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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해서보니 다른 분들 말씀이, 안산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기위해 탔던 배가 사고 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저도 교단에 서는터라 쉬는시간마다 기사를 살펴보았지요. 곧이어 이어지는 "전원구조" 소식.아.. 정말 다행이다 천만다행이야 리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보라는 소식에 얼마나 마음이 참담했던지요.저는 그 날 퇴근 후 막바지 벚꽃구경을 가기로 약속이 있었습니다. 새하얀 벚꽃잎이 무수히 떨어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었지요.그 때는 별 생각없이 찍었던 사진인데, 돌이켜보면 세월호 사고와 오버랩 되어 너무나도 슬픈 사진이 되어버렸습다.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은 4월 16일의 기억이 또렷한데, 도대체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을 아는 이는 하나도 없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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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 실에 있었어요. 컴퓨터로 뉴스를 확인하고 친구에게 여객선이 침몰 했는데 전부 구조 되었다고 말하고 계속 과제를 했죠. 그런데 구조가 되지 않았다고 보도가 나왔어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와서 뉴스만 한 없이 계속 봤어요. 아직도 너무 슬퍼요. 아침 마다 눈물이 나요. 16학번들을 제대하고 처음 만났는데 돌아오는 길에 그아이들이 살아 있으면 여기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요. 분노해요. 무엇이 도대체 이렇게 우리의 가치를 더럽히고 있는 지. 그 사람만 알고 있겠죠.7시간의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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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날 외부 미팅이 있어서 본부장님과 길을 나섰다. 세월호가 좌초되었고다행히 수학여행 중이었던 단원고 학생들도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들려온 소식은 참담했다. 나는 황망히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본부장님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운전을 했다. 우리는 그 날도 어김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참사는 내 일은 아니었으나 마치 내 일인 것 처럼 두렵고 아팠다. 누군가는 대변인의 입을 빌어 자신의 자리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바로 발뺌하였으나-백번 양보하여 아니라고 치더라도. 아니, 양보해도 아니라고 볼 수가 없다.-정직하게 제가 맡은 일과를 치뤄내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 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리 없다.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고 거짓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데 그 날 저녁 -어쩌면 다른 날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후의 날들은 내게 감정적으로 다 엇비슷했다- MBC에서 어떤 기자가 단원고 학생들에게 가입된 여행자 보험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인터넷에서는 배에 에어포켓이 있니 없니, 어두워 구조가 어렵다고 하는데 오징어배를 빌리는건 어떤지, 바지선을 보내는 건 어떠니.. 하며 설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동부화재 - 휴대폰 분실시 20만원 보상. 혐오라는 감정을 확실히 알았다. 3. 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그 날의 일을 분 단위로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서면 보고든 카톡 보고든 직접적으로 상황을 들은 적이 없으며그저 언론을 통해서만, 인터넷을 통해서만 파악하면서도촉각을 세우고 새 소식을 기다렸다. 내게 도울 수 있는 힘이나 어떤 장비나 조직을 움직일 권력이 있는게 아닌데도 도울 방법을 찾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우리는 그랬는데. 정작 권력 있는 자는 셀프감금이라도 당했는지"참다참다 견딜 수 없어" 대략 일곱시간만에 중대본에 행차하고한술 더 떠 배 안에 갇혀 있는건지 되물을 줄이야..4. 그래서 한없이 참담하다.사고와 더불어 정부의 무능에 놀라 한달 가까이 충격에 빠져 지냈다. 온 세상이 다 불쌍하면서온 세상이 다 무서웠다. 이제 머지 않았다. 머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자꾸만 이 이야기를 해야하고진실을 알아야 하고 반드시 치유 받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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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일하느라 소식을 전혀 모르다가 잠시 회의 하느라 동료들과 모여서 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그 소식이 꼭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일처럼 느껴졌던 그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직장동료들과 이게 무슨 일이냐며 세월호 탑승자 전원이 얼른 구출 되기를 바라고 다시 일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할 줄은 몰랐네요. 물론 매듭이 지어져도 잊지 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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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학교를 다녀왔습니다. 학교에서 배가 침몰했단 얘기를 들었지만 곧 구조됬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야자가 끝나고 집에와서야 그것이 오보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였고, 그렇기에 더더욱 잠을 쉬이 이룰수없었습니다. 기억할게, 잊지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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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동네병원에 건강검진 결과보러 갔다가 병원 대기실 tv에서 나오는 세월호를 보며 너는 당연히 구조가 됬을거라고 생각했고 전원구조라고 방송도 나왔고 그래서 수요오전예배도 드리고 장례식장에 위로 예배도 다녀오고 했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전원구조가 오보라고...