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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의 영어 선생님은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될 뻔 했는데, 다행히 전원구조가 되었더라." 하는 말씀을 전해주셨고, 우리는 다행이라고 하며 늘 그랬듯이 졸면서 영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보라는 사실을 한 친구가 이야기했고, 그때부터 그 날은 핸드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방송은 보험금을 계산했고, 어떤 사람들은 방송에 지시에 따른 사람들을 탓했지만 점점 가라앉는 배를 들면서 제가 한 생각은 "내가, 그리고 내 가족들과 친구들이 저 안에 있구나" 였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못합니다.P.S. 다음 달 15일에 팔 위쪽에 그 날 하루종일 들여다봤던 장면을 새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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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캐나다에 있었지만, 뉴스로 생중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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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한참 2교시 국어수업을 듣고 있었고, 선생님이 배 사고가 났다며 기사를 틀어주셨다. 다행히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보며 반 친구들 모두 천만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리고 몇시간 안 있어 다시 정정기사가 났고, 티비로 봤던 울부짖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집에 가서도 그 날은 뉴스를 계속 틀어놓고 봤었다. 영영 가지 않을 것 같던 세월이 이렇게 흘렀고,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 요즘도 세월호 관련 기사만 보면 그렇게 울컥한다. 천일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이제는 제발 진실까지 인양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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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동갑이에요. 학교에 있다 들었어요. 별것도 아닌 해프닝인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더군요, 나랑 동갑인 애들이, 오붓하게 놀러가시던 분들이 그렇게 황망하게.. 진짜 황망하게.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울고있어요 눈물이 멈추질 못해요 왜 죽어야했나요 왜 그렇게 슬프게 떠나야만 했을까요 내맘에 영원히 남을거에요. 나와같이 열여덟 낭랑했던 애들과 행복한 여행을 눈앞에두고 떠나게된 분들....제맘에 늘 남을거에요 약속할게요 절대로 그리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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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오전에 일을 시작하면서 속보를 들었습니다. 사무실에는 TV나 라디오가 없었기에 가지고 있던 타블렛에 부랴부랴 채널앱을 설치하고 라이브 화상을 틀었습니다.일을 하는둥 마는둥 연신 화면에 눈이 돌아가고 있는데, 자막과 속보가 나오더군요.전원구조라고.안심하고 전원을 끄고 일에 몰두했습니다. 점심도 맛있게 먹고 사무실을 들어왔구요.그러나..속보로 뜨는 인터넷 뉴스에서는 다른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시 화면을 켜자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을 어찌잊겠습니까.내 동생, 내 아이, 내 조카 같은 아이들이 살고자 발버둥 치는데 아무것도 하지않는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자들이 있는데 그걸 어찌 잊겠습니까.팔에 차고 다니는 노란색 팔찌도.. 차 뒤에 붙은 노란색 리본도.. 매일 보내는 문자도...어느것도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될것입니다.이제부터라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시늉이 아닌 진짜로 진행되어야 할것입니다. 수괴가 일단 구속이 되면 그 밑의 잔챙이들까지 모두 잡아들여 진상을 규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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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가라앉는 배를 보며, 내 수학 여행때 생각을 하고 그 아이들의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고 무기력해졌어요. 아직도 세월호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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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네요.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하고 눈물나는 그 날이 벌써 3년가까이 되었다니, 아직도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생생히 기억하는 그 날이. 3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어제일같은 그 날이. 나는 평생 가슴에 새겨 잊지 않겠습니다. 잊어서는 안 될 우리들의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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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 서울 참 맑고 예쁜 날씨 였습니다.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진도에서 수학여행을 가던배가 사고를 당했으나 모두 구조 하였다는 기사 였습니다 . 그때가 11:30을 조금 넘긴 시간 이였죠.당연한 거라고 다행이네 라고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 작은 통통 배도 아니고 큰 여객기 였기에 그리고 우리나라의 각 해당 기관을 믿었기에 구조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 했습니다 . 이때 까지만 해도 미래에 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할만한 작은 헤프닝 같았습니다 .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 오후 2시를 넘어 갈때 쯤 배는 이미 몇시간전 완전히 침몰 하였고 그 안에 수많은 학생들과 일반시민 들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 하였습니다. 