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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이 끝나고 석식을 먹으러 가는데핸드폰을 받은 친구들이 "야 무슨 배 침몰했다는데? 세월호?" 라고 뉴스를 읽으며 한동안 좀 소란해졌었다. 그러나 곧 전원구조라는 기사가 뜨고 나는 "전원구조네 뭐....수학여행가서 죽으면 그게 뭔 개죽음이야" 라고 말하며 핸드폰 화면을 껐다.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나는 학원에 갔는데, 학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같은 고2인데 너희는 여기서 평소처럼 수업받고 있고 몇백명의 똑같은 학생들은 차가운 물 속에 있다는게 슬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서야 뉴스를 확인해보니 전원 구조라고 했던 말은 온데간데 없이 뉴스 화면 왼쪽 상단에 구조자수, 사망자수를 세고 있었다. 그자리에서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며칠에 걸쳐서 실종자 수는 줄고 사망자 수는 늘어갔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저 정도의 수밖에 구조를 못했다고? 후에 sns에서 나오는 "일부러 구조를 안했다", "구조 작업을 시작하지를 않는다" 이야기들을 보고 단순한 선동글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배가 구조하기 힘든 구조로 침몰해서 구조팀이 들어가기 힘든 거겠지, 애써 생각했다. 그리고 약 2년 반이 지난 지금, 그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대학에 입학한 후 이제서야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모두 이해할수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믿어야만 모든 일이 맞아떨어졌다. 세월호 사건 때도 울지 않았는데 최근에서야 수면 위에 오른 세월호 7시간을 보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꿈을 꿨겠지. 그렇게 나는 잊고 있었던 2014년 4월 16일을 이제는 하루 종일 생각한다. 매주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면서 그들의 못다한 꿈을 모자라고 잘난 거 없는 내가 조금이나마 이뤄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나와 같은 꿈을 꿨을 사람들이여,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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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일이 15일이라 너무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회사에 근무중이었고, 10시경 직장동료의 "배가 가라앉는대!!"라는 말을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인터넷기사를 찾아 읽었고 곧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읽고 다행이네 라며가슴을 쓸었습니다. 점심때 다시 구조중이다,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타고있다 라는 소식을 접하고 오후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퇴근후에야 300명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구조받지 못했고, 대부분이 고등학생들이라는 걸 알게됐습니다. 뒷날 새벽 2-3시까지 새로운 소식을 기다리며 마음졸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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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인 20살 여자입니다4월 16일 ...저는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취업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 중 잠시 쉬는 시간에 저는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 데 선생님께서 배타고 수학여행 가던 너희랑 갑인 친구들이 좀 전에 그 배가 침몰을 했다고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랬습니다. 저 또한 마지막 수학여행을 기다리던 학생이었는 데 말이죠ㅠㅠ그러고 난 뒤 선생님께서 모두 구조했단다..다행이다..라는 말을 듣고 정말 다행이었죠..바다는 여름에 들어가도 찬기운이 도는 데..봄이니 얼마나 춥겠어..빨리구조되어야지!잘했네!하고 수업?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끝나고 네이버를 들어갔더니 충격적인 소식이 저를 반겼습니다..오보였다고 몇몇만 구조가 되었다고..그 슬픈 소식을 듣고 저는 눈물이 흘렀습니다.누구보다 더 기뻐하고 행복한 수학여행가던 친구들이었는데..아직도 세월호 뉴스,영상을 볼때면 동영상 속 친구들이 바다에 잠이 들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고 울컥울컥합니다. 늦었지만 하루 빨리 박근혜씨가 사실을 말하고 죗 값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오늘 무척이나 춥네요..그 곳은 따뜻하고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늘 기억하고 잊지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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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저는 취업 준비생이었습니다. 나름의 꿈을 꾸었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그 날도 전 면접장에 있었습니다. 면접관들과, 같은 처지의 지원자들과 이야기 나누던 중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고 났대요. 들으셨어요?- 네, 오다가 뉴스로 봤어요. 전원 구조래요! - 아 정말 다행이네요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마친 뒤 접한 소식은, 면접장에 들어서기 전에 접한 소식과 너무나 달랐습니다.아이들도 저처럼 꿈을 꾸었을 것이고, 그 꿈을 위해 노력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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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하는 도중 사고가 난걸 알았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하나씩 들려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맘졸이고 슬퍼하고 있었습니다.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자식을 그 차가운 물에 두고 있는 엄마는 얼마나 슬플까, 그 마음이 먹먹하여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슬프고 슬프고 또 슬펐습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할 일이 없어서 금요일에 돌아오렴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또 슬퍼서 울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네요.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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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생중계뉴스를 매일 챙겨보던 날이였죠.처음에는 단순 사고군아.... 90프로이상은 구출되겠지...그리고 그생각은 처참히 부서졌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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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은 중학교2학년 학생이지만 그때 그시간은 초등학교6학년이였습니다세월호 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은 담임선생님께 알았습니다초등학교6학년이라 철없던 저는안타까움만 생각하고 평소대로 놀고 평소대로 공부하고 평소대로 웃고떠들었습니다.지금은 그때 왜그랬을까...