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그러고 사고가 났지만 국가가 모두를 구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얼마 있지 않아 국가가 무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세월호 희생자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슬퍼졌고 화도 났습니다. 주변에서도 많이 울었고 특히 저희 부모님도 많이 우셨습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이러나 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분들 부디 좋은 곳 가셨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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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4월 16일 아침부터 일이 있어 강남구청에 갔고 배가 고파 어느 슈퍼에 들러 빵과 우유를 샀습니다. 슈퍼계산대에서 주인분이 보실 수 있는 반대편 구석 높은 위치에 티비가 있었고 그 곳에서 처음 뉴스를 접했습니다. 계산하는 것도 잊고 틀어놓은 뉴스를 보며 주인아저씨와 다 구조되었다니 다행이라고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 날 생전 처음 본 아저씨가 입은 남방 색깔까지 기억이 나는데 아저씨는 연한 하늘색 남방을 입고 계셨습니다. 사무실에서 혼자 한참 일을 하다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길에 오보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집으로 가 하루종일 뉴스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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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이었던 당시, 저는 전입신병 교육을 받고 자대에서 일을 배워 가던 중이었습니다. 신병이어서 TV는 선임들이 못 보게 했는데 그날 세월호 뉴스만은 선임들이 보게 해주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황 때문에 선임들은 이등병이 TV를 보는지 안 보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 십 개월이 흐르는 시간 동안 저는 병장이 되어 병영 악폐습을 고친 후 전역을 했습니다. 2017년 첫날인 오늘이 되어서도 세월호 사건 관련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실종된 세월호 탑승객들은 아직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고, 대한민국의 악폐습(문제 앞에서의 책임 회피와 모르쇠)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분함을 느낍니다.국가 원수라면 적어도 국민이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면 본인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그날의 급박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절대로 잊어선 안 됩니다. 그것이 국가 원수로서의 책임이며 사고 당사자들에 대한 도리이자 제2의 세월호 사건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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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운전중에 친구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당연히 다 구하겠지~답하고 뉴스를 틀었습니다 점점 넘 무서운 상황이 진행 되는것 같아 이촌동 충신교회 앞을 지나다 옆에 차를 세워두고 전원 구조 해주시길 기도했습니다~설마 설마 하며 집에 돌아와 계속 뉴스 앞을 떠날 수 없었고 너무나 무력한 우리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와 많이 울었습니다 그날 우리의 무력함과 슬픔ᆞ아픔을 어찌 차마 잊을까요~평생 살아남은 부끄러운 어른 으로 빚진 맘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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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금융권 지점장입니다.그날 출근해서 오전중에 세월호사건 특보를 접합니다.오전중에 구조화면을 티브로 지켜보다가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보고 마음을 놓는 순간배의 형태나 구조상황이 전원 구조를 믿을수없는 상황이었다..오보 소식을 접하고뱃머리만 나온 순간 사무실 한 켠에서흐르는 눈물울 막지 못하고 오열하고 말았다..어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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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합니다. 방송에서 수학여행단의 해난사고가 났다고 했으며,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방송을 듣고서는 가슴을 쓸어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시간 정도 후에, 구조되었다는 것은 오보라고 했으며, 현재 구조가 진행중이라는 보도를 접했으나, 그래도 구조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적어도 대다수가 구조될것이라고 안심했었습니다.그러나... 하루가 지난후... 세월호는 전복되었으며, 수백명의 학생들이 탈출하지 못했다는 보도에... 안타까워 했으며, 에어포켓 운운하면서, 곧 구조가 될것같이 보도를 하면서, 애를 태우게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그 보도가 모두 거짓이었음을 이제는 잘 알며... 계속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진실을 숨기고... 자신들의 과오를 덮어버리려고 애쓰고 있음을 잘 알수 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0416반드시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그 죗가를 받게 할수 있는 것이라면, 저도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잊지않겠습니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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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프로젝트 일정상 많이 바빴고,집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TV도 인터넷도 못보고 일에 집중하고 있었지요.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고 "전원구조"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시 일에 열중이었습니다.집에서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바빠밥을 해먹을수 없었습니다.근처 식당에 점심 먹으러 갔고, 식당 TV에서 그 소식이 나오고 있었는데얼핏 보면서 구조 전의 상황을 되돌려 방송하는줄 알았습니다.그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받았는데"전원구조"는 오보였다고.......그 날, 내가 무엇을 했고 어느 식당에서 어느 자리에 앉아 무얼 먹었는지조차 저는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김관홍 잠수사가 그랬지요.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데왜 당신들은 기억하지 못하느냐고.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그 날, 그 아픈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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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업을 합니다. 대전에서 거래처를 방문하여 업무협의 후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TV를 통해 세월호 속보을 접했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약 40분 동안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를 듣고 정말 다행이리며 서로 얘기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날 점심메뉴는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이었고 위치는 대전 고속터미널 인근입니다.같이 식사한 분들의 이름과 메뉴까지 기억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