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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희는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공항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표를 받아들고 게이트 근처에 집결해서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탑승을 기다리던 와중, 공항에서 속보를 보고 탑승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이 티비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는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는 말에 더욱 슬퍼하며 빨리 구조되길 한마음으로 바랬고, 이어 나온 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김포에 도착해서 제대로된 소식을 듣고는 참담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도 수학여행을 온 입장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저희는 한마음 한뜻으로 뉴스를 주목하며 무사귀환을 바랬습니다.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건만, 관련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됩니다. 단체로 까마귀 고기를 먹은건지 단체로 입을 맞춘건지..... 국가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면 책임감을 갖고 진실을 밝혀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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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생활을 하다 봄방학을 맞아 한국에 갔다.한국에서 기러기 생활을 하시는 아빠가 국물떡볶이를 끝내주게 하는 집을 안다고 하셔서 오랜만에 둘이서만 점심을 먹으러 갔다.내 뒷쪽의 티비에서 세월호의 뉴스가 나왔고, 계속 머리를 돌리며 화면을 보느라 아빠와의 간만의 재회를 즐기지도 못하며 점심을 후딱 먹고 나왔다.아빠껜 죄송하지만 국물떡볶이 맛은 잘 기억이 안난다. 그저 매워서, 그리고 안타까워서 훌쩍거리는 코를 닦던 기억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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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어요그날 그시간을 그충격을.새벽부터 교회 집사님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옥상에 교회 식구들이 모여서김부각을 만들고 있느라뉴스를 늦게 접했어요10시쯤 넘어서 한분이 "어 수학여행 가던 배가 가라앉았대"그때부터 수시로 뉴스를 보면서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드렸는지.제 아들 딸도 고1.중3이었던때라저녁에 집에돌아온 아이들 껴안고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어떻게 잊습니까어떻게 외면합니까우리아이들,승객들.선원들.선생님들모두다시 살려주세요제발요절대잊지못합니다왜 정치인들은 기억을 못해냅니까저보다 훨씬 똑똑한 분들이시잖아요기억좀 떠올려보세요,제발요너무나 똑똑해서기억을 안하고 싶으신건지 ..그러다 천벌받습니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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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뉴스를 보던 직원이 큰 사고가 터진거 같다고 그래서 사무실에 있는 티비를 바로 켰습니다. 기울고 있긴했지만해경도 도착했고 주변배들도 돕고 있으니바로 구조가 이뤄질거라 생각했습니다. 전원구조 속보가 뜨고 다들 다행이다를 연발했었습니다. 그러나.. ㅠㅠ 전직원이 일이 손이 밥히지않는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의문투성이였던 정부대응들.. 대통령은 어디로?. 이제 그날의 7시간이 명확히 규명되고 안타깝게 하늘나라로 간 생명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은 제대로 처벌 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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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있었던 중이었다. 우리학교는 타지역 곳곳에서 많은아이들이 와서 안산에 사는 친구도 있었다. 그사실을 안 안산사는 친구들은 단원고다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연락이 안돼자 펑펑 울고있던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그 못된 사람들을 대신 아직도사고당한 친구들 에게 미안하고미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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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다는 방송나오는 첫 순간부터 하루종일 지켜보며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들ㅠㅠ전원구조 오보가 났을땐 다행이라고 안도했다가 다시 시작된 분노 어떻게 잊을수있고 어떻게 외면할수있을까이순간도 눈물이 가슴이 아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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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어린이날 맞이하여 물류매장 오픈한다고해서 가서 물건 사고 집에 오는 버스에서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랏는지 어떡해 어떡해만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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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출장중이었고, 오전에 운전중 라디오로 전원구조 소식을 들었음.