생각하기도 합니다세월호에 있는 언니오빠들은 정말힘들고 지쳤을텐데 그냥 철없었던 저는 미안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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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일이라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있었어요. 저녁엔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거든요.밥먹는데 텔레비전틀을 왜 트냐는 구박에도 조금만 보겠다며 틀었어요. 방송 도중에 배가 침몰했으며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다 구했다니 다행이네."하며 식사를 마쳤죠.식사 후에 부모님은 출근하시고 저는 공강이고 동생은 오후강의라 게임 한 판 하지며 PC방에 갔었어요. 신나게 게임한 후, 동생은 학교가고 전 저녁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집으로 와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깜짝 놀랐죠. 오보였고 300명이 넘는 사람이 아직 차가운 바다속에 있다니...전 여전히 생일만되면 세월호가 생각나요..차갑고 깜깜한 물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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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사업차 친구와 방문했던 날입니다. 제 삶을 너무나 힘들게 바꾸었던 사업이기에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는 날이기도 하지요, 전 국민들 또한 저마다늬 편린을 가지고 그날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날 오전 11시경 저는 동해고속도로 동해휴게소에서 세월호 사건을 뉴스로 처음 보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봤습니다. 파도가 높은것도 아니고 바람이 강한것도 아니고 비가오는 것도 아닌데.... 더군다나 근처에 섬도 많고.... 그냥 구조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뉴스에서도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떠 있었구요. 그러다 오후에 "전원구조"는 오보이고 다수의 사람이 배속에 아직 남겨져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대다수의 승객이 안산 단원고 학생이라는 사실은 저를 더욱더 힘들게 하였습니다. 제 친구의 하나뿐인 딸이 단원고 2학년이었고 그 아이는 결국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업차 미팅을 끝내고 그날 저녁 같이 출장을 갔던 친구와 참이슬 한잔 하던 중에,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않는 구조상황을 보면서 친구가 힘겹게 얘기하였습니다. " 이런말 하기 그렇지만 이 사건 아무래도 기획의 냄새가 난다" 라고........!!! 저는 그자리에서 "아무리 이 정권이 썩었기로서니 설마 그럴리가...." 라고 반박했지요 그러나 저는 지금 친구의 말보다 더욱 진한 기획의 냄새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 코가 잘못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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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에서 근무중에 인터넷으로 사고를 접했습니다 사고를 접하고 상황을 지켜 보면서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좋아 했는지... 그런데 거짓이더군요 화가 났습니다 우리 나라의 재난관제 시스템을 비난했습니다 정부의 대처에 화가 났습니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비보에 슬퍼하고 분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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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고소식을 듣고 중간중간 기사를 확인하다가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동료들과 기뻐했습니다.그 때 들었던 생각은 그래도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이 정도 사고쯤이야 하는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그러나 단 며칠만에 그 신뢰와 안도감은 분노와 절망으로 바뀌게 되었죠.늦게까지 생존했던 아이들이 남긴 페이스북과 카톡글을 모두 허위글 로 몰고 급기야 카카오톡회사 압수수색까지 하여 그 흔적을 지우려는 정부,구조전문이 아닌 인양전문업체를 현장에 보내고 국내외 다른 도움의 손길을 모두 거절한 채 아이들을 모두 수장시킨 이 정부는 어찌 이리도 뻔뻔할 수 있나요?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잊지 않을겁니다.이제라도 관련자들은 양심고백하여 유가족과 국민에게 백배사죄하고 죄값을 치루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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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병장이었죠. 군대에서 설마...하면서 TV만 보고 있었어요.후임들이 다행히 전원구조했다고 하길래"역시! 그래,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는 오보였고, 믿을 수 없는 참사가 결국 일어났어요.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채 피지도 못한 꽃송이들이 물에 잠겨 있는데 그 누구도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얼어가는 꽃송이들과 꿈에 그리던 제주여행으로 한껏 마음이 부풀어올랐던 승객들에게 아무런 말도 도움도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우리 국민들. 아이들 살려내라고 안 할 테니 진실만이라도 제발 밝혀달라고 울부짖는 유가족과 이를 무시하는 박근혜씨와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새누리당 의원들. 저는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박근혜가 세월호를 침몰시켰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야 하는 박근혜씨는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 지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었던 만큼,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면 생존자는 훨씬 많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그림자에 기댄 추악한 악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더 이상은 되지 않도록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당신들의 더러운 만행을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수준 높은 국민 여러분, 이 7시간을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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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친구랑 둘이 찜닭을 먹고 있었어요. 2년도 더 지난 날인데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당시 식당 뉴스에서 세월호 소식이 나오고 있었어요. 어떡해 하며 보다가 바로 전원 구조라고 뜨기에 "아 다행이다! 사고가 났지만 다 살았으니 나중에 오히려 재미있는 추억거리로 남을 거야" 라고 얘기하며 식사를 마쳤는데... 그게 오보일 줄은... 아니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그렇게 많은 생명이 빛을 잃을 줄이야... 얼른 모든 것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은 책임을 져서 그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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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마치고 친구들과 같이 있는데 그날따라 잘 들어가보지도 않는 네이버에 들어가보고 싶었어요. 들어간 네이버에는 기사들이 많았고 밑에 조그맣게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가 있었죠. 