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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이었던 당시, 저는 전입신병 교육을 받고 자대에서 일을 배워 가던 중이었습니다. 신병이어서 TV는 선임들이 못 보게 했는데 그날 세월호 뉴스만은 선임들이 보게 해주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황 때문에 선임들은 이등병이 TV를 보는지 안 보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 십 개월이 흐르는 시간 동안 저는 병장이 되어 병영 악폐습을 고친 후 전역을 했습니다. 2017년 첫날인 오늘이 되어서도 세월호 사건 관련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실종된 세월호 탑승객들은 아직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고, 대한민국의 악폐습(문제 앞에서의 책임 회피와 모르쇠)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분함을 느낍니다.국가 원수라면 적어도 국민이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면 본인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그날의 급박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절대로 잊어선 안 됩니다. 그것이 국가 원수로서의 책임이며 사고 당사자들에 대한 도리이자 제2의 세월호 사건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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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운전중에 친구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당연히 다 구하겠지~답하고 뉴스를 틀었습니다 점점 넘 무서운 상황이 진행 되는것 같아 이촌동 충신교회 앞을 지나다 옆에 차를 세워두고 전원 구조 해주시길 기도했습니다~설마 설마 하며 집에 돌아와 계속 뉴스 앞을 떠날 수 없었고 너무나 무력한 우리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와 많이 울었습니다 그날 우리의 무력함과 슬픔ᆞ아픔을 어찌 차마 잊을까요~평생 살아남은 부끄러운 어른 으로 빚진 맘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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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금융권 지점장입니다.그날 출근해서 오전중에 세월호사건 특보를 접합니다.오전중에 구조화면을 티브로 지켜보다가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보고 마음을 놓는 순간배의 형태나 구조상황이 전원 구조를 믿을수없는 상황이었다..오보 소식을 접하고뱃머리만 나온 순간 사무실 한 켠에서흐르는 눈물울 막지 못하고 오열하고 말았다..어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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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합니다. 방송에서 수학여행단의 해난사고가 났다고 했으며,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방송을 듣고서는 가슴을 쓸어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시간 정도 후에, 구조되었다는 것은 오보라고 했으며, 현재 구조가 진행중이라는 보도를 접했으나, 그래도 구조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적어도 대다수가 구조될것이라고 안심했었습니다.그러나... 하루가 지난후... 세월호는 전복되었으며, 수백명의 학생들이 탈출하지 못했다는 보도에... 안타까워 했으며, 에어포켓 운운하면서, 곧 구조가 될것같이 보도를 하면서, 애를 태우게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그 보도가 모두 거짓이었음을 이제는 잘 알며... 계속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진실을 숨기고... 자신들의 과오를 덮어버리려고 애쓰고 있음을 잘 알수 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0416반드시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그 죗가를 받게 할수 있는 것이라면, 저도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잊지않겠습니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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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프로젝트 일정상 많이 바빴고,집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TV도 인터넷도 못보고 일에 집중하고 있었지요.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고 "전원구조"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다행이라 생각하고 다시 일에 열중이었습니다.집에서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바빠밥을 해먹을수 없었습니다.근처 식당에 점심 먹으러 갔고, 식당 TV에서 그 소식이 나오고 있었는데얼핏 보면서 구조 전의 상황을 되돌려 방송하는줄 알았습니다.그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받았는데"전원구조"는 오보였다고.......그 날, 내가 무엇을 했고 어느 식당에서 어느 자리에 앉아 무얼 먹었는지조차 저는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김관홍 잠수사가 그랬지요.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데왜 당신들은 기억하지 못하느냐고.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그 날, 그 아픈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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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업을 합니다. 대전에서 거래처를 방문하여 업무협의 후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TV를 통해 세월호 속보을 접했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약 40분 동안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를 듣고 정말 다행이리며 서로 얘기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날 점심메뉴는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이었고 위치는 대전 고속터미널 인근입니다.같이 식사한 분들의 이름과 메뉴까지 기억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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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사는 사람입니다.당일 출근한지 얼마 안되서 뉴스로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당연히 당연히 !!!! 다 구조 될 줄 알았습니다 .4월 15일로 돌아가고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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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뉴스를 보면서 설마 했는데 어떻게 모를까? 기억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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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저는 안산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운전이 하늘 일의 반을 차지하는 일이라서 매일 매일 운전을 하며 라디오를 듣습니다. 오전에 창완디제이의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으며 무사히 구조되기를 바라며 운전했고 뒤이어 화정 디제이의 전원구조됬다는 소식에 정말 다행이다 안심했고 곧 바로 오보로 알려지며 탄식했고 그래도 하나둘셋 구조될거라고 믿었던거 같다. 21세기 대한민국이니까..우리나라니까..근데 퇴근을 해도 그 다음 날이되도 구조소식은 없었다..안산을 다니며 얼마나 울면서 운전을 했는지 모른다. 그날 공기 그날 풍경 그날 뉴스 다 기억이 난다기억나지 않을리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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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부터 12시 30분까지 전화상담 봉사를 하는 날.... 딸에게 문자가 왔다. 수학여행 가는 배가 침몰하는데 학생들이 소식을 전한다고.... 