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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14주차였고 알바하러가는길에 버스에서 뉴스를 보았습니다연이어 전원 다구했다 오보였다 소식을들으면서 옆자리언니와 배와 있을지도모르는 캡슐에대해 얘기하며 기도했습니다간식으로 먹은빵과 딸기우유도 기억하고퇴근하고 나서 신랑을만나 대형마트가서 장을보았습니다매일 반복되던 똑같은날의 일상이었으나어제인듯 생생히 기억합니다그때는 애를 낳기전이라 잘몰랐습니다가슴찢어지는 고통이 어떤것인지...지금 25개월이 된 지금 ...제가 별이된아이들의 엄마였다면 어떤심경일까 매일 생각하며 눈물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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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버스를 타고 출근했지만 그날따라 늦게 나와서 택시를 탔다. 거의 다 왔을 때쯤 라디오에서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했고 승객들은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기사 아저씨는 "큰일날 뻔했네." 를 반복하셨고, 나는 "그래도 다행이에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렸다.학원 문을 열고 좀 있다 원장님과 원장님 친구분께서 오셨다. 원장님 친구분이 뉴스 봤냐고, 수학여행 가는 애들 탄 배가 침몰했다고 하셔서 "그거 전원 구조됐다던데요?" 라고 되물었다. 그분은 아니라고, 오보였다고 하셨다. 오보를 낼 게 따로 있지 뭘 그런 걸 오보로 내나 싶었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오보가 쏟아졌고 정확한 탑승자마저 파악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실종자 수가 구조자 수를 넘었다. 그 날 맨 처음 들었던 소식은 체육복 차림의 아이가 발견됐는데 알고 보니 친구에게서 빌린 거라 시신이 유가족을 잘못 찾아갔다는 이야기였다. 그 날 저녁에 누군가 구조됐다는 기사를 접한 후로 더 이상 내가 기다리던 뉴스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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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보고 너무 놀라서 일하면서 계속 네이버 뉴스 클릭 클릭.. 연구실 책상에서 연구원들과 첨에는 시시콜콜 얘기하던 기억나요.. 그러다가 오후 쯤 진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뉴스보고 다 멍.. 벙쪄서.. 연구실쌤중 하나는 친척 안산 산다고 고딩정도되는데 전화해보시고 그 학교는 아니라해서 안심하고.. 그 당일 부터 진짜 근 한달간 전 잠 잘 못잤어요..눈만 감으면 발부터 찬물이 차오르는 느낌때문에.. 제가 죄책감들고, 애키우는 맘이 같아서 그런지.. 지금 이글 쓰는데도 눈물이 나네요..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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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4년 4월 16일 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사고 소식을 반 단톡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그러고 사고가 났지만 국가가 모두를 구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얼마 있지 않아 국가가 무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세월호 희생자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슬퍼졌고 화도 났습니다. 주변에서도 많이 울었고 특히 저희 부모님도 많이 우셨습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이러나 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분들 부디 좋은 곳 가셨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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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4월 16일 아침부터 일이 있어 강남구청에 갔고 배가 고파 어느 슈퍼에 들러 빵과 우유를 샀습니다. 슈퍼계산대에서 주인분이 보실 수 있는 반대편 구석 높은 위치에 티비가 있었고 그 곳에서 처음 뉴스를 접했습니다. 계산하는 것도 잊고 틀어놓은 뉴스를 보며 주인아저씨와 다 구조되었다니 다행이라고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 날 생전 처음 본 아저씨가 입은 남방 색깔까지 기억이 나는데 아저씨는 연한 하늘색 남방을 입고 계셨습니다. 사무실에서 혼자 한참 일을 하다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길에 오보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집으로 가 하루종일 뉴스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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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이었던 당시, 저는 전입신병 교육을 받고 자대에서 일을 배워 가던 중이었습니다. 신병이어서 TV는 선임들이 못 보게 했는데 그날 세월호 뉴스만은 선임들이 보게 해주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황 때문에 선임들은 이등병이 TV를 보는지 안 보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 십 개월이 흐르는 시간 동안 저는 병장이 되어 병영 악폐습을 고친 후 전역을 했습니다. 2017년 첫날인 오늘이 되어서도 세월호 사건 관련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실종된 세월호 탑승객들은 아직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고, 대한민국의 악폐습(문제 앞에서의 책임 회피와 모르쇠)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분함을 느낍니다.국가 원수라면 적어도 국민이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면 본인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그날의 급박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절대로 잊어선 안 됩니다. 