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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여느때와 같이 비몽사몽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놀란 마음에 기사를 읽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그럼 그렇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꾸벅꾸벅 졸다가 점심으로 학식을 먹은 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는 사치를 부린 기억이 난다.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다시 네이버 메인 화면을 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수업 세 시간 내내 기사 목록을 새로고침하며 좋은 소식을 기다렸지만 추가되는 건 사망자 이름 뿐이었다.침몰하는 영상을 수없이 보고 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뉴스를 보며 울고 있었다. 실종자 명단엔 엄마가 가르치던 제자 이름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에어포켓"에 아이들이 있을 확률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찾으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새벽에 잠드는 순간까지 휴대폰을 붙잡고 퉁퉁 붓도록 운 기억이 난다. 그렇게 2주를 힘들어했다.나는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 2 때 세월호 쌍둥이 배인 오나마나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오전 8시경, 유난히 흔들림이 심했던 진도 앞바다에서 배멀미하는 친구를 깔깔대며 놀린 기억이 생생하다. 4월 16일의 참사는 어쩌면 나와 내 친구들한테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 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점심에 뭘 먹었는지, 일주일 전엔 뭘 했는지도 잘 기억 못하는 나지만, 2014년 4월 16일만큼은 2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똑똑히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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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늦게 잠에 들었지만, 그 날은 유난히 아침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좀처럼 TV를보는 일도 드물었는데, 뉴스속보를 접하자긴급상황이 벌어졌구나. 불안감이 몰려왔습니다. 해양경찰로 복무를 마친 바, 그 상황이 어떤것인지를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거친 파도에 온전히 버티기도 힘든 작은 경비함정인데, 저렇게 큰 선체의 배는 눈앞에서 허망하게 이미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이윽고 의구심을 갖게 하는 전원구조와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그 상황인데 언제 인근의 섬에 이송해 행정선으로 갈아탈 여유가 있었는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코 있어서는 안될 상황이 이미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그 다급한 상황에 우선시되어야 할 철칙은 숫자놀음이 아니라 생명구조 였습니다. 오로지 그 시간에도 청와대의 당국자는 브리핑할 자료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코 바다위를 항해해서는 안될 위험한 선박이 운행되게 된 총체적인 부실속에 이미 생명의 골든타임은 가라앉고만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눈앞에서 비통하고 허망하게 바라만 봐야 하는 국민의 원통함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미 출동해도 제대로 손쓸 도리 없게 만들어놓은 배의 상황이 이어집니다. 제가 복무할때도 침몰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미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지났죠.유가족의 비통함에 전경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갑니다. 할 수 있는거라곤 오로지 새벽마다 전 경비함정이 출동해서 수색을 펼치는 일밖에없었죠. 또한 빗발치는 언론사의 문의를 대응하는 일로 비상근무에 돌입했습니다. 말로 차마 솔직하게 꺼내기 힘든 결과속에 그렇게 해서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인간적인 도리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어른으로서 해 줄 수 있는게 없다는 자책감과 부조리의 현실을 해결하지 못한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튼튼한 토양을 만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경험의 결과로 "어른들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하는 교훈을 이미 알았으면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이미 학습의 결과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추궁을 요구하는 형국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당신이 서면보고를 받는 동안에도 국민은 절규하고 있었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우리들의 기억은 그날은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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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소식을 듣고...그냥 단순한 사고일꺼라 생각하고, 일을 했죠. 점심에 구내 식당에서 tv를 통해 화면을 봤습니다. 배가 위태해 보이기는 했지만... 당연히 구조대가 오고 무사히 큰 피해없이구해낼 줄 알았습니다. 중간 중간 뉴스를 찾아보면서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안도하다가 오보라고 하여 좀 놀랬습니다. 아내와 통화하면서도 서로 뉴스 내용 확인하고.. 일은 하고 있지만 집중은 안되더군요.5시 저녁시간이 되어 구내 식당에서 tv를 보니.. 배가 많이 가라앉았더군요. 탑승인원도 수백명이나 되고.. 이 와중에 mbc 이브닝 뉴스에서는 탑승객 사망시 보험료를 계산하는 꼭지를 내보내고 있어서 밥먹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쌍욕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퇴근 중에서 손에서 뉴스를 지켜봤습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대부분 뉴스를 보고 서로 걱정하고 있었죠.그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퇴근길에 뉴스를 보면서, 출근길에 팟캐스트를 들으며 십수번 눈물을 흘렸습니다.기억이 왜 안납니까...... 어떻게 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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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들어가기전에 뉴스에서 전원구조라고 보도하길래 어휴 다행이다하고 들어갔는데 회복실에서 나오니깐 말도안되는 속보와 숫자가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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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그룹에 "배가 기울고 있는데 큰 일은 아니겠죠"라는 글과 뉴스 링크가 올라왔다. 