오후에 미팅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음.저녁에 집에 귀가하여 뉴스를 통해 참사가 벌어졌음을 정확히 알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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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고 일반적인 선박사고인줄만 알았어요. 종종 뉴스에 나오는 그런 사고들. 말예요. 매일같이 지나치는 뉴스 중 하나. 그렇겠거니. 당연히 곧 구조될거라 생각하면서,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제가 무심했던 이유만은 아닐거에요. 전원 구조되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포털사이트엔 현재까지 00명 구조- 이런 배너도 띄워져있었으니까. 설사 보도에 몇명의 오차가 있다 쳐도, 다 구할 수 있을 정도니까 저렇게 보도 했겠지. 하며 습관적으로 입으로는 어떡해- 하면서, 머릿속으론 바삐 과제를 하던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그 일곱시간동안 저는 세월호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절박함과 막막함이 기사 한줄에 담겨있었을지, 단 1 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때의 제가 부끄럽습니다. 친구들은 열여덟에 멈췄고, 저는 스무살의 겨울에 서 있습니다. 열여덟의 봄이라는 건바쁘고,사사로운 일들로 많이 웃고, 많이 아픈. 겨우 마음에 솜털이 보송보송 난 떡잎이 틔기 시작하는 계절이었습니다. 그만큼 너무 아쉬웠던 4월의 봄에, 같은 길에서 만났어야 했을 친구들이,또 함께 벚꽃을 보며 그해의 봄을 추억해야했을 사람들이. 섬뜩하도록 까만 물 속으로 가라앉아버리다니. 운이 좋아 살아남은 나를 친구들이 용서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친구가 엄마가 사준 말을 타고 훨훨 나르를때, 가라앉아버린 친구들. 가방안의 컵라면을 끝내 먹지못한 친구. 그리고 어쩌면 함께 가라앉고 있었던 나. 내가 아무 죄책감 없이 봄 햇님 아래서 붉게 얼굴을 태울때, 먹먹한 바다 아래 파랗게 물들었을 손발들을 생각하면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어집니다. 겨울에도 꽃은 핍니다. 하루하루 나이먹음이 미안하고 미안해서, 바람 막으며 밝힌 촛불에서 꽃이 핍니다. 사진속의 얼굴들이, 금새 웃음을 터트릴듯 봄이라서. 추워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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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에 집에서 노인정 할머니 파마해주고 있는데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에 TV에서눈을 뗄수가 없어요..한 두시간 정도 있다가 배에 탄 모든 승객 구출했단는 뉴스속보가 나오더니 잘못된정보라고 다시 뉴스가 나왔고 TV속에서 볼때 배가 반이기울어졌고 주변에 배들이 있어서 다 구출할줄 알았는데 결국 우리꽃다운 칭구들은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하고 그 차디찬 바다에서 싸늘한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어찌 그날을 잊을수있을까요~보는내내 답답하고 어떻게 할수없다는 것이 화가나고 짜증나고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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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시각 저는 회사에서 근무 하고 있었구요쉬는 시간에 잠시보았던 인터넷 뉴스에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타고 있던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으나전원구조 했다는 기사를 아직도 기억합니다그러고 수시간이 지난후 진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우리나라의 구조능력이 이정도 밖에 안되는지왜 정부는 변명만 해대는지 이해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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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된 아기를 재우려 품에 안고 소파에 앉아있었어요아기는 잠들었고 저는 TV 뉴스를 켜놓고 볼륨은 낮춰놓았어요TV속에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보았죠 침몰하는 배주위는 구조가 진행되지도 않았고 고요해 보였어요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자막으로 전원구조라고 하여 "구조가 마무리된 화면이구나" 라고 생각했고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2년 반이 지나 7개월이었던 젖먹이 아기는 이제 4살이 되어 유치원에 갑니다.구조되지 못한 세월호 학생,승객들은 지금쯤 어떤 꽃을 피우고 있을까요.. ...아기를 안고 tv를 보며 기도하던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2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그날을 당신은 기억을 못하네요..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이 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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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에 잠깐이나마 "별일아니네?" 라고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절대 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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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기억합니다. 수업중이었고.... 중간에 세월호 라는 이름의 선박이 수백명의 학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를 가는 중에 침몰 중이라는.... 