그것이 국가 원수로서의 책임이며 사고 당사자들에 대한 도리이자 제2의 세월호 사건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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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운전중에 친구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당연히 다 구하겠지~답하고 뉴스를 틀었습니다 점점 넘 무서운 상황이 진행 되는것 같아 이촌동 충신교회 앞을 지나다 옆에 차를 세워두고 전원 구조 해주시길 기도했습니다~설마 설마 하며 집에 돌아와 계속 뉴스 앞을 떠날 수 없었고 너무나 무력한 우리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와 많이 울었습니다 그날 우리의 무력함과 슬픔ᆞ아픔을 어찌 차마 잊을까요~평생 살아남은 부끄러운 어른 으로 빚진 맘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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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금융권 지점장입니다.그날 출근해서 오전중에 세월호사건 특보를 접합니다.오전중에 구조화면을 티브로 지켜보다가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보고 마음을 놓는 순간배의 형태나 구조상황이 전원 구조를 믿을수없는 상황이었다..오보 소식을 접하고뱃머리만 나온 순간 사무실 한 켠에서흐르는 눈물울 막지 못하고 오열하고 말았다..어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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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합니다. 방송에서 수학여행단의 해난사고가 났다고 했으며,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방송을 듣고서는 가슴을 쓸어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시간 정도 후에, 구조되었다는 것은 오보라고 했으며, 현재 구조가 진행중이라는 보도를 접했으나, 그래도 구조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적어도 대다수가 구조될것이라고 안심했었습니다.그러나... 하루가 지난후... 세월호는 전복되었으며, 수백명의 학생들이 탈출하지 못했다는 보도에... 안타까워 했으며, 에어포켓 운운하면서, 곧 구조가 될것같이 보도를 하면서, 애를 태우게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그 보도가 모두 거짓이었음을 이제는 잘 알며... 계속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진실을 숨기고... 자신들의 과오를 덮어버리려고 애쓰고 있음을 잘 알수 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0416반드시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그 죗가를 받게 할수 있는 것이라면, 저도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잊지않겠습니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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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프로젝트 일정상 많이 바빴고,집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TV도 인터넷도 못보고 일에 집중하고 있었지요.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고 "전원구조"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시 일에 열중이었습니다.집에서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바빠밥을 해먹을수 없었습니다.근처 식당에 점심 먹으러 갔고, 식당 TV에서 그 소식이 나오고 있었는데얼핏 보면서 구조 전의 상황을 되돌려 방송하는줄 알았습니다.그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받았는데"전원구조"는 오보였다고.......그 날, 내가 무엇을 했고 어느 식당에서 어느 자리에 앉아 무얼 먹었는지조차 저는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김관홍 잠수사가 그랬지요.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데왜 당신들은 기억하지 못하느냐고.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그 날, 그 아픈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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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업을 합니다. 대전에서 거래처를 방문하여 업무협의 후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TV를 통해 세월호 속보을 접했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약 40분 동안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를 듣고 정말 다행이리며 서로 얘기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날 점심메뉴는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이었고 위치는 대전 고속터미널 인근입니다.같이 식사한 분들의 이름과 메뉴까지 기억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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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사는 사람입니다.당일 출근한지 얼마 안되서 뉴스로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당연히 당연히 !!!! 다 구조 될 줄 알았습니다 .4월 15일로 돌아가고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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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뉴스를 보면서 설마 했는데 어떻게 모를까? 