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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에 집에서 노인정 할머니 파마해주고 있는데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에 TV에서눈을 뗄수가 없어요..한 두시간 정도 있다가 배에 탄 모든 승객 구출했단는 뉴스속보가 나오더니 잘못된정보라고 다시 뉴스가 나왔고 TV속에서 볼때 배가 반이기울어졌고 주변에 배들이 있어서 다 구출할줄 알았는데 결국 우리꽃다운 칭구들은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하고 그 차디찬 바다에서 싸늘한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어찌 그날을 잊을수있을까요~보는내내 답답하고 어떻게 할수없다는 것이 화가나고 짜증나고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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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시각 저는 회사에서 근무 하고 있었구요쉬는 시간에 잠시보았던 인터넷 뉴스에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타고 있던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으나전원구조 했다는 기사를 아직도 기억합니다그러고 수시간이 지난후 진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우리나라의 구조능력이 이정도 밖에 안되는지왜 정부는 변명만 해대는지 이해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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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된 아기를 재우려 품에 안고 소파에 앉아있었어요아기는 잠들었고 저는 TV 뉴스를 켜놓고 볼륨은 낮춰놓았어요TV속에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보았죠 침몰하는 배주위는 구조가 진행되지도 않았고 고요해 보였어요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자막으로 전원구조라고 하여 "구조가 마무리된 화면이구나" 라고 생각했고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2년 반이 지나 7개월이었던 젖먹이 아기는 이제 4살이 되어 유치원에 갑니다.구조되지 못한 세월호 학생,승객들은 지금쯤 어떤 꽃을 피우고 있을까요.. ...아기를 안고 tv를 보며 기도하던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2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그날을 당신은 기억을 못하네요..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이 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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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에 잠깐이나마 "별일아니네?" 라고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절대 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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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기억합니다. 수업중이었고.... 중간에 세월호 라는 이름의 선박이 수백명의 학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를 가는 중에 침몰 중이라는.... 그러나 곧 구조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안심을 하고 있다가 한참 후에 끔찍한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 일주일 전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작은 딸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부모들의 떨리는 심장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기억합니다.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정부의 대처는 이상하리만치 수동적이었고 답답했으며, 저라도 당장 뛰어가서 무엇을 해주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끔찍해서 남편과 나는 아직도 세월호 뉴스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아이들의 영상을 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기억합니다. 그날의 참담함과 그 진실규명의 지지부진함을... 그리고 이 정부가 진실규명을 회피하고 희생자의 부모님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께 합니다. 끝까지 함께 합니다. 내가 가진 모성애로... 내 아이를 사랑하는 그 만큼 끝까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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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당시 사회 초년생으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환자가 많이 없는 한적한 한의원 데스크에서 TV너머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실장님과 보았고, 번복되는 구조소식에 어떻게 저런 보도를 할수 있나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실장님은 그걸보고 다 구했겠지~ 하며 찝찝하다 채널을 돌렸는데 그게 구조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사람이 없어서 졸리다 한적하다 투정부릴때 나보다 어린애들, 조금있음 초년생이 될 아이들이 바다속으로 가라앉고있었습니다. 얼마나 춥고 아팠을지.. 차가운 물속에서 숨을 참고있으면 금방 숨이차 올라오는데 그 아이들은 올라오지도 못하고 그렇게 사그라질줄 누가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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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이 전에는 뉴스도 신문도 보지 않고, 인터넷 서핑도 거의 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소문이든 늘 느리고, 접하지 못하는 세상 소식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래도 불편한 것은 없었습니다. 세상사에 무심한 건 나름 편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어쩌다 그 뉴스를 오전부터 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출근을 하고, 평소라면 무관심하게 스쳐지나갔을 뉴스 헤드라인에서 전원구조 기사를 봤습니다. 