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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후 오침시간에세월호가 가라앉아간다는 뉴스를 접하고 기도했습니다. 다 구할 수 있다고 다 살아야한다고 다 살아서 다시 지긋 지긋한 학교도가고 분식집에서 맛있는것도 먹고 웃으면서 죽을뻔했다고 장난처럼 이야기도 하길바라며그런데 그날 티비 속에서 꽃이 지고있었습니다. 아직 다 피우지 못한 어여쁜 꽃들이 그렇게 져버렸습니다.그리고 그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한마리의 아니 수백마리의 야당,여당,대통령,..정치인이라는 탈을 쓴 닭들을기억합니다. 그날 세월호와 함께 대한민국 어른들에 대한 신뢰도 같이 가라앉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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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만나러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20여분 타고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양희은씨가 처음엔 사고소식,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전했어요. 그러고는 버스에서 내려 낯선 압구정동 길을 좀 헤매다가 친구가 알려준 식당으로 가서 친구들 만나고 브런치 먹으며 이런 일이 있는데 전원 구도됐대 이러면서 놀다가 또다시 버스를 타고 오후에 집에 왔어요. 그때까지도 참사에 대해 알지 못한 채 티비를 켰는데 구조는 커녕 구조 중이라고 비치는 화면에는 커다란 배만 뒤집어져 있고 아무도 안보이고. 그날 티비생중계로 아이들 죽어가는 걸 지켜본 셈이 되었고, 몇날밤 악몽을 꿨어요. 내가 배에 타고 있고 어린 내 아이들이 손을 내미는데 잡아주지 못하고 결국 나도 아이들도 물에 잠기는...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해서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며 눈물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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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기억합니다.그날 휴가였는데 집에는 얘기안하고 출근해서 목욕탕 갔었습니다 탕에 들어갔다 나오니 수학여행 가는길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전원구조 그런 기사도 떴었고요그 시간이 10시반 정도 됐을거 같네요같이 계시던 아주머니들이 애들 수학여행 갈때 꼭 이런 사고가 난다고 말씀하시던거 기억나네요그리고 계속된 구출자 오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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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당시 전 상근예비역 군인신분으로 동사무소있는 동대에 출근해서 동대장님과 뉴스를 보면서 사건을 접했습니다.. 입대전 여객선에 근무했던 해기사로써 펴지지않는 구명뗏목과 너무도 한산한 갑판을 보며 일이 터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론의 전원구조도 못미더웠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날 정해진 일과(예비군 입출내역을 주로관리합니다. 전입 3명 전출 1명 해외여행출국1명이 당일 내역입니다.)를 끝내고 퇴근해 집으로와 다시 뉴스를 보니 혹시나했던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원구조오보.....그날 저녁을 거르고 계속 뉴스만 봤었습니다. 군인으로써 매일 똑같이 보내는 제가 기억합니다. 근데 vip를 응대한 당신이 모른다는건.....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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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특보를 보면서 ......이게 뭔일이야? 아이고 아이들 어떻해!!!아침부터 저녁까지 화면에서 눈을 뗄수없었습니다울 아들이 그때 20살 이라 이런생각을했습니다울아들도 저뱃속에 있었으면...생각하니 울컥! 세월호가족들 애타는 심정이 즉시로 전달되어왔습니다남편과 팽목항도 찾아갔습니다 바다를 보면서 아이들의 울부짖음을 느꼈습니다 살려달라고...그 어린 아이들을 춥고거친 무서운 바다에 수장을..너무 가슴아프고 그대로 보고만있는 정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화면만 바라보고 발만동동거릴뿐..끝내 배가 물에 잠길때 그때도 믿기지 않았습니다우리 딸 작은차에는 지금도 세월호 스티커를 붙이고 다닙니다 "잊지 않을께요~기억하겠습니다."지나는 몇몇차들도 노오란 리본 스티커를 붙인차도있고 우리 목사님은 아예 2014년 그날부터 양복에 노란리본을 달고 한번도 떼지않고 다니십니다우리에게 나눠주기도하셨답니다잊지 않겠습니다기억하겠습니다우리 아이들이 하늘에서 편히 쉬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래봅니다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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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거주하던시절 뉴스와 담쌓고 지내던 저는 세월호의 침몰을 현지 회사동료를 통해 듣게되었습니다. 너희 나라에 큰 배가 뒤집혀서 큰일이난것같다고 얼른 확인해보라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뉴스를 찾아보니 한국 언론은 온통 세월호 이야기였고 카톡역시 그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누군가 구출되겠지 하는 바람으로 삼일 밤낮을 뉴스만 틀고 기도했던 그날들이 기억납니다. 몇일째 같은 얘기만 반복 혹은 번복 하는 공영방송에 질려 다른 채널들을 보게되었고 실종자 가족들이 있던 체육관을 생중계하는 방송을 보게되었습니다. 공중파에서 보여주지않는 실제 현황과 체육관에 있는 가족들에게 뉴스를 오보라며 믿지말라며 고개숙이고 사과하던 경찰담당자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실감한 것 같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민낯을.. 