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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전날에 일기를 못써서 그 날 아침에 일기쓰려고 네이버에 들어갔는데 배가 가라앉는다는것과 타고 있던 인원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300명도 안됐다는 것, 그리고 전원구조했다고 뜬 기사를 읽으며 일기에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넘기고 구조되어서 다행이다. 구조하는데 애쓰신 해경분들에게 감사하다라고 쓴 내가 병.같다. 나중에 구조된 사람이 별로 없단것과 그렇게 어린 언니오빠들이 참사를 겪었다는 뉴스를 보았을땐 그 뉴스가 잘못되고 내가 오늘 쓴 일기장처럼 전원구조됐다는 기사를 믿고싶을정도였다. 이제는 그분들의 나이와 또래가 되니 괜시리 그걸 그때당시에만 기억하고 그 뒤로 남일이라고 모른체했던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가져주는게 그냥 물타기같아서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전에 그 자로X를 보고 요새 계속 잠을 못자고 잠들어도 배안에서 갇혀 죽는꿈만 꾼다. 못다한 꿈을 내가 조금이라도 이뤄주는것만으로도 , 많은사람들이 비록 다 좋게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참사를 당하신분들과 그분들의 유가족들을 생각하고 위로하고 같이공감해주는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이기적이지만 누구누구덕분에 먼저간 천사분들이 조금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끝으로 모든 분들이 아프치않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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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4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4월 14일부터 2박 3일로 수련회를 갔고 4월 16일은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핸드폰은 3일간 구경도 못하다가 16일 아침에 출발하는 차에서 받았고 그 전 날 친구들과 즐겁게 놀아 피곤해서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고 그때까지도 소식을 듣지 못한채로 2시쯤집에 왔습니다. 집에 도착해 인사를 하는데 유난히 더 애틋하게 저를 맞아주시는 엄마가 사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TV를 잘 보지 않는 우리집에서 계속 세월호의 침몰 직전의 영상이 상영 중인 TV가 나오고 있었고 뉴스가 하지않는 시간에 계속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엄마는 빨래를 개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TV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TV는 잠이 들 때까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날 밤 엄마와 저는 내일 일어나면 오늘보다는 좋은 소식이 있길 간절히 기원하며 잠이 들었었습니다. 우리집은 그 날도 다음 날도 내리 TV를 켜놓고 계속 생존자수 희생자수 실종자수를 확인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제 그때는 마냥 멀었던 그들의 나이인 고2가 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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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직장인이라 회사에서 일 하던 중 세월호 기사를 보고 처음에는 매우 놀랐다가 오전까지는 구조 가 잘 되고 있다는 오보를 듣고 조금 안심했는데 오후 들어 구조가 안 되고 있고 배가 뒤집히는 영상을 보면서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박대통령한테 묻고 싶네요 부모님 피살된 날도 기억 안 나는지. 아마 매초매초 기억할 겁니다. 그런데 삼백명이 넘는 국민이 바다에서 죽어가던 날이 기억 안 난다니요. 지독한 이기주의 이거나 무언가 잘 못한게 있어서 기억 안 나는척 하는 거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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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수업이 있던 날이었습니다운전을 해서 통학을 하던 저는,9시가 되기 조금 전 학교에 도착했습니다수업 시작 전 스마트폰으로 사고소식을 접하고안절부절한 마음에 수시로 뉴스를 확인했지요구조된 숫자가 그리 많지 않던 직전확인후다시 뉴스를 열었을때 받은 소식은전원 구조였습니다함께 마음졸이던 가족. 친구들끼리도서로 카톡으로"세월호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대"라는소식을 나누었습니다의아할정도로 전격적인 구조소식이었지만기뻐하며 확신했습니다"아. 적절한 구조와 지휘, 아이들의 협조가있었나보다."왠걸요.다시 들려온 소식과수업후 켠 TV뉴스는 참담했습니다.믿고싶지 않았고.믿을수 없었습니다.속속히 들려오는 현장의 소식은진실을 분간하기 어려웠고지난 천일동안 계속 그러했습니다.