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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희망을 잃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미래를 잃었습니다. 아직도 그날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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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에서 친구가 지금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을 태운 배가 기울어가고 있다는것을 듣고 다함께 컴퓨터로 뉴스와 기사를 봤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구해줄줄 알았습니다.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게 아니라 구해줄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해경들이 구해줄꺼야 라는 생각으로 심각하게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고 거기다가 배안에 있는 인원수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제대로 구조를 하지 않는 모습에 화도 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학고에서 틈틈히 티비로 뉴스를 봤습니다. 하지만 7시간 동안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고 왜 배가 기울었는지 이유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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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버스 안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다시 찾아본 뉴스에서는 속보로 전원이 구조되었다고 했다. 그래 다행이다, 하면서 한동안 일을 하다 무심코 본 포털 메인에는 구조가 오보라고, 사람들이 아직 모두 배 안에 있다는 뉴스가 떠 있었다. 그 순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모니터 한 켠에 계속 뉴스 영상을 띄워 놓았다. 그 때까지는 그래도 구조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구조되는 것을 보고 나면, 편한 마음으로 뉴스를 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퇴근할 때까지 뉴스를 틀어놓게 되었고 세월호가 침몰해 배의 끄트머리만 보일 때까지, 하루종일, 뉴스만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뉴스를 보는 내내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기도를 중얼거렸던 기억이,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덮쳐 왔던 기억이, 집에 가는 길 내내 멍했던 그 날의 기억이, 나는 이렇게도 생생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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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뉴스를 보던 생각이 납니다. 제 눈은 뉴스에서 떠나지 못하고 마음에서는 피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허망한 7시간을 우리는 잊지 않습니다.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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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꼭!! 철저히!!!! 천인공노할 세월호의 잔악한 학살자/사악한 부정선거와 개표조작/패악한 부정부패의 말종/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국가와 민족도 서슴없이 팔아 먹는 후안무치의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매국노 국가와 민족의 흡혈기생충 파렴치범 쓰레기 귀태 닭대가리, 그 뒤나 핥는 구더기 족속들의 척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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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잊겠어요 그날 이후의 대한민국은 침몰중입.니다.유가족은 물론 국민모두의 슬픔과 상처가 아물고 치유되려면 세월호의진실과 7시간 미스테리가 반드시 밝혀져야합니다..절대로 잊지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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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 갔었는데 그만은 상처받은 유가족들을 진도체육관에 모아놓고 칸막이하나 쳐주지도않고 방치하는데 넘 가슴아팠던기억! 잊지말고 반드시 규명해야 이나라 발전이 있을겁니다!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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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이 많이 탔다는 세월호가 기울어져가는 방송을 보며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너무 놀라고 걱정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배가 가울어져서 침몰하기 시작하면 빠져나올 수가 없는데 왜 배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없는지, 구조는 한다고 하는데 비추어지는 회면에는 왜 구조장면이 없는지, 배 안의 사람들은 얼마나 놀라고 힘들지를 생각하며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루빨리 진실이 규명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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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4월을, 4월 16일 세월호의 침몰을 바라보던 그 시간 이후의 나날들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잊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처음 뉴스를 봤을 땐 모두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다. 모두 구조되었다는 오보를 봤을 땐 "그럼 그렇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결국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고, 그 이후 4월 내내 나는 길을 걷다가도, 지하철을 타다가도, 혼자 티비를 볼때에도 울컥 눈물이 났다. 지하철에는 나 말고도 우는 사람들이 있었고 집에서 뉴스를 볼 때는 엄마도 함께 울었다. 그렇게 아픈 4월이 지나고, 1주기가 지나고 시간이 흐르며 내가 세월호를 생각하며 우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나는 아직 기억한다. 누가 진실을 감추려고 노력했고, 누가 유가족을 모욕했는지도 기억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해 4월의 아픔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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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단원고 학생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조금 늦은 출근준비를 하던 신랑이 다급히큰일났다 배가 많이 기울고 있다며 뉴스 를 알려주어습니다.. 잠시 후 전원구조라는 말에 다행이다 라고 했어요. 그러나 오보였고 ....놀란마음에 육아 집안일 다 접고 종일 뉴스만 보았습니다...그날부터 생존자가 한명이라도 더 있기를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며 기다렸습니다...정말 무능하고 거짓말 하는 정부...죄를 자백하고 죄값을 치르길 바랍니다..세월호리본을 가방에 달고 꼭 진실이 밝혀지길바랍니다... 꼭 그래야만... 단원고 학생들이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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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선체의 머리가 바닷속으로 고꾸라져가던 시간, 뉴스 생중계로 엄마와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서로 우는 것을 민망해해서, 들킬까봐 드라마를 보면서도 눈물을 밖으로 흘리지않는 모녀지간인데 그 날 아침엔 엄마가 흘리는 눈물이 너무 아파서 저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땐 정말 몰랐습니다, 21세기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내가 눈앞에서 300여명의 사람들이 물 속에 수장되어가는 장면을 보게 될줄은. 배가 침몰해가는 상황에서도 정말 다 구조될 줄 알았어요. 