아직까지도 뭐가 중한지 모르고 국민을 우롱하는 지도자와 자식을 가슴에 묻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유족들을 동시에 보며 할수있는 일이 없어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나 자괴감이 들곤 합니다. 저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않아도 세월호사건을 잊지 않으며 아이들을 지켜주지못해 미안한 마음을 안고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가끔 세월호 뉴스를 보며 울다 잠들며 악몽에 몸서리치면서 일어나던 그날들을 기억합니다. 사회에 무관심했던 저를 정치에 눈뜨게 하고 헬조선의 한 시민으로서 세상약자의 편에 서게만든 이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잊는단 말입니까. 저는 잊지못합니다. 헬조선에서 피우지 못한 우리 꽃같은 아이들은 지금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모두 잊고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지만 아직 이땅에서 숨쉬는 저는 이 날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무너져가는 우리나라가 현명한 국민들로 인해 정의를 구현하는 그날이 어서 오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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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동생들 챙겨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눈에들어온 화면. 기울어져가는 세월호. 아나운서의 말 전원구조. 밥먹으며 너네도 부모가되면 걱정된다며. 다행이다 라며 밥먹고 나와서 일하고 퇴근후 뒤늦은 뉴스를 보니내 7시간의 무관심이.....다 나왔을꺼란 믿음이. 조그만 아이의 아빠로써 ㅠㅠ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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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8시간의 시차가 있는 곳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던 중 세월호 사건이 터졌습니다. 고난주간이라 인터넷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교회 카톡방에 사고에 대한 메세지가 떠서, 놀라 찾아보고 경악했습니다. 공강시간 강의동 홀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게 외국인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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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tv 로 속보가 뜬 것을 봤었고 전원 구조에서 실종 300여명로 바뀐 것을 보고 하루종일 인터넷 기사를 찾아본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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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어이없고 화가나는 순간이었습니다.가장 먼저 아이들을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순간에...무엇이 그리도 급했기에...아니 사람보다 급한게 무엇이었기에..그 장면을 보고만 있어야 했을까요...많이 무뎌져서 눈물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뉴스를 보고 눈물이 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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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반만에 휴무라 부모님댁에 내려갔고 종일 빈둥빈둥 누워있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으며 거실로 불려왔습니다. 도저히 혼자서는 못보겠다며 떨리던 엄마 목소리와 티비가득 반쯤 기울어진 배에 놀라 숨을 멈췄던게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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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었습니다.그날 저는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평소에는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를 하지만 그날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앞문 바로 뒷자리에 앉아핸드폰 뉴스로 사고 소식을 보았습니다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뉴스 봤냐고 묻고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승객들 전원구출했다는 말을 듣고다행이라는 말을 했습니다.그리고 전원구출이 오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승객들 어떻게 하냐고...왜 이렇게 무능력 한거냐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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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이라 수업이 별로 없다보니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tv를 보고 계시다가 큰 사고가 났다며 말씀해주셨던 게 기억나네요.