사진 상으로는 배가 그리 커보이지도 않았고 이런일이 있을 수도 있지 곧 구조될거고 아무일 없을거라 생각해서 친구들에게 "배가 침몰했데"라고 말했던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학원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족들이 뉴스를 보고있더군요. "세월호 침몰" 사실 이것만 봤을떄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뉴스를 자세히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꺠닫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탑승객분들 그리고 유가족분들께는 평생 마음에 안고 살아가야할 사건이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모두가 잊고 살아가는 듯해서 슬프네요. 세월호의 진실 꼭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잊지 않겠습니다.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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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4월 20일인 제 생일 즈음에는 기분이 좋지 않기 마련인데, 그 어떤 해보다 가장 우울한 해였습니다.흐린 아침학교에 가는 지하철에 앉아서 가던 길에 보았던세월호 사건.그 아침 아니 그 날 오후,그 날 저녁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단원고 300명이 살아나올 수 있겠지하고 믿었었는데그 많은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 묻게 되었습니다기억하고 또 기억합니다.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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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소식을 접해서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놀란마음에 호들갑을 떨며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직원이 다 구조 됬다고 걱정안해도 된다며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그 후 오보가 났다는걸 보고 아무렇지 않게 생했던 그 순간이 누군가는 생사른 오가던 시간이었던것을 알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쩌면 잊어버릴수 있는 평소와 똑같은 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7시간도 꼭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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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오전 수업 시간에 인터넷기사와 페이스북의 기사로 통해 알게되었어요. 제가 예대생인데,학교에서 들리는 음악소리들이 다른 날보다 많이 위축되어있었어요. 다들 손에 안잡히는거죠. 많은 오보속에서 ,좋은 소식만 기다리는 상황이 마음이 아펐어요. 한명 한명 구출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심장이 덜컥 덜컥거렸네요. 우리는 기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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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업무관련 회의를 하던 중 뉴스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접했습니다.그 동안 늘상 있었던 사고처럼 곧 구조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그 동안 많은 사건사고를 봐 왔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을 봐 왔습니다.길지 않은 삶에서 이처럼 대책없고, 책임없는 사건은 없었습니다.그렇게 무능하다고 탓했던 몇몇 정권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역대 최악의 정권이며, 후세에게도 창피한 시대로 남을 것 같습니다.절대 창피한 역사를 물려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어느 때 보다 우리 모두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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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 중이었습니다.사무실의 누군가로부터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얘기를 듣고 인터넷 포털 기사를 보았을때,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정말 아무런 의심없이 구조가 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 것이 뚜렷히 기억납니다.그래서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처음 났을때 기쁜 마음에 뒤 쪽에 앉아계신 부장님을 향해 "전원 구조되었데요!" 라고 소리치며 말씀드린것도 기억이 납니다. 오보임이 판명되었고, 슬픈 소식의 기사들을 접하면서 왜 모든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업무 중간중간에도 새로고침을 누르며 인터넷 기사를 확인한 것이 생각납니다.그 날은 집에 가서 새벽까지도 잠이 들기 어려워 깜깜한 방안에서 핸드폰을 보며 기사를 본 것도 기억이 납니다. 평소 잘 하지 않던 기도까지 하며 누군가는 부디 살아서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 안기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그 다음날 오전 출근하여,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가지신 차장님께서 업무 도중에 오열을 하며 안타까워 하신 얼굴, 사무실에서 그 차장님자리의 위치, 그 차장님께서 휴지로 눈물을 닦으신 제스처까지 기억합니다.저는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한 두 번 본 정도의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그러나,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 느낀 먹먹함과 간절한 바람,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 그 날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저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뚜렷한 성향도 없어서 정치적인 잣대로 그 날의 책임들을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한 인간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것도 아직 세상을 다 살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져물어 간 그 슬픈 날의 기억을, 2년채 되지 않은 기억을 어떻게 모른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의 슬픈 기억들에서 헤어나지 못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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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당시 했던 말을 기억힙니다.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는 나에게 가족은 국민 여러분입니다." 국민이 가족이라는 당신은 새파란 아이들이 차디 찬 바다 속에서 명을 달리 할 때 무엇을 했나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들이 너무나 가엽고 불쌍해서 지금도 떠올리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추모하러 갔을 때도, 고 박예슬 학생의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에도 노란 리본을 여전히 달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과 유족들만이라도 짐을 덜어주길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을 위한, 우리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 세대가 기억하고 우리 다음 세대가 기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