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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들어온 교수님이 배가 침몰했다는데 무슨일인지 모르겠다 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순간 장난하시는건가?말이되는 이야기를 하셔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재가 침몰한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기에 핸드폰으로 찾아본 후에서야 사실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그후로 대학교 시험기감동안 살아있는 한명의 학생이라도 더 있기를 바라면서 도서관에서 나오면 바로 집으로가 티비를켜놓고 잠이들고,일어나면 다시 확인하는 생활을 한동안 했습니다.우리는 2016년을 보내고있지만 그들은 영원히 2014년4월16일에 머물러 있습니다.2년이 넘게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정확한 진실을 모르고 입습니다. 그런 지금의 제가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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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일어나자마자 지각을 직감한 날이었습니다. 허둥지둥 준비를 하며 티비를 틀었는데 세월호 속보가 나오고 있었어요. 사실 별생각 없었어요.제주도로 가던 배이고 해경이 있는데 다들 무사할 것이라 생각했고 준비를 거의 끝낼쯤 전원구조 속보가 떴습니다. 걱정하던 그 당시 남자친구와 괜찮을 거라고 보라고 전원구조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학교에서 돌아와 상황을 짐작하고 내 일도 아닌데 왜이리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주말내내 컴퓨터를 붙잡고 기사를 기다렸습니다. 잠수부가 학생들을 구조했다는 기사를..학생들이 살아서 페이스북을 하고 그 당시의 유언비어를 믿으면서요...저번주에 광화문 집회에 다녀왔어요. 세월호 유가족 미수습자학생 어머니의 발언을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창피한줄도 모르고 오열했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창피했어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우시고 계셨거든요. 다들 기억하고있어요.제 동생은 저번주에 군대를 갔어요. 동생은 아이들과 동갑이예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제 동생과 같은 친구들.. 절대 잊지않아요. 그리고 꼭 밝혀내겠습니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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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선생님이 너네 또래, 너네보다 한살 어린 애들이 배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에 가다가 배가 침몰했다고 하셨다. 모두 걱정하는 가운데 영어수업이 끝날때쯤 영어쌤이 다행히 전원 구출됬다고 하셨다. 집에 와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전원 구출이 아니었다.저녁때 가족들과 그 아이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잠자리에 누운 그날 새벽은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 내내 인터넷 속보를 보며 잠을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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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티비나 인터넷과 거리가 멀어 오후가 되어서야 알았다. 딱 그 나이또래의 동생이있어서 그런지 온갖 인터넷이며 티비를 지켜봤었다.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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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우리반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있었다.인터넷 뉴스- 전원구출이라는 기사를 보고 안심하고 핸드폰을 끄고 아이들과의 시간에 집중했다.신나게 웃고 재미난 게임을하면서....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청소까지 끝낸뒤 인터넷뉴스를 다시본 나는 화가나고 또 화가났다.왜. 아이들은 전원구출이아닌데 전원구출이라고 기사를냈는지 아직도 안구하고 뭐하고있는지 마음이 찢어지고 우리나라현실에 절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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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첫 회사에서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져서 지병이 심해져서 기분이 너무 안 좋은 날 이였습니다.아침에 회사에 들어가서 남들과 떨어진 제 자리에 앉아서 일을 했습니다.일을 시작하고 웹에 들어가니 세월호가 뉴스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 기분도 안 좋았고 구조가 잘 되고 있다 는 식의 기사 였기에 저는 아 또 뭔일이야.. 이러면서 그냥 무시했고 그날 점심을 먹으면서 회사사람들과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보았고 그 날 간식먹는 시간에는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하지만 전 그때 제 기분이 너무 중요했기에 그리고 몸이 너무 아픈시기였기때문에 구조되겠지 하고 그냥 집에 들어가 잠들었습니다.그 이후로 세월호 소식은 점점 안 좋아졌고 제 몸도 안 좋아져서 전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는데 그 입원한 10일동안 저는 매일 매순간 티비만 보고 살았기에 울기도 했지만 4월 16일에 제 자신에게 실망한 날 이기도 했습니다.제 기분과 몸상태때문이라며 아이들을 별거아닌 시끄러운 일 취급했던 그 날의 저에게그 이후로 세월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 날 했던 생각이 지워지지않아서 아이들에게 너무 죄스러워서 눈물이 납니다.