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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기억을 되짚어보면 국가와 어른을 믿은 순수한 아이들의 음성과 영상이 또렷이 각인되있을정도로 뼈져리게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차있습니다 정권교체해서 처벌해도 치유가될지 모르겠지만 더이상 국가를 믿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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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4월16일 저는 학교에서 핸드폰을 하게되는데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소식을접하게됬습니다..하지만 전원구조 소식을듣고 안도의한숨을 쉬었습니다...하지만 집에오니 거짓말이었더군요..전 분노했습니다 왜 선배들을 거기 안에서 못나오게했는지 왜가만히 있으라했고 또한 선장은 선배들과 일반인들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걸보고 전또 분노합니다 또한 해경은 구조도안했더군요 전 우리나라 큰실망하고 선배들은 꿈을 못펼치고 하늘의 별이되었습니다..전 그날을 못잊고 또한 세월호 진상규명과 구조를 왜안했는지를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세월호를 오히려 구멍을뚫고 증거인멸 하려더군요 전 그놈들때매 선배들이 하늘의별이 된게 눈물만나오네요 전 2014년4월16일을 절대로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진상규명!!! 훼손없는 인양!! 미수습자분들도 온전하게 가족들 폼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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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지나치던 미용실 안 TV에 비춰진 뉴스 속 뒤집힌 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언니, 오빠들이 사라졌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중 누군가는 사라졌고, 누군가는 슬퍼했습니다. 2017년, 저는 18살이 되었습니다. 21살이 되었어야 하는 그들은, 여전히 18살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가 19살이 되고, 20살이 되었을 때에는, 그들도 함께 나이를 먹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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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1교시가 있던날이었습니다.학교 갈 채비를 하며, 티비를 보면서 무슨일이야 싶었고 수업이 끝나고 과실에 들어오니 전원 구조라는 친구들 이야기에 그냥 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어요.. 공강 뒤에 또 수업.. 다시 과실로 들어왔을때 친구들이 세월호 뉴스봤냐고 시끌거렸고 대수롭지않게 "다 구했다던데? " 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으로 포털에 접속한순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배 끝부분만 간신히 내밀고있던 모습... 그리고 뒤이은 생각이.. 왠지 내탓같았어요.. 내가 무심히 수업에 들어가버려서 그 큰배가 갑자기 가라앉은것같은 기분이었어요.. 슬픈기억이고 아픈기억, 끔찍한 기억이지만 절대 잊지 않을겁니다 나 한사람이라도 더 기억하고 행동해야 세월호가 가라앉지 않는다는걸 알았으니까요 슬프다고 외면하지 않을거에요기억하고있어요왜 구하지 못했는지 끝까지 물어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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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경 어슬렁 거리며 뉴스를 틀었는데 사고 소식과 함께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안도하는 마음 한편으론 또 인재라는 생각에 혀를 차고 있었는데.... 잠시 후 뉴스에서 학생들이 구조되지 않았다며... 뉴스에서 눈을 때지 못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아이들이 눈앞에서 바다로 사라졌다. 어이없어 현실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니 왜 구하지 못했지? 하지만 나의 볼엔 쓰라린 눈물만 흐를 뿐.... 자금 이 시간까지 우린 그날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제발 왜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야 했는지 진실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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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평일이었고 저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초중 학원강사였던 저는 수업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기사를 통해 구조 소식을 확인하였고서로의 이야기가 다른 답답하기만 한 기사들에몇번이고 붉어져오는 눈시울을 감추고몇번이고 차오르는 눈물과 울음을 참아내고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때 만났던 아이들과 동갑내기들의 사고소식에 손에 일이 안 잡혔었죠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하염없이 기사만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그 날.다른 날은 전부 잊어도 그 날의 먹먹함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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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 수업이 있고 2층 교실에서 수업이 있던 날이었어요.2층 교실은 6? 8명이 앉을 수 있는 동그란 테이블이었고 흰색의 테이블 보가 깔려져 있었지요. 동기와 언니들과 앉아 수업을 듣다가 잠을 부르는 조명과 교수님의 목소리에 살살 잠이 오고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평범했을 하루 였을텐데.졸고 있었는데 교실이 웅성웅성해지더라구요. 옆에 있던 언니가 "배가 침몰했대!" 그 말은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직 수업 중임에도 핸드폰을 꺼내 뉴스를 보니 "전원구조" 전원구조라는 말에 안도 했습니다. 그 큰 배가 넘어간 것은 알 수 없었으나, 그래 전원구조라니 다행이다. 다행이다 했습니다. 그 전원구조라는 말에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놀란 맘은 다시 평화를 되 찾았습니다. 놀랐던 탓인지 다시 잠은 빠르게 오더군요.잠과의 사투는 수업이 끝난 후에 종료되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사람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겠지? 하며 핸드폰을 봤는데 오보. 오보라는 기사.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어뢰가 아닌 이상 사람들을 전원 구조할 시간이 있었는데..그 날 이후 뉴스만을 봤습니다. 제발 생존 수가 올라가 달라고 좀 더 살아와 달라고 빌고 또 빌며 뉴스를 보았습니다 제발. 