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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고3 이던 나는 학교에서 자다 일어났다. 나의 3-2반 교실에서.반 아이들이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가 있어서 배가 침몰했지만 전원구조되었다고 이야기했다.우리들은 다행이다 라고 이야기하며 넘겼고나는 다시 잠을 청했고 다시 일어났을때엔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있었다.그 순간 이후로 그 교실 아니 학교의 모든 아이들의 관심사는 온통 세월호였다.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티비를 틀어놓은채로 실종자 수가 줄어들기만을 기다렸으며몇날 며칠 잠을 잘 수가 없어 새벽 네다섯시 까지 뉴스를 틀어놓은채 멍하니 앉아있었다.몇년째 그 날이 되면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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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의 7시간을 우리들의 7시간으로 바꾸기 위하여1백만 어머니들은 거리에서 울었다.죽은 7시간을 산 자들의 7시간으로 바꾸기 위하여눈비 퍼붓는 삼천리는 여적지 진도 앞바다를 서성거리고 있다.야만의 7시간을 인간의 7시간으로 바꾸기 위하여 시간은 두 해 반을 돌아와서도 하루에 두 번씩 긴 4.16일 뿐이라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빼앗긴 7시간을 역사의 7시간으로 바꾸기 위하여새로, 또 다시 노를 저어 향해를 시작하고 있다. 바다 공동묘지에 갇힌 진실을 인양하는 날까지는암전된 7시간을 증명의 7시간으로 바꾸는 날까지는. -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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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이였어요, 따분한 수업 겨우 들어가며 몽롱하게 앉아있는데 한 교과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구요배가 침몰됐다고, 근데 전원 구조라고별일 아닌일이라 생각하고 친구들이랑 떠들었죠, 분명 뉴스에선 큰일이 아니라고 했으니깐.학교마치고 집가는길에 편의점 게시판에 떠있는 속보를 보고 그제서야 느꼈어요, 내가 지금 웃고떠들 상황이 아니라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들을 생각하면 막 마음이 저리고 눈물이 나요. 두번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않았으면 해요모두가 행복할수있는 나라에서 살고싶어요이 다음해 어른이 되면 나쁜 놈들 죗값을 꼭 치룰수있게 멋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잊지않겠습니다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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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전공시험 전날밤. 공부하다가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평소처럼 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갔다. 사고가 났다했다. 동생과 같은 나이인 아가들이었다. 그대로 폰의 디엠비를 키고 뉴스만 보았다. 혹시나 싶어 뉴스보다가 인터넷에 들어가보고 구조되었다했다.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냈다ㅡ. 살았데. 다행이다ㅠㅠㅠㅠ 라고. 아니었다. 밤새 뜬눈으로 뉴스만보다가 잠이들었다. 그날 내방에서 어떤자세로 누워서 봤는지도 기억난다....참 많이도 울었고 기쁜소식만를 기다렸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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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서관에서 임용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학교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죠 그 후에 실종 기사를 봤어요. 늘 앉는 도서관 110번 자리에 앉아 5분마다 핸드폰으로 기사를 확인했었고, 감정이 격해져서 공부는 하나도 못한 그런 날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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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일하며 매달 15-16일에 장충동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오전 출근길에 계속 뉴스 속보를 서치하며 걱정만 하다 정신없이 업무 처리하다...그래도 밥은 먹고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선배의 말에 둘이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같이 간 선배의 아들이 딱 고2라 엄마로서 더욱 안타까워 했지요. 저 또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지라 밥 먹는 것조차 죄스러웠습니다.어느 순간 국숫집 TV 자막에 속보로"전원 구조"라는 선명한 문구가 쓰여졌습니다.마주 보고 앉아 칼국수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다행이다, 다행이다. 정말 잘됐다...라며 눈물, 콧물 흘리며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로부터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오보였다는 뉴스를 보고...일하다 말고 숨죽여 울고 말았습니다...제게도 이처럼 선명한 그날의 기억이...왜 저들의 머릿속엔 남아 있지 않는 걸까요...대체 무얼 숨기고 싶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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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자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쉬는 날 이었습니다.밖에 많은 양은 아니지만,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지요...쉬는날이라 좀 늦게 일어나 잠이 깨기도 전에 이불속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랬었지요..그리고 하루종일 몇명이 구조 되었는지 계속 체크하고 있었습니다.전 공무원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아니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도 그날 그기억 날씨까지 다 기억 나고 계속 뉴스를 모니터링 했는데...진짜 저 일을 해야 했었던 사람들은 뭘 했으며,더군다나 하나같이 왜 기억을 못 하는거니?안하는거니?나라는 또 왜 이렇게 된거니?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 못 된거냐?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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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된 학생들과 동갑입니다. 저는 스무살, 대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친구들은 아직도 고등학교 2학년으로 남아있다는 것에 가슴이 시리게 미안합니다. 