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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수출/입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고,성삼일 하루전,, 부활 성야 세례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저혈압이 심했어서, 날이 안좋으면.. 정신이 오락가락했는데뉴스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게 꿈인가.. 진짜 일어난 일인가 믿을수가 없었다.이상하다.수많은 화물선과 FERRY들은 기상 악화 때문에 입/출항이 하루 이틀씩 지연되었고화주들도 모두 이해를 하는 그런 상황속에서도왜 안좋은 날씨 속에서도 출항을 해야 했는지.그리고 해경들은 왜 세월호 주위만 빙빙 돌았는지..아직도 궁금하고,화가난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답답하다..성삼일을 눈물로 보내고, 세례식때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그리고 세월호참사에 대한 기억은 더 또렷해진다.예수님의 죽음..세월호참사...세월호 고박업체인 우련통운이란 회사랑일을 할 일이 있었다.정말이지 그때 이 업계를 떠나고 싶었다.박여인 말처럼.. 자괴감 들었다.그 회사는.. 지금도 인천에서 잘 운영되는데..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수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아파하고 있는데...그래도 지금 세월호에 대한 진상 규명이 다시 한번 떠올라서,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많은 분들이 한마음인것 같아다시 한번 더 일어나 기도하고 행동해야 함을 느낀다. 형제 자매님들..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진실은 꼭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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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준비로 가족 모두가 바쁜 시간이었어요. 보통 다른 회사보다 둘다 출근시간이 늦는 관계로 저는 엄마랑 티비를 보고있었고,오빠가 화장실로 들어가 나갈 준비를 하고있었죠.속보가 떠서 배가 침몰되었다는 소식을 보았고,어떻게하냐고 가족들이 잠시 걱정하는사이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이어 뜨더군요.모두 너무 다행이라고 가슴 쓸어내리고는가족들끼리 웃으며 계속 와 너무 놀랬다..너무 다행이다...전원 구조 되어서 너무 다행이다..사람들 많이 놀랐겠다..이야기 하다가티비 끄고 각자 출근하고 할 일 했어요.그리고는 일하고있는데 들려온 소리가전원 구출이라는 속보가 오보였다는 것이었죠.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습니다.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계속 세월호 소식을 주고받으며 진행사항을 지켜봤어요.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죠.그렇게 그 날이 지나갔던 것 같아요..제가 퇴근 할 때까지 뭔가 해결해내지못하고있다는 것이 참 답답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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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수능을 마친 고3이지만 2년전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아직 적응을 마치지 못한 학생이었습니다...쉬는시간에 침몰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기사로 확인하였고 모두 구조하였다는 사실을 접한 후에 평소처럼 수업을 임하였습니다점심을 다먹은 후에야 그 기사는 오보라는 것을 알았고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과 뉴스를 지켜보았던 기억이 납니다원래는 핸드폰을 다 꺼놔야하는 야자시간에도 모든친구들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그다음날 야자 감독선생님께선 핸드폰을 하는 친구들이 모두 세월호 뉴스를 보고 있어 차마 핸드폰 집어 넣으란 말을 못했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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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였지 , 휴대폰도 안들고 다녀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 방법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동아시아사 시간에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다 구조되었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슨 일이 있었구나 짐작만 할 수 있었습니다. 무지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었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 힐 만한 일이 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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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대학교 수업 공강이었지만 시험 공부를 위해 친구들과 학교 도서관에 갔었습니다.스터디 룸에서 공부하던 중 친구 한 명이 지금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믿기지 않는 일에 다들 공부때문에 덮어두었던 핸드폰을 켰는데 다른 친구 한 명이 전원 구조 되었다고 말했습니다.그럼 그렇지, 그 큰 배가 침몰해서 사람이 죽는다는게 21세기에 가능해? 다행이다. 얼른 돌아와서 가족들 품으로 왔으면 좋겠다.안도하며 수다를 떠는 것도 잠시.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는 기사가 뜨고, 초조해 하던 우리들은 곧 희생자 0명, 00명, 000명 이라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그 날 하루는 모두가 공부에는 손대지 못하고 눈물 짓고 우울해 하며 보냈습니다.유족들의 울음에 함께 울고, 아직 발견되지 못한 이들을 함께 찾으며 하루 종일 눈물 지으며 보냈습니다.아직도 우리는 얘기 합니다.