기억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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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저는 안산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운전이 하늘 일의 반을 차지하는 일이라서 매일 매일 운전을 하며 라디오를 듣습니다. 오전에 창완디제이의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으며 무사히 구조되기를 바라며 운전했고 뒤이어 화정 디제이의 전원구조됬다는 소식에 정말 다행이다 안심했고 곧 바로 오보로 알려지며 탄식했고 그래도 하나둘셋 구조될거라고 믿었던거 같다. 21세기 대한민국이니까..우리나라니까..근데 퇴근을 해도 그 다음 날이되도 구조소식은 없었다..안산을 다니며 얼마나 울면서 운전을 했는지 모른다. 그날 공기 그날 풍경 그날 뉴스 다 기억이 난다기억나지 않을리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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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부터 12시 30분까지 전화상담 봉사를 하는 날.... 딸에게 문자가 왔다. 수학여행 가는 배가 침몰하는데 학생들이 소식을 전한다고.... 나는 그 정도로 여유가 있으니 다 구조될 것이라 말하며 그들에게 평생토록 얘기할 재미난 추억을 만들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곤 전원구조라는.... 봉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 스스로의 죽음을 중계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그날 내가 했던 말 때문에 얼마나 죄스러웠는지.... 나는 괸계자나 책임자도 아니고, 나와 관계 된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침몰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한 죄스러움 그리고 무능함에 분노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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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아침 9시정도에 배가 침몰중이라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처음엔 금방 해결 될 작은 사건이라 생각했었는데...나는 그날....만삭의 몸으로...식사도 제대로 못한채...하루종일 뉴스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그 뒤로 두 달이상을 매스컴의 보도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슬프고 ,답답하고, 화나고 , 우울한 임신기간을 보낸 뒤에 결국...늦둥이 셋째를 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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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있었고 오전중에 전원 구조됐단 기사를 접하고 아 별일 아니네 하고 넘겼다오후 수업을 들으려는데 교수님이 뉴스봤냐며, 아침엔 전원 구조라고 떴었는데 그게 오보였다고 수업 시작하면서 말함. 그래서 핸드폰으로 확인해보니....그리고 집에 와서 티비를 틀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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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직원포함3명과 원자력발전소 출장.경부고속도로 운행중 점심을 먹기위해 칠곡휴계소입장하며 집사람에게 전화했는데 사고얘기를듣고 휴계소TV보니 전원구속을보고 다들 안도하며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후 집사람한테전화하니 오보였고 300여명 사망인듯하다며 . .2014년, 동행인원, 출장지가 고리인지. 월성인지생각은 안나지만 상황은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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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저로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여력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원 공부를 하다보니, 그날 몇 시간의 강의 시간 사이사이 빈 시간이 있어서 연구실에서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 검색하다 그 참혹한 비보를 접했습니다. 내 가족이 아니었어도, 내 친구가 아니었어도, 소중한 생명들이 그렇게 원통한 죽음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열도 아닌, 300명의 숭고한 목숨이, 구조가 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수장되었다는 사실을 정말 믿을 수 가 없더군요. 그날 부터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인터넷을 체크하며, 기사들을 읽으며, 매일 매일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목숨들이 허망하게 스러진 것에 대한 슬픔, 자기들만 살겠다고 300명의 목숨을 배에 버려둔 채 도망했던 자들에 대한 원망, 그리고 가족들의 아픔을 공유하지 않은채 국민의 감정을 무시했던 대통령에 대한 분노...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려옵니다.그날 그배에 사고를 당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의무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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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속보에 민감한 직업인지라 속보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당연히 학생들이 구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전원 구조 기사를 보고 그나마 다행이다라며 안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보로 밝혀지고 나서는 하염없이 인터넷 창만 바라보며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뉴스 속보만 바라보던 그 날의 저를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