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왠일이야, 뭐야, 말이돼, 대한민국이 눈앞에서 물에 빠진 아이들을 못 구해?? 부모님들 어째ㅜㅜㅜ 뭐 이런 걱정과 의구심, 설마하는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내다 퇴근후에는 거의 티브앞에서 계속 붙어 있었던거 같아요. 눈물을 주체 못하며ㅜㅜㅜ 이거 뭐야 뭐지ㅜㅜㅜ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 나라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가 왜 미개국이고 우리가 왜 이런 대접을 받고 사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피지도 못한 여린 꽃들은 우리의 가슴에서 눈물로 피어났고 우리는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죄인으로 이렇게 남아서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네요ㅜㅜ 빚을 갚을 수나 있을까요?나눌수나 있을까요? 세월호의 아이들로 인해 왜 우리가 올바른 유권자가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과정을 알아가고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바보처럼 함부로 취급 되어져서는 안되는 대한민국의 주권자임을 배우고 있습니다.우리는 소리 높혀야하고 우리는 외쳐야합니다 . 그들에게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하챦은 존재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
점심이였습니다 밥을 먹다가 한참을 식당에서 떠나지 못하고 앉아 있던 기억이 납니다 그아이들을 만날때가지 기억할겁니다
-
군 복무 중...전역을 2달 앞두고 있을 때 아침에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급하게 사무실 tv를 켰습니다. 바깥 하늘은 무거운 회색 빛이었습니다.처음에는 배가 침몰중이라지만, 구조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하기에 다들 무사히 구출되나보다 싶었습니다.해경의 빠른 조치가 이루어지고 다들 구할 수 있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오후에 전원구조 오보라는 소식이 떴고, 사망자가 한 두명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완전히 뒤집혔는데도 실종자 수가 100명 단위인 것을 보았을 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생활관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 뉴스만 틀어놓고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사고랑 전혀 상관이 없었던 저도 그 날을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뻔뻔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하거나 말도 안 되는 거짓으로 변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만 빼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 섬광 기억이 발동한다는게 말이 되는지...양심을 팔아먹은 이들은 끝내 이길 수 없다는걸 보여줍시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해냅시다!
-
아이를가진 부모로서 세월호를 생각하면마음이 찢어집니다..죽을때까지 세월호를 잊지못할꺼 같습니다,또한 그날같은일은 반복되지않을것입니다.
-
저는 작년에 공시생이였어요하루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이곳 저곳 커뮤니티에서 최근 화제가 되는 이슈거리를 잠깐 보는게 하루의 시작이였습니다그러던 중 세월호 속보를 보게 되었지요약 백단위의 승객들과 함께 좌초 중이라는 뉴스였는데 그냥 단순 헤프닝이겠거니 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이슈거리들을 보고 있었는데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갔습니다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보고 안도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 보도 되었다는 정정기사에 망연자실 하였죠.. 간절히 아이들과 승객들이 무사히 구조되길 바랬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늘어나는 사망자와 실종자 수한동안 심각한 좌절감과 이 사태에 대한 분노로 지냈었습니다
-
4월 16일 이교시 수학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선생님께서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간 학생들의 배가 침몰했다고 그래도 많이 안다친 것 같다고 다행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여느날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본 뉴스는 충격 그 자체 였습니다.아침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던게 머릿속에서 끝없이 재생되었지만 눈앞의 현실은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아무렇지도 않게 제가 하루를 보내는 동안 어쩌면 저의 대학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친구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그날을 어떻게 차마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그날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들은 어떻게 아직 그자리에서 뻔뻔하게 권력을 누리고 있을까요
-
그 날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원구조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안심했고 당연히 구조될 것이라 믿고 더이상 뉴스를 보지 않고 일했습니다. 퇴근 후 친구를 만나러 가는길이 다시 핸드폰을 붙잡고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사는 오보였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긴박한 보도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정도 밖에 능력이 되지않았나 실망도했고 어린 학생들 얼마나 추울까 너무 걱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수 있는 것은 친구와 함께 무사히 구출되길 기도하는 것과 실시간 구조뉴스를 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몇개월이 지나도록 지금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월호는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그 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그 큰 참사를 잊었다면 그 사람은 뇌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 생각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나라의 지도자라니 어둠이 앞을 가립니다. 제발 이제라도 사실을 낱낱히 밝히고 죄를 달게 받으세요. 언젠간 꼭 진실은 밝혀집니다!
-
한국보다 한 시간 늦은 이 곳에서 여느때처럼 출근을 하고, 일을 했다. 고객 문의를 처리하고 커피를 한 잔 하려고 일어난 때 뉴스에서 뒤집힌 채 뱃머리만 떠있는 세월호를 보았다. 일을 하면서도 계속 뉴스를 확인했다.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기다리며 회의를 다녀와서 또 뉴스를 확인했다. 그렇게 퇴근할 때 까지,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네이버 뉴스를 봤다.