저는 기억할겁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모든 억울함이 사라질때까지 전 잊지않을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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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와 다름 없는 교실안이었어요한창 입시를 준비하던 저, 그리고 같은 교실에어김없이 앉아있던 내 친구들수업시간 도중에 핸드폰 뉴스로 소식을 접했어요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아직까지도 너무 남 일 같지가 않죠수학여행을 간다고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 전날 밤 가방을 싸며 학교생활에서의 작지만 큰 일탈이 얼마나 기대됐을까뉴스를 접한 후 수업 내용도 책 속의 글자도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어요계속 책상 속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새로고침하고 구조 완료되었다는 글자만을 기다렸죠선생님들도 모두 이해 하신다는 듯넘어가주시고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연신 걱정되는 기색을 보이셨죠아무 것도 없었어요같은 반 같은 교실 아이들 모두 울면서, 너무 속상해 하면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어서그마저도 이뤄지지 않아서7시간 아니 7주가 넘게 지나도록맘 속에서 잊혀지지 않아요그 시간들 그 눈물들 그 간절한 기도들같은 대한민국의 학생이었고 비슷한 꿈을바라보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것미안해요 아직까지도 참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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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친구들과 닭볶음탕을 먹고 있었습니다뉴스를 보자마자 눈물이 차올랐고 어떡해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같이 있던친구들도 같았습니다 수업에 집중하지못하고 계속 관련속보만 찾아보았습니다 사망자만 늘어나는 걸보며 정말 아득했고 당장내가 할수있는일이 없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정부의 무능함에 화가 났습니다 매년 4월16일이 되면 그때의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뭐하나 제대로 밝혀지지않은 상황에 분노도 함께 치밀어옵니다 우린 다 기억합니다 절대 잊지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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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쯔음의 여느때와 같이 늦으막히 일어났어요. 늘 같은시작으로 sns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죠.그리고 읽게된 글하나 "전원구조" 그러나 다른글을 보니 1명이 사망하고 전원구조이라고 봤습니다. 생각했죠 무슨일이 있었길에 1명이 죽었지? 심각한일이었던거 아닐까 하지만 많은사람들이 구조 되었으니 괜찮겠지 생각했죠.. 그때하고있던 알바를 하러갔습니다. 같이 일하던 분들과 이야기하며 배가 사고가 났는데 전원구조래요 다행이죠? 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4시간도 안되는시간이지만 핸드폰 볼시간도 없었죠. 마치고 나와 다시본 sns는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단 몇시간만에 세상이 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그후로 몇일간 티비 뉴스를 믿지못해 보지못했습니다. 대체언론들을 보며 자고 일어나서 다시보고 기도하고 바라고 또바라는 날들이었죠. 그리고 지금은 압니다. 세상이 달라진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을 알게된 날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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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제 동생의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좋은 기분으로 일어났어요. 그러다 습관처럼 티비를 틀었는데 뉴스에서 배 사고가 났다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순간 놀라서 다른 채널도 틀어봤는데 전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이야기 뿐이었어요. 보니까 승객 규모가 너무 큰 배였어요. 그러니 그런 배가 가라앉는다는게 잘 믿어지지 않았죠...이제 금방 구조되겠지.. 싶었는데 한편으론 너무 불안하고 걱정이 됐어요. 그래도 진심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속 지켜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더라고요. 무엇이 이상했냐면...정부에서 구조를 도우려는 사람들을 막더라고요. 주변에 상당한 구조력을 갖춘 미군이 즉각적으로 돕겠다며 헬기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에서 거절하고, 민간잠수사들의 구조도 제한하고 희생자 가족분들의 요구는 단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계속 딴소리만하고 변명만하고...정말 이상했어요. 사람이 죽는다는데 왜이렇게 따지는게 많고 안되는게 많은건지 정말 이해할수가 없었어요. 심한말이지만 당시에 제대로 구조하지않고 다른 검은 속내를 숨기고 있는듯한 그들을 전부 죽이고 싶었어요.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목숨과 그들의 목숨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신은 없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리 나쁜 사람들은 죽임당하지않고! 대대손손 국민을 농락하고 호위호식하는데 힘 없는 국민들만 그 손에 죽어나가니까요...제가 정말 화가 났던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여당의원들이 적극적 구조를 지원하는 척 팽목항에 오더니 사진만 찍고가고 서남수 교육부장관이라는 사람은 팽목항까지 가서 귀빈의자에 앉아 컵라면만 쳐먹고... 안행부에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이고 청와대에서는 사고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고!! 구조할 마음이 없고!! 절실히 살리고자했던 가족들과 국민들의 마음을 대수롭지않게 가볍게 밟아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상한 민간구조업체를 선정해서 구조를 진행하는것부터가 어이가 없었어요. 언딘이라는 그 회사요...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 의도적인 무능력이 너무나 티가나서 더 분노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망자는 점점 늘어났고..가족분들은 너무나 힘들어하시고...모두의 슬픔이 분노가 되어갔죠. 참사를 지켜보던 모든 국민의 마음이 같았을 거예요. 구조하면서 중간에 다이빙벨이라는 기구를 이용해서 더 적극적인 구조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었는데 그것마저 정부에 외면당하고.. 산소주입을 하겠다더니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배 안에 생존자가 있을수도 있는데 정부에선 어떠한 행동도 없었고 가라앉은 배를 버려뒀습니다. 저는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만 계속 되니까 이 나라에선 누구도 믿으면 안되겠다는 다짐까지 하게되더라고요. 세월호 참사 그 날과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하나 둘씩 밝혀지는 더러운 진실들을 마주하며...저는 세월호가 우리들 기억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그걸 믿고 오지않을 구조를 기다렸던 승객들이 곧 제 자신이었고 제 가족이었음을 알기에 더 잊을 수 없어요. 그 날.. 우는것 밖에 못해서 미안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 없는 사람이어서 많이 미안했어요. 