그래도 너만은 구조되었을거라 확신하고 안산 단원고를 갔는데 그 강당에서 내가 본것은 두려움...공포...설마설마...아니기를 아니기를 그날의 그 두려움은 평생 잊지 못한다그날의 미안함은 평생 잊지 못한다그 미안함이 지금도 길위에 있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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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큰애 급식봉사하러 큰애 학교에 가야하는 날이었어요. 빨리 나가야하는데 워낙 큰 일이라 뉴스를 틀어놓고 나가질 못하다가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자마자 튀어나갔어요. 혹시나 싶어서(우리나라 뉴스를 못믿는 병) 가는길에 cnn을 듣는데 브레이킹 뉴스로 이름이 뭐라는 항공모함 함장(?)이 세월호 바로 옆에서 모든 장비를 준비하고 인명구조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있다 허가만 떨어지면 들어간다...한국정부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땐 왜 자꾸 한국정부의 허가를 기다린다는 말을 반복하는지 이해를 못했어요...유난히 정신없던 하루를 보내느라 인터넷 한번 확인 못하고 밤늦게 집에 와서 tv틀고 정말 몇주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올수가 없었어요...그 항공모함이 세월호 정말 바로 옆에 있었어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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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분명 기억납니다!아이들 등교시키고 쇼파에서 커피한잔하고라디오를 듣고있다가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들배가 침몰했다고해서 뉴스를 틀었더니..세상에ㅜ 속보로 모든방송으로 나오고 있었어요.심장이 뛰고 빨리구조되길 기다리던 중전원구조라는 자막을보고 울면서 박수를 쳤었죠.그리고 다시 오보라는 슬픈소식이 전해지고ㅜ그때부터 티비를 보지않는 나는 계속 티비만보면서 생존자확인만 기다렸어요그때 내가입고있던 옷,커피종류,카톡내용도기억이 납니다.분명히 기억납니다!7시간의 비밀을 하루빨리 풀어주세요!!애들이 왜 차디찬 바다에 있어야만 했는지를요!!숨기는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지금도 세월호 말만 들어도 눈물이납니다..꼭 밝혀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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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워홀러로 지내고 있을때였다.간혹 한국 소식이 궁금해 웹뉴스를 보곤 했는데 그날은 단원고 아이들을 태우고 수학여행을 떠나던 세월호가 침몰 했다는 소식이였다.놀란 마음에 자세히 보니 "전원구조" 안심하고 창을 닫았다. 그리고 몇시간 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너희 나라 큰일난거 아느냐?"그럼 알지 전원 구조 했다는데."무슨 소리냐 거의 대부분이 못 빠져나오고 침몰 됬다는데"순간 내 눈을 의심 했었고 내 귀를 의심했다.다시금 뉴스를 보니 사실이였다.배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고 아이들도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허망했다, 슬퍼했다, 분노했다.그날의 슬픔도 분노도 나는 뚜렷이 기억하는데왜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기억이 안난다는 것인가?꼭 끔찍한 벌 받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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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어요. 그날 탔던 버스 번호도, 신갈 오거리 부근에 왔을 때 그 기사를 읽었던 것도 다 기억이 나요. 몇 년 뒤에도 그날만큼은 기억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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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 있는 백석대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세월호가 침몰 됐다는 기사를 보고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냈는데 엄마에게 온 답변은 전원구조 했으니 걱정하지말라고 하셨어요.열심히 수업 듣고 난 후 다시 본 네이버 기사에는 전원구조 오보! 늘어나는 실종자 수 ..저는 기억합니다.당신이 기억나지 않는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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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행사가 있어 행사장소로 이동 전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 안 뉴스에서 배가 침몰 중이지만 전원 구조하였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무서웠겠네 그랬나보다, 하고 식사를 마친 뒤 행사장소로 이동했습니다.강사의 강연이 끝나고 마쳐야 할 업무가 있어 행사장 근처 모교의 컴퓨터실로 향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업무를 보았습니다.참, 당시의 저는 신입사원이었고, 함께 행사참여를 하기 위해 이동했던 동갑내기 파견직 경리 직원은 행사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파견직까지 불렀냐"라는 말을 듣고 행사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제 잘못도 아닌데 너무나 미안했고, 비정규직 처우의 열악함과 그 말을 뱉은 이의 악마같음에 치를 떨었습니다.업무를 마친 뒤 귀가 하는 도중, 이른 점심식사 이후 처음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자 전원 구조는 오보였으며 구조작업이 한창이지만 물살이 거세 상황이 어렵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이제는 그 배가 거진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뉴스를 보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 안에 있다고? 설마, 어떻게든 꺼내오겠지, 생각했습니다.귀가하니 부모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티비를 보고 계셨습니다. 너는 저 부모의 심정을 절대로 알 수가 없다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가족을 이미 뒤집혀 가라앉아버린 배 안에 둔 이의 마음을 어찌 감히 짐작하겠습니까마는, 눈을 떼지 못하고 뉴스를 계속 지켜보았습니다.설마설마....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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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2년하고도 7개월이넘었습니다진짜 잊을수가없어요 그날 ... 아침에 배가 침몰되고 아이들이 전원구조되었단소식까지들었을땐정말 별일아니었습니다. 