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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전 날, 인생 최대치로 술을 마셔서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 문 앞에서 잠이 들었다. 알람 대용으로 쓰던 티비가 7시에 반짝 켜졌다. 뉴스에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을 태운 배가 전복했다고 말했다. 내가 겨우 비몽사몽 일어났을 때 뉴스에선 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아, 다행이다. 쟤들은 몇 년 뒤에 나처럼 술마시고 우리 수학여행때 그랬었지, 하고 이 얘기를 하겠지, 하면서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다시 일어났을 때, 내 머릿속에서 이 사고를 회상하며 동창들과 떠들던 아이들은 바닷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아직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미친듯이 토해내서 불타는 것 같았던 속도, 아무렇지 않게 해프닝으로 회상될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에 대한 자책감도 잊지 못한다.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날의 7시간은 그렇게 쉽게 잊혀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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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수업을 끝내고 핸드폰을 집어든 나의 친구들은 모두 한 기사에 시선이 쏠렸다. "세월호 그렇게 큰 배가 쓰러졌다고?" 모두 믿을 수 없다며 너도나도 진실공방을 펼치기 바빴다. 우연히 안산 단원고에 친구를 둔 한 선배는 카톡을 하고 연락하게 바쁜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같은 학생이기에.....배에 반 이상이 보이는 사진이 든 뉴스를 처음 볼 때도, 전원 구조 라는 오보를 들었을 때에도, 우리는 모두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았고 울분을 토했다. 그 후 길거리로 나서 조금이라도 우리 언니 오빠들의 목숨이 헏되지 않게 행동하고 또 기억해내고 진실을 위해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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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세월호의 "세"자만 나와도 눈물이 흘렀어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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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의 소풍 날이어서 김밥도시락을 만들던 중에 사고소식을 공중파 자막으로 접했습니다. 시간상 8시 전이었을 겁니다. 억울한 7시간 꼭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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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같은 나이인 고2였다 영어듣기평가를 했던 날인데 쉬느시간에 짬짬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사고소식을 듣게되었다. 전원구조라는 뉴스캡쳐도 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돌아와 다시 뉴스를 보았다. 분명 낮에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봤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가더라. 며칠동안 건너건너 밤을 새며 여러사이트에서 진도앞바다 생중계를 해주는것을 보았다. 무슨장관인가가 왔었던 날도, 아이가 구조되었다 하여 신나게 달려갔는데 그게 거짓이었던 날도 나는 그자리에 함께 했었다.또 어떤때는 "지겹다"란 글을 쓴사람들과 싸우기도 했었다. 음모론 위선론자 평범한 고2는 안들어도 되었을 그런말도 들었었다. 그땐 많이 어려서 그런사람들을 상대하면서도 무섭고 두려웠다. 나와 친구들이 욕먹는것을 보면서 울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들의 욕따위에는 굴하지않는 성숙한 멘탈을 가졌을 뿐더러 그들은 다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유치하지만 내가, 내 믿음이 이겼다고 생각한다.나는 지금 대학생이 되었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고2에 머물러있다 평생이가도 그 친구들을 잊지못할 것 같다.그리고 믿는다. 내가, 우리가 기억하는한 진실은 밝혀질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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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을 해보자면 자대에 들어간지 3주정도 된 이등병, 자기 살기 바쁘느라 다른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시기 , 오전일과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 틀어져있는 TV뉴스에 태어나서 처음보는 장면을 봤다. 커다란 배가 옆으로 누워있는. 아니 어쩌면 처음은 아닐지모르겠다. 옛날에 보았던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에서도 비슷한장면이 연출되었었던것 같으니깐. 그래서인지 그 상황은 너무 현실감없었고 나는 하루하루를 눈치보기바쁘게 살아가는 이등병이었기에 그때는 그저 다른세상얘기구나 하고 넘겼던 기억이 난다.그러다가 며칠동안 뉴스에서 세월호얘기만 다루고 집에 전화했을때 가족들이 다 그얘기만 하는걸 듣고나서야 비로서 이게 큰일이었구나 하고 실감이났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감정을 남길수있게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게 지금생각하면 그런 내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그때는 이등병으로서 마음의 여유가 그만큼 없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두서없이 써내려가는 이글은 정말 나의 의식의 흐름으로 끊지않고 써서 그렇지만 지금에서라도 이런프로젝트를 해줘서 고맙다. 나는 아니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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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야간당직이 있었던 날입니다야간당직이 끝나고 9시 퇴근인데너무 놀라서 활동가들가 티비앞에서 몇시간을멍하니 있었습니다.12시가 지나고 때때로 포기하는 발언도 했다가에어포켓이 있을거라며 서로 안심시켜주고점심도 먹는둥 마는둥..