땅을 치고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어요. 저는 정말 진실을 알고싶어요. 국민은 진실을 원해요. 간절히 진실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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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7시간을 휴대폰도 없이 학원에서 보내던 때였다. 그 날도 다름이 없었고 나는 모든 일과를 끝내고 출출함에 아는 언니와 함께 학원 옆의 타코야끼 점을 찾았다. 그 가게 안에서 마주한 현실은 너무 버거웠다. 뒤늦게 알게 된 소식에 차마 음식이 목에 턱하니 걸리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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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중간고사 준비중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중이었는데 하도 공부가 하기 싫어서 휴대폰을 들었어요. 네이버 실검창에 세월호가 있었어요. 세월호가 가라앉았다고, 그리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 기사를 보고 저는 "구조됐다니 다행이네" 하고 덤덤히 창을 닫았어요. 다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내가 탄 배도 아니고, 내 가족이나 친구가 겪은 일이 아니고, 저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다음주에 있을 시험이 더 중요하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았어요. 도서관을 나서며 휴대폰을 봤을때 그게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상상이 되질 않았어요. 제 일이 아니라고 안일했던 제 자신이 너무 미워요. 저는 세월호를 떠올릴 때 마다 죄책감을 느낍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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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그 때 야자를 하면서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친구들과 서로 노래를 추천해주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타이타닉 노래를 추천받았습니다.추천받은 노래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공부를 하고 쉬는 시간에 폰을 보느라 늦게 접했는데 보자마자 얼마나 울었는 지 모릅니다.그날의 기억을 이렇게나마 떠올려봅니다.하늘에서 아름답게 꽃피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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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출근을 하던 차안에서 전원구조라는 말을 들었다. 안심했다. 일터로 가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오후가 됐는데 오보였다고. 300명 넘는 이들이 배에 갇혀 있다고. 가르치던 학생과 서로 쳐다보며 기막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주변에 있던 배들이 사람을 구하지 않고 있다고. 새월호에 사람이 그냥 있다고. 할말을 잃었다. 나는 그때 안산 단원구에 있었다. 세월호에서 304명이 죽어갈때.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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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시험을 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티비에서 처음 접한 뉴스 세월호 침몰 및 전원구조그렇구나.. 하고 피로를 풀기위해 자고 일어났더니사망,실종,생존이라는 표그제서야 이게 뭐지 하며 찾아보고는무사히 돌아와주길..그저 계속 기도한 기억밖에 없어요미안해요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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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예쁘고 날씨도 풀렸지만 아직은 으슬으슬했던, 여느날처럼 수업이 듣기싫었던 날. 세시간 연강을 듣던 중 사고속보를 접했고, 쉬는 시간에 전원구조했다는 오보를 접했습니다. 친구들과 저는 그래도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절대 잊지못할 수학여행이겠네~ 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그날 오후,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실종자수와 사망자수...계속해서 진행되는 뉴스속보들...그때의 상실감과 참혹함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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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 퇴사를 결심한지 한 달. 며칠만 더 출근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 날도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습니다. 업무 메일을 대충 처리하고 무심코 포털 사이트를 연 순간, 고등학교 수학여행 학생들을 실은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가 떴습니다.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어요. 어떡하냐고 큰일 났다고. 큰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사무실 직원들 모두 놀라서 검색을 시작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게 뜬 속보. "전원 구조." 누군가가 외쳤어요. 다행이다, 전원 구조됐대! 그렇게 큰 배에 있던 사람들을 이렇게 빨리 다 구할 수 있나? 우리나라 재난 시스템 좋네~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 사무실 사람들은 평소와 같이 회의도 하고 업무를 진행했어요.그리고 다소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접한 정정 보도...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실제로 구출된 학생과 승객은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그 때부터 밤이 되어 퇴근할 때까지,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뉴스 새로고침만 수백 번 누른 것 같네요. 한 명의 구조자라도 있을까, 종교가 없지만 무작정 기도하는 마음으로 클릭을 했지만 끝내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배가 완전히 뒤집혀 파란색 끝부분만이 동동 떠 있던 모습, 그마저도 물 속으로 가라앉을 때의 충격과 공포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관계자들 책임자들, 기억이 나지 않는다구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기억을 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당신들의 정치 생명이 걸린 전무후무한 참사인데,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당신들이 왜 기억이 안 나겠습니까? 