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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배안에서 "가많이 있으라"는 악마같은 선사직원들의 방송을 듣고 "어린마음에 어른의 말을 들어야 산다" 는 순진한 학생들.. 그리고 일반인들.. 그 끔찍한 상황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할 수록 끔직하고 소름끼치는 일 입니다, 방송을 보고 있는데 멀리 미해군 함정이 도착해 있고 미 해군이 구조작업에 도움을 준다고 했지만 결국 어떤 "정치적 이유" 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미해군의 "우수한 구조력" 은 우리 아이들과 일반인들의 목숨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만일 내가 그 미해군 함정의 함장이었다면 "협조통신" 같은것 관계치 않고 바로 구조인력을 투입해 "사람목숨부터 살렸을것" 입니다, 만일 제가 잠수기술이 있었다면 어떤 "악마같은 놈들이 막아선다 해도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내가 죽더라도 아이들 부터 구했을것 입니다" .. 정부는 아이들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물리기 위해 국민들이 모였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한두달 지난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자행한 정부의 만행을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모처럼 국민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발족한 "특검" .. 우리는 이제 이 특검에 세월호 참사의 일부라도 밝혀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러나 세월호의 참사에 가려진 모든것은 국민의 하나된 힘으로 정권을 교체시켜 다음 정권에서 "낱낱히 세월호 안의 모든것을 밝혀내어" 순진한 마음으로 악마와도 같은 선사와 정부를 맹신했던 가여운 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는 숨겨진 그리고 감추어진 사실들을 세상에 드러내어 그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을 "가혹하게 단죄" 해야 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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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초반 중년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지금도 세월호 아이들의 고통스러운 영상을 못 봅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끔찍하고 부끄럽워서 입니다.죽는 날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도록 작은 정성과 참여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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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합니다. 저희 학교 아이들도 수학여행을 앞둔 어느날이었죠. 큰 행사를 앞두고 막바지 점검을 하던 오전, 사무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좌초됐지만 전원구출했다는 소식을 보고 다행이다 안심했습니다. 안심하고 다시 업무에 집중하던저, 지금 생각하니 너무 마음아픕니다. 그렇게 설마설마......현실이 믿어지지 않아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지만 사무실의자에 앉아 인터넷창으로만 지켜볼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내가 슬펐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저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전화를 받고, 회의에 참석하는 하루를 보냈지요.그렇게 슬픔이 분노로 변하는,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며칠을 보냈습니다. 잠도 잘 수 없었지만, 저는 또 아침이되면 다시 출근하고 계획되어 있던 수학여행을 하나씩 취소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그날의 제가 그랬듯 저는 또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요. 아프지만, 기억하고 또 기억하여 진실을 찾아내도록 마음을 보태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절대 잊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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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임신중이어서 산부인과로 가는 차안 라디오에서 배의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병원을 갔다 나오니 전원구조라고 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틀뒤에 둘째가 태어나고 조리원에서도 계속 뉴스를 봤습니다조리원에서도 산모들도 같이 울고 우울해 했습니다...난 이렇게 자식을 안고 있는데세월호 부모님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하는 생각과 함께....지역이 같은 안산이다 보니 조리원 퇴원하는날....안산의 길거리는 또다른 세상이더군요...현수막도 많이 걸려있고슬픔이 잠겨있는 도시더라고요집에 와서 샤워를 하는 도중 너무 갑자기 추워서 급히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드는 생각이 이 잠깐도 이렇게 추운데 아이들이 물속에서 얼마나 추웠을까....예전이나지금도 세월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납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지금 ...책임 회피만 하는 공범들...모든 진실이 빨리 밝혀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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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항상 인터넷을 띄워놓고 있습니다. 