해경은 왜 문을깨고 들어가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는가너무도 마음아픈시간을 아니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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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잘지내고 있는 내가 미안하지만..그때 컨설팅 투입되서 현업 담당자와 처음 식사를 하려고 음식을 기다리는데...배가 침몰 중이라고..이어지는 속보 모두 구했다고..그렇게 해피엔딩인줄 알고 식당을 나섰습니다무능력한 나를 느낌니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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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작은 분식점에서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잠시 휴대폰을 들었는데 세월호소식이 보였습니다.그래서 집중하는데 거의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며 지인과 함께 하다가 장사를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청와대관계자는 어떻게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워낙에 큰 사고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인데 말입니다. 부디 이제라도 양심선언하는 사람이 쭉쭉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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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출생신고 하려고 아침에 일아나서 뉴스를 보는대 배가 문제가 생겼다고 했습니다.하지만 뉴스에서는 전원 구출이라고 되어있어서 아 다행이다 라고 하고 있었지만..안타까운 소식만 접하게 되었습니다.평생 기억에 남는 날입니다...그날 이후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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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분명히 전원 생존 구출이라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아니였더라고요. 뭔가 큰 움직임이 없이 왜? 구조하지 않나라는 생각뿐...정부를 믿고 있었는데... 서해 기름 유출때 보여줬던 그런 하나된 모습이 연출되지 않을까 안심했었는데죄송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없었네요. 그래서, 끝까지 응원 할께요.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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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쯤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하였다. 안산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원이라서 아는 친구들중 단원고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선 모두 무사구조했다고 티비에 나왔다 정말 무사구조 인준줄만 알고 밥을 먹으러갔다. 하지만 그 다음시간 수업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모두구조가 아니란다. 심지어 선생님들중 아시는 선생님도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공부를 하지못한 하루가 지나갔다. 죽은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지인이고 따뜻했던 사람들이였다. 그들을 쉽게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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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던 가장 아끼던 동료가 오전에 사고 소식을 전하며 사촌동생이 저 배에 타고 갔었다고 했다. 좀 놀라기는 했지만 전원구조 소식이 뜨고 별로 걱정하지 않으며 계속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그게 아니라는 말이 들렸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동료에게 당장 내려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그렇게 사건은 시작되었고,하루에도 몇번씩 뉴스를 통해 상황을 보고 현장에 있는 동료에게 그 아비규환의 상황을 전해들었다.그렇게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던 촛불은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이 되고, 미수습자의 수습과 인양을 위한 촛불이 되고, 이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촛불이 되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결국 우리는 아직도 2014년 4월 16일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하루빨리 억울하게 떠나간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모든게 밝혀지고 보다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도해본다.그렇게 되지 못한다면....그날의 비극은 또 다시 나와 함께 이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앞에 다시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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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줌마들과의 티파임 중 배가 침몰됐대...라며 들어오며 얘기하는 아줌마의 말을 들으며...다들 어머어머..어떻게..TV 좀 틀어봐...하며 TV로 추이를 보기 시작햇습니다.그냥 먼 얘기로...당연히 다 살겠지....(죽음이란 단어자체는 생각도 못했습니다.)저거봐..다 구했대...어머..다행이다...하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고 바쁘게 지내다 점심 이후에 다시 들은 이야기..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이돼? 구명조끼를 입었고..하늘을 향해 다 열려있는 배인데...뛰어내리면 되는데..왜?왜?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그 안에 있던 들떠있던 아이들..가족들..많은 분들..어떻게해어떻게해...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뉴스특보에서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정말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미안하고 미안하고 ...