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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청문회장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다는 바로 그 날... 기억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 그 날.. 난 회사에서 라이브 뉴스를 보며 상황을 체크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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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기억합니다.비가 조금 내리던 흐린날이었어요.회사 출장을 나왔다 밥을 먹으러갔을때 식당 티비로 뉴스를 봤습니다. 전원 구조뉴스에 농담삼아 "저 학생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수학여행을 보내겠구나. 정말 다행이다."라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일을하다 전원구조가 오보였음을 알았습니다.평생 기억에 남을 그 수학여행이 그날의 그 친구들이 아닌 바로 제가 되었습니다.그 날의 식당안 함께있던 지인. 먹었던 메뉴. 그리고 제가했던 그 말... 그 말이 정말이길 아직도 바라지만 그렇게 될 수없기에 미안합니다.그 순간을 평생 기억하며 부끄럽게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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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서 잠기며 고통에 잠기며 슬픔에 잠겼던 단원고 언니 오빠 분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수학여행이 마냥 좋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단원고 언니 오빠들 중 저랑 관련된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하지만 죄도 없이 고통에 잠기며 돌아가셨던 분들이 기억 속에 잊혀지질 않습니다 우리는 잊지 않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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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날의 기억은 너무 흐릿하다...여느때처럼 난 출근을 했고 먼가 사고가 났다는 얘길 들었고 구조를 한다는 얘길 들은것 같다.멀쩡히 떠있는 배에 구조하러 갔다면 저기 망망 대해에 떠 있던 타이타닉호 처럼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을거라고.... 그냥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그런데 현실은...충분히 살릴수 있던 304명의 목숨을 너무나 어의없게 날려버리고 말았다.7시간 후에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며 나타난 그분... 여전히 그날의 일을 직접 얘기하지 않는 그분과 함께...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흐릿한 2014년 그날의 기억이 부끄러운 만큼 침몰하지 않는 진실만큼은 꼭 규명되어 뇌리에 새길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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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전원 구조라는 말에 안심했다가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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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주간정신교육을 받는 날이었습니다.보통 본부중대 계원은 일을 하는데, 그 날 전주부터 빠짐 없이 참가하라는 말이 있었기에 정신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50분간의 교육이 끝나면 생활관에서 쉬었는데, 처음에는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보았고 그 다음 쉬는시간에는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그렇게 무사히 잘 끝났다고 생각하고, 점심을 먹고 일과를 하다모니 상황이 바뀌어 있었습니다.그렇게, 군인이었던 저는 나라를 지킨다는게 무엇인지 그 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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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체험학습가는 버스안에서 사고기사를 접했습니다. 다른 교사들과 아이들 안전벨트 등 체크하면서 기사 를 계속 확인했습니다.전원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다행이네하면서 아이들과 활동을 하였습니다. 아이들 과 즐겁게 활동을 마치고 하원시킨뒤에야 다시 보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더군요. 왜? 라는 의문만 계속해서 들었고 그 의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른 왜? 라는 의문이 해소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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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12월 19일에는 뭐했는지 기억이 전혀 안납니다하지만2년 전 4월 16일은 뭐했는지 기억이 뚜렷합니다아침에 독서실로 발길을 향하기 전 뉴스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모두가 주목하고 있으니 당연히 별일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 후 공부에 집중했습니다저녁에 영어학원으로 갔습니다 강사님이 세월호에 대해 언급을 하셨습니다저의 생각과는 달리 사태는 심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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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다. 회사사내식당이라많은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고 다들 뉴스에서 나오는 지금은 기가막힌 그 장면을 태연히 보고 있었다. 서서히 잠겨드는 배를 보면서 전원구출이란 자막에 다행이네 하고 가벼히 넘기다 . . 늘어나는 실종자 수. . 줄어드는 생존자들. . 아비규환. .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 너무미안하다. 미안해. . 지켜주지 못 해서 너무미안해. . 다음 생에는. . 이런일이없도록노력할게. . 살인하는 방관자가 되지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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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저에게 그저 평범한 하루였어요. 그날도 아침에 수업이 있어서 씻고 옷을입고 수업에 갔지요. 수업이 시작되고 쉬는 시간즈음 교수님이 들어와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더라, 그 안에 학생들이 타있다는데 다행이 전원 구조라 하더라,, 고 하셨지요. 그래서 여객선 침몰이라니 하면서도 전원 구조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했습니다. 하지만 전원 구조는 오보였지요. 매일같이 울었고 기도했습니다. 매일이 4.16인것 처럼 말이지요. 잊혀지지 않을것 같아요. 그리고 잊지도 않을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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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식사하러 식당에 가면서 뉴스를 봤다.어느 심리학자가 이야기 하던데 한국인은 너무 엄청남 사건들을 겪으면서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일면 공감이 됐다.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일제시대, 한국전쟁, 유신독제 , 월남전, 광주사태... 