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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때와 같이 일하고있었어요 오전에 사고소식을 접하고 전원구조소식도 들었죠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지리탕집을 갔어요. 그때부터 뉴스가 이상했죠 그래도 구하고 있구나 다들 무사했으면 했어요. 그날은 친구의 생일이라 퇴근후 케익도 사고 선물도 들고 친구를 만나러 갔어요. 그리고 고기집으로 갔죠. 거기서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친구생일인데 축하도 제대로 못하고 친구와 어떡해어떡해하던 기억이나요. 다음날이라도 좋은 소식을 바랬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좋은소식은 없네요 ... 이제서야 건져진 배와 미수습자분들 ... 너무 마음이 아파요. 노란리본을 항상 달고 다녔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않고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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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왠지 일찍 눈이 떠진 아침이었어요.부스스한 몰골로 집에서 불을 켜고 티비를 켰죠.아침먹을 준비를 하다가 들었던 뉴스소식엔 큰 배가 침몰했다고 했어요.엄마한테 연락을 해서 이런 일이 났다고 뉴스보시라고 했어요..엄마가 놀라하시길래 전원구조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다들 무사하다고 알렸어요.그리고 핸드폰으로 sns도 하고 커뮤니티 사이트도 돌아보는데 전원구조가 오보였다고 해서 다시 티비를 켰어요.기울어져 가는 모습 구조가 되는 모습을 보며, 제발 구조되길.. 기다렸어요.생존자 카운트가 멈춰갈때쯤 페이스북에서 배 안에서 sns글을 올렸다는게 뉴스에 나왔어요.사람들은 놀라 우왕좌왕하면서 얼른 구조하길 기대했어요.저도 생존자수가 더 늘줄알았죠...하지만 아무도 구해지지 않았어요.그렇게 몇날 며칠이 지나고 사망자 명단만 가득채워졌죠...한시간전까지 살아있었다는 말.너무 끔찍하고 마음아팠어요.가족과 영원히 갈라진 시간... 얼마나 눈물이나던지....그렇게 하루종일 집에서 뉴스만 틀어놓고 몇날 며칠을 세월호 소식만 봤어요.지금도 찾아봐요.왜 세월호는 침몰했을까?대통령은 왜 그랬을까?너무많은 의문이 그 시간 그대로 멈춰있어요.언젠가 밝혀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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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당시 손해사정쪽에서 근무를 하던 심사자였습니다.지금은 다른 곳 다른 업종에서 일 하고 있지만요사고가 나고 얼마 안있다가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어요.혹시나 있을 사고사망자 분둘의 보험청구건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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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그 날 하루는 기억이 아주 자세하게 나요.저는 그 해 대학에 떨어져 강남의 모 재수학원의 교실에서 지루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어요. 사실 전 모두가 수업을 들을 때 몰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죠. 수험생일 땐 어찌나 모든게 재밌던지, 저는 공부를 잠시 잊고 뉴스며 카페 블로그를 이리저리 구경했어요.그런데 뜻밖에도 사고 속보가 보였습니다. 교통사고라든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다른 사고와는 달랐어요. 사람이 정말 많이 타고 있는 배가 사고가 났다는 거예요. 그것도 제가 당시 스무 살 재수생이었으니, 저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학생들이 그 안에 많대요. 학교 이름도 나왔어요. 단원고라고. 생소한 지역의 모르는 학교 이름이었지만 어쨌든 스무 살도 채 안 된 아이들이니까 얼마나 놀랐을까, 진짜 큰일났나보다 했죠.그래도 저는 다 구해질거야, 막연하게 생각하고는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어요. 해경도 있고, 이렇게 뉴스에도 크게 나왔으니 당연히 구조되겠지 했어요. 남은 수업을 듣는데 그래도 어떻게 됐나, 궁금해져서 다시 화면을 켜봤어요. 전원 구조라는 헤드라인이 보였어요. 그것 봐, 다 구해질거라니까.생각하고는 2교시, 3교시, 4교시 수업을 듣고 친구들이랑 점심도 먹고, 여느 때같은 하루를 보냈어요. 점심 먹으면서 친구들끼리도 이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린 그 때까지도, 아니 집에 갈 때까지도 모두 구조됐다고 생각했어요.10시가 넘어 집에 돌아갔는데, 평소라면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엄마가 웬일로 뉴스를 보고 있었어요. 저 아이들 어떡해, 하는 엄마 목소리에서 어쩐지 물기가 느껴졌어요. 뭔데? 무슨 일인데? 하고 화면을 봤어요.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아깐 전원 구조라고 했는데.그럼 이 아이들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실시간으로 화면을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가라앉고 있었으며 아직도 가라앉는 중이란 말이었다는 건가?내가 학원에서 끄적끄적 연필을 굴리고 점심 저녁을 먹고 디저트까지 사먹는 동안...귀찮아 공부 재미없다, 수험생활 언제 끝나냐 친구들이랑 투덜거리는 동안...이 많은 사람들이요.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또 그렇게 3년이 지났어요.참 바쁘게 살았죠. 많은 일도 있었고. 너무 많아서 잊어버린 것도 많아요.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하루의 기억은 꼭 누가 비디오로 찍은 것 처럼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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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이, 친구들이 가기로 한 다음주가 우리가 제주도로 가는 날이었어요. 한껏 들뜨고 학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뉴스에 나왔어요. 반 친구들이랑 뉴스봤냐고 어떡하냐고 이야기하고 다음날 아침에도 뉴스보면서 구조된 사람 수 올라가기만 바라면서 한참 보다가 학교갔는데... 