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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친구들과 밥을 먹다 식당 텔레비젼으로 세월호 침몰 보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냐며 식당 사람들 모두 한탄 했는데 밥을 다먹고 나오니 이번에는 인터넷에 오보였다는 내용이 기사로 올라오더군요. 뭐야 별거 아니였네 하고 넘겼는데........시간이 지나도 친구들과 저는 그날 일을 잊지 못합니다 분명히 오보였다며 올라오는 기사 다음에는... 끊임 없는 사망자와 실종자들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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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지금, 그 날을 다시 기억해보게 됩니다. 전원 구조인 줄 알고 마음을 놓았던 시간, 그게 오보라는 게 밝혀져 더 컸던 충격, "구조"란 단어가 쓰인 뉴스 속보만 기다렸던 근 일주일 이상의 날들...모든 것이 마치 2014년으로 돌아간 듯 선명합니다. 내 일이 아닐 수 있었습니다. 그저 교통사고 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조금 마음이 편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었고, 내 일이었습니다.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 감히 비할 수 없지만, 저 역시 참 많은 눈물을 흘렸고, 아파했습니다. 그 때 그 7시간, 7일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깊은 상처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 아니, 기억이 없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을 대신해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모든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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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그렇기에 거의 자습을 하는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습을 할 때면 라디오를 들었고 그렇기에 매일 오전 부터 밤까지 라디오를 시간에 맞춰 들었습니다. 그날도 늘 그렇듯 아침 라디오를 듣고 있었습니다. 아주 잠깐 디제이는 속보라며 사고 소식을 알렸고, 전원 구출되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넘어갔습니다. 전원 구출되었다고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방송이 시작하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뉴스와 전원 구출되었다는 뉴스가 혼란스럽게 라디오를 타고 나왔습니다. 어느새 반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점점 뉴스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뉴스는 혼란스러웠고 반 아이들 모두 그저 무사히 구출되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더 진전 없이 시간은 흘렀고 3년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그 뉴스의 장면과 그 뉴스 화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기억납니다. 아직도 라디오에서 전원 구출되었다고 하던 목소리가, 계속 상황이 바뀌는 뉴스가 기억납니다. 라디오에서 무사를 바라던 사연도 생각납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2015년에는 그날 광화문에 갔습니다. 그저 국화를 두고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캡사이신과 물대포가 있고 제가 가는 길을 막던 경찰도 있었습니다. 2016년에도 그날은 국화를 두러 갔습니다. 올해도 갈 것 입니다. 잊지 못할 것 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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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이동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다 tv앞에 모여 웅성대던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이상하다, 왜 선생님이 야단치지 않으시지, 생각하며 친구들은 따라 tv 앞에 선 순간 화면 속 차갑게 침몰하는 세월호를 보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친구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러 떠나던 가족들, 희망과 꿈으로 가득 차 있던 배가 가라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따뜻한 봄햇살을 느낄 때,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칠 때, 매 순간순간마다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그들은 기억 나지 않는다며, 잘 모르겠다며 애써 지우고 부정하지만 결국 진실은 어둠을 뚫고 밝혀질 겁니다. 그리고 세월호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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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수업이 없었어요, 교과 연구실에 앉아서 인터넷 창으로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 배가 좌초중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세상에, 어쩌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전수업을 마치고 급식실에서 전원 구조 이야기를 들었어요. 