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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그 사람들이 다 산 줄 알았어요. 언제나 그랬듯 몸이 아파서 나보다 40살씩 많은 사람들이랑 같이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었고, 대기실 텔레비전에서 침몰 보도에 이어 전원 구조라고 큰 글씨로 내보내고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메신저로 친구들과 다행이다, 쟤들 수학여행 추억 하나 생기겠다, 이런 말들을 떠들어댔지요. 그때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고통스럽고 불행한 줄로 알았어요. 그래서 침몰할 뻔한 것으로 알고 있던 배에 대해서도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넘겨 버렸지요. 그런데 진료를 받고 나오니 오보였다고, 아직 배 안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날 안에 다 구출해서 나올 줄로 알았어요. 해가 질 무렵에 알았습니다. 이게 그렇게 쉬운 해프닝이 아닌 것을... 친구가 "어떡해, 이제 해 지는데 아직도 못나왔으면? 이제 다 죽는 거 아니야?" 라고 했고 그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어요... 나는 그때 그 사람들이 다 살 줄로 알았어요. 나는 지금도 그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인 줄 알았던 것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데 그것은 죄책감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괴롭고 죽고 싶은 사람인 줄 알았을 때, 정말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것에, 아직도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그들 중 누구도 죽을 이유가 없고, 괴로워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다들 살아 돌아올 줄 알았을까요, 다들 왜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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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두분과 식사를하는중 빨간자막과 함께뉴스특보가 나와서 밥도 못먹고 숟가락만 들고 그후로 도 한참을 뉴스만보며 애를태우는데 전원구조라는 뉴스속보와 함께서로 얼굴보며 잘되었다라고 외치고식은밥 먹고 일좀보고 귀가했는데 티비를 보던 집사람이 당신은 뉴스안보냐고 .... 이런 망할!!그토록 많은 아이들과 승객들이 아직 배안에 있다는 말... 전원 다 구조했다며..이x발..이x발 하며 눈을 못떼고 티비만 봤습니다..그날이후 티비던 뉴스던 세월호 관련된건 안봅니다..아니 못보겠어요..숨이 막히고 애가 타들어가서 그리고눈물만 나서.. 도저히 관련 동영상이나그 당시 아이들이 천진하게 문자보내고하는 동영상들...못보겠습니다..저도 그때 저의 딸아이가 고2 였습니다..아..나도 그날을 이렇게 아프게 괴롭게슬프게 기억하는데 7시간이 아니라이후 일주일도 넘게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도 않고 미칠것같은 시간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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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취재 때문에 교토행 비행기를 타려고 김해공항에 있었습니다. 보딩패스를 받고 나오니 사람들이 티브이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화면이었습니다. 그때 배는 이미 뒤집어져 앞부리만 조금 남겨놓은 상태였습니다. 다리미로 다린 듯 잔잔하고 평화롭고 파란 바다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비현실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상황은 너무나 위급한데 어째서 주변은 저토록 고요한 것일까? 어딘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전원구조라는 보도에 안심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직한 해경이 있고, 정부도 잘 대응할 거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비행기를 타러 갔습니다. 정말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이 이렇게 철저히 끔찍하게 배신당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소름이 끼칩니다.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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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도 수학여행을 며칠 앞둔 여느 때와 다름없던 수요일 1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왔더니 다른 선생님이 어느 고등학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배가 사고가 나서 뒤집어졌다고 해서 1교시 수업하고 나온 선생님들이 우르르 인터넷을 검색하고 교감선생님께서는 cctv 화면을 TV채널로 바꾸셨다. 1교시 수업은 9시 30분에 마친다) 그런데 곧 학생들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나왔고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다 하면서 2교시 수업을 하러 들어갔다. 2교시 수업을 마치고(10시30분) 왔더니 전원구조라는 기사는 오보였고 학생들은 아직 배안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뉴스에 경악했고, 배는 거의 뒤집혀 가고 있었다. "왜 한시간 전에 배가 조금 기울었을때 학생들이 안나왔지" "왜 못구했지"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고, 그래도 TV에 보이는 해경들이 학생들을 구조하지 못할거란 의심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조자수 실종자수 오락가락 하면서 점심시간쯤 상황이 이상하게 되어가고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걸 알게 되었다. 