그러나 곧 구조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안심을 하고 있다가 한참 후에 끔찍한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 일주일 전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작은 딸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부모들의 떨리는 심장을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기억합니다.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정부의 대처는 이상하리만치 수동적이었고 답답했으며, 저라도 당장 뛰어가서 무엇을 해주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끔찍해서 남편과 나는 아직도 세월호 뉴스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아이들의 영상을 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기억합니다. 그날의 참담함과 그 진실규명의 지지부진함을... 그리고 이 정부가 진실규명을 회피하고 희생자의 부모님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께 합니다. 끝까지 함께 합니다. 내가 가진 모성애로... 내 아이를 사랑하는 그 만큼 끝까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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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당시 사회 초년생으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환자가 많이 없는 한적한 한의원 데스크에서 TV너머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실장님과 보았고, 번복되는 구조소식에 어떻게 저런 보도를 할수 있나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실장님은 그걸보고 다 구했겠지~ 하며 찝찝하다 채널을 돌렸는데 그게 구조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사람이 없어서 졸리다 한적하다 투정부릴때 나보다 어린애들, 조금있음 초년생이 될 아이들이 바다속으로 가라앉고있었습니다. 얼마나 춥고 아팠을지.. 차가운 물속에서 숨을 참고있으면 금방 숨이차 올라오는데 그 아이들은 올라오지도 못하고 그렇게 사그라질줄 누가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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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이 전에는 뉴스도 신문도 보지 않고, 인터넷 서핑도 거의 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소문이든 늘 느리고, 접하지 못하는 세상 소식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래도 불편한 것은 없었습니다. 세상사에 무심한 건 나름 편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어쩌다 그 뉴스를 오전부터 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출근을 하고, 평소라면 무관심하게 스쳐지나갔을 뉴스 헤드라인에서 전원구조 기사를 봤습니다. 전원구조란 말에 그래도 다행이네, 하고 또 무심하게 신경을 돌리려다가, 근데 무슨 사고였는데? 하는 호기심에 기사를 클릭해봤습니다. 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이란 말이 한 번 더 눈길을 끌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게 앞으로 접할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음을...전원구조가 오보라는 기사가 올라오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배에 갇혀있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정신없이 쏟아지고 바뀌던 정보, 정보, 정보들... 뉴스도 기사도 시시각각 변하고 뒤집어지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고, 정확한 상황을 알고 싶어서 온갖 뉴스 채널을 돌려가며 실시간 영상을 보고 또 봤습니다. 잠도 못 자고 밤새도록 밤새도록 생방송을 봤습니다. 에어포켓이 있다더라, 구조할 수 있다더라, 거의 다 잠긴 배를 보며 제발, 제발,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내가 하는 기도가 헛된 희망이 아니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랬습니다.세월호 사건이 유독 피부로 와닿았던 건, 거기에 탄 승객들 중 대다수가 아직 어린 학생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 중 대다수가 시키는 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안전 불감증이 있어 위험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위험한 곳으로 여행을 간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학사일정 중 하나를 그대로 따랐고, 선내 방송 지시대로 가만히 있었을 뿐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더니,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정말 소름끼치도록 와닿았던 현실. 세월호에 갇힌 승객들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또 하나의 나라는 생각. 그들이 운이 나빠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내가 운이 좋아서 지금 살아남아 또 다른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구나. 마치 유체이탈하여 죽어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시감.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세월호 침몰은 전국민이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바다에 가라앉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건이라 전국민이 그 트라우마를 갖게 된 사건이라고.