ㅜㅜ20140416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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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가는 길이었다. 앉지못해 서서가던 그 경춘선 안에서 내가 할 일이라고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 뿐이었고, 그 때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접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본 그 기사는 2016년 최악의 오보였다. 역사에 남을 그 최악의 기사는 결국 오보로 판명되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춘선 안에서 쏟아지는 정정기사들을 바라본 채 나는 그저 울먹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때의 눈물과 분노를 나는 기억한다. 잊을 수 없다.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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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군인으로 휴가 복귀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집에서 복귀전 TV뉴스를 보다가 세월호 사건을 처음 접하였고 그런 상황을 실제로 본 것에 대한 놀라움과 동시에 구조 중이니 탑승객 모두가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조자 명단만 보며 상황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늘어날 것만 같았던 구조자 수와 반대로 중간중간 나오는 정부의 어이없는 뒷북 대처와 총체적 부실로 늘어나는 사망자 수만 보며 복귀하는 버스로 올라탔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복귀중 지금 이 상황으로 부대 분위기가 무겁진 않을까 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있진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문득 하였고... 부대 생활을 하면서도 뉴스를 통해 상황을 접하였지만 내 생활 하는데 급급하여 한번더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것 같습니다.지금이라도 이런 기회가 있게되어 고맙고 잊지않고 앞으로도 항상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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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침몰했다는 뉴스...그리고 전원구조...그리고 오보...이런 무기력한 재앙같은 뉴스는 처음이었다.초기대응실패...그리고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는 수많은 의혹들...이젠 독하게 용서없이 낱낱히 밝혀야한다.누구도 그러지 못하게...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단 하나의 의혹도 남지 않을때까지 잊지 말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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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내가 고3이었다는 것도, 봄이었다는 것도,전원 구조라며 그제서야 안심하시던 국어 선생님의 목소리와, 나중에는 "세월호 사건"이라는 명목으로 줄줄이 취소되던 크고 작은 행사들, 기사 하나가 더 나올 때마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지고 슬퍼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티비로 보며 엉엉 울던 나날들, 공부하려 자리에 앉았어도 살고 싶어서 처절히 기도했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생각하며 자꾸 눈물만 흘리던 날들을 기억한다. 사고가 일어난 주의 주말은 부활절이었다. 부활은 원래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인데. 부활 성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눈물이 젖어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그 시기만큼 내 모든 진심을 담아 그렇게 처절히 기도해본 기억이 없다. 매일 밤을 묵주와 함께 했고 그렇게 슬펐던 기억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사고 후 지금까지 유가족들이 얼마나 차가운 현실과 외면이 부딪혀왔는지에 대해서는 함께 슬퍼해주지 못했다. 꽃같던 우리 친구들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슬픔까지 이제 나는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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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가면서 사고 소식을 봤습니다.작은 분식집에서 비빔국수를 먹으며 작은 TV를 통해 배가 반쯤 가라앉고 있는걸 봤어요.대낮에. 온국민이 생중계로 보고 있는데 별일 있겠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잠시 후 전원 구출됐다는 속보를 보았고. 함께 있던 지인에게 "것봐, 별 일 없잖아" 라고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그리고는 더이상 보지 않았어요.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가라 앉았다는 뉴스를. 그리고 이제까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라앉는 동안 저는 "별일 아니잖아"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그래서 너무 죄송합니다.그래서 기억하려 합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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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나이 딸아이가 있습니다. 4월 16일 일주일 후 쯤 딸아이도 제주도로 수학여행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침몰해 가는 현장을 생중계로 바라보며 이렇게 무능할수가 있는지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이게 진정 나라입니까.어찌 꽃같은 아이들을 그렇게 보낼수가 있습니까.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세월호 말만 들어도 노란색만 봐도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밝혀야합니다.왜 그랬는지누가 그랬는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