다행이다, 저 애들은 나중에 어른이되면 오늘의 이야기를 무용담으로 떠들거다 하는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오후수업을 마치고 왔더니 전원 구조가 오보래고 배는 아이들과 함께차가운 바다에 갇혔다고하고 티브이에서는 에어포켓 원리를 설명하고있고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었는데 둘이 같이 팡펑 울었어요. 그냥 그런 하루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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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영어 듣기 평가를 시작하기 전 흔히 들리던 라디오에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그 때 제대로 못 들었어요. 끝나고 동아리 활동을 할 때 친구가 그거 들었어? 라고 하기에 뉴스를 찾아봤고 그때는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떴을 때였습니다. 아 다행이다 다 전원구조래! 이러고 다시 동아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거 오보래. 아직 다들 거기에 있대. 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와 무슨 그런거로 오보를 내냐. 부모님들 가슴 찢어지겠다 정도였습니다.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저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가까운 동네에 살던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동네에는 그 배를 사실 우리 지역에 있는 다른 고등학교가 탔을 수도 있다. 라는 말이 돌던 때였습니다. 네 그제서야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내 친구들이 그렇게 사라졌을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한심하게도 그제서야 분노했고 절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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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빨리끝나서 친구들과 놀고 집에돌아와보니 뉴스가 틀어져있었어요저는 방으로들어가며 슬쩍보았죠배가 가라앉고있다는 속보였어요방에들어가 옷을갈아입고 다시 나왔어요뉴스를 봤죠 근데 거기에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저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어요.안타까웠죠 한창 신나서 갈때 그 차가운 물속에잠기는 상황이라니 그래도 뉴스에서 구조되고있다는 말에 조금 안심했어요......그 거짓말에....처음에 오보가 났죠 전원구조라는 저는 그걸보고 좋아했어요 하지만 오보였죠.. 희생자 가족들은 오죽했을까요 저는 할수있는게 없어서 되게 미안했어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뱃지를 달거나 서명을하거나 추모노래를 불렀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3주년이네요... 세월호가 인양돠었잖아요 아직도 못찾은 실종자들이 발경 되었으면 좋겠고 희생자 가족분들도 힘내셨으면 좋겠어요잊지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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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4/16일에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은 고등학생인 저한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같은 학생으로써 수학여행을 가려고 들뜬 마음으로 탔던배가 안전까지 보장되지 못한채 뒤집혔다니요?이 사건은 저에게 내가 위기를 처했을 때 결국 그 피해는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기때문에 나 스스로가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3년만에 세월호는 수면위로 떠올라 어쩌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아직 미수습자가 있기때문에 미수습자를 찾기전까지는 다행이라는 말을 쓰고싶지않습니다. 언니들이 살아있었다면 현재 20살, 막 꽃피울 나이었겠죠? 저희학교도 다다음주에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갑니다. 그렇기때문에 세월호 사건에 더 예민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말이 길어졌지만 2014.04.16 세월호사건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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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오늘의 난 시험기간이랍시고 TV도, 뉴스에도 관심이 없었다.뒤늦게 과외 선생님과 부모님이 말하는것을 듣고 알게되었는데 그땐 전원 구조되었다고 들었으니까. 별일 아니겠거니 했다.후에 시험이 끝나고 TV를 보니 결코 별일이 아니었다. 즐겁게 떠나야할 수학여행이, 금요일엔 돌아돌아오겠거니 했던 여행이 그렇게 될 줄이야.한사람이라도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한명이라도 더 구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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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와 타지에서 만나고 밥을 먹던중분식집 위쪽에 달린 티비에 나오던 세월호뉴스..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본 후 친구와 안도의 한숨을쉰 후 다행이다생각했던 일이었습니다.....세월호라는 단어만봐도 마음이 아려옵니다..수많은 아이들과 누군가의 부모님들..아직 남아있는 분들이 기다리는 가족과 만나길 빌며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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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네. 언론사들 미친 거 아냐?"