사람들은 누구나 일생 중 삶의 방향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는 일들을 겪게 되곤 합니다. 2014년 4월 16일은 제게 있어 그런 일들 중 가장 큰 줄기가 된 날입니다. 가치관, 신념, 행동 양식 등 많은 것이 그 이전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눈물이 납니다. 바다에 잠긴 세월호를 따라 어두운 방 안에 모로 누워 실시간 영상을 뚫어져라 봤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2년이 넘도록 명확히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현실까지. 그 날은 "벌써 2년 전"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과연 언젠가 "기억나지 않아" 라고 말할 날이 올까요. 제 대답은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 갇혀 있는 9명을 하루 빨리 구조해내고, 사건을 명확히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격히 처벌하고, 이런 사고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부패와 비리 역시 엄벌하고, 어떤 의문점도 남기지 않은 채 모두 해결한 다음에야 비로소 과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되지도 않았고, 해결된 것 역시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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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랜기간 근무했던 회사를 퇴직하고 모처럼지방에 계신 부모님댁에서 뉴스를 접했고 하루종일 티브이 앞에서 눈물도 흘리고 사고 추이를지켜봤어요 잊을 수 없던 건. "전원구출"ㅜㅜ아직도 그 믿기지 않는 그 말에 환호하다 다시 미궁속으로 빠져가던 뉴스를 잊을수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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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어김없이 아홉시 출근을 했다.습관처럼 라디오를 켜고 컴퓨터를 켰지.아침에는 무조건 인터넷으로 뉴스를 먼저 살펴보는 습관이 있어, 바로 알게되었다.진도해상에 여객선이 좌초. 승객 전원구조.그 때만 해도 별일 없이 잘 지나가겠구나 라고 생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뜬 뉴스에는승객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오보였고,미처 구하지 못한 승객이 이백이었으며,배는 계속적으로 기울고 있다고 하였다.하지만 해경이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구조 가능할거란 얘기를 들었다.나는 다시 안심했다.정부와 언론의 말을 믿었다.그로부터 2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있고...돌아왔음에도 부모, 가족의 따뜻한 손에, 이미 얼어버린 얼음장같은 차가운 손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던 분들...이런 현실은 그때 당시의 내 7시간을더욱 또렷하게 만들어준다.몰랐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니,그 때 당시 무심코 지나쳤던 내 모습이너무나도 혐오스럽다.일개 국민의 하나인 나조차도 이런 감정을 마주하는데,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너는 도대체 무얼 느끼고, 무얼 생각하는가?일말의 죄책감 없이 그저 앵무새처럼누군가의 말을 옮기는게 너의 역할이라면.이제 그만하고 내려와라.내려와서 정당한 법의 심판을 기다려라.그리고 달게 받아라.그게 니가 갈 지옥에서 받게 될 형량.그에 대한 그나마의 면죄부다. 2016. 11. 29 국민 심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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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어떤 지역모임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어요. 저는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행사는 결국 예정대로 열렸죠. 행사를 준비해야 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참석했지만 웃고 떠드는 사람들 틈에서 인간으로서의 제 존엄성이 산산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결국 그 모임의 분들과는 더 이상 연락을 끊었습니다. 물론 거기 계신 분들이 모두 이 사건에 둔감하지는 않으셨겠지만, 제가 저를 용서하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날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어요.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항상 그 날이 생각납니다.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누구나 그러하시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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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후 인터넷을 통해 사고를 접하고 너무 놀라 일이 손에 안 잡혔다 하루종일 뉴스만 보다가 발을 동동 구르고 어떻게 하냐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왜 구조를 빨리 안하는지 답답해 죽을 거 같았다대학생, 중학생 아들이 있어서 인지 남일 같지도 않고 눈에 배안에서 발버둥 칠 아이들 생각에 눈물만 났던 생각이 난다몇일을 아니 몇달을 아이들만 생각하면 길에서건 지하철에서건 TV를 보다가도 눈물이 흘렀다뒷일을 부탁한다는 구조대원의 말을 생각하면서 어제도 울었다어떻게 그날을 잊을까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눈에 눈물이 고인다절대 잊을수도 잊어서도 안되는 우리들의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