글을 올린 사람이 별 것 아닌 일에 호들갑을 잘 떠는 사람이라 또 오바하네...하고 무시했다. 학생들이 타고 있다고 했다. 전원 구조되었다고 해서 해프닝으로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구조된 학생 수가 달라졌다. 전원 구조는 오보라 했다. 그 날 하루 동안 뉴스 사이트만 몇 번을 들락날락했는지 모른다. 내가 오바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화근일까 창피하고 죄스러워 몸이 콕콕 찌르듯 아팠다. 예사 해프닝이나 예사 사고가 아니었다. 아니, 해프닝이었더라도, 그 소식을 누가 전했더라도, 나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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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흔한 일상과 다를 바 없던 날이었습니다. 통학하는 길에 피로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처음 "그 소식"을 뉴스로 보았고, 곧이어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안심하면서도 굉장히 빠르네.. 하면서 잊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오보 였고, 그날의 7시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대답해야 할 물음으로 남아버렸습니다. 대화 창을 뒤덮던 노란 리본의 물결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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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4년 4월 16일을 더더욱 잊을수 없는 사람중 하나일것이다 우리학교는 같은날 똑같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친구들은 배로, 나와 우리학교친구들은 비행기로 떠났다는 것 .. 그 친구들도 나처럼 수학여행이라고 들떠서 화장하고 , 예쁜옷 입고 갔을텐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서 모든 액티비티를 취소하고 구조가 성공하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친구들과 우리는 일정이 90프로 같았다고 . 참 마음이 아프다 평생을 잊지 못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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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 상사의 차 안에서 "다 구했데요? 쟤네 저것도 추억이겠다. 누가 수학여행가는데 침몰하는 배 안에 있어보겠어요? 다 구해졌다니 다행이네요. 영웅담처럼 이야기하고 놀겠네"라는 말을 한, 나 자신을 기억합니다.나는 그 날이 유독 맑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맑았고, 라디오는 밝았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었습니다.점심을 먹고 들어와 뉴스가 뜨는 것을 보고 [전원구출]이 오보였단 것과 [선수만 남긴채 침몰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아직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단 것을 심각한 얼굴로 들었습니다. 처음엔 YTN을 틀어뒀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SNS에서 아는 동생의 친척할아버지가 세월호에 타있는 <환갑잔치>의 주인공이셨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나는 밤이 늦도록 생존자 명단을 계속 퍼날랐습니다.하지만 더 이상의 생존자가 없었습니다.그 날, 그 맑은 날 했던 내 인생에서 제일 끔찍한 말은 아직도 제 머리 속에 박혀 세월호를 기억하게 합니다.그 날 이후로 나는 더 예민해졌고,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우습게도.. 죄책감이 날 계속 기억하게 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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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잠을 늦게자서 10시쯤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친구가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카톡을 보냈고 세월호가 뭐지 하면서 네이버에들어갔더니 속보라고 뜨는걸 확인, 티비를 틀었더니 침몰하고잇는 세월호모습이 계속 나오고 왼쪽 모서리엔 사망자 실종자 숫자가 보이더라구요 전원구조라길래 와 대단하다 안심하고있었는데 갑자기 오보라면서 사망자 숫자가 하나둘 늘어나는게 보이더라구요. 그날 잠을 못잤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차갑고 무서웟을까 생각하니 저도 너무 무섭고.. 그렇게 몇일동안 뉴스, 네이버 들을 보면서 전원구조하길바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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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유치원을 보내고 입덧으로 고생하느라 침대에 누워서 뉴스보고 휴대폰 만지는게 일상이던 나날 뉴스를 보며 구조 라고 했다가 오보라고 했다가하는걸 보면서도 설마 ...21세기에 게다가 저렇게 배가 넘어가기 전에 다 구조하러 갔으니 언론도 다 관심이 몰려가있으니..하며 그 안에서 사람들이 죽어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채 낮잠을 잤습니다나중엔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했던나라의 대처가 얼마나 한심했는지현장의 대안언론들의 생중계로 확인한 실체에뱃속에서 움직이던 아이를 달래며기적을 바라고 바라고 바랬습니다우리나라 우리나라우리의 나라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아이엄마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그 바다에 서서 울부짖던 부모들의 모습에 그날은 밤새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조심하라던 말에도뉴스를 보며 영상을 찾으며 함께 울던 그날아직은 기적이 있다고 기다리던 그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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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전 친구와 함께 유럽을 여행중이었어요. 뉴스를 접한건 파리의 한 맥도날드 TV에서였죠. 친구와 신나게 웃고 떠들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뉴스롤 보면서. 아직 꽃 피우지 못한 그들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무척 미안했습니다.어른이었음이. 또 이렇게 신나는 일들을 홀로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도 친구와의 여행은 이어졌지만, 완벽히 즐겁진 못했던것 같네요.그들도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커서 이런 여행을 신나게 다녔겠죠?