그날 인터넷에서 세월호가 기울고 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이미 낚싯배들이 도착하였고 하늘엔 헬기가 떠 있었으며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했습니다.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는 우리는 화면을 보며 안도했습니다. 저런 바다면 다 구해 낼 수 있다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갈 염려도 없다 했었죠.모든 학생이 다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함께 뉴스를 보던 직원이 [학생에 우선하여 일반 승객은 뒷전으로 넘겨둔 건 아닌가 걱정된다. 왜 일반 승객 구조소식은 없나?] 라고 했었습니다. [설마 같이 구했겠죠] 라며 [저 녀석들 평생 잊지 못 할 수학여행을 갔다 왔네] 라고 웃었는데 곧이어 들려오는 첫 사망자의 소식... 배 안에 승객들이 갇혀있다는 소식. 그리고 우린 서서히 가라앉아가는 배를 실시간으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해군마저 달려왔다면서 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 했을까요? 왜 구조하는 어선들을 밀어내고 접근조차 못 하게 했을까요?단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구했더라면 그래도 실낱 같은 위로라도 받았을지도 모르는데..도대체 그 수많은 인력과 장비가 달려가서 무얼 한 걸까요?믿음과 기다림이 깨어지고 죽음을 앞둔 아이들이 남긴 말은 분노도 원망도 아닌 [미안하다, 사랑한다] 였습니다. 잊으라구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나요? 절대로 잊지 못 합니다.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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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해가는 배안에서 유리창을 두둘기며 살려달라고 외치던 그 아이들을 나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죽음의 공포속에서 떨며, 눈 앞에 있는 해경123정을 향해 필사적으로 두꺼운 유리창을 두들기던 주황색 구명복을 입은 아이들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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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시작된 수요일 아침... 저는 그냥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가족의 아침을 챙기고, 오후에 있을 일정 준비를 하던 중 세월호가 기울어진 소식을 접했습니다.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또 하나의 인재사고로 생각하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TV스크린과 인터넷으로 구조인원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설마..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안내 방송을 믿고, 교사를 믿고, 어른들을 믿고 기다리던 그 시간처럼.. 저 또한 해경을 믿고, 전문가들을 믿고, 정부의 조취를 믿으며 2년을 훌쩍 넘기며... 기다리고만 있었네요. 미안합니다..대한민국이 안전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제도가 잘 실현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던 어른의 한 사람이었기에 미안합니다. 잘못된 사람들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던 어른이었기에 미안합니다. 이제 한 점으로 이 나라를 밝히겠습니다. 이제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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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다른날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출근한 날이었다... 하지만 사고를 접하던 순간 ...그날은 잊을수 없는날이 되었다좀 흐렸던 하늘 ...수요일...발만 동동 구르며 어떻하느냐고 눈물만 흘렸다...어찌 잊을수가 있는가...그날을 잊을수 없는 날이 되었다...아니 잊지 말아야 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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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컴퓨터로 뉴스를 보고,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보면서 언니와 카톡을 했습니다. 다행이라고...혹시 조카가 수학여행 갔나 놀래서 물었던 참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거꾸로 가라앉으면서 함께 시시각각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그렇게들 뻔뻔할 수가 있습니까. 당신들이 사람입니까. 어떻게 얼굴을 들고 하늘을, 자식들을 쳐다볼 것입니까. 하나같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당신들,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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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관련 국가에서 하는 일이 이럴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관련 호도된 내용에 대해서 모른척 하고 있어서 미안합니다. 억울한 가슴을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지금이라도 밝혀져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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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직장동료들과 함께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하였습니다.