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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새직장에서 출근한지 한달도 안되었을때 식당에서 원장님이랑 식사중이였습니다. 텔레비전기 켜져있었는데 세월호 뉴스가 생생하게 나오며 다 구조되었다고 한거.. 아직도 생생해요 거기다 저는 안산사람이라서. 그 다음날은 온동네가 조용했었던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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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제가 기억하는 것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봤을 때 참 재미없었던 수업을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전 수업이 너무 재미없어서 교수님 몰래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세월호 뉴스가 뜨길래 보니까 전원 구조라고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하고 무심하게 넘긴 다음 다른 뉴스를 보다 다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자, 저는 다시 폰을 봤습니다. 그리고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오보라는걸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 중대한 사안을 확인도 안 하고 보낼 수가 있는 거죠? 그 이후로 아무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저 뉴스만 계속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그리 하니 참 지치더군요. 이걸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900일 넘는 시간 동안 해온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세월호 사건이 터진 날 7시간, 그 7시간이라는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해명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자리를 비운 7분이라는 짧은 시간때문에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도 말이죠. 7시간. 그 시간에 대통령이 제대로 할 일을 했더라면 세월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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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아르바이트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창문도 없는 고시원 단칸방에서 지내던 그때. 고작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에게 혹여나 피해가 갈까, 언제나처럼 티브이를 음소거 한 상태로 켰다. 가장 먼저 눈이 간 타이틀은 "전원 구조". 그럼 그렇지,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여느날과 같이 공부할거리들을 주섬주섬 챙기려는데 자꾸만 번복되는 뉴스.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 점점 아찔해져가고 음량도 잔뜩 높여버리곤 나가려던 채비도 관뒀다. 우두커니 쪽방에 서서 몇 시간을 아니야,아닐거야. 내가 너무 햇빛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오래 지내서 잠이 덜 깬걸거야, 지금도 꿈일거야, 부정하고 또 부정하던 그때. 할수 있는거라곤 티브이를 내내 켜두고 지켜보는것 밖에 할 수 없던 그때. 차라리 지금이 꿈이었으면, 했던 그때. 아직도 잊지를 못합니다. 아니 잊을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변함이 없다는것이, 속수무책으로 흘러버린 지금이 너무나도 두렵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함부로 말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한번 더 눈을 흘겨서라도 잊지말자고 당부라도 하겠습니다. 무력한 사람이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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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출장중에 우연히 한국 방송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가 곧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다행이라고 하며 거래처로 나와서 미팅하고 저녁에 혹시나 궁금해서 뉴스보고 그냥 망연자실했습니다.어떻게 저렇게 구조에 무능할수 있을까...너무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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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기간이었어요. 다음날에 중요한 실습시험이 있어서 저는 방에서 공부를 하다가 간단히 식사를 때울 겸 기숙사 매점에 갔어요. 일어난지 별로 안 되어서 정확하지 몇 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전원구조가 되었다는 기사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아요. 평소 즐겨먹는 치즈라면을 들고 매점 바로 옆에 있는 컴퓨터실에 가서 라면을 먹으며 우연히 기사를 봤고 처음에는 전원구조 되었다는 말에 안도하다가 점점 침몰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어요. 아무도 없는 컴퓨터실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어요. 다른 학과들은 시험이 끝나 기숙사가 텅텅 빈 날이었고 그날 시험공부는 하나도 못하고 헬스를 하면서도 계속 티비를 보고, 방에 돌아와서도 멍하게 휴대폰만 본 기억이 나요. 그 다음날에 시험이 끝나고 교수님이 마음이 아파서 계속 우셨다는 말씀에 친구들과 동감했던 것까지도 기억이 나네요. 제가 경험한 시험기간 중 가장 우울하고 슬프고 가슴 아픈 시험기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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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일을 하고 잠시 쉴 겸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소식을 접했다. 그 뒤 컴퓨터를 끌 수 없었다. 계속 같은 장면만 내 보내는 것 같은 화면에 미칠 거 같았다. 배만 점점 가라앉고 있었고 주위에 선박은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도대체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는 거야? 답답하고 화가나서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계속 보고 있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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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서 밥을 먹고 교복을 입는 일상은 평범하다. 그 날 아침도 언제나처럼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4월 16일은 평범하지 않은 "그 날" 이 되었다. SNS 타임라인에 침몰하는 배 사진이 밀려들어왔다. 그 안에 갇혀 있을 동갑내기 친구들 백여 명의 얼굴은 사진 속에 찍혀있지 않았다. 전원 구조 보도와 이어지는, 결코 반갑지 않은 오보 정정 보도... 그날 나의 일상은 유독 더디고 힘겹게 진행되었다. 잘 켜두지 않는 우리 집 TV는 하루종일 뉴스를 읽었다.물 속에 빠진 수채화의 빛깔이 선명치 않게 흐려지듯, 기억은 서서히 사람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그러나 침잠한 과거 속 유난히 돌출된, 밤새도록 번뜩이는 한 장의 기억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 침몰을 거부하는 4월 16일의 유화 그림 한 장. 그를 훼손하려 애쓰는 위작가들의 붓질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노란 빛으로 타는 슬픔.그 그림. 누가 그렸는가? 누가, 왜 그렸는가?잔인한 화가는, 촛불 앞에 얼굴을 드러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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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고3담임을 했던 저는 그날 수업을 마치고 난 후 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 학생들을 인솔하여 제주도 수학 여행을 종종 다녀왔던 저인지라 그날 그 시간에 꽃같은 아이들이 물속에 그대로 잠기던 그 영상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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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고있었습니다. 