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수많은 언어가 뒤섞인 시드니 지하철 안에서 어디선가 익숙한 한국어가 들렸다. 분명 또 자극적인 제목으로 누군가를 낚았던지 아님 정치인 아무개의 편을 들어주는 기사를 냈던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당장 피곤한 내 몸뚱아리가 먼저였기에 나는 그것을 그냥 흘려 들었다. 그때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런데 문득 이상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큰일이네."라는 말이었다. 그동안 언론사들이 오보를 내거나 편향적인 기사를 내보낼 때마다 나는 그것이 큰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한참 기레기란 말까지 유행하던 때였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 언론사들의 "미친 짓"이란 사실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일에나 쓰여야 할 말이었다. 그런데 큰일이라니. 세월호 뉴스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바로 이 "큰일"이라는 말 하나 때문이었다.나는 아직도 그날 본 사진들을 잊지 못한다. "전원구조"라는 언론의 오보가 뜬 뉴스화면부터 반쯤 가라앉은 세월호의 모습까지. 사건의 규모에 놀랐어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멋진 아빠, 훌륭한 엄마, 사랑스러운 자식이었을 그 많은 사람들이 가라앉는 동안 내 피곤함만 생각했던 게 너무 창피해서였다. "7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기도 하나 해주지 못한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다. 우리에게 그 일은 더 이상 잊어서는 안 될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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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은 당시 티비를 통해 JTBC에서 하던 "밀회"의 재방송을 보고 있었어요. 갑자기 아래 자막으로 선박침몰이라는 속보가 한줄 나왔고 깜짝 놀라 간절히 모두 무사하길 기도했고, 얼마 후 전원구조라고 다시 자막이 뜨는 걸 보고 안심했어요. 드라마는 도중에 뉴스화면으로 바꼈던 것 같고 해경이 도착 구조진행중 이런식의 뉴스들을 보며 희망을 갖고 티비를 껐어요. 그리고 오후 느지막히 다시 켠 티비에서는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말이 뜨질 않나 정말 혼돈이었어요. 저는 그 날 오전에 평온하게 집안일을 하고 일상을 즐기던 그 순간, 세월호 안에서는 3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둠속으로 산채로 가라앉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고통을 나는 모른채 조용한 일상을 보냈다는 것을, 내가 보던 그 화면이 실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장면을 생중계 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도 곱씹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지울 수 없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습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던 화면을 보며 빈배라고 생각했던 것이 끔찍합니다. 그 안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보면 지금도 가끔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왜 그랬는지 꼭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남은 우리들의 숙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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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침에 구조되었던 너희가 아직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저녁, 나도 같이 처참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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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기에 간신히 우리는 성장할수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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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라 생각하며 출근을 했습니다.오전업무마치고점심시간에 뉴스를 보니침몰..구조인원 고작 몇십명..순간 울컥하면서서해 페리호 사건이 오버랩되더라고요..그때는 어린나이였지만그때의 기억이 선명합니다.오후내내 일이 손에 안잡혀서뉴스만 봤던것같네요..충분히 구할수 있었는데..구할수있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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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때와 같이 일하고있었어요 오전에 사고소식을 접하고 전원구조소식도 들었죠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지리탕집을 갔어요. 그때부터 뉴스가 이상했죠 그래도 구하고 있구나 다들 무사했으면 했어요. 그날은 친구의 생일이라 퇴근후 케익도 사고 선물도 들고 친구를 만나러 갔어요. 그리고 고기집으로 갔죠. 거기서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친구생일인데 축하도 제대로 못하고 친구와 어떡해어떡해하던 기억이나요. 다음날이라도 좋은 소식을 바랬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좋은소식은 없네요 ... 이제서야 건져진 배와 미수습자분들 ... 너무 마음이 아파요. 