직장동료들과도 새로운 소식이 나오면 함께 일을 하다가도 멈추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안심하고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그런데 오보라는 소식이 또 들려오고,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배의 사진들을 보면서 직장동료들과 안타까움과 기도로 소식들을 접했던 날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한숨을 쉬며 계속 지켜봤습니다.퇴근해서도 계속 뉴스를 보면서 하루종일 참았던 눈물을 쏟았던 기억도 납니다.그 날 흘렸던 눈물들 ...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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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경주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었고 저는 00초등학교에서 근무중 이었습니다. 점심에 다른 교사들과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 졸였고 계속 인터넷 신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무사히 오고있다는 아들의 문자를 받고 기쁘면서도 5시 퇴근전까지 계속해서 일을 손에 잡지 못한 채 세월호 아이들이 구조되기를 일분일초도 쉼없이 기도하면서 겨우겨우 하루를 보냈습니다. 초조해서 아무일도 못하는 그 시간에 빗질한번, 화장한번 고치지 않고 수업말고는 컴앞에만 붙어 있었던 그 시간이 7시간이 아니라 수십시간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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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진행중이었고 점심식사를 하면서 중간점검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제가 맡은 부분을 끝내기 위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배에 사고가 났는데 사람들이 많이 빠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의 의식은 모니터와 자판에 꽂혀있었죠. 그 와중에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다행이네.. 생각하며 하던 일을 대충 정리해서 예정되어 있던 점심식사에 갔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배가 뒤집혔다고 말하길래.. 전원구조 아니냐고 했더니 아닌 거 같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박근혜가 당선된 이후로 신문도 안보고 텔레비젼도 안보고 팟캐스트도 끊고 살았던지라 이 사건 역시 수 많은 불행(용산참사같은..)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신경을 끊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는 한달 이후까지요..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교수님과 잠깐 미팅을했는데 교수님이 엄청 괴로워 하셨습니다. 세월호때문에요.. 그때도 저는 멀뚱멀뚱... 그리고 나서 다시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 모니터에 코를 박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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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오전에 수업 마치고 교무실에 내려와보니 다들 발 동동 구르며 애들 태운 배가 지금 사고가 났다고..ㅠㅠ 여러 선생님들께서 노트북 인터넷 뉴스속보에 함께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구조는 다 되었나보다고 애들이 얼마나 놀랬을까 하며 다음 수업을 갔다 쉬는시간에 다시 내려와보니, 아까 그 속보가 잘못되었다고... ㅠㅠ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채로... 하루종일 뉴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점점 가라앉아가는 배, 배를 빌려 사고 인근해역까지 나가 애타게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아빠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종일 구조장면은 뉴스에 나오지 않고, 오전에 봤던 화면, 배가 아직 가라앉기전, 한참 전의 영상만 밤늦도록 허깨비같이 반복상영되고... 도대체 지금 바다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건가...ㅠㅠ잠을 이룰수없던 밤.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없이 마음이 무겁고 걱정되던 밤... 나는 그 날을 기억합니다.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날 뿐 아니라 그 후로도 세월호 아이들에 관련하여 누가 무슨말을 했고,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다 누가 방해를 하였고, 어떻게 엄마아빠들이 고통받았는지 똑똑히 모두 기억합니다. 진실이 낱낱이 밝혀진다해도 편한 마음으로 보낼 수 없는 소중하고 애틋한 아이들인데... 하... 갈길이 멉니다. 눈물이 마르지않고 줄줄줄 흐르지만, 마음은 무뎌지지않고 더더욱 단단해집니다. 하느님, 저희모두가 그 날을, 그 아이들을 잊지않게 하소서.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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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합니다.그 때의 참담함을,그 때의 몸떨림을,그 때의 무력감을,그 때의 절규들을,그 때의 먹먹함을,그 때의 눈물들을,그 때의 절망들을...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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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를 안받을까. 전화기가 바다에 빠졌나보다 .. 