구조라고 했다가 오보라고 했다가... 정말 화나는 일이었죠. 우리가 제주도 가는게 취소됐지만 그것보다는 같은 나이인 그 친구들이 지금 우리처럼 수능도 보고 대학생도 되고 사회생활을 준비할 시기일 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서 많이 미안해요. 구해주지 못해서, 사건 후 1년과 2년 당일에는 비가 많이왔어요. 그때마다 "친구들이 울고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또 미안하고 나도 슬프고... 못구해줘서 미안해요. 친구들이랑 다른 선생님, 다른 가족분들 모두 미안합니다. 잊지못해요 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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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저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 오니 엄마와 친구엄마께서 초조한 눈빛으로 티비를 보고 계셨습니다 무슨 일이냐며 묻던 제게 엄마는 말씀하셨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이 되어 지금 구조 중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실종 구조 사망 이라는 우측 상단의 표와 침몰한 세월호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 화면까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한창 무거워져가는 마음에, 전원 구조라는 기쁜 소식을 들었고 저는 다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다행이다, 전부 구조하게 되어 다행이다 그렇게 안도를 하던 와중 그 속보가 오보였다는 게 밝혀져 저는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만약 그 분들이 아직 살아계신다면, 학생 분들뿐만 아니라 다른 탑승객 분들도 살아계신다면 아직도 평범한 일상을 지내셨겠지요 희생자 가족 분들이 그렇게 한없이 원하고 계시는 그 평범한 삶을 살고 계시겠지요 저는 그분들이 그토록 원하시던 내일을 살고있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저는 초등학교 졸업을 기대하고 있던 어린 아이였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의 저는 중학교 졸업을 코 앞에 앞두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저처럼 많은 시간이 흘렀겠죠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가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세월호 참사 당일에 멈춰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더 무거워지는 마음의 짐을 지고 계시는 분들을 보면, 저는 여기서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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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때 중학교 2학년 학생이였고, 4월 16일 그 날에는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날 저희는 설악산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였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면서 오전쯤 어느 곳에 들려서는 티비를 보니, 온통 세월호 이야기들 뿐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당시 중2학생이였던 저희가 본 뉴스의 내용은 100여명을 모두 구했다는 소식이였고, 아마 저희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그 소식을 믿고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찰나, 저녁엔 오전에 봤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뉴스가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에는 단원고 언니오빠들이 부모님께 보낸 문자, 그리곤 살아남지 못했다는 소식 등 그 날 수학여행으로 들떠있던 우리의 마음을 무너지게,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그 문자 내용을 보고서는 눈물을 훔치셨겠지만, 저는 눈물이 많은 타입이라 그 날 정말 내 가족이 그 세월호에 타고 있었던 마냥, 내 가족이 보낸 문자 내용을 본 마냥 펑펑 울었습니다. 그리곤, 16 17 18일을 수학여행 일정을 마치는대로 뉴스를 보곤 했고, 집에 와서까지도 세월호의 희생자분들을 구하는 모습이 뉴스에 비춰졌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뒤 학교에서는 믿을 수 없이 감사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의 수학여행 선택지는 4가지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중 첫번째는 저희가 갔던 설악산, 두번째로는 단원고 언니오빠들이 가셨던 제주도, 등등이 있었고 당연히 저희는 제주도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수학여행 갔을 당시에는 안계셨던 전근가신 선생님께서 무슨 중2가 벌써 제주도냐며 설악산으로 장소를 변경하셨다고 했고, 만약 제주도를 갔다면 비행기가 아닌 단원고 언니오빠둘 대신 탔을 세월호. 저는 그 때 가서야 그 상황이 끔찍하기 시작했지만, 살아남은 단원고 당시 2학년 언니오빠들, 살아남지 못한 언니오빠들은 그 차가운 물 속에서 어떤 기분이였는지, 어떤 공포감이 형성되었는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당시 단원고 2학년이셨던 살아남으신 단원고 언니오빠들, 부디 자책하지 말고 살아주세요, 당신들이 대한민국의 미래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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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 4월 16일이면저는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중학교 입학한후 첫 수련회를 떠난날입니다.숙소에 도착하며 짐정리를 하고첫 계획인 속리산 등산을 하였습니다.친구들과 속리산 등산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쉬는 시간에 잠깐 숙소에 있던 TV를 시청했었습니다.그 순간 저희 학교 아이들이 있는 모든 방에서배가 뒤집어졌다는 소리가 들려왔고저희는 그 순간 모두 뉴스를 보며한명한명 모두 구조되길 기도하였습니다.