당시 5교시, 사회문화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저희 학교는 등교하자마자 핸드폰을 수거하기 때문에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사회문화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경기도 어떤 고등학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했는데 다행히 전원 구조가 됐다고 해." 저희는 웅성웅성대며 다행이다, 와, 걔네 진짜 놀랐겠다, 등 가벼운 주제로 삼고 잠시 대화하다가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청소시간이 되어 방송부였던 저는 방송실에 청소를 하러갔는데, 방송실 컴퓨터를 켜보니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이미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채 집에 갔을 때 엄마는 뉴스를 틀어놓고 울고, 저도 그 옆에 앉아 망연히 구조소식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분노했을 뿐이었지만, 고등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성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을 차디찬 물 속으로 밀어넣은 자들을 엄벌하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됩니다.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우리는 포기하지 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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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과 다름없이 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누군가의 "수학여행 간 고등학생들의 배에 사고가 났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뉴스 라이브 방송을 켰습니다. 방송사는 YTN이었고 뉴스 속보 중에 "전원구조"라는 자막과 함께 앵커가 소식을 전했고 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업무로 돌아갔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갔던터라 학생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그래도 다들 구조돼서 천만다행이라며 안심했습니다. 퇴근 후 습관적으로 티비를 켰고 뉴스 속에서는 사상유례없는 재난을 알리며 각계 전문가들의 인터뷰부터 구조상황을 연이어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우울한 시간들을 보냈고 또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 조금씩 잊어갔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스스로 스무고개를 끝내고 진실과 마주해주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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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쉬고있을때라 아침에 눈을떠 거실로 나갔는데 뉴스에 세월호 속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안산에서 18년을 살았고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단원고가 개교했습니다그 단원고 학생들이 사고를 당했답니다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안심했지만 오보였습니다아직도 제 오른팔엔 노란팔찌가 있는데그날 그시간 대통령님은 무얼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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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며칠전 회사에서 구입한 크롬캐스트를 테스트해 보기 위해 TV를 틀어놓고 이것 저것 동영상 컨텐츠들을 모바일로 재생해서 TV로 송출이 잘되나 실험중이었다. 아침 9시 좀 넘어 첫 누스보도를 접했는데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서해상에서 조난을 당했고 곧이어 전원 구조라길래 별 일 아닐거라 생각했다. 먼 바다도 아니고 서해안, 게다가 배가 약간 기울었지만 헬기도 떠있는 등 금방 구조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간간히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점심 무렵도 몇명이 구조되었다고 나오는데 아직 남은 인원이 터무니없이 많은거다. 아니.. 언제 다 구하려고? 딱히 구조활동 하는거 같지도 않은데? 경비정 한척으로 어떡하려고? 어라, 배가 많이 기울었네? 그러다가 저녁 무렵을 맞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늦게 나타난 박근혜년 면상보며 기억은 안나지만 뭐라고 욕을 해댄것까지.밝혀내야 한다.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다. 결국 실수로 포장하려 들겠지만 아무리 잘봐줘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이건. 억울하게 죽어간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진실을 인양해야 하고 책임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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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학교폭력으로 인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고통속에 있었다 그리고 이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인터넷을 켠 순간 이 날의 사건을 보았다 전원구조라는 오보와 함께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정신없이 인터넷을 서핑했을까 잠시뒤 나는 물속에서 소리없이 아스라이 죽어간 이들을 보게 되었다"전원구조 라면서..? 아이들이 왜 죽어..?"그 순간 나는 엄청난 분노와 함께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한 국가에 증오를 느껴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는 일개 사람임을 느꼈다 나 스스로도 학교폭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이런 나자신이 아직까지 부끄럽고 그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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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하고 취업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던거 같아. 나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수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그런 아주 평범한 날이었어. 그 평범함에 너의의 소식은 믿을수가 없었는데 현실이라는 것에 말문이 막히더구나.미안하다. 너희도 이런 평범함과 소소함을 느낄수 있었을텐데 그 길을 막은것만 같아 마음이프구나. 절대 잊지 않을게. 영원히 잊지 않을게. 사라진 그 시간의 진실을 밝혀서 너희가 조금은 덜 아팠으면 좋겠다.