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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타업체 사람들과 함께 할일이 있어서 오전업무를 하고난 후 밥을 먹다가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안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에이 배만 아깝게 됐네 그래도 애들이 다 살았다니 다행이지 라며 이야기 했던것도 기억나네요... 오보 번복 후 하루종일 뉴스 검색을 하며 애를 태웠었습니다... 말할수 없는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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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주일 전, 심지어는 어제 먹은 점심 메뉴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4월 16일, 그날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 저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 당시엔 주변엔 해경도 있을거고 전부 무사히 구조됐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갔지만, 첫번째 강의가 지나도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고 그 세월호에 친척이 타고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배 한 명이 울고있는 것을 보고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핸드폰만 붙잡고 구조되었다는 기사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저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기억이 나지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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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에서 틀어진 TV 생중계를 보며 점심 시간내내 회사동료들과 곧 구조되겠다며 순진한 희망을 담아 얘기나누며 식사를 마쳤는데, 구조하지 않은 우리나라 대통령.. 지금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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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와다름없는바쁜일과중뉴스속보에너무놀라고당황했던것도잠시이후쏟아지는오락가락하는뉴스점점빨려들어가는배를보며눈물만흘리던아무것도할수없었던무력함잊을수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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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우울해하고 있었는데,여객선 사고를 알리는 속보가 TV에 나타났습니다.전원 구조되었다는 문장이 당당히 떠오른 화면을 보며, 다행이네, 그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적어도 오전까지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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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이였고, 점심특선으로 만원대에 맛있게 밥을 먹을수 있는 한정식집으로 지인과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인천 계산동에 위치한 주유소 옆 한정식이였고, 한상 푸짐하게 나오는 반면 리필은 안된다는 식당 아주머니에 작은 푸념도 해보았습니다.티비에는 큰 배가 뒤집어져있었고 다행스럽게도 전원구조라는 뉴스 헤드라인이 몇분째 올라와있었습니다.안도의 한숨이였지만 그것은 곧 두려움의 숨소리로 이어져갔습니다. 그때 그날을 나는 뚜렷히 기억합니다.왜 당신은 기억을 하지 못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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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해서보니 다른 분들 말씀이, 안산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기위해 탔던 배가 사고 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저도 교단에 서는터라 쉬는시간마다 기사를 살펴보았지요. 곧이어 이어지는 "전원구조" 소식.아.. 정말 다행이다 천만다행이야 리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보라는 소식에 얼마나 마음이 참담했던지요.저는 그 날 퇴근 후 막바지 벚꽃구경을 가기로 약속이 있었습니다. 새하얀 벚꽃잎이 무수히 떨어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었지요.그 때는 별 생각없이 찍었던 사진인데, 돌이켜보면 세월호 사고와 오버랩 되어 너무나도 슬픈 사진이 되어버렸습다.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은 4월 16일의 기억이 또렷한데, 도대체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을 아는 이는 하나도 없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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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 실에 있었어요. 컴퓨터로 뉴스를 확인하고 친구에게 여객선이 침몰 했는데 전부 구조 되었다고 말하고 계속 과제를 했죠. 그런데 구조가 되지 않았다고 보도가 나왔어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와서 뉴스만 한 없이 계속 봤어요. 아직도 너무 슬퍼요. 아침 마다 눈물이 나요. 16학번들을 제대하고 처음 만났는데 돌아오는 길에 그아이들이 살아 있으면 여기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요. 분노해요. 무엇이 도대체 이렇게 우리의 가치를 더럽히고 있는 지. 그 사람만 알고 있겠죠.7시간의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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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날 외부 미팅이 있어서 본부장님과 길을 나섰다. 세월호가 좌초되었고다행히 수학여행 중이었던 단원고 학생들도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들려온 소식은 참담했다. 