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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4월 16일 저는 10시부터 11시반까지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속보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당연히 전부 구조 되겠지" 하며 별것 아닌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접하고, "다행이네"했으나 결국엔 오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가안전 체계와 비상사태에 대한 대처에 매우 실망했습니다.사무실에 앉아서 계속 일은 하고 있었는데, 특히나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들이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업무에 집중이 잘 안됐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국민들은....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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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열었던 포털사이트.속보가 떴습니다.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탄 배가 진도 근처 바다에서 좌초 됐다고.잠시 후 잔원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그런데 퇴근 후 접한 소식들은 온통 비보.배와 함께 속수무책으로 가라앉았다던 아이들.이미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그저 안타까워하고, 눈물 흘리고, 아파할 뿐.그 때까지만 해도 재해라고 생각했습니다.곧이어 시작된 진실 공방.어떤 언론은 차마 상상할 수도 없던 이야기를 진실이라 했고, 어떤 언론은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자며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거쳤다고 했습니다.피해자들이 납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명확한 원인도 밝히지 못하고, 책임자들의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세월이 지났습니다.기억은 옅어지고 진실을 알고자 했던 의지 또한 약해졌지만,세월호. 한 마디에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은 답답하기만 합니다.우리는 병들었다고 생각합니다.일상을 영위하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져 외면했던 현실로 인해 마음의 병이 생기고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그럼에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잊지 않는 것.사건을. 세월호의 승객들을. 최선을 다했던 일부의 승무원들을.당장의 비난을 막기 위해 감추고 포장했던 진실이 어떻게 돌아오는지를.무능하고 무책임한 한사람, 한사람에서 시작되는 비극을.꼭 기억하고.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도록 할겁니다.잊혀지지 않기에.정확히 기억하고 싶은.세월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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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입사동기 대리님과 함께 외부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교육 듣느라 뉴스를 제대로 확인 못 해서 대리님이 말씀해주신 뒤에야 알게 되었죠. 곧 포털사이트를 뒤져 뉴스들을 보기 시작했고 대리님과 저, 같은 교육장에 있던 사람들은 초반만 해도 별다른 일 없이 강의를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사고 뉴스라고 생각했고 분명 구조대가 갔겠지 하는 생각, 그리고 곧 전원구조라는 (오보였지만)보도가 떴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고 곧 강의장은 세월호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로 가득해졌습니다. 저는 그래도 아 지금 저기 날씨 상황이 안좋아서 구조가 늦어지는 거겠지, 결국 큰 희생 없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나 안일했던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그 이후 강의시간에 들어온 강사님은 우선 묵념을 하고 강의를 시작했고, 그날은 그렇게 오래오래 아프게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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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으로 부산대학병원 10층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네요...티비에서 계속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는데 얼마나 허망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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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뉴스를 좀 보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YTN어플에서 오는 알림을 다 받아 읽었었어요. 그날도 뉴스알림들이 쏟아졌고, 사무실에서 틈틈이 폰을 몰래 훔쳐보던 중 배가 침몰해서 몇백명이 위험하단 알림을 보고 소리내서 놀랠뻔했어요. 그런데 곧 전원구출이라는 알림이 오더라구요. 아 다행이다 별일아니네 하고 다시 일을 했는데 좀이따가 오보라는 알림이 또 떠서 굉장히 황당하더군요! 탑승객 중에 수학여행가던 고등학생들이 많다고 해서 심란한 마음에 하루종일 일이 잡히질 않았어요. 고등학교 친구들이 괜히 생각나 카톡으로 말을 걸어 다같이 세월호 학생들을 걱정했지요. 