그 날은 우리 시험 기간 중에 가장 우울했던 날 이였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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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들어온 교수님이 배가 침몰했다는데 무슨일인지 모르겠다 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순간 장난하시는건가?말이되는 이야기를 하셔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재가 침몰한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기에 핸드폰으로 찾아본 후에서야 사실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그후로 대학교 시험기감동안 살아있는 한명의 학생이라도 더 있기를 바라면서 도서관에서 나오면 바로 집으로가 티비를켜놓고 잠이들고,일어나면 다시 확인하는 생활을 한동안 했습니다.우리는 2016년을 보내고있지만 그들은 영원히 2014년4월16일에 머물러 있습니다.2년이 넘게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정확한 진실을 모르고 입습니다. 그런 지금의 제가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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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일어나자마자 지각을 직감한 날이었습니다. 허둥지둥 준비를 하며 티비를 틀었는데 세월호 속보가 나오고 있었어요. 사실 별생각 없었어요.제주도로 가던 배이고 해경이 있는데 다들 무사할 것이라 생각했고 준비를 거의 끝낼쯤 전원구조 속보가 떴습니다. 걱정하던 그 당시 남자친구와 괜찮을 거라고 보라고 전원구조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학교에서 돌아와 상황을 짐작하고 내 일도 아닌데 왜이리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주말내내 컴퓨터를 붙잡고 기사를 기다렸습니다. 잠수부가 학생들을 구조했다는 기사를..학생들이 살아서 페이스북을 하고 그 당시의 유언비어를 믿으면서요...저번주에 광화문 집회에 다녀왔어요. 세월호 유가족 미수습자학생 어머니의 발언을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창피한줄도 모르고 오열했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창피했어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우시고 계셨거든요. 다들 기억하고있어요.제 동생은 저번주에 군대를 갔어요. 동생은 아이들과 동갑이예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제 동생과 같은 친구들.. 절대 잊지않아요. 그리고 꼭 밝혀내겠습니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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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선생님이 너네 또래, 너네보다 한살 어린 애들이 배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에 가다가 배가 침몰했다고 하셨다. 모두 걱정하는 가운데 영어수업이 끝날때쯤 영어쌤이 다행히 전원 구출됬다고 하셨다. 집에 와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전원 구출이 아니었다.저녁때 가족들과 그 아이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잠자리에 누운 그날 새벽은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 내내 인터넷 속보를 보며 잠을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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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티비나 인터넷과 거리가 멀어 오후가 되어서야 알았다. 딱 그 나이또래의 동생이있어서 그런지 온갖 인터넷이며 티비를 지켜봤었다.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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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우리반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있었다.인터넷 뉴스- 전원구출이라는 기사를 보고 안심하고 핸드폰을 끄고 아이들과의 시간에 집중했다.신나게 웃고 재미난 게임을하면서....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청소까지 끝낸뒤 인터넷뉴스를 다시본 나는 화가나고 또 화가났다.왜. 아이들은 전원구출이아닌데 전원구출이라고 기사를냈는지 아직도 안구하고 뭐하고있는지 마음이 찢어지고 우리나라현실에 절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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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첫 회사에서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져서 지병이 심해져서 기분이 너무 안 좋은 날 이였습니다.아침에 회사에 들어가서 남들과 떨어진 제 자리에 앉아서 일을 했습니다.일을 시작하고 웹에 들어가니 세월호가 뉴스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 기분도 안 좋았고 구조가 잘 되고 있다 는 식의 기사 였기에 저는 아 또 뭔일이야.. 이러면서 그냥 무시했고 그날 점심을 먹으면서 회사사람들과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보았고 그 날 간식먹는 시간에는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하지만 전 그때 제 기분이 너무 중요했기에 그리고 몸이 너무 아픈시기였기때문에 구조되겠지 하고 그냥 집에 들어가 잠들었습니다.그 이후로 세월호 소식은 점점 안 좋아졌고 제 몸도 안 좋아져서 전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는데 그 입원한 10일동안 저는 매일 매순간 티비만 보고 살았기에 울기도 했지만 4월 16일에 제 자신에게 실망한 날 이기도 했습니다.