나는 황망히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본부장님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운전을 했다. 우리는 그 날도 어김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참사는 내 일은 아니었으나 마치 내 일인 것 처럼 두렵고 아팠다. 누군가는 대변인의 입을 빌어 자신의 자리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바로 발뺌하였으나-백번 양보하여 아니라고 치더라도. 아니, 양보해도 아니라고 볼 수가 없다.-정직하게 제가 맡은 일과를 치뤄내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 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리 없다.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고 거짓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데 그 날 저녁 -어쩌면 다른 날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후의 날들은 내게 감정적으로 다 엇비슷했다- MBC에서 어떤 기자가 단원고 학생들에게 가입된 여행자 보험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인터넷에서는 배에 에어포켓이 있니 없니, 어두워 구조가 어렵다고 하는데 오징어배를 빌리는건 어떤지, 바지선을 보내는 건 어떠니.. 하며 설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동부화재 - 휴대폰 분실시 20만원 보상. 혐오라는 감정을 확실히 알았다. 3. 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그 날의 일을 분 단위로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서면 보고든 카톡 보고든 직접적으로 상황을 들은 적이 없으며그저 언론을 통해서만, 인터넷을 통해서만 파악하면서도촉각을 세우고 새 소식을 기다렸다. 내게 도울 수 있는 힘이나 어떤 장비나 조직을 움직일 권력이 있는게 아닌데도 도울 방법을 찾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우리는 그랬는데. 정작 권력 있는 자는 셀프감금이라도 당했는지"참다참다 견딜 수 없어" 대략 일곱시간만에 중대본에 행차하고한술 더 떠 배 안에 갇혀 있는건지 되물을 줄이야..4. 그래서 한없이 참담하다.사고와 더불어 정부의 무능에 놀라 한달 가까이 충격에 빠져 지냈다. 온 세상이 다 불쌍하면서온 세상이 다 무서웠다. 이제 머지 않았다. 머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자꾸만 이 이야기를 해야하고진실을 알아야 하고 반드시 치유 받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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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일하느라 소식을 전혀 모르다가 잠시 회의 하느라 동료들과 모여서 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그 소식이 꼭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일처럼 느껴졌던 그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직장동료들과 이게 무슨 일이냐며 세월호 탑승자 전원이 얼른 구출 되기를 바라고 다시 일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할 줄은 몰랐네요. 물론 매듭이 지어져도 잊지 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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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학교를 다녀왔습니다. 학교에서 배가 침몰했단 얘기를 들었지만 곧 구조됬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야자가 끝나고 집에와서야 그것이 오보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였고, 그렇기에 더더욱 잠을 쉬이 이룰수없었습니다. 기억할게, 잊지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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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동네병원에 건강검진 결과보러 갔다가 병원 대기실 tv에서 나오는 세월호를 보며 너는 당연히 구조가 됬을거라고 생각했고 전원구조라고 방송도 나왔고 그래서 수요오전예배도 드리고 장례식장에 위로 예배도 다녀오고 했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전원구조가 오보라고...그래도 너만은 구조되었을거라 확신하고 안산 단원고를 갔는데 그 강당에서 내가 본것은 두려움...공포...설마설마...아니기를 아니기를 그날의 그 두려움은 평생 잊지 못한다그날의 미안함은 평생 잊지 못한다그 미안함이 지금도 길위에 있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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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큰애 급식봉사하러 큰애 학교에 가야하는 날이었어요. 빨리 나가야하는데 워낙 큰 일이라 뉴스를 틀어놓고 나가질 못하다가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자마자 튀어나갔어요. 혹시나 싶어서(우리나라 뉴스를 못믿는 병) 가는길에 cnn을 듣는데 브레이킹 뉴스로 이름이 뭐라는 항공모함 함장(?)이 세월호 바로 옆에서 모든 장비를 준비하고 인명구조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있다 허가만 떨어지면 들어간다...한국정부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땐 왜 자꾸 한국정부의 허가를 기다린다는 말을 반복하는지 이해를 못했어요...유난히 정신없던 하루를 보내느라 인터넷 한번 확인 못하고 밤늦게 집에 와서 tv틀고 정말 몇주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올수가 없었어요...그 항공모함이 세월호 정말 바로 옆에 있었어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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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분명 기억납니다!아이들 등교시키고 쇼파에서 커피한잔하고라디오를 듣고있다가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들배가 침몰했다고해서 뉴스를 틀었더니..세상에ㅜ 속보로 모든방송으로 나오고 있었어요.심장이 뛰고 빨리구조되길 기다리던 중전원구조라는 자막을보고 울면서 박수를 쳤었죠.그리고 다시 오보라는 슬픈소식이 전해지고ㅜ그때부터 티비를 보지않는 나는 계속 티비만보면서 생존자확인만 기다렸어요그때 내가입고있던 옷,커피종류,카톡내용도기억이 납니다.