살아와 달란 기도는 시체라도 돌아와 달라라는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돌아와달라 기도하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난 지금도 뉴스를 보며 책을 읽으며 기억팔찌를 하며 그날의 2014년 4월 16일 그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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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있는 선형대수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밤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마트폰으로 본 배 침몰과 학생들 전원 구조되었다는 속보... 별 것 아닌 줄 알았지만...점심을 먹고 다시 들여다본 스마트폰 속은 비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몇백명이 안에 갇혔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다 죽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허망함에 펜을 잠시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다....어른들의 잘못으로, 그 잘못된 어른들의 말을 들은 죄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이들....이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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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검색어 1위가 단원고 침몰, 세월호 침몰 등으로 도배되자 심각성을 깨달았어요. 그러나 전원 무사하다는 소식에 안도하였어요.사실이 아닌 거짓된 생존자 오보를 듣고 안도하였어요.그렇게 피해자들이 무사하다고 오보가 나가던 순간에까지 그 희생자들은 배 안에서 무서움에 벌벌 떨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소중한사람이 보고싶었을텐데..지금 우리 나라의 윗사람들은 2014년도 그날 있던일이 안중에도 없는 것 같네요.하지만 그 더러운 쓰레기들 말고는 모두가 기억하고있어요. 기억할게요. 잊지않겠습니다.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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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출근때문에 뉴스는 보지 못하고 회사에서 일하던 중 동료가 말했었다."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많이 탄 배가 침몰하고있대.."그 말에 놀라 폰으로 뉴스를 보고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난 "설마 뭐 지금 침몰하고있는데 와서 구해주겠지." 라고 생각했다.그렇게 일하는 중간중간 뉴스속보를 봤다. 그러던 중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깊은안도를 하며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설마 사람이 죽을거라 생각안했었다. 몇시간이나 흘렀기때문이고 그 안에 충분히 구할수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에서였다. 그때 그 시간에는 서서히 침몰해가는 배였기때문에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생각했다.하지만.. 오보가 드러나자 여태 흘러갔던 그 시간들이 그 시간 속에 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소름끼치게 무섭게 다가왔다. 그 사실들이 믿기지 않았다. 이미 몇십명은 죽었을거라는 .... 그 진실이 나는 너무 충격이었다. 그리고 잔인하게 생존자는 수는 계속 부족하고 실종자 수는 늘어갔다. 퇴근을하고 집에가서 뉴스를 보면서 망연자실해있었다.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삼일이가고 한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아직까지도 난 뉴스 앞에 있는것만 같다. 그 앞에서 생존자를 기다리는 속보를 보는 것만 같다. 내 긴 우울증과 무기력증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대한 분노와 중오는 그와함께 더욱 커져갔고 그건 여전히 진행상태다. 아직도 "내 딸이야!" 하며 울부짖으시던 그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다못해 내 가슴에 새겨놓을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박근혜는 모르는 날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날.2014년 4월 16일. 그 피말랐던 7시간과 끝나지 않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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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사 기자였지만사실 취재가 아닌 개인적으로 찾아간 안산고였고답없는 한국의 현실을 피해서 외국으로 도망가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취준생이었어요.300명의 너무나 어린 내 동생 같은 당신들의 얼굴 앞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린 눈물을 기억할게요.이 사태를 기억하고, 이 나라와 아픔 앞에서 결코 도망가지 않겠다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천국에서 당신들을 만나러 가겠다는다짐을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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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하는 학생입니다. 어쩌다보니 그날의 기억을 담아내야했고,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서 여기로 왔습니다. 그날은 제가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냥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싶었습니다.지금에서야 다시 그날의 기억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뭐라고 할말이 없습니다. 말을 못하겠습니다. 그날을 기억해야하는 이유를 누가 묻는다면, 뭐라고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기억해야할것 같아서 기억한다고만 말합니다. 오늘은 참 모르겠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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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저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그해 4월 16일에 학교에 있었습니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나면 모두가 구조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집에 돌아오니 그 바다에서는 지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배 속에 갇혀있으니 무서울 텐데. 바닷물이 무섭게 차가울 텐데. 가슴이 죄어들었습니다.조금 늦게나마 다들 구조되기만을 바랐습니다.그러나 세월호 속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늦게 발견되었습니다.그리고 지금도 발견되지 못한 사람들과 이곳에 남아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봄이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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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을하던 와중에,잠시 들른 사무실에서 소식을 접했습니다..얼마뒤에 나온 속보로 많은 아이들이구출되었다는 얘기가 보도되길래,마음이 편해졌습니다.비록 내가 뽑은 대통령은 아니지만...대단하다고 생각했지요..그리고 속았다는걸 알게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더라구요..여태껏 살면서.. 