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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아홉시경 운동을 위해 찾은 헬스클럽 런닝머신 TV에서 사고 속보를 보았습니다. 당연히 구조될 거라 생각했고 역시나 운동을 하면서 살펴보니 전원 구조라 했지요. 하지만 포털 사이트 다음에 올라온 기사의 속보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원 구조 아니고 못 나온 사람 많다는, 핸드폰 압수하고 못 쓰게 한다는 단원고 학생의 댓글. 걱정하며 그 댓글을 캡쳐해두었는데 그게 설마 진실이리라고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 사진은 아직도 제 갤럭시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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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셀러리맨의 분주한 화요일 아침...출근하자마자 접한 세월호 침몰 뉴스에 놀라고 잠시 후 전원 구조 소식에 안도했습니다.그러나 곧 이어 터져나온 정정 뉴스는 차라리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손이 잡히지 않았었습니다. 지금도 세월호 노란 리본을 보노라면 눈물이 솟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화가 납니다.2014년 4월 16일... 모니터 화면에 뒤집혀 있는세월호를 보면서 그저 안타까워할 수 밖에 없었던 무력하고 가슴 아픈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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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학교 학원 집 이런날이였다 근데 기사가 떴다 배가 침몰했다고 아직 구조중이라고 많은 학생들이 아직 물 속에 있다고 그 기사를보고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하지못했다 아직도 그 이야기만들으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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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를 봤습니다. 전원 구조 라는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그리고 점점 달라지는 기사를 보고 마음 졸렸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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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이 사고가 났다고 하더군요. 뉴스를 보고 있었죠.그런데 전원 구조라고 하더라구요. 아..다행이다. 별일없겠구나....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은 부모님들곁에 있겠지하고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아침에 눈을 뜨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다시 보기위해 컴퓨터를 켰지요. 그 시간 이후로 저의 시간도 저의 삶도 바뀌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 한국에선 왜 하지 않았을까. 미국 뉴스에서도 나오던 생존시간, 바다온도..구조를 어떻게 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한국방송에선 나오지도 않더군요. 같은시간에 보험금과 보상금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세월호는 죽을때까지 잊을수도 잊지도 못할 이야기구나. 나의 죄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절대로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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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지하도를 지나가는데 어느 가게에서 튼 티비에 여고생들이 나와 얘기를 하고 있고, 자막에 전원구조 이렇게 뜨기에 별일 없겠지 하고 지나갔다. 일을 보고 점심을 먹고 나니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고,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내 생각이나 마음 속 생각도 아직 기억나는데....어떻게 그 날이 기억나지 않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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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가 많은 인원을 태우고 제주도를 향하다 돌연 침몰! 하지만...전원구조라는 뉴스를 접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건만... 그것은 오보! 생방송 카메라에 쌍욕을 하던 이상호기자... 그제서야 세상이 달리보이더라. 그 후 같은 뉴스도 여러 채널을 돌려 재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제 아무리 팩트여도 일단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기래기들은 멀리 떠나고 정직하고 올바르며 정의감 있는 뉴스는 언제쯤 모든 채널에서 공통분모로 적용될까? 그 날이 조속히 와 세월호 같은 일이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소망한다. 또 이러한 나쁜 인간들이 다시는 세상에 활보하지 않았으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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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때문에 해외로 나온 저는 시차로 인해 점심 이후에 알았습니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인 아이들이였기 때문에 현실이 너무 와 닿았고 바닷속에 있을 아이들과 살아나온 아이들의 죄책감,그 상황 속에서 아이들의 의연함과 침착함이 타국에서 매일 눈물 흐르게 했습니다.사실 지금도 그러구요....사건 직 후 아들한테 전화해 많이 생각난다고...잘 지냐구....통화하면서 터지는 울음을 참아가며 했던 생각이 납니다전 4월 16일 그 날을 엄마된 심정에서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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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시간, 한창 공부해야할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던 나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방과후 수업을 듣고있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없던 윤리와 사상 수업이었던지라 맨뒷자리에 앉아서 책 밑에 휴대폰을 숨겨놓고 몰래 페이스북을 하거나, 네이버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이것저것 뉴스를 탐독하던 중, 나와 동갑내기인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를 보았고 얼마가지않아 전원구조라고 뜨길래 별일 아닌줄 알았다. 하지만 그 뉴스는 오보라고 정정되었고,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온갖 지상파와 종편 뉴스에서는 떠들썩하게 가라앉는 세월호를 다루고있었다. 이것이 내 그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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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고 있습니다. 쌍둥이 제 딸들이 그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갈 수도 있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나 사회에 나와서나 그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그래서 애들에게 말합니다. 두 몫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팽목항으로 내려가던 그 길이 진실로 가는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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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3이었다. 학교에서 폰을 걷어가서 몰랐지만 국어시간에 알게되었다. 구조자 명단이 계속해서 바뀌었고, 안산에서 전학 온 친구는 수업시간에도 계속 폰을 확인했다. 