노란리본을 항상 달고 다녔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않고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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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왠지 일찍 눈이 떠진 아침이었어요.부스스한 몰골로 집에서 불을 켜고 티비를 켰죠.아침먹을 준비를 하다가 들었던 뉴스소식엔 큰 배가 침몰했다고 했어요.엄마한테 연락을 해서 이런 일이 났다고 뉴스보시라고 했어요..엄마가 놀라하시길래 전원구조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다들 무사하다고 알렸어요.그리고 핸드폰으로 sns도 하고 커뮤니티 사이트도 돌아보는데 전원구조가 오보였다고 해서 다시 티비를 켰어요.기울어져 가는 모습 구조가 되는 모습을 보며, 제발 구조되길.. 기다렸어요.생존자 카운트가 멈춰갈때쯤 페이스북에서 배 안에서 sns글을 올렸다는게 뉴스에 나왔어요.사람들은 놀라 우왕좌왕하면서 얼른 구조하길 기대했어요.저도 생존자수가 더 늘줄알았죠...하지만 아무도 구해지지 않았어요.그렇게 몇날 며칠이 지나고 사망자 명단만 가득채워졌죠...한시간전까지 살아있었다는 말.너무 끔찍하고 마음아팠어요.가족과 영원히 갈라진 시간... 얼마나 눈물이나던지....그렇게 하루종일 집에서 뉴스만 틀어놓고 몇날 며칠을 세월호 소식만 봤어요.지금도 찾아봐요.왜 세월호는 침몰했을까?대통령은 왜 그랬을까?너무많은 의문이 그 시간 그대로 멈춰있어요.언젠가 밝혀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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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당시 손해사정쪽에서 근무를 하던 심사자였습니다.지금은 다른 곳 다른 업종에서 일 하고 있지만요사고가 나고 얼마 안있다가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어요.혹시나 있을 사고사망자 분둘의 보험청구건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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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그 날 하루는 기억이 아주 자세하게 나요.저는 그 해 대학에 떨어져 강남의 모 재수학원의 교실에서 지루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어요. 사실 전 모두가 수업을 들을 때 몰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죠. 수험생일 땐 어찌나 모든게 재밌던지, 저는 공부를 잠시 잊고 뉴스며 카페 블로그를 이리저리 구경했어요.그런데 뜻밖에도 사고 속보가 보였습니다. 교통사고라든지 빈번하게 일어나는 다른 사고와는 달랐어요. 사람이 정말 많이 타고 있는 배가 사고가 났다는 거예요. 그것도 제가 당시 스무 살 재수생이었으니, 저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학생들이 그 안에 많대요. 학교 이름도 나왔어요. 단원고라고. 생소한 지역의 모르는 학교 이름이었지만 어쨌든 스무 살도 채 안 된 아이들이니까 얼마나 놀랐을까, 진짜 큰일났나보다 했죠.그래도 저는 다 구해질거야, 막연하게 생각하고는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어요. 해경도 있고, 이렇게 뉴스에도 크게 나왔으니 당연히 구조되겠지 했어요. 남은 수업을 듣는데 그래도 어떻게 됐나, 궁금해져서 다시 화면을 켜봤어요. 전원 구조라는 헤드라인이 보였어요. 그것 봐, 다 구해질거라니까.생각하고는 2교시, 3교시, 4교시 수업을 듣고 친구들이랑 점심도 먹고, 여느 때같은 하루를 보냈어요. 점심 먹으면서 친구들끼리도 이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린 그 때까지도, 아니 집에 갈 때까지도 모두 구조됐다고 생각했어요.10시가 넘어 집에 돌아갔는데, 평소라면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엄마가 웬일로 뉴스를 보고 있었어요. 저 아이들 어떡해, 하는 엄마 목소리에서 어쩐지 물기가 느껴졌어요. 뭔데? 무슨 일인데? 하고 화면을 봤어요.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아깐 전원 구조라고 했는데.그럼 이 아이들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실시간으로 화면을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가라앉고 있었으며 아직도 가라앉는 중이란 말이었다는 건가?내가 학원에서 끄적끄적 연필을 굴리고 점심 저녁을 먹고 디저트까지 사먹는 동안...귀찮아 공부 재미없다, 수험생활 언제 끝나냐 친구들이랑 투덜거리는 동안...이 많은 사람들이요.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또 그렇게 3년이 지났어요.참 바쁘게 살았죠. 많은 일도 있었고. 너무 많아서 잊어버린 것도 많아요.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하루의 기억은 꼭 누가 비디오로 찍은 것 처럼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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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이, 친구들이 가기로 한 다음주가 우리가 제주도로 가는 날이었어요. 한껏 들뜨고 학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뉴스에 나왔어요. 반 친구들이랑 뉴스봤냐고 어떡하냐고 이야기하고 다음날 아침에도 뉴스보면서 구조된 사람 수 올라가기만 바라면서 한참 보다가 학교갔는데... 구조라고 했다가 오보라고 했다가... 정말 화나는 일이었죠. 우리가 제주도 가는게 취소됐지만 그것보다는 같은 나이인 그 친구들이 지금 우리처럼 수능도 보고 대학생도 되고 사회생활을 준비할 시기일 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서 많이 미안해요. 구해주지 못해서, 사건 후 1년과 2년 당일에는 비가 많이왔어요. 그때마다 "친구들이 울고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또 미안하고 나도 슬프고... 못구해줘서 미안해요. 친구들이랑 다른 선생님, 다른 가족분들 모두 미안합니다. 잊지못해요 1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