세월호도, 진실도남은 미수습자들도이제는 인양될 시간입니다지난 천일동안우리의 기억과 슬픔만 가라앉지 않았을뿐모든 것이 가라앉아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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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19일 부터 벡스코에 부산아트페어에 전시될 그림 정리 하는중 속보 로 학생들을 실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 하든일 멈추고 계속 TV시청ᆢ 계속 안타까운 장면으로 발만동동ᆢ그리고 골든벨 시간 동안 구조 소식 들리게 계속 기도 드렸음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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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여성시대에서 배안에 있던 남학생과의 전화 인터뷰중 위급상황에 그냥 끊어진 전화 ᆢ그리고 tv 를 켜놓고 하루종일 빌고 빌었다 모두 무사하길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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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tv를 틀고 아침을 하던 중 들려오던 뉴스에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수학여행가던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중이라고...그러더니 좀 있다 전원구조라고 자막이 뜨고 다행이네 했더니 오보였다.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이들을 깨우고 나서도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고, 며칠전에 수학여행을 다녀온 큰애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제발 무사히 구조해야 할텐데....그런데 뉴스에선 대통령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은 구조하지도 않았는데 배는 점점 기울어 물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그냥 내버려 두는거지? 그렇게 그 날 많은 아이들을 태운 배가 가라 앉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눈물만 흘리며 하루를 보냈다. 당장 달려가서 바닷물을 다 퍼내고 싶었다. 아직도 왜 구조하지 않았나 그 의문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나요? 왜 ! ㅠ 그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이 흐릅니다. 태어나서 젤 많은 눈물과 욕을 하던 그 날을......어찌 잊을 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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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졸업기념으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30분 아침식사 후 학교가는 아이 배웅.집안 정리ㆍ설겆이ㆍ음악듣기 등 시간을 보내다 10시경 TV 켬. 처음엔 현실이라 생각치 않고 멍하니 보며 실제 사건일까 믿지 않았음. 구조인원 수를 보며 승객들은 곧 구명조끼 입고 있으니 구조될것이라 생각하며 5분 10분 단위로 상황체크.1시경 아이는 체험학습 장소 안전히 도착했고, 염려마시고 일정 잘 마치고 오겠다는 문자 옴.이 후 시간마다 기도와 안타까움에 걱정하며 방송화면이 정지된듯 상황이 바뀌지 않고 반복영상만 틀어주는것 같아 답답했고, 새벽까지 잠 못 이루며 혹시 생존자가 1명이라도 나오는지 방송확인함. 그러면서 내 아이와 친구들 약 300여명은 안전히 잘 다녀오기를 기도했다.이후 체험학습 반 별나눠가기ㆍ일정취소등 타 학교 소식 접하며 문제해결방식에 불만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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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로 세월호 사고가 나왔어요그때만해도 배가 거의 보였던 상태라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세상을 떠날 줄 몰랐지요 아마도 10시전이였던 같아요당연히 아이들 다 구조할거라 생각하구별것도 아닌걸 갖구 ..라는 생각했구 ..전원 구조라는 문구 떴을때 별것도 아닌거 같구엄청 떠드네 아이들 다 구조했다고 메스컴에 띄워 잘난척하는줄알았어요 ..이렇게 말도 안되게 많은 아이들이 희생될줄은 생각도 못했죠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미안할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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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기억을 되짚어보면 국가와 어른을 믿은 순수한 아이들의 음성과 영상이 또렷이 각인되있을정도로 뼈져리게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차있습니다 정권교체해서 처벌해도 치유가될지 모르겠지만 더이상 국가를 믿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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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4월16일 저는 학교에서 핸드폰을 하게되는데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소식을접하게됬습니다..하지만 전원구조 소식을듣고 안도의한숨을 쉬었습니다...하지만 집에오니 거짓말이었더군요..전 분노했습니다 왜 선배들을 거기 안에서 못나오게했는지 왜가만히 있으라했고 또한 선장은 선배들과 일반인들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걸보고 전또 분노합니다 또한 해경은 구조도안했더군요 전 우리나라 큰실망하고 선배들은 꿈을 못펼치고 하늘의 별이되었습니다..전 그날을 못잊고 또한 세월호 진상규명과 구조를 왜안했는지를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세월호를 오히려 구멍을뚫고 증거인멸 하려더군요 전 그놈들때매 선배들이 하늘의별이 된게 눈물만나오네요 전 2014년4월16일을 절대로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진상규명!!! 