전원구조란 말에 그래도 다행이네, 하고 또 무심하게 신경을 돌리려다가, 근데 무슨 사고였는데? 하는 호기심에 기사를 클릭해봤습니다. 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이란 말이 한 번 더 눈길을 끌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게 앞으로 접할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음을...전원구조가 오보라는 기사가 올라오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배에 갇혀있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정신없이 쏟아지고 바뀌던 정보, 정보, 정보들... 뉴스도 기사도 시시각각 변하고 뒤집어지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고, 정확한 상황을 알고 싶어서 온갖 뉴스 채널을 돌려가며 실시간 영상을 보고 또 봤습니다. 잠도 못 자고 밤새도록 밤새도록 생방송을 봤습니다. 에어포켓이 있다더라, 구조할 수 있다더라, 거의 다 잠긴 배를 보며 제발, 제발,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내가 하는 기도가 헛된 희망이 아니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랬습니다.세월호 사건이 유독 피부로 와닿았던 건, 거기에 탄 승객들 중 대다수가 아직 어린 학생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 중 대다수가 시키는 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안전 불감증이 있어 위험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위험한 곳으로 여행을 간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학사일정 중 하나를 그대로 따랐고, 선내 방송 지시대로 가만히 있었을 뿐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더니,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정말 소름끼치도록 와닿았던 현실. 세월호에 갇힌 승객들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또 하나의 나라는 생각. 그들이 운이 나빠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내가 운이 좋아서 지금 살아남아 또 다른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구나. 마치 유체이탈하여 죽어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시감.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세월호 침몰은 전국민이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바다에 가라앉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건이라 전국민이 그 트라우마를 갖게 된 사건이라고.사람들은 누구나 일생 중 삶의 방향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는 일들을 겪게 되곤 합니다. 2014년 4월 16일은 제게 있어 그런 일들 중 가장 큰 줄기가 된 날입니다. 가치관, 신념, 행동 양식 등 많은 것이 그 이전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눈물이 납니다. 바다에 잠긴 세월호를 따라 어두운 방 안에 모로 누워 실시간 영상을 뚫어져라 봤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2년이 넘도록 명확히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현실까지. 그 날은 "벌써 2년 전"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과연 언젠가 "기억나지 않아" 라고 말할 날이 올까요. 제 대답은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 갇혀 있는 9명을 하루 빨리 구조해내고, 사건을 명확히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격히 처벌하고, 이런 사고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부패와 비리 역시 엄벌하고, 어떤 의문점도 남기지 않은 채 모두 해결한 다음에야 비로소 과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되지도 않았고, 해결된 것 역시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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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랜기간 근무했던 회사를 퇴직하고 모처럼지방에 계신 부모님댁에서 뉴스를 접했고 하루종일 티브이 앞에서 눈물도 흘리고 사고 추이를지켜봤어요 잊을 수 없던 건. "전원구출"ㅜㅜ아직도 그 믿기지 않는 그 말에 환호하다 다시 미궁속으로 빠져가던 뉴스를 잊을수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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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어김없이 아홉시 출근을 했다.습관처럼 라디오를 켜고 컴퓨터를 켰지.아침에는 무조건 인터넷으로 뉴스를 먼저 살펴보는 습관이 있어, 바로 알게되었다.진도해상에 여객선이 좌초. 승객 전원구조.그 때만 해도 별일 없이 잘 지나가겠구나 라고 생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뜬 뉴스에는승객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오보였고,미처 구하지 못한 승객이 이백이었으며,배는 계속적으로 기울고 있다고 하였다.하지만 해경이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구조 가능할거란 얘기를 들었다.나는 다시 안심했다.정부와 언론의 말을 믿었다.그로부터 2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있고...돌아왔음에도 부모, 가족의 따뜻한 손에, 이미 얼어버린 얼음장같은 차가운 손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던 분들...이런 현실은 그때 당시의 내 7시간을더욱 또렷하게 만들어준다.몰랐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니,그 때 당시 무심코 지나쳤던 내 모습이너무나도 혐오스럽다.일개 국민의 하나인 나조차도 이런 감정을 마주하는데,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너는 도대체 무얼 느끼고, 무얼 생각하는가?일말의 죄책감 없이 그저 앵무새처럼누군가의 말을 옮기는게 너의 역할이라면.이제 그만하고 내려와라.내려와서 정당한 법의 심판을 기다려라.그리고 달게 받아라.그게 니가 갈 지옥에서 받게 될 형량.그에 대한 그나마의 면죄부다. 2016. 11. 