아는 이름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울면서 계속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날의 분위기, 하굣길에 본 저녁 뉴스, 집에 온 날 안고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눈물 흘리셨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하루가 생생한데 왜 그날을 덮으려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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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미안합니다.. 아침뉴스부터 하루 꼬박 이 채널 저 채널 돌려가며 소식만 듣고 발만 동동 구르고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해주지못해 죄송합니다.. 왜 그렇게 충분히 구조할 수있음에도 이유도 영문도 모른채 억울하게 마음먹지도 않은 생을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을 밝혀내야 할 일은 우리의 몫인데.. 미안해요.. 염치없지만 하늘에서 조금만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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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들놈 군대간다고 먹고싶은거 없냐 해서 장어 먹으러간 날이었어요. 휴학하고 집에서 여느때처럼 늦게 일어나 장어집으로 가던길에 소식을 들었죠.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를 듣고 아효 다행이네~, 별 생각없이 장어를 먹었었네요. 그러다 사실은 사람들이 배에 갇혀있었다는 걸 알았고 지지부진한 구출성과를 뉴스를 통해 들으며 훈련소에 들어갔었던 것 같아요. 그냥....되돌릴 순 없지만 잘못한 사람은 잘못한대로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그정도의 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형벌일지, 양심일지, 아니면 후세의 심판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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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납니다9시에 근로장학생이라 과사무실에 출근했습니다항해를 배우는 저였습니다과사무실에 전화가 빗발쳤습니다.기자들의 인터뷰요청 전화였습니다, 교수님들과 만나서 사고 원인을 선박운용학적으로 듣고싶다했습니다.다 구조되었다고 그래서 진짠줄알았는데.그렇게 제 동생과 동갑내기인 예쁜아이들과제 꿈이었던 해양경찰 전공이었던 항해술모두 날려가는것을 허무하게 바라보았습니다.7시간, 왜 기억이 안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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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16 일...지금도 그날에 삽니다. 처음 보도를 접하고 큰배가 버텨주기를 구조될때까지 바라고 있는중 전원구출 이란말에 용수철 튕기듯 일어나 박수를치고 만세를 부르고 정말기쁜마음 으로 언니랑 늦은아침을 먹던중 오보란보도에 티비앞을 못떠나고 잠 도오지않는 날들을 보냈 습니다 공중파 종편의 보도는믿을수 없어서 인터넷 방송 찾아 들으며 실시간으로 모든것을 지켜봤습니다. 분노하고 울다가 한숨쉬다가 ..차마 가족분들께 는 힘내세요 라고 건넬수가 없습니다 그냥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그날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지나가는데 기억은 그날에 멈춰서 있습니다 옆에서 누가..아이들 이 있었으면 대학생 인데 재수한 학생도 있었을텐데 이럽니다 그런데 저는 응? 벌써 그렇게 됐어? 어제일 같은데... 그렇게 대꾸하고 시간만 너무 빨리 가는구나 ... 느끼지요 잊혀지지 않는 세월호 라고 하는것이 맞겠네요 우리모두의 사건이 되어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날은 나 입니다 이렇게 저는 세월호 아이들과 매일 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실 ... 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밝혀지는 날 을 기다리며 곁에 있어 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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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중 티브에서 애들 전윈 구조라고 나온때부터봐는데 이번선거는 새누리당 완승 이라고 직윈들 에게 했는데애들은 못구하고 죽어야할 선윈들과 국정윈 간첩만구하고 난 울었습니다 진짜로 많이 울었씁니다그리고 많은걸 내려놓고. 많은걸 용서했습니다그런 당신은 무얼해씁니까청화대에서. 수술 피로폰. 비아그라. 이제 뮈가 나올까요내려오세요. 개성공단은 왜 패쇄합니까 당신이 뮈대 순실이가 하라고 하니까당신은 그자리에 있으면. 안되는 사람 입니다차라리 청화대 뒷산에 올라가세요그리고 뛰어내리세요 아쉬울것도 없잔아요잃을것도 없고. 아~~~. 혹시 애들 때문이라면 나중에 순실이랑 순복이랑 잘 해준거니까 먼저가세요기시기전에 동생분들게. 꼭 사과하고 가세요그래야 엄니랑 아부지 얼굴보제. 알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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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들으러 가야하는 날이였고 준비 도중 어머니와 전화를 하는데 뉴스 봤니? 학생들이 많이 탄 배가 침몰해서 구조중이야 어쩌면 좋을까.. 하고 말씀을 하시기에 처음 뉴스 속보를 찾아 보았고, 하루종일 동기들과 함께 핸드폰으로 속보를 확인했습니다. 그 날의 제 기억입니다.절대 잊지 않으며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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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수업이 공강인 날이라 조금 늦은 시간까지 늦잠을자고 거실으로 나왔습니다거실에 나오니 엄마가 티비를 보고 계셨고 어떡해 라는 말만 반복하고 계셨습니다그날 저는 한참 티비를 바라봤죠...아이들이 무사하길 기도하면서요.지금 생각하면 저는 그날 엄마와 함께 집밥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는데 그 친구들은 얼마나 무섭웠을지 도움이 못되서 미안한마음이 가득합니다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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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서 여느 때처럼 일을 시작하려던 차, 아침 뉴스에서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다. 굉장히 큰 배가 가라앉은 것 치곤 사상자가 하나도 없다길래 기적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곧 잘못된 보도라는 정정 보도와 함께 안타깝게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생명의 불빛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라. 계속되는 뉴스 보도를 보면서 왜 저렇게 답답하게 구하지 못할까, 아직 갇혀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울까, 부디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나길 바라고 또 바랬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현 정권은 대응이 늦은 것 뿐 아니라 남아 있는 유가족들의 넋조차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다. 한 나라의 원수라는 사람이 7시간동안 그 행적이 묘연한데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신에게 일말의 모래알만큼의 양심이, 인간으로의 존엄이 남아있다면 자진해서 해명하고 죄를 지었다면 죗값을 치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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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들어가기 전에 동기들이 수학여행가던 배가 가라앉았는데 다행히 전원 구조가 되었다라는 말을 들었었다. 하지만 수업마치고 나서 내가 본 뉴스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저녁내내 휴대폰과 티비를 보면서 제발 한명이라도 구조가 되기를 기도했었다. 너무 허무했고 화나고 우울했던 날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