훼손없는 인양!! 미수습자분들도 온전하게 가족들 폼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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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지나치던 미용실 안 TV에 비춰진 뉴스 속 뒤집힌 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언니, 오빠들이 사라졌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중 누군가는 사라졌고, 누군가는 슬퍼했습니다. 2017년, 저는 18살이 되었습니다. 21살이 되었어야 하는 그들은, 여전히 18살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가 19살이 되고, 20살이 되었을 때에는, 그들도 함께 나이를 먹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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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1교시가 있던날이었습니다.학교 갈 채비를 하며, 티비를 보면서 무슨일이야 싶었고 수업이 끝나고 과실에 들어오니 전원 구조라는 친구들 이야기에 그냥 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어요.. 공강 뒤에 또 수업.. 다시 과실로 들어왔을때 친구들이 세월호 뉴스봤냐고 시끌거렸고 대수롭지않게 "다 구했다던데? " 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으로 포털에 접속한순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배 끝부분만 간신히 내밀고있던 모습... 그리고 뒤이은 생각이.. 왠지 내탓같았어요.. 내가 무심히 수업에 들어가버려서 그 큰배가 갑자기 가라앉은것같은 기분이었어요.. 슬픈기억이고 아픈기억, 끔찍한 기억이지만 절대 잊지 않을겁니다 나 한사람이라도 더 기억하고 행동해야 세월호가 가라앉지 않는다는걸 알았으니까요 슬프다고 외면하지 않을거에요기억하고있어요왜 구하지 못했는지 끝까지 물어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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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경 어슬렁 거리며 뉴스를 틀었는데 사고 소식과 함께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안도하는 마음 한편으론 또 인재라는 생각에 혀를 차고 있었는데.... 잠시 후 뉴스에서 학생들이 구조되지 않았다며... 뉴스에서 눈을 때지 못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아이들이 눈앞에서 바다로 사라졌다. 어이없어 현실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니 왜 구하지 못했지? 하지만 나의 볼엔 쓰라린 눈물만 흐를 뿐.... 자금 이 시간까지 우린 그날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제발 왜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야 했는지 진실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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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평일이었고 저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초중 학원강사였던 저는 수업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기사를 통해 구조 소식을 확인하였고서로의 이야기가 다른 답답하기만 한 기사들에몇번이고 붉어져오는 눈시울을 감추고몇번이고 차오르는 눈물과 울음을 참아내고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때 만났던 아이들과 동갑내기들의 사고소식에 손에 일이 안 잡혔었죠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하염없이 기사만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그 날.다른 날은 전부 잊어도 그 날의 먹먹함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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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 수업이 있고 2층 교실에서 수업이 있던 날이었어요.2층 교실은 6? 8명이 앉을 수 있는 동그란 테이블이었고 흰색의 테이블 보가 깔려져 있었지요. 동기와 언니들과 앉아 수업을 듣다가 잠을 부르는 조명과 교수님의 목소리에 살살 잠이 오고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평범했을 하루 였을텐데.졸고 있었는데 교실이 웅성웅성해지더라구요. 옆에 있던 언니가 "배가 침몰했대!" 그 말은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직 수업 중임에도 핸드폰을 꺼내 뉴스를 보니 "전원구조" 전원구조라는 말에 안도 했습니다. 그 큰 배가 넘어간 것은 알 수 없었으나, 그래 전원구조라니 다행이다. 다행이다 했습니다. 그 전원구조라는 말에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놀란 맘은 다시 평화를 되 찾았습니다. 놀랐던 탓인지 다시 잠은 빠르게 오더군요.잠과의 사투는 수업이 끝난 후에 종료되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사람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겠지? 하며 핸드폰을 봤는데 오보. 오보라는 기사.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어뢰가 아닌 이상 사람들을 전원 구조할 시간이 있었는데..그 날 이후 뉴스만을 봤습니다. 