제 기분과 몸상태때문이라며 아이들을 별거아닌 시끄러운 일 취급했던 그 날의 저에게그 이후로 세월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 날 했던 생각이 지워지지않아서 아이들에게 너무 죄스러워서 눈물이 납니다.저는 기억할겁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모든 억울함이 사라질때까지 전 잊지않을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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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와 다름 없는 교실안이었어요한창 입시를 준비하던 저, 그리고 같은 교실에어김없이 앉아있던 내 친구들수업시간 도중에 핸드폰 뉴스로 소식을 접했어요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아직까지도 너무 남 일 같지가 않죠수학여행을 간다고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 전날 밤 가방을 싸며 학교생활에서의 작지만 큰 일탈이 얼마나 기대됐을까뉴스를 접한 후 수업 내용도 책 속의 글자도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어요계속 책상 속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새로고침하고 구조 완료되었다는 글자만을 기다렸죠선생님들도 모두 이해 하신다는 듯넘어가주시고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연신 걱정되는 기색을 보이셨죠아무 것도 없었어요같은 반 같은 교실 아이들 모두 울면서, 너무 속상해 하면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어서그마저도 이뤄지지 않아서7시간 아니 7주가 넘게 지나도록맘 속에서 잊혀지지 않아요그 시간들 그 눈물들 그 간절한 기도들같은 대한민국의 학생이었고 비슷한 꿈을바라보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것미안해요 아직까지도 참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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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친구들과 닭볶음탕을 먹고 있었습니다뉴스를 보자마자 눈물이 차올랐고 어떡해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같이 있던친구들도 같았습니다 수업에 집중하지못하고 계속 관련속보만 찾아보았습니다 사망자만 늘어나는 걸보며 정말 아득했고 당장내가 할수있는일이 없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정부의 무능함에 화가 났습니다 매년 4월16일이 되면 그때의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뭐하나 제대로 밝혀지지않은 상황에 분노도 함께 치밀어옵니다 우린 다 기억합니다 절대 잊지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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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쯔음의 여느때와 같이 늦으막히 일어났어요. 늘 같은시작으로 sns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죠.그리고 읽게된 글하나 "전원구조" 그러나 다른글을 보니 1명이 사망하고 전원구조이라고 봤습니다. 생각했죠 무슨일이 있었길에 1명이 죽었지? 심각한일이었던거 아닐까 하지만 많은사람들이 구조 되었으니 괜찮겠지 생각했죠.. 그때하고있던 알바를 하러갔습니다. 같이 일하던 분들과 이야기하며 배가 사고가 났는데 전원구조래요 다행이죠? 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4시간도 안되는시간이지만 핸드폰 볼시간도 없었죠. 마치고 나와 다시본 sns는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단 몇시간만에 세상이 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그후로 몇일간 티비 뉴스를 믿지못해 보지못했습니다. 대체언론들을 보며 자고 일어나서 다시보고 기도하고 바라고 또바라는 날들이었죠. 그리고 지금은 압니다. 세상이 달라진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을 알게된 날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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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제 동생의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좋은 기분으로 일어났어요. 그러다 습관처럼 티비를 틀었는데 뉴스에서 배 사고가 났다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순간 놀라서 다른 채널도 틀어봤는데 전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이야기 뿐이었어요. 보니까 승객 규모가 너무 큰 배였어요. 그러니 그런 배가 가라앉는다는게 잘 믿어지지 않았죠...이제 금방 구조되겠지.. 싶었는데 한편으론 너무 불안하고 걱정이 됐어요. 그래도 진심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속 지켜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더라고요. 무엇이 이상했냐면...정부에서 구조를 도우려는 사람들을 막더라고요. 주변에 상당한 구조력을 갖춘 미군이 즉각적으로 돕겠다며 헬기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에서 거절하고, 민간잠수사들의 구조도 제한하고 희생자 가족분들의 요구는 단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계속 딴소리만하고 변명만하고...정말 이상했어요. 사람이 죽는다는데 왜이렇게 따지는게 많고 안되는게 많은건지 정말 이해할수가 없었어요. 심한말이지만 당시에 제대로 구조하지않고 다른 검은 속내를 숨기고 있는듯한 그들을 전부 죽이고 싶었어요.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목숨과 그들의 목숨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신은 없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리 나쁜 사람들은 죽임당하지않고! 대대손손 국민을 농락하고 호위호식하는데 힘 없는 국민들만 그 손에 죽어나가니까요...제가 정말 화가 났던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여당의원들이 적극적 구조를 지원하는 척 팽목항에 오더니 사진만 찍고가고 서남수 교육부장관이라는 사람은 팽목항까지 가서 귀빈의자에 앉아 컵라면만 쳐먹고... 