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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외국어인 일본어 시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별명을 가지고 계신 일본어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전원 구조되었으니 신경 끄고 공부나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습했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나자 오보라는 기사가 떴습니다. 의무적으로 핸드폰을 아침마다 걷어야 하는 학칙이 있었기 때문에 쉬는시간마다 컴퓨터를 켜서 실시간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사상자는 매 쉬는시간마다 50명씩 늘어났고 석식시간에 결국 300명에 육박하는 사상자 수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게 없었고 저는 모의고사를 풀었습니다. 교과서 복습을 해야만 했고 영어단어를 외워야만 했습니다. 300명의 우리같은 학생들이 죽어가는데, 수학공식을 정리해야만 하는 우리가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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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에서 동생과 고기국수를 먹었어요 제주도를 다녀온지 얼마되지 않아 고기국수가 그리웠거든요 맛은 생각보다 없었고 정면 위에 작은 테레비 안에 세월호가 침몰하는것이 보였어요 전원구조래요 아 다행이다 동생이 고기국수가 별로라고 말하면서 덧붙혔어요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고기국수 진짜 맛있거든요 아이들이 먹어봤으면 좋았을텐데 저도 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왔어요 밤바다 냄새도 좋고 배 움직이는 소리 파도소리 참 좋은데 그게 즐거웠고 고기국수가 맛있었다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이야기한것도 좋았는데 ...그런 당연한걸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너무 당연한데 그걸 악몽으로 만들고 배에 갇히고 무섭게 만들었어요 바다가 차가웠겠죠 평생 세월이란 단어와 노란리본을 가슴에 묻고 살게요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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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었던 나는 어김없이 친구와 함께웃으며 등교 중이었고 학교에 도착하니 친구들은 어떡하냐며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다. 그 중에 눈물 많은 몇몇 친구들은 눈이 벌게진 채로 울먹울먹 거리고 있었다. 난리통인 교실로담임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애들은 모두구조되었으니 걱정말고 괜히 우리가 더난리법석 떨지말라며 안심 아닌 안심을 시키고 출석을 부르고 나가셨다. 친구들은 서로다행이다 하며 그 후 수업시간에 열중했다.하지만 하교하면서 그 뉴스는 오보였다는것을 알게되었고 늘어나는 사망자수를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정부의 사고처리 태도 또한 마찬가지로. 나는 모르는척하는 어른들이 싫었고 억울하게 죽은 언니오빠들을 위해, 생자식을 잃어 대성통곡하는부모님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없어 매우 슬펐다.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기도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정부는나몰라라 하고 있었고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사람은 그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얼했는지사건의 정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정치인들이라는 사람들 중 몇몇은 아직도노란리본 타령을 하냐며 말같지도 않은소리를 해댔다. 몇년 살지도 않은 어린 내가처음으로 이 나라에서 살고싶지 않다 이민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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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학번이었던 나는 새내기 기숙사생이었다.경기도권 학교여서 많은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세월호 소식을 듣고 몇몇은 사색이 되어 고향인 안산으로 돌아갔다. 내 동기 중에도 세월호에 탄 동생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다 기숙사 티비 앞에 모여 숨을 졸이고 답답해하고 부모님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울었다. 사상자 수가 늘어나는데 국가 원수는 나타나지 않음에 의아해했다. 배가 침몰하고 20살이었던 내가 봐도 큰 사고인데도 어리숙한 대처에 어이가 없고 허탈함과 분노를 느꼈다. 아직까지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20살 앳된 나이의 국민인 나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당신의 국민인 300명이 넘게 죽은 2014.04.16 . 그 때 당시의 7시간 조차 뭘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국가 최고권력자인 당신은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임이 충분하지 않은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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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학교를 방문하여 공연을 해주셨다. 전교생이 모여 웃고 즐기며 박수를 치고 환호를 했다. 군인분들도, 선생님들도 다 즐거워하셨다. 친구와 나는 즐거워 어쩔 줄 몰라 소리를 지르고 같이 노래도 부르며 땀흘리며 춤도 췄다.그렇게 즐거웠던 공연이 끝나고 집에가서야 모두가 세월호 침몰을 알게되었다.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다음날 학교를 가보니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모든 선생님들께 전날의 즐거웠던 공연은 가장 슬프고 죄책감이 드는 공연이 되어있었다. 그 당시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던 우리들도 2년반이 넘어서도 이렇게 큰 죄책감 안에서 살아가는데, 침몰소식을 알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의 목숨이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침몰 전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하며 지금까지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당신은 살아있는 악마입니다.국민이 당신을 결국 이지기 못한다 하더라도 신은 반드시 당신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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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전 날, 인생 최대치로 술을 마셔서 인사불성이 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 문 앞에서 잠이 들었다. 알람 대용으로 쓰던 티비가 7시에 반짝 켜졌다. 뉴스에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을 태운 배가 전복했다고 말했다. 내가 겨우 비몽사몽 일어났을 때 뉴스에선 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아, 다행이다. 쟤들은 몇 년 뒤에 나처럼 술마시고 우리 수학여행때 그랬었지, 하고 이 얘기를 하겠지, 하면서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다시 일어났을 때, 내 머릿속에서 이 사고를 회상하며 동창들과 떠들던 아이들은 바닷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아직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미친듯이 토해내서 불타는 것 같았던 속도, 아무렇지 않게 해프닝으로 회상될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에 대한 자책감도 잊지 못한다.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날의 7시간은 그렇게 쉽게 잊혀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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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수업을 끝내고 핸드폰을 집어든 나의 친구들은 모두 한 기사에 시선이 쏠렸다. "세월호 그렇게 큰 배가 쓰러졌다고?" 