제발 생존 수가 올라가 달라고 좀 더 살아와 달라고 빌고 또 빌며 뉴스를 보았습니다 제발. 살아와 달란 기도는 시체라도 돌아와 달라라는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돌아와달라 기도하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난 지금도 뉴스를 보며 책을 읽으며 기억팔찌를 하며 그날의 2014년 4월 16일 그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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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있는 선형대수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밤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마트폰으로 본 배 침몰과 학생들 전원 구조되었다는 속보... 별 것 아닌 줄 알았지만...점심을 먹고 다시 들여다본 스마트폰 속은 비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몇백명이 안에 갇혔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다 죽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허망함에 펜을 잠시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어른들의 잘못으로, 그 잘못된 어른들의 말을 들은 죄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이들....이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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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검색어 1위가 단원고 침몰, 세월호 침몰 등으로 도배되자 심각성을 깨달았어요. 그러나 전원 무사하다는 소식에 안도하였어요.사실이 아닌 거짓된 생존자 오보를 듣고 안도하였어요.그렇게 피해자들이 무사하다고 오보가 나가던 순간에까지 그 희생자들은 배 안에서 무서움에 벌벌 떨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소중한사람이 보고싶었을텐데..지금 우리 나라의 윗사람들은 2014년도 그날 있던일이 안중에도 없는 것 같네요.하지만 그 더러운 쓰레기들 말고는 모두가 기억하고있어요. 기억할게요. 잊지않겠습니다.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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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출근때문에 뉴스는 보지 못하고 회사에서 일하던 중 동료가 말했었다."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많이 탄 배가 침몰하고있대.."그 말에 놀라 폰으로 뉴스를 보고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난 "설마 뭐 지금 침몰하고있는데 와서 구해주겠지." 라고 생각했다.그렇게 일하는 중간중간 뉴스속보를 봤다. 그러던 중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깊은안도를 하며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설마 사람이 죽을거라 생각안했었다. 몇시간이나 흘렀기때문이고 그 안에 충분히 구할수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에서였다. 그때 그 시간에는 서서히 침몰해가는 배였기때문에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생각했다.하지만.. 오보가 드러나자 여태 흘러갔던 그 시간들이 그 시간 속에 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소름끼치게 무섭게 다가왔다. 그 사실들이 믿기지 않았다. 이미 몇십명은 죽었을거라는 .... 그 진실이 나는 너무 충격이었다. 그리고 잔인하게 생존자는 수는 계속 부족하고 실종자 수는 늘어갔다. 퇴근을하고 집에가서 뉴스를 보면서 망연자실해있었다.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삼일이가고 한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아직까지도 난 뉴스 앞에 있는것만 같다. 그 앞에서 생존자를 기다리는 속보를 보는 것만 같다. 내 긴 우울증과 무기력증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대한 분노와 중오는 그와함께 더욱 커져갔고 그건 여전히 진행상태다. 아직도 "내 딸이야!" 하며 울부짖으시던 그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다못해 내 가슴에 새겨놓을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박근혜는 모르는 날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날.2014년 4월 16일. 그 피말랐던 7시간과 끝나지 않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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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사 기자였지만사실 취재가 아닌 개인적으로 찾아간 안산고였고답없는 한국의 현실을 피해서 외국으로 도망가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취준생이었어요.300명의 너무나 어린 내 동생 같은 당신들의 얼굴 앞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린 눈물을 기억할게요.이 사태를 기억하고, 이 나라와 아픔 앞에서 결코 도망가지 않겠다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천국에서 당신들을 만나러 가겠다는다짐을 기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