기억하기 싫은 거겠지요.사람들의 이런 글도, 몇 주째 이어지는 촛불도 당신들에게는 그저 미개한 개, 돼지들이 잠시 꽥꽥대는 소음으로만 여겨지겠지요. 하지만 똑똑히 두고 보십시오. 당신들이 하찮게 여기던 개 돼지들이, 사실은 한 명 한 명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는 시민들이, 세상을 바꾸고 당신들을 끌어내릴 것입니다. 침몰하는 배에 탄 것은 바로 당신들입니다.당신들 때문에 그대로 물 속에 잠겨버린 학생들, 승객들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용서도 구하지 마십시오. 용서는 사람이 사람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 이하의 존재인 당신들은 그럴 자격조차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가만히 있으십시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을 것이고, 당신들의 악행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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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가 오후에 있어 아침에 잠깐 눈을 떴을 때 휴대폰 뉴스 속보가 왔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고 구조중이라고. 잠결에도 큰일이다 싶어 바로 뉴스를 찾아보니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다행이다 생각하며 아이들 수학여행에 평생 잊지못할 사고지만 추억으로 남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 일어나 준비를 하며 tv를 켜니 아침에 본 뉴스 내용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더는 평범한 일상적인 날이 아니었다. 당시엔 구조자 현재는 생존자가 배에 탑승한 인원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였고 아직도 아이들이 배안에 있는지 구조되어 병원에 이송되어 있는지 우왕자왕하였고 그시간까지 정부는 그 어떤 공식발표도 없었던거 같았다. 배는 아침 이른시간부터 침몰중이라도 했는데....뉴스가 틀어져 았는 tv앞에서 움질일 수 없었다. 배가 뒤집혀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아이들이 있다는데 정확히 몇명이 탑승해 있는지 숫자도 오락가락 구조자 숫자도 달라지는 상황에 그래도 구조자가 더 많아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상적인 그저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자 했으나 손에서 휴대폰을 들고 뉴스 속보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학생들 부모님들이 진도로 속히 가고 있다는 뉴스, 아이들이 이병원 저병원으로 이송되어 인원 파악이 어렵다는 소식, 배안에 있는 아이들이 보낸 메시지들... 그리고 바닷속으로 완전히 침몰한 세월호.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있는지 현실감각이 둔해졌다. 생존자 실종자 사망자 숫자가 문신처럼 떠있는 뉴스. 생존자는 왜저렇게 적고 실종자는 왜 구하지 못했는지 왜왜왜만 난무하던 외침. 그리고 제발 숫자가 올라가질 않길 바라는 사망자 수... 민간 잠수부와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침몰된 배 안에서 아이들과 일반 탑승객을 구조 할 것이라 그래도 그정도 국력은 있을것이다 믿어왔다. 큰 배에는 에어포켓이라는게 있다니까 어딘가 옹기종기 모여 구조를 간절히 기다릴 아이들이 무사히 구조되길 기도했고 바랬다.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도 그저 나에겐 평범했던 하루가 지옥 그 어느 언저리 같았다. 모두 믿을 수 없어서 거짓말 같던 진실들. 참사 2일이 지난 시점 세월호 뉴스 아래 달린 댓글을 잊을 수 없다. 부디 실종자 숫자 그대로 사망자 숫자가 되길 바란다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지금은 그토록 바라지만 당시엔 부정하고 싶던 진실이었다. 그만큼 기적이란것을 바라왔지만 이나라엔 바라지 말아야할 것임을 이제야 안다.나는 평생을 그날의 충격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기억이, 잊지 않는것이 지켜주지 못한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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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sns에서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세월호가 기울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것은 큰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가라앉은 것도 아니고 기울어진 상태에서 설마 구조를 하지 못할까... 당연히 다 구조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그 정도 기술력이 없을까...그런데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렇게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았고 미수습자가 있고 7시간의 공백과 미흡한 대처의 실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나의 삶에 집중하다보면 잊혀지기 쉽지만, 노란리본을 달며 함께 분노하고 아파하며 기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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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아침 출근하기 전 잠깐 쉬면서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했었던 것 같습니다.그러다가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구조됐단 소식을 접하고나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오보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오히려 희생자들만 계속 늘어나고 구조자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구조 소식을 기다렸고 다음날 다시 세월호 기사를 봤지만 돌아온 것은 기적적인 구조가 아닌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희생자들 소식이었습니다...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시신만 계속 발견되니 제 마음은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하기만 했습니다.제가 거의 20년간 살았던 안산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못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절대로 그 때의 그 아픔을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