29 국민 심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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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어떤 지역모임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어요. 저는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행사는 결국 예정대로 열렸죠. 행사를 준비해야 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참석했지만 웃고 떠드는 사람들 틈에서 인간으로서의 제 존엄성이 산산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결국 그 모임의 분들과는 더 이상 연락을 끊었습니다. 물론 거기 계신 분들이 모두 이 사건에 둔감하지는 않으셨겠지만, 제가 저를 용서하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날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어요.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항상 그 날이 생각납니다.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누구나 그러하시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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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후 인터넷을 통해 사고를 접하고 너무 놀라 일이 손에 안 잡혔다 하루종일 뉴스만 보다가 발을 동동 구르고 어떻게 하냐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왜 구조를 빨리 안하는지 답답해 죽을 거 같았다대학생, 중학생 아들이 있어서 인지 남일 같지도 않고 눈에 배안에서 발버둥 칠 아이들 생각에 눈물만 났던 생각이 난다몇일을 아니 몇달을 아이들만 생각하면 길에서건 지하철에서건 TV를 보다가도 눈물이 흘렀다뒷일을 부탁한다는 구조대원의 말을 생각하면서 어제도 울었다어떻게 그날을 잊을까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눈에 눈물이 고인다절대 잊을수도 잊어서도 안되는 우리들의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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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이 끝나고 석식을 먹으러 가는데핸드폰을 받은 친구들이 "야 무슨 배 침몰했다는데? 세월호?" 라고 뉴스를 읽으며 한동안 좀 소란해졌었다. 그러나 곧 전원구조라는 기사가 뜨고 나는 "전원구조네 뭐....수학여행가서 죽으면 그게 뭔 개죽음이야" 라고 말하며 핸드폰 화면을 껐다.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나는 학원에 갔는데, 학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같은 고2인데 너희는 여기서 평소처럼 수업받고 있고 몇백명의 똑같은 학생들은 차가운 물 속에 있다는게 슬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서야 뉴스를 확인해보니 전원 구조라고 했던 말은 온데간데 없이 뉴스 화면 왼쪽 상단에 구조자수, 사망자수를 세고 있었다. 그자리에서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며칠에 걸쳐서 실종자 수는 줄고 사망자 수는 늘어갔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저 정도의 수밖에 구조를 못했다고? 후에 sns에서 나오는 "일부러 구조를 안했다", "구조 작업을 시작하지를 않는다" 이야기들을 보고 단순한 선동글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배가 구조하기 힘든 구조로 침몰해서 구조팀이 들어가기 힘든 거겠지, 애써 생각했다. 그리고 약 2년 반이 지난 지금, 그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대학에 입학한 후 이제서야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이해할수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믿어야만 모든 일이 맞아떨어졌다. 세월호 사건 때도 울지 않았는데 최근에서야 수면 위에 오른 세월호 7시간을 보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꿈을 꿨겠지. 그렇게 나는 잊고 있었던 2014년 4월 16일을 이제는 하루 종일 생각한다. 매주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면서 그들의 못다한 꿈을 모자라고 잘난 거 없는 내가 조금이나마 이뤄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나와 같은 꿈을 꿨을 사람들이여,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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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일이 15일이라 너무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회사에 근무중이었고, 10시경 직장동료의 "배가 가라앉는대!!"라는 말을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인터넷기사를 찾아 읽었고 곧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읽고 다행이네 라며가슴을 쓸었습니다. 점심때 다시 구조중이다,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타고있다 라는 소식을 접하고 오후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퇴근후에야 300명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구조받지 못했고, 대부분이 고등학생들이라는 걸 알게됐습니다. 뒷날 새벽 2-3시까지 새로운 소식을 기다리며 마음졸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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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인 20살 여자입니다4월 16일 ...저는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취업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 중 잠시 쉬는 시간에 저는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 데 선생님께서 배타고 수학여행 가던 너희랑 갑인 친구들이 좀 전에 그 배가 침몰을 했다고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랬습니다. 저 또한 마지막 수학여행을 기다리던 학생이었는 데 말이죠ㅠㅠ그러고 난 뒤 선생님께서 모두 구조했단다..다행이다..라는 말을 듣고 정말 다행이었죠..바다는 여름에 들어가도 찬기운이 도는 데..봄이니 얼마나 춥겠어..빨리구조되어야지!잘했네!하고 수업?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끝나고 네이버를 들어갔더니 충격적인 소식이 저를 반겼습니다..