아침에 한참 일하고나서 잠시 쉬기위해 아무 생각없이 휴대폰을 켜 인터넷 창을 보았습니다. 그 때 제 눈에 들어온 기사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전원구조" 오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중학생인 제 동생도 수학여행을 떠난 날이었기 때문에 순간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하지만 제 동생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전원구조 되었다니, 안심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죠.그리고 몇 시간 뒤에 다시 쉬면서 핸드폰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새 전원구조는 오보였다며, 아직 배 안에는 300명의 아이들이 갇혀있다는 소식이 보였습니다. 그 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내가 이렇게 평화롭게 일 하고있는 순간에도 지금 진도 앞바다 에서는 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실시간으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지금 이 순간 배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섭고 괴로울지,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하니 너무 괴로웠습니다.이 비극이 일어난지 벌써 2년을 훌쩍 지나 내년 4월이면 3년입니다. 아직도 배에서 수습하지 못한 희생자들도 있고, 진실은 여전히 깜깜한 바닷속에 잠겨있습니다.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리고 배와 함께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밝혀질 때까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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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를 보며 그 누구라도 당신들을 구해달라고 울었지. 아이가 물었어 엄마 왜 우냐고...형아 누나들이, 사람들이 배에 갇혀서 못나왔다고엄마 아빠랑 헤어졌다고...아이랑 같이 울었어생판 모르는 나조차 가슴이 찢어지는데..뻔뻔한 그 사람들은 유가족들의 절규를 모른체 하더라. 가족의 죽음을 티비 생중계로 지켜보며, 눈앞에서 놓친 그들을 시위대로 몰더라 댓글 알바들을 풀어 유가족을 조롱하고...그래서 어제처럼 기억해나라도 저 아픔을 잊지 않겠다 부역자 주제에 감히,구해주지도 못한 주제에, 유가족들을, 돈에 눈멀어 가족을 판 사람들로 만든그들을 기억하고 가족을 잃은 피맺힌 가슴을 같이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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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일하다 말고 tv속보를 보면서의아해하고 있었죠.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는데 배에는 아무런 조치를 안하는걸보며저병신들이 왜 물을빼지도 않고선체에 구멍을뚤어서 투입되지도 안을까그래도 해경이랑 헬기 우르르 간걸보고 다 구조하겠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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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그날 이후 시간은 멈췄습니다."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던 아이의 목소리가내 몸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합니다.정말 기억이 안 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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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점심을 먹던 식당...뉴스를 보며 안도하던 분위기...그날 먹던 순대국, 깍뚜기, 같이 먹던 동료들, 그들이 앉은 위치까지도 기억에 있습니다.잊지 말아야지 한적도 없는데 ㅠㅠ장인이 한땀한땀 새긴 표지석처럼 제몸 여기저기 남아 있는 걸요.그간 잊었다, 치유되었다 생각했는데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생채기가 나요. 그간 사느라 바빳다고 등한시한 저는 유가족들에게 미치게 죄송해서 죽을 것 같아요.그날의 기억을 인간으로서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대단한 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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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학교에 갓 입학해 중간고사준비한다고강의시간에 막 집중하고 있었죠핸드폰 볼 틈도없이 강의듣고 강의끝나고술마시고 오늘 힘들었네 걔가 뭘어쨋네 깔깔거리며 당시 사귀던사람이랑도 싸우고...집가서 밀린연락을 보며 인터넷 좀 봤는데그때까진 100명 아래였어요실종자들 금방 찾았으면 좋겠다 찾겠지 생각했어요나한테는 늘상있는 평범한날이었고 그 친구들도 아무일이 안생겼다면 만났을 하루였을텐데하염없이 부끄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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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중학생이지만 그때 전 초등학생이었어요그때 아마 전 편범한 일상을 지냈을 거예요 세월호가 물에 갈아앉아 생존자와 사망자 숫자가 올라가는 걸 지켜보면서 어이가 없었어요 우리나라가 이것 밖에 안 되는구나 싶기도 했고... 그리고 나중에 유가족이 단식 시위를 하고 정부에 맞서싸울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가 한심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죽고 싶다고 쉽게 말했던 걸 반성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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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언론사 실시간 중계를 켜서 봤는데.. 전원 구조 자막!!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네요.. 하지만 그 안도감은 얼마가지 못했고.. 연이어 안타까운 소식에 망연자실.. 설마 설마하며 구조장면을 자세히 지켜봤네요.. 만일 시간을 거슬러 갈 수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꼭 2014.04.16 그날로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방송 듣지말고.. 배에서 기다리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네요.. 모든 희생자가 편히 잠들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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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 같은 아이들이 창문 틈새로구조를 기다리며 내다보는 그 모습들을잊을 수 없어요.그리고 괴로워도 잊으면 안되구요.다같이 기억한다면 기록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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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요....우리는 그 날을 그 시간을 잊을 수 없군요.회사에 출근해 뉴스를 접하고 남편한테 알려주었죠.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남편은 얼마후 저한테 다가와서 걱정말라고 다 구조되었다고 이야기 했었고 그런줄 알았습니다.오보인걸 로 오후에 알고 천안함때가 떠오르면서 그때의 좌절감을 다시 느끼게 될까봐 너무 두려웠습니다.헛웃음이 납니다.우리는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 그날의 시간들을 그들은 모른다하네요.우리의 기억들이 쌓여서 기적을 이루는 그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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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친구들과 이른 점심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접한 뉴스 ..30분 후 전원 구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 허망하게 침몰한 세월호...정말 미얀하다 꼭 기억할께 아들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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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들이 중학이 되면서 부터 세월호의 아이들이 더욱더 생각이 나네요 깊은 바다속에서 얼마나 추울지 ᆢ 가슴이 메어집니다 절대로 그날의 일들을 잊어서는 안되며 우리는 늘 기억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