다들 고등학생이던 시절이 있었고, 뭔가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본적이 있었으니까 남일처럼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비록 입시스트레스에 항상 피곤하긴 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그 모든 것을 함께하던 친구들이 있어서 즐거웠는데, 아직도 그 두근거리던 어린 마음이 생생한데.. 그것을 앗아가버린 사고라니.. 정말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입을 모아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때 자주가던 커뮤니티에서는 누군가 세월호 탑승자를 빙자해서 거짓댓글을 남겼다가 무척 욕을 먹었었어요. 점심시간에는 밥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회사지하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갔던거같아요. 런닝머신만 30분을 했는데 앞에 놓은 TV를 뉴스채널로 돌려놓고 계속해서 생존자 명수를 확인하고 있었어요. 절망적인 숫자에 눈물을 참으면서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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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입학이 확정되고 여느 때처럼 대학교 도서관에 있다가 스마트폰으로 세월호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호에 관한 뉴스가 오보라는 사실...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황당했습니다.언론이 많이 망가졌다. 그리고 기자가 기레기라고 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설마설마 했지만.. 이런 중요한 뉴스가 오보로 나갔다는 사실에... 정말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하지만 지금 7시간의 미스테리가 거의 풀려가고 있음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어른으로써 다짐하고 또 다짐해 봅니다.단원고 아이들아, 이제 너희들이 왜 그렇게 하늘 높은 곳에 갑자기 가게되었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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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 중의 하루여서제가 무엇을 했는지그날 무슨 일정이 있었는지기억나지 않습니다.오직 기억하는것혼란 스러웠다는 것무엇하나 정확한 내용이 없이오보에 오보가 계속 되었고어떤한 메뉴얼도시스템도 없이언론도 국가도 혼란 속에정신을 못차리던 것만 기억이 납니다.혼란이대로 가만이 있으면언젠가 이 어른들의 무능과부폐한 정부로 인해또 다른 선한 생명이혼란속에 죽임 당할 것이라 생각 되니지금도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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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6 분명히 기억합니다그때당시 익산소방서에서 119구급대원으로그 전날(15일) 야간 출근을 했습니다.이상하게 평소보다 출동이 많았죠. 밤새 구급차를타고 출동을 했습니다. 16일 그날... 아침 9시에 퇴근해서 집에오니 어머니께서 티비를 켜놓으셨더라구요저는 샤워후 지친몸을 뉘었습니다.아이고.. 배가 침몰했는데 다행히 다 구조했단다이러는 어머니 말씀을 잠결에 듣고,"휴...다행이다,.. 아니 근데.. 진짜 다 구했다고?? 이상한데.. " 이런생각을 하며 다시 잠들었죠.한참 자고 일어나니 난리가 났습니다.바닷속으로 잠기고 있는 세월호와... 그주변에서 아무것도 하지않는 해경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내가 무슨옷을 입고 어떤심정으로 티비를 보았는지 기억이 나는데...당신들은 기억이안난다구요??대한민국 국민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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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나고 울분이터지는데가족들은 오죽할까요지치지마시고 기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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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협력사로 출근했습니다. 처음에 배가 가라앉는다는 뉴스를 보고 어라? 뭐지? 했습니다. 그래도 배가 천천히 침몰하길래 아 다 구할 수 있겠구나 했고전원 구조 뉴스를 보고 아 다행이네~ 했습니다.점심시간쯤인가요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200명 넘게 갖혀있다는 뉴스를요 그리고 이미 배는 뒤집어져 있었고요. 당황하고 황당했습니다. 그리고 뒤집어진 배라면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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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집중이 잘 안 되어서 핸드폰을 들여다봤어요.그랬다가 참사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다 구했다고하길래 다행이네 하고 공부하다가 저녁에 집에와서 실상을 알게되었습니다.기억을 잘 못하는 편인데도 그 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쓰면서도 목이 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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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저는 대학 4학년이었고 전공수업 중에 휴대폰을 만지던 친구가 고등학생들 수학여행가던 배가 침몰했다고, 그런데 전원구조했다고 얘기해줬어요. 그리고 그런가보다 다행이다하고 넘기곤 학교도서관 지하매점으로 점심을 먹으러 내려갔어요. 그런데 무슨 상황인지 매점 텔레비젼에서는 전원구조는 오보였다고, 대다수가 구조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속보가 나오고있었어요. 그 자리에 있던 학부생들 그리고 교수님들이 멍하니 텔레비전 속 상황을 지켜보고있었어요. 모두가 기억하는 그 때 그 상황, 기억이 나질않는다구요? 