하루종일 기사를 읽고 생존자명단을 검색하고, 몇번이고 전화걸고, 초과근무하며 사무실에서 대기하던 기억밖에 없다. 난 아직 내 책상에서 그 아이의 흔적을 정리하지 못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 그날은 그저그렇게 잊을 수 있는 어떤 날들 중 하루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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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도중에 9시 30분쯤 서해 진도앞바다에서 운항중이던 배가 침몰중이라는 소식을 회사 동료로부터 듣고스마트폰을 검색해서상황을 알아 보았습니다.점심시간까지 틈나는되로 인터넷을 통하여사고 소식을 알아보고안타까움과 무시이 구출되길 기원하였습니다.오후 들어 뱃머리만 남은 침몰한 세월호의영상을 티브이로 보면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참사 사고후 1000여일이 지나간 지금까지기억이 생생한데왜? 청와대와 정부 당국은 기억을 못할까요?믿기지 않습니다.국회의 국조특위와특검이 꼭 그날의 진실을 밝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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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구조가 오보로 판명 난 후 실종자가 200여명이 넘은 상황에서 구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나온 순간, 아버지의 말씀이 아직 까지 기억에 남네요. "바다로 빠진 순간 즉각 구조하지 못했으면 지금쯤... "반 평생 해군장교로서 누구보다도 바다를 잘 아시는 분이 이미 희망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말을 잇지 못하셨던 겁니다. 그 후에 몰려온 절망감과 무력감이란...도대체 정부는 유가족들과 슬픔에 빠진 국민들을 위해 뭘 했나요?박 대통령의 7시간은 아직도 밝혀 지지 않았고,여론조작과 거짓으로 누구보다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유가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며,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막아버리며,예전처럼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이 잊어버릴 거라고 생각하시나요?저희는 절대 잊지 않습니다.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정의가 승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유가족들을 위해서 끝까지 싸우며, 지켜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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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10시경 회사에서 접한 다음 속보엔 진도에서 배 침몰... 수학여행가던 단원고 학생 탑승... 그리곤 전원 구조... 후에.. 오보기사 누구든 구조를 하길 원하는 맘에 기사와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는데 구조하는 장면이 이상하다. 왜 애들이 못나오지 왜 한명도 더 못 구하지...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배는 완전히 침몰...하.. 이 나라가 이렇게 무능하네 우리 동네 아이들 다 어쩌나... 근처 슈퍼집 아들 ** 이는 어쩌나.. 윗집, 옆집 건너 집 이 시끄러운 가시내 들은 살아있나. 버스에서 매일 마주치던 이 아이들은 다 어딜갔나. 그러면서 영구차를 매일 보다시피하고 울음소리 들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가 나오는데 숨만 턱턱 막히고.... 하나 둘 죽어서야 구조되는 아이들 소식에 매일 눈물이 흐르고 아이들 살아있다 문자에 놀라고 그게 거짓이라는 기사에 설마..하고 근데 모든게 사실이였다는거에 또 한번 이건 그냥 사고가 아니구나..했다.. 근데 기억 안난다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바다에서 못 나온 9명의 소중한 생명은? 아이들 구하겠다고 구조를 도와주다 희생된 구조요원들은? 하 나쁜 사람들... 다 기억납니다. 아주 생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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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습니다. 수업 한시간 끝나고 나와 세월호 사고를 들었습니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구조소식만 기다리다 다음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저 수업 갔다오면 다 구조 되었겠죠? 이러며 희망을 갖고 애써 걱정 스러운 마음은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걱정 보단 희망을 가져야 될 것 같았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동네 형이 단원고 수학여행 갔는데. 우리 아빠 친구 아들이 단원고인데. 하는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업 끝나자 마자 사무실로 왔고 다른 선생님들의 표정은 밝고 걱정스러워 하는 저에게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채 쉬는 시간 10분 다 가기전에. 오보였답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저흰 모두 컴퓨터 앞에서 하루 종일 방송을 들으며 모두 울었습니다. 왜 구조가 안되는지. 넘. 착한 아이들이라 어른들 말 잘 듣는 아이들이라 너무 속상해 하며 이럴땐. 말을 안들어도 되는데 오보를 듣고 기뻤던 그 날이. 오보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했던 그 날이. 한 동안 수업들어가서 저희 아이들 얼굴을 보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그 날들은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가슴 아픈데 이글을 쓰는 동안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못해 감정까지 그대로인데 어떻게 사는 동안 잊을 수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