처음엔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나와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얼마 뒤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보며 놀라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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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비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 TV를 켰는데 세월호 사고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덜 깨 저게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하며 가족들에게 사고 소식을 전했고 그 날 하루 종일 뉴스를 보면서 아무 것도 못 했던 기억이 납니다. 뉴스를 보는 내내 반복되는 현장의 비슷한 상황 보도 속에서, 구조 되었다는 소식은 커녕 배가 가라앉는 상황만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고 이 즈음이면 나올만한 정부의 입장 발표 뉴스도 보지 못 해 의아했습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가 제 기억에 남은 큰 사고입니다. 9.11 사태도 실시간 뉴스로 한참 본 기억이 납니다. 성수대교 사고 뿐 아니라 삼풍백화점 사고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뉴스에 생존자, 구조자, 혹은 사망자 명단이 흘렀고 정부의 입장이나 구조 현황 발표가 꾸준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년이 넘는 전의 이야기도 기억납니다. 이렇게 큰 사고를 어떻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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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햇살은 내리쬐고 공기는 고요히 흐르고 미세먼지가 좀 있었던 그날. 오전에 책모임을 하기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던 그날. 이야기 하는 중에 세월호 소식을 접했던 그날. 얼마지나지않아 전원구조됐다는 소식에 가슴 쓸어내려던 그날. 그러나 오보라는 말에 가슴 무너졌던 그날. 그날이후 두아들의 엄마인 나는 텅빈 눈으로 TV만 보고 아직 있을 아이들과 사람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은 세월호의 시간, 그 전과 그 후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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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 먹으며 전원구조 뉴스를 보고 다행이다 하며 넘어가고 있었는데 2시쯤에 어떻게 되었나 업무 중 잠깐 뉴스사이트를 들어가봤더니 전원구조 오보였다는 뉴스 제목이 눈에 들어와 정신이 멍해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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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처음 뉴스를 접했지요.분명 내가 본 사무실 tv화면에는 기울어진 배 주변에 해경선이 있었고,나는 정말 어떤 의심도 없이 당연히 구할수 있겠구나 싶었죠.점심식사 중에 전원 구출했다는 뉴스,그 후 오보소식, 점점 가라앉고 있는 배를 보며 아이 셋을 키우는 아빠로서 가슴이 미어졌으며 무너져 내렸으며 통곡했었네요.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눈물이 나 미칠 지경인데..당신들은 그날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구요??내 자식이 목숨같이 소중하다면 내 옆집에 자식도 목숨처럼 소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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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그날은 녹색어머니 봉사활동날이었습니다.다른날보다 일찍 나와서 봉사활동을 하고난 후 아이 학교 녹색어머니실에서 뉴스를 접했고, 모든 엄마들이 많이 놀랐습니다.내내 뉴스를 틀어놓고 운전을 하며 출근했고, 사무실에서도 뉴스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전원구조" 뉴스에 "아, 그래도 우리나라가 살만하구나"라는 안심을 했습니다만, 곧 오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아이들이 죽어가는 화면을 하루종일 틀어주던 방송사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그날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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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사고가 났다고 기사를 보여줬습니다곧 전원 구조 기사를 봤지요다행이다 , 가벼운 사고였나보네 하고 넘기고 보니 침몰 소식이 들리고 , 인근 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는 중이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안산의 대학이라 단원고에 다녔고, 동생, 친척이 다니고 있는 사람도 많은 곳이고, 안산 사는 친구들이 여기저기 연락해보는 것을 그저 초조하게 보고있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던 뉴스가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자왕하는 상황을 보며 까마득한 현실에 절망했던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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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으로 평소와 같이 출근하고....메일과 각종 업무를 처리하면서 보낸 오전이 지난 오후 점심시간.....평소와 같이 헬스장-러닝머신에서 TV를 보았을때의 당혹/황당/먹먹함...어떤 단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순간...마치 영화의 장면일꺼라는 부정하고 싶은 그 순간....TV에서 눈을 땔수 없었고이후 사무실에서도 아무일도 하지 못한채 멍하니...그리고 간절함으로 뉴스속보를 보고 또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