학생들을 구하지 못할거란 예상을 싹 뒤집고 학생들이 어이없게 물속으로 가라앉은 사실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믿기질 않고, 자식키우는 입장으로서 생떼같은 자식들의 죽음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부모님의 심정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당연히 구조되었어야 할 아이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진실은 꼭 밝혀져야한다. 그 진실에 다가가는 발걸음을 별이 된 아이들이 알려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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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제로라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학교 공강이었는지 집에 있었고 카톡인지 뭔지로 학생 수백명이 탄 배가 침몰한단 소식을 듣고 급하게 티비를 켰죠뉴스에선 곧이어 전원 구조됐다했고 난 놀란 가슴을 쓸어담으며 소식을 전해준 이에게 전달해줬구요얼마 안 있어 오보인 게 드러났고 어느새 같이 있던 엄마와 멍 때리며 뉴스만 계속 봤고흐르는 눈물을 주채 못하며 마지막한 명까지 모두 살려달라고 그 날이 다가도록 기도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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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당일 아침 병원에 근무하는 나는 아침부터 병원로비에 모여서 웅성대는 소리에 TV앞으로 갔습니다. 화면에는 반쯤 물에잠긴 세월호가 있었고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서 우리직원들은 얼마나 구조했을까 하고 조바심을 내던차에 전원구조 소식을 화면자막으로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오보였음이 밝혀지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배안에 갇혀있다는 소식에 고등학생 아들을 둔 간호과 직원은 마치 자기아들이 그 속에 있는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후가 되자 물에 완전히 잠긴 배를 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구하지 못한 많은 승객들의 구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일반 국민들도 마치 제일 처럼 안타까워하고 TV앞에 모여 걱정스런 맘에 이런저런 이야길 주고받는데 국가의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할 청와대는 서면보고로 하세월을 보내고 머리말고 아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떠올려보면 가슴이 미어지고 체한것처럼 답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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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집에서 하는 다음날 요리 수업 준비를 하다가 점심때쯤 우연히 보게된 TV 화면 속에는 푸른 바다 위에 "파란색 위 뭔가가.." ㄱ뒤집어진채 떠 있었습니다. 그걸보고 내가 한 첫 마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게 뭐야.. 여보~ 이리 와봐요. 바다로 배가 가라앉고 있어.." 난 그 때 가라앉는 그 배 안에 사람이 남아있을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그 속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말문이 막혀서 한참을 "저걸 어쩌나... 빨리 올려야하눈데.."그 말만하고.. 점심도 굶었는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그 날 선생님이 한 말까지 아직도 다 기억하는데.. 도대체 그 들은 .. 왜 기억을 못할까? 사람이기를 .. 엄마이기를.. 아빠이기를.. 어른이기를 .. 포기한 사람들... 난 평생 그 들을 잊지읺을 겁니다.. 그 날 사라진 우리 아이들도.. 모르쇠로 발뺌하는 그 들도... 절대 잊지않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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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고 싶었었습니다.그리고 일상을 살고 싶었었습니다.그러나 중세와 같은 암흑의 시간임을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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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다른날들과 다름없이 직장에 출근하여 일을하고있었는데,뉴스속보를 보고 출근한 동료에게서 세월호소식을 들었습니다.처음 전원구조 오보로 놀란가슴을 쓸어안고 근무중 오보라는 소식에 또 한번 놀라고 하루종일 답답한 구조소식에발을 동동구르며 하루를 보내고...