분명히 기억납니다!7시간의 비밀을 하루빨리 풀어주세요!!애들이 왜 차디찬 바다에 있어야만 했는지를요!!숨기는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지금도 세월호 말만 들어도 눈물이납니다..꼭 밝혀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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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워홀러로 지내고 있을때였다.간혹 한국 소식이 궁금해 웹뉴스를 보곤 했는데 그날은 단원고 아이들을 태우고 수학여행을 떠나던 세월호가 침몰 했다는 소식이였다.놀란 마음에 자세히 보니 "전원구조" 안심하고 창을 닫았다. 그리고 몇시간 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너희 나라 큰일난거 아느냐?"그럼 알지 전원 구조 했다는데."무슨 소리냐 거의 대부분이 못 빠져나오고 침몰 됬다는데"순간 내 눈을 의심 했었고 내 귀를 의심했다.다시금 뉴스를 보니 사실이였다.배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고 아이들도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허망했다, 슬퍼했다, 분노했다.그날의 슬픔도 분노도 나는 뚜렷이 기억하는데왜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기억이 안난다는 것인가?꼭 끔찍한 벌 받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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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어요. 그날 탔던 버스 번호도, 신갈 오거리 부근에 왔을 때 그 기사를 읽었던 것도 다 기억이 나요. 몇 년 뒤에도 그날만큼은 기억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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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 있는 백석대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세월호가 침몰 됐다는 기사를 보고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냈는데 엄마에게 온 답변은 전원구조 했으니 걱정하지말라고 하셨어요.열심히 수업 듣고 난 후 다시 본 네이버 기사에는 전원구조 오보! 늘어나는 실종자 수 ..저는 기억합니다.당신이 기억나지 않는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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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행사가 있어 행사장소로 이동 전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 안 뉴스에서 배가 침몰 중이지만 전원 구조하였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무서웠겠네 그랬나보다, 하고 식사를 마친 뒤 행사장소로 이동했습니다.강사의 강연이 끝나고 마쳐야 할 업무가 있어 행사장 근처 모교의 컴퓨터실로 향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업무를 보았습니다.참, 당시의 저는 신입사원이었고, 함께 행사참여를 하기 위해 이동했던 동갑내기 파견직 경리 직원은 행사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파견직까지 불렀냐"라는 말을 듣고 행사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제 잘못도 아닌데 너무나 미안했고, 비정규직 처우의 열악함과 그 말을 뱉은 이의 악마같음에 치를 떨었습니다.업무를 마친 뒤 귀가 하는 도중, 이른 점심식사 이후 처음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자 전원 구조는 오보였으며 구조작업이 한창이지만 물살이 거세 상황이 어렵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이제는 그 배가 거진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뉴스를 보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 안에 있다고? 설마, 어떻게든 꺼내오겠지, 생각했습니다.귀가하니 부모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티비를 보고 계셨습니다. 너는 저 부모의 심정을 절대로 알 수가 없다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가족을 이미 뒤집혀 가라앉아버린 배 안에 둔 이의 마음을 어찌 감히 짐작하겠습니까마는, 눈을 떼지 못하고 뉴스를 계속 지켜보았습니다.설마설마....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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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2년하고도 7개월이넘었습니다진짜 잊을수가없어요 그날 ... 아침에 배가 침몰되고 아이들이 전원구조되었단소식까지들었을땐정말 별일아니었습니다. 일하는와중이었는데 모두 "다행이다" 한마디하고 잊혀질 이야깃거리였어요 근데 그 보도가 오보라는사실에 충격에 말도못했죠 사실 여기서부터 에러였어요 근데 백번양보해서 잘못전달됐다 할수있다쳤는데....세상에 퇴근할때까지 300명이넘는사람들이 아직 바닷속에있고 선장은 "가만히 있어라" 한마디 던지고 배밖을 먼저나갔다는소식에 억장이 무너졌어요 직장근처 지하철벤치에앉아 지하철 몇대를보내며 핸드폰으로 실시간상황 보면서 고개숙여 한없이 울었던 기억을...어찌 잊습니까 못잊어요, 아니 안잊을꺼예요. 박근혜, 당신은 그 7시간동안 대체 무엇을했나요? 당신은 정말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입니다 . 대통령 이전에 사람이란것도 인정못하겠습니다. 국민들 눈앞에서 사라지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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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생의 한이다.나의 초등학교 때에는 신종플루 때문에여행을 못간댄다.그래 그 때에는 열이라도 올랐다 싶으면일주일을 쉬었으니 마냥 즐거웠다.중학교 때에는 흙먼지 맡아가며,수련회라는 이름아래 친구들끼리뭉쳐있었다. 수학여행은 아니었다.그리고 바라던 고등학교의 수학여행,나의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다.나는 옆동네에서 아예 다른지역으로 갔기에말 그대로 한 끗 차이로 "살아남았다"그렇게 친구도 잃었다..노란 리본을 볼 때면,타들어가는 촛불을 볼 때면,나의 장래희망을 다시 기억시키게 한다.진실을 밝힐 것,당신들의 더러움을 잘라낼 것,타들어가는 따듯한 촛불을 지킬 것,노란 리본을 흰 국화에 엮어 당당히 추모 할 수 있을 것,잊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