그리고 그와중에 벌어진 사건사고들이 제대로 치유받은 적이 있었던가?뉴스에서 다행이 모두 구조했다는 소식과 그 뉴스가 오보였으며 고등학교 2학념 학생들이 희생자의 대부분이었다는 뉴스에도 나는 그저 그런 일상의 하루를 보냈으면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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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가 끝난 후 나는 방송실의 문을 열었다.그곳에는 기울어진 배한척과그걸 유심히 지켜보는 친구들이 함께있었다.그때까지는 몰랐다. 그들이 살아돌아오지 못할 것을.그리고 PD가 되겠다는 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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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아침마다 영어 라디오를 들었다 9시부터.... 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뉴스 생방송을 틀었다. 저녁반 아르바이트생이 부스에 와서 무슨일이냐고... 어쩌냐고... 나는 고1때 2박3일 대형선박을 타는 행사에 참석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배웠던 대피법 구명조끼착용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고1때 그렇게 배워와서 고2가 되어 저기에 있었으면 내가 다 도와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속상했다.. 그때 인연이 닿은 애들한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도 울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꿈을 꾼다 그때의 기억과 7시간이 뒤범벅되어서..... 잊을 수가 없는 나의 기억과 7시간. 절대 잊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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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없는 학교가기 싫어하는 대학원생이었어요. 항상 하던데로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면서 티비를 켰더니 침몰뉴스와 함께 전원 구조라는 말이 속보로 나오더라구요. "와~우리나라가 어쩐일로 일처리가 빨랐지?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정말 놀랬겠구나~다들 수고가 많았네~" 하는 안도와함께 티비를 껐고 학교에서 또 일상생활이 이어지다 뉴스를 보게됐어요. 오보였다구요........ 한달 반 뒤에 정말 친한 언니와 안부 인사를 오랜만에 주고받다가 사촌동생이 단원고 수학여행 희생자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언니에게 울면서 미안하다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미안해요...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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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아이들이 구조 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저 깊은 차디 찬 물속에서 얼마나 고통 스러웠을지 ... 진실을 밝혀 아이들이 평안한 안식을 취할수 있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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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웃는 모습이 개구장이 같았던 선생님.칠판을 지울 때 조차도 우리를 웃게 만든 선생님.이젠 그 어딜가도 선생님을 만날 수가 없게 됐네요..절 담임하셨던 김응현 선생님은 오래 근무하셨던 사립고에서 안산쪽 고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셨고 그 해에 새롭게 만난 아이들과 수학여행을 가게 되셨어요. 어떤 기분이셨을지 짐작은 가지 않지만 그래도 낯설지만 새로운 설렘을 안고 제주도로 출발하셨을텐데.. 선생님의 마지막 기억이 그토록 끔찍한 시간으로 뒤덮여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소름 끼치도록 슬퍼요.. 왜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했는지 너무 화가 나요.세월호가 아직도 인양이 되지 못해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신 분들도 있는데 부디 하루라도 빨리 인양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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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했던 내가 참 우습고 힌없이 부끄러웠다.눈 앞에서 세월호가 서서히 가라 앉는 것을 보며 정부가 극적인 구조를 통해 국정원사건으로 나빠진 여론의 반전을 꾀하려는 것은 아니가 의심을 했다.내 소설같은 상상이 그저 상상이었다.이렇게 우리 기성세대가 무책임한가?라는 죄책감에 아직도 세월호 소리에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그래서 내 가슴에 달린 세월호 리본에 시큰둥한 반응하는 이들이 아직도 밉다.나도 그런 미움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다.진실을 밝혀내서 희생자들을 온존하게 돌려 보낸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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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생이었죠.세월호 침몰 사건을 뉴스로 접했고,곧이어 들어온 전원 구조했다는 속보에매우 안심했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오보였고.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배와 함께침몰되었습니다.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배안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산소를 주입한다는뉴스기사에 간절히 빌었습니다.제발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요.....많은 분들이 차갑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 유족분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그런걸 바란게 아닌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뿐인데..정부에선 대학특례입학, 억단위의 위로금.. 만을 떠들뿐이었습니다. 하.....벌써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아직도 정신나간 대통령의 7시간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끝까지 7시간에 도대체 무얼 했는지 밝혀낼것입니다.잊지 않을 겁니다.기억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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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대구에 있는 악기사에 악기 수리를맡겨두고 후배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소식을 들었죠.처음에는 모든 학생들과 일반인들전원구출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농담을 했습니다....애기들 수학여행 간다고 집에서 옷, 카메라, 아이패드, 핸드폰...구입했을껀데.. 아까워서 어떻게 하냐고...웃으면서 그래도 전원 구출이면 다행이라고...악기를 다시 찾으러 악기사에 갔을때 이야기를 들었어요.그곳에 애기들이 아직 있다는것을......미안합니다.진작에 함께 분노하지 못하고함께 슬퍼하지 못해서진심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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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잊지않겠습니다.진실을찾도록기도하겠습니다.응원하겠습니다간절히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