하루 하루 지나갈수록 가슴엔 무거운 돌덩이가 누르는 느낌으로 아직 살아가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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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에서 자전거 타다가 들었어요. 좀 늦게 일어나서 바로 팟캐스트 다운받고 자전거타러 나갓는데 10신가 11신가 팟캐스트듣다보니 사고가 잇었고 전원구조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구조될거라고 믿고 전혀 의심도 불안도 없었어요. 그뉴스를 들을때 야구장을 지나가던 것도 기억나는데... 한강에서 한3시간 자전거타고 집에가는길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핸드폰을 보는데 전원구조가 오보라고 하더군요. 그때도 그렇게까지 참사가 될거라고는 생각못하고 구조될거라고 생각했죠 그날 자리에 누워서도 잠이안오고 밤새내내 시간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봤어요. 그래도 구조될거라고 전원은 아니라도 단 몇명이라도 구조되길 그러다 단한명이라도 나오길, 결국 아무도 구조되지 못할거라고 받아들이는데 일주일은 걸렸죠. 그동안 두세시간정도도 제대로 못자고 틈만나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면서 정말 구조뉴스가 잇기를 기다렸던 시간들 잊을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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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할것도없는 평펌한 날이었어요세월호침몰사고소식도 모르고 오후쯤 라디오를켰는데.....세상에나...,아직도 구하지못한 곱디고운 생명들이 배안에있다는소식을접하고 너무나뛰는 가슴에 부랴부랴 퇴근하고 티비를켰는데...,.난 똑똑히 기억합니다그후 한달여 동안 주체하지못한 슬픔과 시도때도없이 터져나오는 눈물과 분노,..지금 스무살이되어 대학교에입학한 그 또래의 제자식이 있어서 그슬픔은 이루말할수없었습니다누구기억나지않는다 하지만 평범한일상을 보낸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그 참담했던 한댤여 ,...그리고 지금이시간까지요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거짓은 참을? 이기지못한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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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아이들의 눈에서 흐르는 원망어린 눈물이 또 원망어린 아우성이 들리는듯 합니다 한평생을 우리는 죄인으로 살아야겠죠. 별이 되어버린 아이들 부디 천국에서 편안하기를 빌어봅니다. 너희를 영원히 잊지 않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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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준비로 집을 구하기 위해 전날 성산동 친구네서 잠을 자고 아침에 친구가 출근한 후 외출준비를 하면서 뉴스를 접했습니다.가라앉지 않았으니 충분히 전원구조될거라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다시는 배를 타지 못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남겠다는 생각을 하며 외출하였고 망원동 인근의 부동산을 3군데 정도 돌고 순대국밥집에 가서 밥을 먹으며 뉴스를 보며 오전을 보냈습니다. 먹는 내내 상황이 좋지 않다는 뉴스를 보며 혼자 훌쩍였던게 생각납니다. 그날은 비가 왔고 언니가 준 3단우산을 쓰고 있었으며 허름한 식당에 혼자 온 여자 손님이 신경쓰였던 사장님은 이런저런 말을 자꾸 걸어주셨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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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큰딸 당시 4살을 데리고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서 대기중이었는데 tv화면에서 속보 뉴스로 (9시 30분 ~ 10시 사이) 배가 침몰하고 있어서 구조중이라고 했다 배는 90도 인가로 기울어져 있다고하면서. . . 나는 지금 병원 건물이 90도 기울어져 있다면 딸을 데리고 저기 저 출입구로 나갈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다들 구조 되겠지 생각했다 소방관, 해군 등등 모두 달려들어 안간힘을 쓰고 있겠구나 모두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 ..그시간에 tv속보를 보고 판단 되는거는 그정도 밖에. . 진료를 마쳤는지 아니면 지금 추측으로는 연락을 받고 그냥 간건지 모를 한 건장한 검은 점퍼 차림의 남자가 내쪽을 보고 했던 말. . 이것도 박근혜 탓이라고 할건가나는 그당시에 그다지 박근혜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 대통령으로서 무언가 구조지시를 하고 있을거라 당연히 생각되었던터라 그말을 그냥 지나쳤다그런데 그날 오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도 그사람이 2014. 4 . 16 오전 9 30 ~ 10시 경내게 아니. . 내 주변에 앉아있었던 사람들에게했던 말이것도 박근혜 탓이라고 할건가?이말을 잊을수가 없을것이다2년전 이지만 병원 cctv 자료 복구라도 해서 그 사람이 어떤직업의 사람인지 알고 싶네요일반근로자인지 아니면. . 국가공무원인지. .그 아침시간에 tv화면에서는 헬기에서 기자모습만보이고 배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 사건이 진실을 그사람은 어찌 알았던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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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전 산꼭대기에서 이른 아침부터 일하고 있었습니다. 