안행부에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이고 청와대에서는 사고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고!! 구조할 마음이 없고!! 절실히 살리고자했던 가족들과 국민들의 마음을 대수롭지않게 가볍게 밟아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상한 민간구조업체를 선정해서 구조를 진행하는것부터가 어이가 없었어요. 언딘이라는 그 회사요...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 의도적인 무능력이 너무나 티가나서 더 분노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망자는 점점 늘어났고..가족분들은 너무나 힘들어하시고...모두의 슬픔이 분노가 되어갔죠. 참사를 지켜보던 모든 국민의 마음이 같았을 거예요. 구조하면서 중간에 다이빙벨이라는 기구를 이용해서 더 적극적인 구조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었는데 그것마저 정부에 외면당하고.. 산소주입을 하겠다더니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배 안에 생존자가 있을수도 있는데 정부에선 어떠한 행동도 없었고 가라앉은 배를 버려뒀습니다. 저는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만 계속 되니까 이 나라에선 누구도 믿으면 안되겠다는 다짐까지 하게되더라고요. 세월호 참사 그 날과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하나 둘씩 밝혀지는 더러운 진실들을 마주하며...저는 세월호가 우리들 기억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그걸 믿고 오지않을 구조를 기다렸던 승객들이 곧 제 자신이었고 제 가족이었음을 알기에 더 잊을 수 없어요. 그 날.. 우는것 밖에 못해서 미안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 없는 사람이어서 많이 미안했어요. 땅을 치고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어요. 저는 정말 진실을 알고싶어요. 국민은 진실을 원해요. 간절히 진실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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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7시간을 휴대폰도 없이 학원에서 보내던 때였다. 그 날도 다름이 없었고 나는 모든 일과를 끝내고 출출함에 아는 언니와 함께 학원 옆의 타코야끼 점을 찾았다. 그 가게 안에서 마주한 현실은 너무 버거웠다. 뒤늦게 알게 된 소식에 차마 음식이 목에 턱하니 걸리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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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중간고사 준비중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중이었는데 하도 공부가 하기 싫어서 휴대폰을 들었어요. 네이버 실검창에 세월호가 있었어요. 세월호가 가라앉았다고, 그리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 기사를 보고 저는 "구조됐다니 다행이네" 하고 덤덤히 창을 닫았어요. 다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내가 탄 배도 아니고, 내 가족이나 친구가 겪은 일이 아니고, 저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다음주에 있을 시험이 더 중요하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았어요. 도서관을 나서며 휴대폰을 봤을때 그게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상상이 되질 않았어요. 제 일이 아니라고 안일했던 제 자신이 너무 미워요. 저는 세월호를 떠올릴 때 마다 죄책감을 느낍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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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그 때 야자를 하면서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친구들과 서로 노래를 추천해주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타이타닉 노래를 추천받았습니다.추천받은 노래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공부를 하고 쉬는 시간에 폰을 보느라 늦게 접했는데 보자마자 얼마나 울었는 지 모릅니다.그날의 기억을 이렇게나마 떠올려봅니다.하늘에서 아름답게 꽃피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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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출근을 하던 차안에서 전원구조라는 말을 들었다. 안심했다. 일터로 가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오후가 됐는데 오보였다고. 300명 넘는 이들이 배에 갇혀 있다고. 가르치던 학생과 서로 쳐다보며 기막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주변에 있던 배들이 사람을 구하지 않고 있다고. 새월호에 사람이 그냥 있다고. 할말을 잃었다. 나는 그때 안산 단원구에 있었다. 세월호에서 304명이 죽어갈때.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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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시험을 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티비에서 처음 접한 뉴스 세월호 침몰 및 전원구조그렇구나.. 하고 피로를 풀기위해 자고 일어났더니사망,실종,생존이라는 표그제서야 이게 뭐지 하며 찾아보고는무사히 돌아와주길..그저 계속 기도한 기억밖에 없어요미안해요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REMEMBER 2014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