한번도 이런저런대참사에 그저 슬픈일이구나 생각만하며넘기던 나였지만..이것은 달랐습니다.수많은 미래를 살게될 아이들이...꽃한번 못 피어보고 가는것이 못내 가슴아파... 집으로 돌아가는길 내내눈물이 떨어지더군요.더군다나 다음날은 나의 생일이라아직도 더 기억에 많이 남은걸지도 모르겠습니다.이제 조금있으면 인양이 되는데,부디 차가운 물에서 건져진아이들의 영혼이 다른곳에서 부디.평안하였으면 좋겠습니다.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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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수업이라 아침 일찍 등교하여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뉴스를 보다가세월호 침몰 소식과 전원구조 소식을 접했습니다.수업중 여느때처럼 교수님께서 뉴스를 보자며포탈사이트를 켰고 희생자 2명이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희생자 소식에 부끄럽게도 안타깝지만그래도 희생자가 적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오전 수업을 마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티비를 통하여 모든게 다 오보이며선체는 침몰된채로임을 알있습니다.그리고 뉴스에서는 보험과 보상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죠...잠들기전까지 구할 수 있을거라고 믿고 있었어요.배가 보있으니까... 눈 앞에서 가라 앉게 하지는 않을거라고 믿났으니까.그런데 세월호는 결국 완전히 사라졌고 아이들도 그렇게 사라지고 이제야 한참 지난 이제야 그 아픔을 인양하네요.이렇게 생생히 기억하는데 왜 그 분들은 기억하지못한다고 할까요. 그 날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잔혹한 날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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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일어니기 전날은 제 생일 이었습니다.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 하고 그다음날 일어나보니 제주도로 가던 배가 침몰했다고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금방 구조 되리라 믿었던 희망이 차츰 꺾였고 결국 소수만이 구조 되었습니다. 난 아직도 내 생일 축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난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지만 그 다음날은 내 동생들이 억울하게 그 차가운 바다에서 죽은 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내 생일은 이제 내 동생들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난 휴대폰 메모장에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입력해 놓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또 그 동생들의 몪까지 내가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 했기 때문에 나중에 내 동생들 만날때 나 열심히 너희들 기억하고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하루를 헛되이 살지 않고 있습니다..난 기억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또한 10년 뒤에 내 아들 딸에게도 이 일을 기억하게 할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별들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비춰주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들의 죽음이 결코 개죽음이 되어 버리지 않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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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학생이던 저는 평소와 같이 집에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TV뉴스를 켜놓는 습관대로 그날도 뉴스를 보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렷하게 기억하는 뉴스 내용은 해상에서 여객선이 좌초되었으나 대부분의 승객을 무사히 구조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일어나는 사건사고 중 하나구나 하고 대수롭지않게 넘기곤 학교로 향했습니다.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조별모임을 하고 바쁘게 하루를 지낸 뒤 늦은 오후에 본 뉴스는 아침에 본 뉴스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너무나 슬펐습니다.많은 사람들이 또렷하게 기억하는 그날의 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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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날. 생애 첫 직장에서 처음으로 생일을 맞이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보통 때보다 많이 어두운 날씨였습니다. 일을 하던 도중에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배가 침몰했다는 키워드가 올라와 있는 상태였고, 저는 라디오 생중계를 들으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원 구조를 했다는 내용을 접했을 때는 아.. 정말 다행이다. 싶었지만.. 오보 기사였습니다.우울했던 그 날, 저는 제 생일 축하를 할 수 없었습니다.저는..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제가 태어난 날이 싫을 정도로..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마음이 아픕니다. 배 안에서 고통 받았을 아이들 선생님들 사람들...저는 영원히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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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이 잘 마무리 되어 유가족분들의 아픔이 치유되시길 바랍니다기도하겠습니다 힘내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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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식을 접했던건 전원구조라는 것이였고 그 후 바로 오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습니다. 학교에서 너무나도 평범하게 수업을 듣고있던 나도 마음이 찢어질듯 아픈데 생존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은 얼마나 더 찢어질까, 그 차가운 바다 안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따뜻한 그 선배님들은 얼마나 더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73일 드디어 보인 세월호의 모습은 3년 전 그 모습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올라오는 기사들엔 악플이 끝없이 달리고.. 부디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부디 남은 9명의 실종자분들이 따뜻하다못해 간절함으로 뜨거운 가족의 품으로 무사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끝까지, 죽는날까지 2014년 4월 16일 잊지못할 그 날을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