나는 그 정도로 여유가 있으니 다 구조될 것이라 말하며 그들에게 평생토록 얘기할 재미난 추억을 만들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곤 전원구조라는.... 봉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 스스로의 죽음을 중계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그날 내가 했던 말 때문에 얼마나 죄스러웠는지.... 나는 괸계자나 책임자도 아니고, 나와 관계 된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침몰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한 죄스러움 그리고 무능함에 분노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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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아침 9시정도에 배가 침몰중이라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처음엔 금방 해결 될 작은 사건이라 생각했었는데...나는 그날....만삭의 몸으로...식사도 제대로 못한채...하루종일 뉴스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그 뒤로 두 달이상을 매스컴의 보도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슬프고 ,답답하고, 화나고 , 우울한 임신기간을 보낸 뒤에 결국...늦둥이 셋째를 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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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있었고 오전중에 전원 구조됐단 기사를 접하고 아 별일 아니네 하고 넘겼다오후 수업을 들으려는데 교수님이 뉴스봤냐며, 아침엔 전원 구조라고 떴었는데 그게 오보였다고 수업 시작하면서 말함. 그래서 핸드폰으로 확인해보니....그리고 집에 와서 티비를 틀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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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직원포함3명과 원자력발전소 출장.경부고속도로 운행중 점심을 먹기위해 칠곡휴계소입장하며 집사람에게 전화했는데 사고얘기를듣고 휴계소TV보니 전원구속을보고 다들 안도하며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후 집사람한테전화하니 오보였고 300여명 사망인듯하다며 . .2014년, 동행인원, 출장지가 고리인지. 월성인지생각은 안나지만 상황은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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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저로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여력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원 공부를 하다보니, 그날 몇 시간의 강의 시간 사이사이 빈 시간이 있어서 연구실에서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 검색하다 그 참혹한 비보를 접했습니다. 내 가족이 아니었어도, 내 친구가 아니었어도, 소중한 생명들이 그렇게 원통한 죽음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한 명도 아니고, 열도 아닌, 300명의 숭고한 목숨이, 구조가 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수장되었다는 사실을 정말 믿을 수 가 없더군요. 그날 부터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인터넷을 체크하며, 기사들을 읽으며, 매일 매일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목숨들이 허망하게 스러진 것에 대한 슬픔, 자기들만 살겠다고 300명의 목숨을 배에 버려둔 채 도망했던 자들에 대한 원망, 그리고 가족들의 아픔을 공유하지 않은채 국민의 감정을 무시했던 대통령에 대한 분노... 태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려옵니다.그날 그배에 사고를 당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의무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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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속보에 민감한 직업인지라 속보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당연히 학생들이 구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전원 구조 기사를 보고 그나마 다행이다라며 안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보로 밝혀지고 나서는 하염없이 인터넷 창만 바라보며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뉴스 속보만 바라보던 그 날의 저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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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다.하지만 4월 16일은 잊히지가 않는다.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분노할 것이다. 끊임 없이 진실을 요구 할 것이다.모든 고귀한 목숨의 억울함이 해소되는 그 날까지, 기억하고 또 눈물 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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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을 포기하고 백수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늦은 잠까지 게임을 하고 늦잠을 잤는데 세상에 뒤집혀 있었죠 온통 뉴스에서는 그 얘기만 나오고 그 때 쓰던 태블릿 PC도 생각이 나네요 화웨이에서 나온 미디어패드 FHD 10.1인치 버전이었어요 그걸로 당시 공중파까지도 온에어 재생이 되던 티빙 어플을 통해 뉴스를 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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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10일 남은 그 때, 평소와 같이 독서실에 공부하러 아침부터 나온 그날이었다. 그러나 계속 머릿 속에 맴도는 아침의 그 뉴스. 처음으로 나는 독서실에서 핸드폰을 끄지 못하고 있었다. 시험이 10일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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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수요일이였고축구 동아리에 참여했습니다. 학교는 대부분 기숙사를 사는 기숙형학교였으며시골에있는 폐쇄적 분위기의 학교였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동아리시간에진도에서 우리와 동갑이었던 친구들이 타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교육청의 전원구조 오보문자 소식에 친구들과 함께 어떻게 그럴수있냐며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쯤이 되었을때 수백명의 친구와 시민들이실종되었다는걸 깨달았고... 너무나도 큰 사고가 났구나.... 패닉상태여서 야자시간동안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라고해도 과장이 아닐만큼의 생활을 했던 수험생도그날만큼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헌데.. 대통령은 그날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니...이게 나라입니까..그녀를 뽑은 국민들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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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날씨는 화창했지만, 식사를 하던 식당의 텔레비전에서는 끔찍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들이 탄 배의 침몰...저도 제주도 수학여행을 배를 타고 가보았던지라 얼마나 큰 배의 얼마나 큰 객실에서 아이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지 상상이 되었죠. 기대와 달리 구조는 전혀 진척이 없었고 인터넷에서 한 이미지를 보게 되었죠.배가 기울면서 객실의 출구가 머리위로 향해있고 턱끝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이미지. . .절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저는 그 날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감이 이렇게 선명한데. . . 구조에 힘써야 했던 사람들은 어쩜 그리 무책임한걸까요. 통탄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