그때 기준으로 4년전 천안함에서 기사처럼 공기주입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 그 많은 사람들을 그냥 죽게 두지 않을것이라고 .. 하지만 온나라가 패닉에 빠질 만하게 자의적으로 탈출한 사람 외에 모두가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우리 눈 앞에 사라져 버린 세월호가 만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나타났네요 . 부디 아직 돌아 오지 못한 9분이 그안에 계시길 그때 그날 모두가 살아 돌아오길 바랐던 마음으로 바라 봅니다 .. 잊지 않을께요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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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당일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전 희생자 가족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이 겪은 가슴아픈 그날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날 저는 회사에 있었고 당일 새벽 5시까지 야근을 하고, 잠시 집에 갔다가 다시 회사로 와 해당 결과물을 정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사고 소식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처음 보았는데 처음에는 장난 같았습니다. 하지만 광고주에게 제안서를 제출하러 택시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배안에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아프고 꼭 내 가족이 그곳에 있는 것 처럼 눈물이 나서 하루종일 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3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배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또 겉잡을 수 없이 슬픕니다. 미수습자 9분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모든 희생자 가족분들과 트라우마를 이기며 살아가고 계신 생존자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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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간 시차가 나는 애틀란타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신문을 통해 처음 접하고, 도착한 후 티비를 껴고 살았습니다. 안타까움만 안은 채, 내내 지켜만 봐야했고, 지금까지 분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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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배가침몰됬다는말을듣고 구조하겠지생각했는데.. 너무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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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고2 모의평가 영어듣기 시간이었다.점심을 먹고 나서 친구들이 야!! 대박 수학여행가는 배 추락했대!!! 조금 뒤 와 다행이다ㅠㅠㅠ전원 구조됐대!!!!! 다시 뒤에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우리는 모두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안절부절 너무 불안했습니다. 친구들 그리고 다른 승객들이 모두 구조가 되기를 탈출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저는 그 날의 날씨와 제가 앉은 자리, 인터넷 기사,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 까지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날 마음이 편하지 않은 채로 알바를 갔습니다. 매장 직원들의 위치도 똑똑히 기억나요. 그 곳에서 직원들이 저와 동갑인 친구들 아니냐고 그러셨습니다. 저는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어떻게됐나 구조됐나 제발 사망자가 없어라 하고 기도를 하고 또 기도 했습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세월호에 탑승해있던 모든 승객들, 선원들 한 분 한 분, 다 알지 못하여서 죄송합니다..허나 당신들의 죽음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정말 많이 무섭고 슬프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춥고 괴로우셨죠.. 부디 하늘에서는 좋은 곳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겠습니다..각각 살아온 인생의 길이는 다르지만 짧던 길던 그 소중한 시간동안 존재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모든사람들의 행복이었을겁니다. 당신들의 못다이룬 꿈과 살아보지 못한 나날들이 너무 안타깝고 애통합니다.. 하늘에서는 평안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073일동안 추운 바닷속에서 갇혀있던 분들,, 이제야 물 밖으로 나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는 더이상 춥지 않고 따뜻하게 편히 쉬세요... 세월호 피해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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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 날 나는 학교에 있었고 그때가 아마 자습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습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지 자고 일어나보니깐 선생님께서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려고 탄 배가 사고났는데 전원 구조가 됐다는 말에 다행이다 생각하고 별 생각이 없었어 학교 마치고 집에 와서 뉴스를 보는데 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어 힘없는 내가 해 줄 수 없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고 구조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방법 밖에 없었어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까지 눈물나고 가슴이 미워지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진실은 꼭 밝혀질거야 매일 기도할게 너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분들 승무원분들 다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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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외에서 유학중이 었습니다. 