-
학교에서 뉴스를 접했다. 그 뒤로도 꾸준히 뉴스를 확인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별 실감이 없었다. 저녁에 과외를 하고 나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다시 휴대전화로 뉴스를 봤다.그제서야 구조가 어려워졌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라는 게 실감이 났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
공장에서 일하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구조" 속보 를 보고 가슴 쓸여 내렸습니다.점심을 먹고 한참 지난뒤에 오보였다며 모니터속에 나오는 헬기며 해경선이며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주위 고기잡이배들을 보면서 무사하기만을 빌었습니다.반복되는 뉴스 아나운서들의 특전사 해병 잠수사들..등등의 구조원들이 대규모 투입된다는 소식에 구조되길 바랬지만 ....별이되고 꽃이 되어 버린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겠습니다.
-
그날은 초6아들의 수학여행 전날 이었다.난 아들의 수학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 하려고백화점 에 갔었다.평소 같음 아침뉴스를 챙겨보는데 그날은 외출준비로 뉴스를 못보고 나왔더니함께간 동네엄마가 사고 소식을 이야기 해주었다.많이 놀라고 걱정 했지만 ,중간에 전원 구출이라고인터넷에 잠깐 뜨길래 우리 일행은 큰사고가 아닌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오보였고 세월호가 점점바다에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놀라서다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 하였다.내아이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세월호사고소식에 나는 4월16일 하루종일 뉴스를 확인했고 희망적인 소식을 간절히 바랬다!다시 그날로 돌아갈수 있다면.....애들아! 어서 나와야돼!!!
-
단원고, 여느때와 같이 비몽사몽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가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놀란 마음에 기사를 읽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그럼 그렇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꾸벅꾸벅 졸다가 점심으로 학식을 먹은 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는 사치를 부린 기억이 난다.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다시 네이버 메인 화면을 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수업 세 시간 내내 기사 목록을 새로고침하며 좋은 소식을 기다렸지만 추가되는 건 사망자 이름 뿐이었다.침몰하는 영상을 수없이 보고 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뉴스를 보며 울고 있었다. 실종자 명단엔 엄마가 가르치던 제자 이름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에어포켓"에 아이들이 있을 확률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찾으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새벽에 잠드는 순간까지 휴대폰을 붙잡고 퉁퉁 붓도록 운 기억이 난다. 그렇게 2주를 힘들어했다.나는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고 2 때 세월호 쌍둥이 배인 오나마나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오전 8시경, 유난히 흔들림이 심했던 진도 앞바다에서 배멀미하는 친구를 깔깔대며 놀린 기억이 생생하다. 4월 16일의 참사는 어쩌면 나와 내 친구들한테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 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점심에 뭘 먹었는지, 일주일 전엔 뭘 했는지도 잘 기억 못하는 나지만, 2014년 4월 16일만큼은 2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똑똑히 기억이 난다.
-
새벽늦게 잠에 들었지만, 그 날은 유난히 아침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좀처럼 TV를보는 일도 드물었는데, 뉴스속보를 접하자긴급상황이 벌어졌구나. 불안감이 몰려왔습니다. 해양경찰로 복무를 마친 바, 그 상황이 어떤것인지를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거친 파도에 온전히 버티기도 힘든 작은 경비함정인데, 저렇게 큰 선체의 배는 눈앞에서 허망하게 이미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이윽고 의구심을 갖게 하는 전원구조와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그 상황인데 언제 인근의 섬에 이송해 행정선으로 갈아탈 여유가 있었는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코 있어서는 안될 상황이 이미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그 다급한 상황에 우선시되어야 할 철칙은 숫자놀음이 아니라 생명구조 였습니다. 오로지 그 시간에도 청와대의 당국자는 브리핑할 자료수집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코 바다위를 항해해서는 안될 위험한 선박이 운행되게 된 총체적인 부실속에 이미 생명의 골든타임은 가라앉고만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눈앞에서 비통하고 허망하게 바라만 봐야 하는 국민의 원통함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미 출동해도 제대로 손쓸 도리 없게 만들어놓은 배의 상황이 이어집니다. 제가 복무할때도 침몰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미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지났죠.유가족의 비통함에 전경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갑니다. 할 수 있는거라곤 오로지 새벽마다 전 경비함정이 출동해서 수색을 펼치는 일밖에없었죠. 또한 빗발치는 언론사의 문의를 대응하는 일로 비상근무에 돌입했습니다. 말로 차마 솔직하게 꺼내기 힘든 결과속에 그렇게 해서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인간적인 도리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어른으로서 해 줄 수 있는게 없다는 자책감과 부조리의 현실을 해결하지 못한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튼튼한 토양을 만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경험의 결과로 "어른들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하는 교훈을 이미 알았으면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이미 학습의 결과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추궁을 요구하는 형국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당신이 서면보고를 받는 동안에도 국민은 절규하고 있었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우리들의 기억은 그날은 잊지 않습니다.