도대체 뭘하고있었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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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그날 회사에서업무를보다가고등학생 아이들이탄배가뒤집어졌다는소릴듣고동료와함께 마음졸이며울고있었습니다저는그날 인터넷 검색창 새로고침을 몇번씩해가며 구조소식을 애타게 비다렸습니다저는 그날 빠른 구조가이뤄지지않았음과그 긴박한상황에학생들 탈출을 저지한 배 안내방송에 울었습니다그날저녁 저는 브라운관에가식적인얼굴로 공주마마 행차 흉내내는 닭한마리를 보고분노했습니다그날저는 점심으로 제육볶음에 생마늘 8조각 밥 반공기를 먹고 마늘냄새 난다고 회사동료에게 핀잔을들었습니다그날저녁 동료와함께음식점에서 술을 마시며진지하게 이민에대해 얘길 나눴습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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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가기위해 택시를 타던 순간,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사실을 알고 눈이 깜깜했습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겠지요....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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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막 업무를 시작하려고 하던 때였어요.항상 틀어두던 라디오에서 짤막하게 속보가 나왔고,다른 것보다 안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단원고"란 학교 이름이 나오자 마자 회사 사람들에게 내가 나온 고등학교 옆 학교라면서 아는 척을 했었죠.그 땐 모든 사람들이 구조됐다고 속보가 떴기 때문에 뭐도 모르고 신나서 그랬던 건데.. 반가움이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이 되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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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여느때와 같이 등교하기 직전300여명의 아이들이 타고있는배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학교를 갔는데수업 중 참담한 기사 내용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면서 하루종일 수업 내용은 들어오지 않고 뉴스 기사만 바라보던 기억이 또렷하게 납니다.한동안 침울함과 갑갑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던 그 시기를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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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머신위에서 처음으로 접하게 된 세월호 침몰...그리고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여기저기 채널 바꿔가며 보았습니다 전원구조라면 구조자 인터뷰부터 할 기레기들이란 걸 분명히 알고 모든 방송이 같은 장면 같은 말만 늘어놓는 게 너무 의심스러워 계속 돌려봤습니다 TV화면만 보는 것까지 너무 지쳐서 러닝머신을 보니 1시간 40분을 파워워킹을 했네요...찝찝한 기분에 바로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근력도 ,스트레칭도 안 하고 바로 신발 갈아신고 집으로 온게 생생히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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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되어 갔던 당시 군대에서 뉴스를보며 시시각각 확인하였습니다.여러 간부들과 병사들이 한군데에 모여 모두가안타까워했습니다.국민으로서 의무를 충실히하고 더 나아가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입대를 하였는데 그당시 아무것도 할수있는게 없어서 무척이나괴로웠습니다.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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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이 있던 날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준비를 하던차에 뉴스를 접했습니다. 배도 아직 많이 안기울고, 당연히....아무일없이 전원 구조될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그랬어야 할 상황이었고요. 야외활동을 마치고 저녁준비를 하면서 뉴스를 접했습니다. 구조가 안되고 있었습니다. 배안에 남아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리고 구조해주지 않는 우리를 보며 얼마나 원망하였을까요?지금도 저희 어머니께서는 세월호 얘기를 들으시면 눈물을 흘리십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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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다른날과 같이 회사 책상에 앉아 급한 일을 처리하고 잠깐 인터넷을 켰어요.인터넷 뉴스에 큰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전원구조래요배가 가라앉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빠른 시간에 전원 탈출 성공했다고?참 신기하고 이상한 사건이네...다친 사람이 없다니 다행이다. 또 무슨 뉴스가 있나?... 아차 계약서가 하나 들어왔지. 빨리 처리해야겠다휴~ 이제 한숨 돌리겠네자주가던 커뮤니티나 한번 들어가볼까?음... 이상하네? 이건 아까 봤던 그 배 뉴스 아닌가?어? 어?.....매일 하루하루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삶을 사는 나도 이날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 거짓말 하지 말아요새파란 어린 아이들 목숨 앞에서 눈하나 깜빡 안하고 거짓으로 일관하는 당신은 사람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