그날 따라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깻습니다. 아마 새벽 5시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노트북을 켜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세월호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제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세시간 동안 아무말 없이 계속 올라오는 뉴스를 지켜봤습니다. 그냥 다른 뉴스로 넘어가고 싶은데도 그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깼습니다. "여보, 수학여행 가다가 배가 침몰했는데 애들이 배에 애들이 갇혀있데..." 아내도 그 소식을 접하고 많이 슬퍼했습니다. 더 최악의 상황은 그 후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날라오는 정부의 잘못된 발표, 오보, 루머, 가짜뉴스들, 선동꾼, 정치꾼, 관심종자들까지 더해져서 뉴스로 접하는 저도 혼란스러웠는데 그 자리에 계신 피해자 가족분들은 오죽했을까요... 그 날 그리고 몇주간은 우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가에 대한 제 신뢰가 깨져버린 날이기도 했습니다. 말하기도 죄송스럽지만, 피해자 가족분들의 상처가 하루 빨리 아물고 더불어 그분들이 원하는 정의가 실현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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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보면서너무나 가슴아팠네요허둥되며아우것도못하는구조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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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길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를 통해 처음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리둥절하였는데, 집에 도착하여 tv뉴스를 보니 커다란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침몰하고 있는 상황이 중계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생존자 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사망자와 실종자 수만 늘어가는 것을 보며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는 슬픔을 넘어 왜 날이 좋지 못했던 때에 세월호만 출항을 해야했는지, 왜 그 때 그 많은 사람들을 구조할 수 없었는지, 왜 정부에서는 지금도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지에 대한 분노로 감정이 변화하였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미수습자 9명도 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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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2년전군대에서막휴식을취하고있는데그날이제생일이기도합니다그런데군대동기들이TV시청하고있는데세월호침몰소식이접해지면서정말안타깝고참기억이아직도생생하기도합니다이로인해안산단원고학생들과선생님들이참안타깝다고생각합니다제가전역후서울광화문광장에세월호유가족분들이정말로고생이많다고합니다그이후부터최근뉴스볼때마다세월호인양현장을지켜보았는데인양을성공했지만잊지않은9명미수습자를무사히가족들을폼으로돌아올수있게응원하겠습니다그리고잊지않은기억교실도팽목항도정말로잊지않게다고다짐하겠습니다언제나항상응원하겠고요저는그래도4.16을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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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 평소처럼 학교에 가서 수업듣고 밥먹고 하교 했다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뉴스에서 세월호가 침몰되고 처음에는 별사고 아니였다는 오보를 기억한다 사고초반부터 뉴스뜨고 모두 주목하고 있었는데 우리들이 기사보며 안도하고 긴장하고 걱정할때 그분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3년이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그사람들한테는 30넌전에 일마냥 기억이 안나나보다 난 30년이 지나도 기억 날꺼같은데to rememb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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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3이되어 학교에서 수업을듣고있는데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지금 어떤학교학생들이 수학여행을가디 배가 사고를 당햇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전원 무사 구조했다며 그래도 다행히지 않냐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구나 라는생각을하고 집으로 하교했습니다. 하지만 전원 구조는 거짓이었고 결국엔 수 많은 목숨들을 앗아가버렸습니다. 그 사건을보면서 유가족들을보면서 저또한 슬퍼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아마 이 기억은 몇십년이 흘러도 잊지못할 슬픔일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나고 가슴아픈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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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는 말에 기다리라고 답했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들이 생사를 오가는동안 한 나라의 대통령은 자신은 미모를 가꾸고있었고 그 시간동안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세월호의 선장은 팬티바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한채 혼자 탈출했습니다.안산 단원고등학교의 교감선생님이 돌아가셨고 수많은 유가족들에게 대못을 박았습니다.대못을 박은 그 사람들은 세월호에 있던그들의 살려달라는, 구해달라는 외침을 듣지 못한것이 아니라 듣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