심지어 취침시간에도 저희는 교관님 몰래 TV를 보며 그당시 뉴스를 새벽넘어서까지 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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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때 제 1순위 구조, 지원 부대라지휘통제실에서 셋팅하고 브리핑 준비하고몇달 내내 세월호 때문에 병사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다가도 밤새도록 불려가고 너무 화가났어.솔직히 나랑은 큰 상관 없는 일이잖아. 대통령도 자고있는데 진심으로 더 자고 싶었다.시도때도 없이 시누쿠 수송기 떠서 온사방 모래날려 엉망이였고 그거 청소하느라 애먹었지가장 고생한건 주변 간부들이였어.스쿠바 있는 간부들은 구조활동 하러 갔다가, 신임하사들 시체보고 정신병 걸려서 의무대에 벌벌 떨고 있는걸 보니 너무 안쓰러웠어. 그리고 적어도 구조에 도움준 군인들에게 욕은 하지말자. 구조가 의무도 아니고 이분들도 자기 가족도 아닌 사람을, 애잔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도움되고자 자기 목숨 걸고 구조활동 하는건데, 거기서 욕먹고 돌아온 간부도 있었어.. 그건 아니라고 생각됐어. 요번 제천화제 사건에서 소방관 욕하는것도 마찬가지지. 그렇게 답답하면 본인이 뛰어들어가던가. 본인 가족잃어 슬픈건 알겠는데, 적어도 지기 목숨 담보로 구조활동 한 사람에게 직무유기니 뭐니 그런식으로 말하면 안돼.희생된 젊은 청춘들 안타깝고 명복을 빌어.그리고 난 다 잊었어 왜 기억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기억한다고 달라지는가. 산자의 오만일 뿐이지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지 나 살기도 힘든데 일면식도 없는 사자까지 기억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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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세월호가 터진 그 시각 , 그때 전 설악산으로가는 수학여행 버스를 타고있었습니다 아마 밑에 있는 "2014년 4월 16일"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사람은 저와 같은 중학교를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아직도 생생해요 수학여행 버스안에서 수학여행 간다는 사실에 들떠서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티비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속보가 떴습니다 주위는 어느새 조용해졌고 미친거아니냐 이거 진짜냐고 말이 나왔습니다 수학여행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어요 똑같은 날 똑같이 수학여행을 가서 나는 지금 수학여행을 즐기고 있고 단원고 언니오빠들은 차가운 바다에 있다는 사실이 뭔가 죄송스러웠어요 그래서 숙소에서도 계속 뉴스만 보면서 제발 전원 구조되기를 기도했어요그리고 수학여행을 간 후 그런 말이 돌더라고요 원래 저희가 제주도에 가려고 했는데 그게 취소가 돼서 설악산에 간거라고 만약에 제주도에 갔으면 갈때 배, 올때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고 그 말을 듣고나니까 더 마음이 무너져내렸어요 이걸 듣고 아 제주도로 안가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안도하고있는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웠어요세월호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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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1학년일때..처음 알게 된 시간은 가정시간이었어요가정선생님이 배가 침몰했는데, 다 구조 됐다고. 사람들도 많다는데 다행이라고.그냥 처음엔 ‘아 그렇구나. 다행이네’ 정도로만 생각했었어요. 학교에서는 핸드폰도 내야하기 때문에 핸드폰도 없어서 제대로 된 뉴스를 듣지 못했었으니까요 야자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뉴스를 보는데 뉴스 기사를 읽으면서 운 적은 처음이었던거 같아요. 무사히 구조됐을거라 믿었는데.. 지금은 천국에서 웃고 계셨으면 좋겠네요항상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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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였고 맨처음 2교시 수업중에 기사를 통하여 접하게 되었고 수업이 한교시, 한교시가 끝나갈때마다 모두 핸드폰으로 상황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말에 안심을 하고 지켜보다가 그것이 오보였고 상황은 점점 안좋아져 이건 말이 안된다며 그 날 수업 듣는 내내 모두가 계속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이 저랑 동갑인 친구들이기에 더욱더 마음이 안좋았고 그날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때까지도 믿지 못했습니다. 2014년 4월16일..날씨는 어땠고 무슨 생각으로 집까지 왔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친구들아 부디 거기선 행복하게 지내 우린 너희들을 꼭 잊지 않을꺼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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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의 나는 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친구들이랑 수업이 끝나고 밥을 먹으며 세월호 기사를 봤다. 믿고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설마 구조가 안되겠어, 구조 될거야. 이게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이겠어. 어떻게든 해결 될거야. 우리 우울해하지 말자. 너무 우울한 것 찾아보지 말자. 잘 될거야.그 말을 했던 내가 너무 미웠다.그 순간만큼은 도망치고 싶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너무 무서웠다. 왜 아무도 그들에게 빛을 주지 않는지, 더 기회를 주지 않는건지, 어둠속에서 떨고 있을 아이들이 생생히 그러져서 더 고통스러웠다.여전히 부정하고 싶다. 