오보였다고 몇몇만 구조가 되었다고..그 슬픈 소식을 듣고 저는 눈물이 흘렀습니다.누구보다 더 기뻐하고 행복한 수학여행가던 친구들이었는데..아직도 세월호 뉴스,영상을 볼때면 동영상 속 친구들이 바다에 잠이 들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고 울컥울컥합니다. 늦었지만 하루 빨리 박근혜씨가 사실을 말하고 죗 값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오늘 무척이나 춥네요..그 곳은 따뜻하고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늘 기억하고 잊지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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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저는 취업 준비생이었습니다. 나름의 꿈을 꾸었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그 날도 전 면접장에 있었습니다. 면접관들과, 같은 처지의 지원자들과 이야기 나누던 중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고 났대요. 들으셨어요?- 네, 오다가 뉴스로 봤어요. 전원 구조래요! - 아 정말 다행이네요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마친 뒤 접한 소식은, 면접장에 들어서기 전에 접한 소식과 너무나 달랐습니다.아이들도 저처럼 꿈을 꾸었을 것이고, 그 꿈을 위해 노력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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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하는 도중 사고가 난걸 알았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하나씩 들려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맘졸이고 슬퍼하고 있었습니다.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자식을 그 차가운 물에 두고 있는 엄마는 얼마나 슬플까, 그 마음이 먹먹하여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슬프고 슬프고 또 슬펐습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할 일이 없어서 금요일에 돌아오렴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또 슬퍼서 울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네요.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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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생중계뉴스를 매일 챙겨보던 날이였죠.처음에는 단순 사고군아.... 90프로이상은 구출되겠지...그리고 그생각은 처참히 부서졌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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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은 중학교2학년 학생이지만 그때 그시간은 초등학교6학년이였습니다세월호 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은 담임선생님께 알았습니다초등학교6학년이라 철없던 저는안타까움만 생각하고 평소대로 놀고 평소대로 공부하고 평소대로 웃고떠들었습니다.지금은 그때 왜그랬을까...생각하기도 합니다세월호에 있는 언니오빠들은 정말힘들고 지쳤을텐데 그냥 철없었던 저는 미안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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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일이라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있었어요. 저녁엔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거든요.밥먹는데 텔레비전틀을 왜 트냐는 구박에도 조금만 보겠다며 틀었어요. 방송 도중에 배가 침몰했으며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다 구했다니 다행이네."하며 식사를 마쳤죠.식사 후에 부모님은 출근하시고 저는 공강이고 동생은 오후강의라 게임 한 판 하지며 PC방에 갔었어요. 신나게 게임한 후, 동생은 학교가고 전 저녁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집으로 와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깜짝 놀랐죠. 오보였고 300명이 넘는 사람이 아직 차가운 바다속에 있다니...전 여전히 생일만되면 세월호가 생각나요..차갑고 깜깜한 물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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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사업차 친구와 방문했던 날입니다. 제 삶을 너무나 힘들게 바꾸었던 사업이기에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는 날이기도 하지요, 전 국민들 또한 저마다늬 편린을 가지고 그날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날 오전 11시경 저는 동해고속도로 동해휴게소에서 세월호 사건을 뉴스로 처음 보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봤습니다. 파도가 높은것도 아니고 바람이 강한것도 아니고 비가오는 것도 아닌데.... 더군다나 근처에 섬도 많고.... 그냥 구조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뉴스에서도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떠 있었구요. 그러다 오후에 "전원구조"는 오보이고 다수의 사람이 배속에 아직 남겨져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대다수의 승객이 안산 단원고 학생이라는 사실은 저를 더욱더 힘들게 하였습니다. 제 친구의 하나뿐인 딸이 단원고 2학년이었고 그 아이는 결국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업차 미팅을 끝내고 그날 저녁 같이 출장을 갔던 친구와 참이슬 한잔 하던 중에,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않는 구조상황을 보면서 친구가 힘겹게 얘기하였습니다. " 이런말 하기 그렇지만 이 사건 아무래도 기획의 냄새가 난다" 라고........!!! 저는 그자리에서 "아무리 이 정권이 썩었기로서니 설마 그럴리가...." 라고 반박했지요 그러나 저는 지금 친구의 말보다 더욱 진한 기획의 냄새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 코가 잘못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