절대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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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를 다니며 인디밴드에서 노래를 한다. 2014년 4월16일 수요일은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밴드에서 정기적으로 기획공연을 하던 날이였다. 오전에 출근을 해 조금일찍 도착한 탓에 회사 1층 이디아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이디아 천장에 비스듬히 달아운 텔레비전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 화면에선 배가 침몰하고 있었고 전원구조 되었다는 자막이 보였다. 점원에게 무슨일이냐 물었고 점원은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한것 같다고 대답했다. 구조가 되었다는 자막은 찜찜했지만 오보일꺼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한창 오전업무로 바빠서 점심시간이되어 페이스북을 열은 순간 아무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후 멤버들과 상의끝에 당일공연 및 무기한 활동을 하지않는다는 글을 올리고 그저 마음 무겁게 상황을 지켜보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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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에 나는 가깝고도 먼 일본에서 둘째를 낳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했었다 친정은 한국 시집은 멀고 남편은 일이 바쁘기에 혼자서 매일 아둥 바둥 이였지만 그 날은 첫 애를 보면서 태어난지 한 달 된 둘째를 안고 마음 조리며 뉴스를 봤었다고향이 제주고 오빠가 해경이라 텔레비에서 더 눈을 뗄수가 없었다오보인줄 모르고 그래도 사상자가 적다는 안도감에 오빠만을 걱정했던 나다정직하고 바르고 강인한 오빠가 처음으로 우리가족 앞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그 날 이후 였다많은 사람들 처럼 생을 달리한 아이들 때문에 우리가족도 눈물을 흘렸지만 우리 가족의 눈물의 반은그 애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는 오빠의 눈물을 보며 같이 흘리는 눈물이였다그 7시간 동안 나는 어린 두 아이들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구리며 희생자와 오빠의 안위를 걱정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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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출근하면서 사고 소식을 보았습니다.붐비는 서울 2호선 내에서 본 뉴스였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팀원들과 뉴스봤냐며 웅성웅성했죠. 곧 전원 구조 됐다는 소식에 안도했습니다. 안심하고 일하고 있던 중 얼마되지않아 옆자리 대리님이 깜짝놀라며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배 안에 아직 학생들과 사람들이 있다고..한동안 멍했지만 곧 구조 되겠지. 아까 뉴스에서 주변 바다에 미군함도 있다고 했었어..하며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한동안 "말도 안돼 말도 안돼..."를 계속 되뇌었던거 같습니다. 너무 당연했던 구조 프로토콜은 없었고, 본질없이 유병언 쫓기에 급급했고, 희생자 유가족은 보상금 받았으니 그만 하라고들 압박당하고 빨갱이가 선동하고 있다고 오해받기 시작했죠. 저는 유가족의 마음을 감히 이해할수조차 없습니다. 어떻게들 견뎌내신 걸까요? 이번 시위현장에 등장한 고래 풍선 보면서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꼭 진실은 밝혀져야합니다! 박근혜를 비롯한 무능한 책임자들은 자국의 국민을 살리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습니까!! 국가의 수장이 국가적 재난 사태에 7시간동안이나 어디에 있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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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둘째가 태어나는 날이었습니다.병원 TV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과 함께 좀 있다 전원 구조란 뉴스를 보고 안심했던 그 순간이 떠오르네요. 그 사건 이후로 아이들과 관련된 사건/사고 뉴스는 볼 수 가 없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 눈물이 하염없이 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잊지 않겠습니다.가슴에 새기겠습니다.생떼같은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우리 어른들이 값아야할 빚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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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로의 여행 중이었고 낯선 호텔에서 갑자기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습니다. 낯익은 얼굴들이었고 제가 살던 제주가 지도로 보였습니다. 급하게 페이스북을 보았고 어느 누구 하나도 빠질 것 없이 아이들의 죽음을 걱정하였습니다.그 기억이 없다면 그게 그토록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핸드폰만 봐도 됩니다.구글 지도에 내가 그날 어디에 있었는지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지도에 선명한 파란색으로 그어지며 표시가 됩니다.궁금하고 미심쩍은 사람들... 핸드폰만 보아도 됩니다.그 핸드폰에 다 남아있을 것입니다.물론 지웠을 테지만...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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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각나요 제가 처음 접한 세월호사건은부끄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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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루종일 아이를 보느라 TV를 못봤습니다. 저녁에 시댁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배가 침몰했다는데 TV 봤냐." 뉴스를 보고 시댁어른들도 아이 생각이 나서 전화하신 게지요. 아이가 무서운걸 싫어해서 오늘은 TV 켜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그날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일이 벌어진 줄 몰랐습니다. 그 날 이후 며칠을 TV보며 울었네요. 전에는 세상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른들을 원망했는데, 이제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어 세상이 엉망이라고 누굴 탓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했습니다. 작년 4월 16일의 기억은 없습니다. 올해 4월 16일 기억도 안납니다. 하지만 2년전 그날은 너무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