-
회사에서 소식을 듣고...그냥 단순한 사고일꺼라 생각하고, 일을 했죠. 점심에 구내 식당에서 tv를 통해 화면을 봤습니다. 배가 위태해 보이기는 했지만... 당연히 구조대가 오고 무사히 큰 피해없이구해낼 줄 알았습니다. 중간 중간 뉴스를 찾아보면서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안도하다가 오보라고 하여 좀 놀랬습니다. 아내와 통화하면서도 서로 뉴스 내용 확인하고.. 일은 하고 있지만 집중은 안되더군요.5시 저녁시간이 되어 구내 식당에서 tv를 보니.. 배가 많이 가라앉았더군요. 탑승인원도 수백명이나 되고.. 이 와중에 mbc 이브닝 뉴스에서는 탑승객 사망시 보험료를 계산하는 꼭지를 내보내고 있어서 밥먹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쌍욕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퇴근 중에서 손에서 뉴스를 지켜봤습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대부분 뉴스를 보고 서로 걱정하고 있었죠.그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퇴근길에 뉴스를 보면서, 출근길에 팟캐스트를 들으며 십수번 눈물을 흘렸습니다.기억이 왜 안납니까...... 어떻게 잊나요.....
-
수술들어가기전에 뉴스에서 전원구조라고 보도하길래 어휴 다행이다하고 들어갔는데 회복실에서 나오니깐 말도안되는 속보와 숫자가떴습니다..
-
페이스북 그룹에 "배가 기울고 있는데 큰 일은 아니겠죠"라는 글과 뉴스 링크가 올라왔다. 글을 올린 사람이 별 것 아닌 일에 호들갑을 잘 떠는 사람이라 또 오바하네...하고 무시했다. 학생들이 타고 있다고 했다. 전원 구조되었다고 해서 해프닝으로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구조된 학생 수가 달라졌다. 전원 구조는 오보라 했다. 그 날 하루 동안 뉴스 사이트만 몇 번을 들락날락했는지 모른다. 내가 오바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화근일까 창피하고 죄스러워 몸이 콕콕 찌르듯 아팠다. 예사 해프닝이나 예사 사고가 아니었다. 아니, 해프닝이었더라도, 그 소식을 누가 전했더라도, 나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
정말 흔한 일상과 다를 바 없던 날이었습니다. 통학하는 길에 피로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처음 "그 소식"을 뉴스로 보았고, 곧이어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안심하면서도 굉장히 빠르네.. 하면서 잊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오보 였고, 그날의 7시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대답해야 할 물음으로 남아버렸습니다. 대화 창을 뒤덮던 노란 리본의 물결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
나는 2014년 4월 16일을 더더욱 잊을수 없는 사람중 하나일것이다 우리학교는 같은날 똑같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친구들은 배로, 나와 우리학교친구들은 비행기로 떠났다는 것 .. 그 친구들도 나처럼 수학여행이라고 들떠서 화장하고 , 예쁜옷 입고 갔을텐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서 모든 액티비티를 취소하고 구조가 성공하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친구들과 우리는 일정이 90프로 같았다고 . 참 마음이 아프다 평생을 잊지 못할것 같다
-
첫 직장, 상사의 차 안에서 "다 구했데요? 쟤네 저것도 추억이겠다. 누가 수학여행가는데 침몰하는 배 안에 있어보겠어요? 다 구해졌다니 다행이네요. 영웅담처럼 이야기하고 놀겠네"라는 말을 한, 나 자신을 기억합니다.나는 그 날이 유독 맑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맑았고, 라디오는 밝았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었습니다.점심을 먹고 들어와 뉴스가 뜨는 것을 보고 [전원구출]이 오보였단 것과 [선수만 남긴채 침몰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아직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단 것을 심각한 얼굴로 들었습니다. 처음엔 YTN을 틀어뒀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SNS에서 아는 동생의 친척할아버지가 세월호에 타있는 <환갑잔치>의 주인공이셨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나는 밤이 늦도록 생존자 명단을 계속 퍼날랐습니다.하지만 더 이상의 생존자가 없었습니다.그 날, 그 맑은 날 했던 내 인생에서 제일 끔찍한 말은 아직도 제 머리 속에 박혀 세월호를 기억하게 합니다.그 날 이후로 나는 더 예민해졌고,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우습게도.. 죄책감이 날 계속 기억하게 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
전날 잠을 늦게자서 10시쯤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친구가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카톡을 보냈고 세월호가 뭐지 하면서 네이버에들어갔더니 속보라고 뜨는걸 확인, 티비를 틀었더니 침몰하고잇는 세월호모습이 계속 나오고 왼쪽 모서리엔 사망자 실종자 숫자가 보이더라구요 전원구조라길래 와 대단하다 안심하고있었는데 갑자기 오보라면서 사망자 숫자가 하나둘 늘어나는게 보이더라구요. 그날 잠을 못잤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차갑고 무서웟을까 생각하니 저도 너무 무섭고.. 그렇게 몇일동안 뉴스, 네이버 들을 보면서 전원구조하길바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