군시설이라 통신이 안돼고 콘테이너 안에서만 되는 곳이었는데 지인이 갑자기 세월호가 침몰중이란 소식을 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순간적으로 느낀 섬뜩함이 더해졌지요. 인천에서 제주로가는배는 굉장히 큰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침몰은 이해가 되지않았는데 전원구조라는 소식이 전해졌지요. 순간 그러면 그렇지 그 큰배에 구명정이 있을테니 하며 다시 일을 마치고 내려와 식당에서 밥을먹는데 ㅠㅠ 이건 지금껏 살면서 느낀 참담함은 장난이었고 너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당시 고2의 같은 나이 아들이 있었기에 눈물이 앞을 가렸지요. 추악한 정권의 실체가 드러난 지금 천인공노할 죄를 짓고도 뻔뻔한 금수들을 보면 그날로 돌아가 아까운 생명들 대신해서 수장시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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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아침 둘째아이의 유치원 셔틀버스를 태워주고 난 후 핸드폰을 보며 망연자실했습니다. 오전내내 티비를 보며 왜 해경도 해군도 세월호를 구조하러 와주지 않을까...대통령은 왜 아무말이 없는걸까...지켜보며 눈물만 흘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가 원망스러웠습니다.절대 잊지 않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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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출근해서 첫속보를 접했을땐 다행이다 하고 넘겨버렸습니다 그런데 10시가 넘어서부터 심상치 않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원구출이 아니다 배에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기사를 보고는 일을 하면서도 인터넷을 들락거리며 한명 한명 구출 소식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저의 일상은 다른 날과 다름없이 평범했지만 그 날은 유난히도 시간이 더디갔습니다 내가 인터넷 뉴스를 보는 이 시간에도 어린 아이들은 물 속에서 공포에 떨고있겠구나 생각하면 온몸이 떨리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 소중했던 그리고 끔찍했던 1분 1초를 어떻게 잊을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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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중1인 큰아들 수학여행으로 남편과 학교앞까지 배웅하며 큰배낭을 매고 걸어가던 아들에게 인사하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남편과 걱정하며 점심을 먹고 전원구조 됬다는 보도에 "잘됬다~잘됬다~" 하지만 그건 대통령도 책임자들도 그누구도 책임지지않는 우리의 커다란 아픔이 되어버렸다. 초등학생 아들이 "아빠 배 자르고 구조하면 안되~ 창문깨면 안되~" 티비를 보는 내내 우리는 답답했지만 믿었다. 정말 믿었다. 나라가 대통령이 설마 저 어린것들 그대로 죽이지 않을꺼라고~ㅠ. 우리 가족 모두는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는데~ 관련자들은 아무도 기억을 못하는 기억상실자들~ 부끄럽지도 안씁니까? 정말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당신들도 언젠가 죽겠지요!! 그때 세월호 학생들에게 뭐라고 변명할껀가요? 기 억 나 지 않 는 다 고!!당신들 자식 후손들에게는 뭐라 변명할껀가요?우리는 당신들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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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정주부인 저는 그날도 역시 다른날처럼 초등3학년 딸아이와 6학년 아들 등교를 마치고 늘 같은 패턴으로 청소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고있었답니다. 약9시40분쯤TV뉴스에서 제주도 출발 배가 사고났다는 자막을봤지만 헬기와 해경이 구출중이라기에 다행이다..하고 강아지 두마리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다녀왔지요.점심을먹고 3시쯤 마트에 반찬거리를사러 다녀와서정리하려는데 애들아빠가 거실에서 "이런. 이게뭐냐! 다죽겠다. 왜이래!" 하는소리가들려서 tv앞에가보니..믿지못할광경이었습니다. 배가가라앉는모습도 기억합니다. 우리부부는 발을구르며 대성통곡했습니다. 한동안 저는 불면증에시달렸고 우리 아이들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었지요. 정부에서 말못하게하여 입을막았으나 우리는 한시도 잊을수없고 잊은적없습니다..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번외치는 골든타임이란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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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민방위 교육훈련을 갔었죠뉴스속보로 배가 침몰되었고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에교육장이 술렁였습니다"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오후에 여가활동을갔는데갑자기 급박한 소식에 얼마나 걱정했는지..이렇게 세세하게 하루가 생각나는데왜 몇몇분은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지..아이들 모두 정말 평안하게 천국에 있길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