생중계로 저들이 어떻게 물에 잠겨가는지 다 보이는데도 해경과 청와대가 너무도 조용한 것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이해되지 않아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가만히 있었을까. 너무도 상식적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3년에 가까운 세월을 싸워야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고, 자식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묻는 부모들에게 세금도둑 내지는 정치범이라 손가락질하던 세상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질려 잠시 그분들과 바닷속의 아이들을 외면했던 저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4월 16일은 제게 악몽같은 날이자,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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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에서 한국에서 07:30 정도 사고가 났으니 여기는 저녁 10;30 정도... 펫북을 하다가 그 소식을 접했고 그때가 막 배가 사고가 난 상황이였고 어부들도 자신들의 배에서 사람들 건져 올리력고 대기하고 있어서 저 정도면 모두 구할수 있겠네... 내일 아침에는 모두 구하겠네... 하며 그 저녁을 보냈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펫북을 통해 확인을 해보니 아이들 거의 한명도 구하지 못했고 다른 어부들의 배나 모든 자원봉사자들을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하는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더 슬픈건 아이들이 배 란에서 카톡을 보내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고 사람들이 장난이라고 ... 장난들 치지 말라고 .. 사람들의 이목을 돌리려 한 언론들 . .. 더 용서 할수가 없다 박근혜의 7시간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관여한 모든 언론들,기자들 ,정치가들..모두 처벌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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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해병소속으로 수색작전에 참여했었습니다 바지선에는 수색작전중인 군경을 위한 증식배부가있었는데요 배부받을때 서명받던 종이에는 정부가 제공하는게아니고 민간단체에서 나눠주는 증식이라고 명시되어있었어요... 정부에서는 작전중인 군인에게 무엇을 해줬나요 .. 수색 작전 후 복귀해서 부대로왔는데 포상휴가도 받지 못하고 바로 정상과업에 착수했습니다.이 밖에도 수색작전동안 주말도없이 계속 해군함정에서 지내면서 우리 나라에 실망한 게 많습니다.. 작전내용은 국가 기밀이라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부디 잊지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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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고 얼마 후 접속한 인터넷에서 제주도로 가던 배가 사고났다는 뉴스를보고 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이 탔다는 소식을 듣고는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잘 안잡혔다. 점심 먹으러 지금은 없어진 분식집에 갔다가 틀어놓은 TV에서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직원들과 예전 1박2일에 제주도 가던 배가 나와 한번 타볼만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무서워서 못타겠다고 농담처럼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구조 책임자였던 그들은 왜 그날을 전혀 기억해 내지못하는지... 2년반이 넘었어도 잊을수가 없는 그날인데... 생각만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사건인데... 왜 잊고자하는건지 잊기를 바라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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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그날의 기억살아 남으려 애쓰던 아이들의 죽음이 있던 그날의기억가슴조차 먹먹해 와.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그날의 기억아직도 아픔으로 남아 있는 부모들의그날의 기억이....저 높은곳에 있는 분들께 어떤 기억일까그날의 기억이....잊지말고 쓰다듬어 주어야 하는그날의 기억......용기내고 힘내시길 간절히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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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 인천의 한 여고2학년 수학여행 담당자였습니다5월달쯤에 제주도 수학여행 을 계획하고 비행기표까지 예약했었습니다 ᆞ 우리학교도 교장측근을 통해 배로가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내가 거절 하였습니다 ᆞ그 배안의 희생자는 나와 우리학교아이들이 될수도 있었습니다 ᆞ그들은 그 시간에 어느 학교든 끌어들였을것이고 참 안타까운일입니다 ᆞ그날 일을 못하고 인터넷을 통해 구조상황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ᆞ 처음에 전원구조라는 말도안되는 허위보도도 있었습니다 . 3월에 부임하여 책임자로 나섰던 교감선생님의 죽음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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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온 국민이 모두 배가 침몰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배가 침몰하는데 ,저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그 답답함과 참담함이 아직도 생생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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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당시 인천남구청 미디어홍보실 마을방송담당 전문계약직 공무원이였습니다. 당시 누가 tv를 켰는디는 모르지만 어떤배가 기울어 있었고, 아이들의 카톡도 방송이 되고 있었어요.아 ! 배가 문제네, 저 정도면 나오겠구나 생각나고해경이 그 해역에 있다 등.. 승객 전인원 구출 뉴스를 보고 점심을 먹으러간것이 기억 납니다.그 이후 사건은 눈물로 가슴에 뭍어야할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전 지금도 이 트라우마가 너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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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세월호와 노란색이 힘들다고 합니다. 이제 그만 하라고 합니다.그러나 우린 잊지 않고 마치 우리 대신 먼저 간 그들에게 빛을 진 기분으로 이 나라를 바꾸어 더이상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시국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보탤것입니다.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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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잤다.불면증 때문에 보통 새벽에 잠이 들고 늦게 일어나서 집에 같이 있는 엄마랑은 아침식사를 같이 해 본 적이 없다. 많은 날들의 똑같은 하루였다.부엌쪽에서 달그락거리며 식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늦은 아침겸 점심을 챙겨 먹는데, 엄마가 큰 방쪽에서 뉴스얘기를 하셨다. 애들이 타고 가던 배가 뒤집어졌다고..난, 엄마가 뉴스를 잘 못 들으신건 아닐까 잠깐의 의심을 했다. 그런 큰배가 뒤집어지기도 하나?곧 , 다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소원하던 엄마와 내가 간만에 같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기뻐했다.근데, 아니었다.그 날 하루종일 tv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설마 구하겠지..설마....설마....그 꽃같은 아이들이 물속으로 잠기는 걸 봐야만 했다.내가 뭘 잘못한거지? 세월호를 보며 난 끊임없이 물었다.내가 뭘 잘못한거지? 어쩌다가 이 나라는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되었나..내가 뭘 잘못했나..우리는 도대체 뭘 잘 못했나.그 날 이후로 한동안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마주치는 중고등학생들을 볼 때마다 울컥울컥하는 자신과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