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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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금은 대학생이지만 2014년 당시 저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그날 처음 사고소식을 들은건 2교시 정보시간 자유시간이었어요 처음 전원구조되었다는 오보를 듣고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하교후 티비를 봤을 때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물속에는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 그리고 많은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봤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잊지않겠습니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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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었고 지하철에서 쓰러질 뻔 했습니다. 이후에 수업을 들으면서 전원구조 오보를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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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회사에 병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면접장으로 가던 그 날은 평소보다 정신이 없었다. 지도 어플이 알려주던 대로 갔더니 다른 건물이 었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원래 건물을 찾아가던 그 시간. 택시에서 알게되었다. 수학여행 갔던 아이들의 배가 사고가 났다고.놀란것도 잠시. 곧이어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에 아 그래도,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그리고 그렇게 본 면접은, 최악의 면접 중 하나로 뽑힐만큼 당혹스러웠지만 그보다 안좋은 일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배는 침몰하고 있었다는 것. 실시간으로 기사를 확인하고 어떻게 회사로 돌아가 어떤 업무를 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퇴근 후 집으로 뉴스를 보며 너무 멍했던, 같이 엉엉 울었던 그런 날이었다.잊혀지지 않는,잊어서는 안되는 2014년 4월 16일은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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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1학년 이였죠, 친구들 모두 교실의 티비로 지켜본 매 시간시간 내 또래 아이들이 한명씩 죽어나갈때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그럼에도 세상의 부조리함에 공부만하고 있던 내 자신이 너무나도.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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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수업을 위해 프린트를 출력하러 경제금융대 복사실에 갔었다. 큰 소리로 라디오가 틀어져있었고 "유람선이 침몰했다"라는 소식이 나왔다. 점심시간에 살짝 못미친 오전이었고 "수학여행을 갔던 학생들이 타고있었다"는 소식에 등이 선뜩했던 게 기억난다. 사실 그 오전의 모든 상황이 단 한 군데도 흐려지는 일 없이 기억난다. 동생이 고등학생이었고 동생 역시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왔기 때문에. 가슴에서 덜컥 무언가 떨어진 느낌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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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대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고 2학기 중 이였어요.중간고사 기간이라 공강시간도 도서관에 있었는데이날만큼은 도서관에서 실시간 뉴스보면서 기도만 했어요.전부 구조됐다 했을땐 다행이다 안도했지만그 오보가 사실이 되길 간절히 바랬어요.모두 기다리고 있을 가족, 친구들의 품으로 한명도 다치지않고 무사히 돌아가달라고 믿지도않는 내가 아는 모든 신들에게 다 기도했어요당장 어제의 일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요아직도 가슴이 먹먹한걸 보면 난 아직 2014년 4월 16일의 슬픔을 잊지않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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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날씨가 엄청 좋았던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수학여행 안내장을 들고 기분좋은 마음으로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근데 집에 가보니 부모님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TV 뉴스를 보고 계시고 있었습니다. 별일 아니겠지 하며 신경을 쓰지 않았던 했던 제가 왜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거때문에 수학여행을 비롯한 모든 학교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철이 들지 않아 화만 냈던 제가 원망스럽습니다.우리는 그날의 7시간의 진실을 요구합니다 꼭 진상을 밝혀주십시오 . 세월호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합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매년 기억하겠습니다 Remember 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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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인터넷 뉴스를 보았고 당연히 잘 구조될거라 믿었습니다. 그리곤 잊어버린채 직장에서 하루를 보냈어요...저녁엔 회식이 있어서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커피숍에 들렀는데 그제서야 티비를 보고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알았지요...그리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도 모르게 집으로 돌아온후 몇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마음 아팠던 시간들이었습니다.딸아이가 고3이었던때라 더욱 더 아팠었어요.딸도 2학년때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 왔기에 정말 남의 일이 아님을 절감했답니다.지금도 그때의 눈믈을 기억합니다.가슴저림을 생생히 기억합니다.가족분들의 고통에 찬 몸부림과 외침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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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후..청소를하다 뉴스에서 기사를 봤네요그래도 구했다는 소리에 다행이라며 안심하고 다른채널을 돌려보며 집안일을하다 오후에 아이를 하원시킨후 아이와 놀아주고..저녁에 다시 뉴스를 보았을때 오보였다는 소식을 보고 충격받았어요눈물도 나구요..아이가 왜우냐고 물어..형아들이랑 누나들이랑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배에 있는데 바다에 빠졌다 얘기를하니 아이가 울지말라며 괜찮아괜찮아 서로 다독이며 보던게 생각나네요그때만 해도 구할수있을꺼란 믿음이 있었는데 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