일하는와중이었는데 모두 "다행이다" 한마디하고 잊혀질 이야깃거리였어요 근데 그 보도가 오보라는사실에 충격에 말도못했죠 사실 여기서부터 에러였어요 근데 백번양보해서 잘못전달됐다 할수있다쳤는데....세상에 퇴근할때까지 300명이넘는사람들이 아직 바닷속에있고 선장은 "가만히 있어라" 한마디 던지고 배밖을 먼저나갔다는소식에 억장이 무너졌어요 직장근처 지하철벤치에앉아 지하철 몇대를보내며 핸드폰으로 실시간상황 보면서 고개숙여 한없이 울었던 기억을...어찌 잊습니까 못잊어요, 아니 안잊을꺼예요. 박근혜, 당신은 그 7시간동안 대체 무엇을했나요? 당신은 정말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입니다 . 대통령 이전에 사람이란것도 인정못하겠습니다. 국민들 눈앞에서 사라지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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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생의 한이다.나의 초등학교 때에는 신종플루 때문에여행을 못간댄다.그래 그 때에는 열이라도 올랐다 싶으면일주일을 쉬었으니 마냥 즐거웠다.중학교 때에는 흙먼지 맡아가며,수련회라는 이름아래 친구들끼리뭉쳐있었다. 수학여행은 아니었다.그리고 바라던 고등학교의 수학여행,나의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다.나는 옆동네에서 아예 다른지역으로 갔기에말 그대로 한 끗 차이로 "살아남았다"그렇게 친구도 잃었다..노란 리본을 볼 때면,타들어가는 촛불을 볼 때면,나의 장래희망을 다시 기억시키게 한다.진실을 밝힐 것,당신들의 더러움을 잘라낼 것,타들어가는 따듯한 촛불을 지킬 것,노란 리본을 흰 국화에 엮어 당당히 추모 할 수 있을 것,잊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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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아침에 만나서 코스트코 갔다가 근처 까페에서 소세지 빵 계란 샐러드 아메리카노 먹으면서 배 침몰했는데 다 구했다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얘기하고 다른 수다도 떨고 집에와서 오후에 물에 뛰어든 사람만 전원구출이고 아직 배에 단원고 학생들이랑 다른승객들이 삼백명 넘게 있다는 뉴스보고 똑같은 화면만 나오는 티비를 보면서 계속 울었다. 아이들 제발 살려달라고 몇일을 울었다. 우리 애들 그때 세살 다섯살인데 같이 울었다. 저안에 언니오빠들 있다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부모님들 맘이 어떨까 생각만해도 심장을 꽉 쥐는거 같이 아팠다. 지금도 교복입고 학생들 여러명 지나가면 세월호 아이들이 생각난다. 나도 이런데 유가족들은 어떨까 생각하면 슬프고 아프고 이런저런 감정뒤에 미안함이 온다.. 옆에 같이 있지 못해서 죄송스럽다. 한사람이라도 더 옆에 있어드려야 할텐데.. 나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 아이를 잃으면 더이상 세상에 있고 싶지 않을꺼 같다. 그때 혼자가 아니란걸 알려주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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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차장님이 배 사고가 났다고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나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저런게 큰 뉴스가 되냐고, 어차피 모두 구출될 거니까 뉴스거리도 안된다며 핀잔을 줬다. 아니나 다를까 전원구출이라는 기사가 떴고, 난 "그럼 그렇지 당연히 구출될 줄 알았다"고 회사사람들에게 말했다. 그게 오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사건이 이렇게 흘러갈 중은 상상도 못했다. 믿을 수 없을 일들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맘이 아프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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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시험을 얼마 안 남겨둔 날이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를 하는데 친구들이 황급히 지금 뉴스를 봐보라고 하더군요. 그때 처음 네이버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도서관 자리는 계속 지키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구조상황을 확인하고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아이들이 무사히 살아있으리라 믿으며 기적을 꿈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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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예비군 훈련 날이었어요. 저희 남편과 도련님이 예비군 훈련에 갔는데 날이 흐려서 훈련이 어떻게 진행될까 했죠. 저는 그때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진도 날씨를 더 정확히 느낄수 있었어요. 비도 왔고 무지 흐렸답니다. 바람도 거셌구요.신랑과 도련님이 예비군에 간 동안 어린 아들을 돌보느라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요. 넘나 놀라운 상황이 전개되어 tv를 계속 보게 되었어요. 하루종일 tv앞에서 가슴졸였답니다. 너무나 슬픈 소식을 그후로도 계속 시청했습니다.그날의 일들이 생생히 기억나요.처음에는 선장을 엄청 욕했고, 그담에는 해경들에 의문점을 던졌는데 다 부질없는 일이었네요.그날의 의문점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너무나 슬픈 수수께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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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후 가벼운 커피타임을 가지고 컴터를 켰는데.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는 "금방 구조 되겠지 " 하고 넘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눈물 나는 소식만 나왔었어요. 제주도여행 관련 여행사를 다니고 있는데 맨날 울리던 고객전화가 너무 조용했던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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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인 나는 재택 근무를 합니다집에서 뉴스를 보고 전원구조라는 말에 안심했고계속 뉴스를 틀어놓고 있었어요그리고 밥할 정신도 없어 집 앞 분식집에떡볶기와 순대를 사러 나가서 아줌마와 같이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아침에 다 구조했다더니지금은 아니라고 하고 대체 무슨 일이냐하며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네요... 그 날 퇴근한 사람과도 저녁에 함께 뉴스를 봤어요.. 정말 멘붕이었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