세월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지나가고 나는 직장인이 되었으며 모두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간다. 나는 꾸준히, 끊임없이 말하고 기억할 것이다.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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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다니던 시기였습니다. 그날은 학교에 가야 했어요. 학교에 가면 핸드폰을 제출해야 했고 모든 미디어와의 접촉이 차단이 됐기 때문에, 그 소식은 어느 수업 중 선생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됐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식은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었고, 그게 오보라는 소식을 접한 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뉴스를 켠 후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안산 단원고 근처에서 거주했었고, 집에 와서 어머니를 통해 저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몇몇 분들 역시 그 배 안에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그날, 당시의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너무나도 비참했고, 미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의 충격, 슬픔, 좌절, 그리고 이어졌던 분노를 잊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잊지 못할 것이며,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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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수학여행 첫날이여서 버스타고 가는 길에 뉴스속보 보고 알았어요 숙소에 가서도 뉴스만 보고 수학여행 내내 친구들이랑 울었던 기억 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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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일본여행 2일째였다. 일본 뉴스에서도 세월호의 이야기가 계속되고있었다. 짧게 지나간 뉴스를 보며 곧 구조뉴스가 전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일본을 떠나 다시 한국에 올때까지 가라앉는 세월호의 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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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사고가 있었는지도 몰랐고 잘못된 보도로 사람들을 속였던것도 몰랐습니다 300명을 구했다 보도를 한게 얼마나 큰 거짓말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많은 사람이 죽은 사고라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아직도 침몰되어있고 저는 학생들의 당시 나이인 18살을 지나 19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이가 들어가겠죠18살에 멈춰있는 그들 대신에 계속 나이들어갈 제가 사고를 기억하고 진실을 찾아내겠습니다그날을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remember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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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입니다. 근데 지금도 그 잘나신 의원나으리들의 반성은 없네요. 아침엔 바빠서 오후 느지막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가 토악질이 나와 저녁을 거르고 시내를 정처없이 걸어다녔습니다.네. 그래요. "단순 교통사고"였고 "자식 팔아먹은" "징글징글한" 일이었겠죠, 그사람들에겐.근데, 그거 알아요?교통사고도 크게 나면 국가가 개입해요. 화재든 수해든 불가항력인 일이 생기면 국가는 뛰어들어요. 근데 당신들이 살던 그 국가는 어땠나요. 솔직히 이젠 몇년 전에 이 일이 생겼는지도, 계산해 보기 전에는 딱 바로 떠오르진 않아요. "아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었으니.." 하면서 머리를 굴려야 해요. 내 자신 나이조차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변명이라고 해두죠. 근데 절대 잊히지 않는 게 있어요. 나으리들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이요. 인두겁을 쓰고, 저렇게 숨쉬고 싶지는 않다는 그런 다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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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의 아픔과 남은 분들의 슬픔을 기억합니다. 여러분의 곁에서 같이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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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에 단원고 학생들이 탄 배가 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고향이 안산이라 친구들과 모두 그 얘기만 했어요.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전원 구조라고 하더군요. "다행이다" 하고 맘을 놓자마자 전원 구조는 오보이며 아직 사람들이 바다에 있다는 말에 마음이 불안했습니다."다 구출 될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바람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했어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가슴이 먹먹한 하루였습니다.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겠습니다.그 날의 모두가 좋은 곳에서 편안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