모두 믿을 수 없다며 너도나도 진실공방을 펼치기 바빴다. 우연히 안산 단원고에 친구를 둔 한 선배는 카톡을 하고 연락하게 바쁜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같은 학생이기에.....배에 반 이상이 보이는 사진이 든 뉴스를 처음 볼 때도, 전원 구조 라는 오보를 들었을 때에도, 우리는 모두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았고 울분을 토했다. 그 후 길거리로 나서 조금이라도 우리 언니 오빠들의 목숨이 헏되지 않게 행동하고 또 기억해내고 진실을 위해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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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세월호의 "세"자만 나와도 눈물이 흘렀어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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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의 소풍 날이어서 김밥도시락을 만들던 중에 사고소식을 공중파 자막으로 접했습니다. 시간상 8시 전이었을 겁니다. 억울한 7시간 꼭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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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같은 나이인 고2였다 영어듣기평가를 했던 날인데 쉬느시간에 짬짬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사고소식을 듣게되었다. 전원구조라는 뉴스캡쳐도 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돌아와 다시 뉴스를 보았다. 분명 낮에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봤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가더라. 며칠동안 건너건너 밤을 새며 여러사이트에서 진도앞바다 생중계를 해주는것을 보았다. 무슨장관인가가 왔었던 날도, 아이가 구조되었다 하여 신나게 달려갔는데 그게 거짓이었던 날도 나는 그자리에 함께 했었다.또 어떤때는 "지겹다"란 글을 쓴사람들과 싸우기도 했었다. 음모론 위선론자 평범한 고2는 안들어도 되었을 그런말도 들었었다. 그땐 많이 어려서 그런사람들을 상대하면서도 무섭고 두려웠다. 나와 친구들이 욕먹는것을 보면서 울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들의 욕따위에는 굴하지않는 성숙한 멘탈을 가졌을 뿐더러 그들은 다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유치하지만 내가, 내 믿음이 이겼다고 생각한다.나는 지금 대학생이 되었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고2에 머물러있다 평생이가도 그 친구들을 잊지못할 것 같다.그리고 믿는다. 내가, 우리가 기억하는한 진실은 밝혀질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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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을 해보자면 자대에 들어간지 3주정도 된 이등병, 자기 살기 바쁘느라 다른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시기 , 오전일과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 틀어져있는 TV뉴스에 태어나서 처음보는 장면을 봤다. 커다란 배가 옆으로 누워있는. 아니 어쩌면 처음은 아닐지모르겠다. 옛날에 보았던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에서도 비슷한장면이 연출되었었던것 같으니깐. 그래서인지 그 상황은 너무 현실감없었고 나는 하루하루를 눈치보기바쁘게 살아가는 이등병이었기에 그때는 그저 다른세상얘기구나 하고 넘겼던 기억이 난다.그러다가 며칠동안 뉴스에서 세월호얘기만 다루고 집에 전화했을때 가족들이 다 그얘기만 하는걸 듣고나서야 비로서 이게 큰일이었구나 하고 실감이났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감정을 남길수있게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게 지금생각하면 그런 내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그때는 이등병으로서 마음의 여유가 그만큼 없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두서없이 써내려가는 이글은 정말 나의 의식의 흐름으로 끊지않고 써서 그렇지만 지금에서라도 이런프로젝트를 해줘서 고맙다. 나는 아니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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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야간당직이 있었던 날입니다야간당직이 끝나고 9시 퇴근인데너무 놀라서 활동가들가 티비앞에서 몇시간을멍하니 있었습니다.12시가 지나고 때때로 포기하는 발언도 했다가에어포켓이 있을거라며 서로 안심시켜주고점심도 먹는둥 마는둥..해경은 왜 문을깨고 들어가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는가너무도 마음아픈시간을 아니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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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잘지내고 있는 내가 미안하지만..그때 컨설팅 투입되서 현업 담당자와 처음 식사를 하려고 음식을 기다리는데...배가 침몰 중이라고..이어지는 속보 모두 구했다고..그렇게 해피엔딩인줄 알고 식당을 나섰습니다무능력한 나를 느낌니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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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작은 분식점에서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잠시 휴대폰을 들었는데 세월호소식이 보였습니다.그래서 집중하는데 거의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며 지인과 함께 하다가 장사를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청와대관계자는 어떻게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워낙에 큰 사고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인데 말입니다. 부디 이제라도 양심선언하는 사람이 쭉쭉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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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출생신고 하려고 아침에 일아나서 뉴스를 보는대 배가 문제가 생겼다고 했습니다.하지만 뉴스에서는 전원 구출이라고 되어있어서 아 다행이다 라고 하고 있었지만..안타까운 소식만 접하게 되었습니다.평생 기억에 남는 날입니다...그날 이후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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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분명히 전원 생존 구출이라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아니였더라고요. 뭔가 큰 움직임이 없이 왜? 구조하지 않나라는 생각뿐...정부를 믿고 있었는데... 서해 기름 유출때 보여줬던 그런 하나된 모습이 연출되지 않을까 안심했었는데죄송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없었네요. 그래서, 끝까지 응원 할께요.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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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쯤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하였다. 안산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원이라서 아는 친구들중 단원고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선 모두 무사구조했다고 티비에 나왔다 정말 무사구조 인준줄만 알고 밥을 먹으러갔다. 하지만 그 다음시간 수업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모두구조가 아니란다. 심지어 선생님들중 아시는 선생님도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공부를 하지못한 하루가 지나갔다. 죽은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지인이고 따뜻했던 사람들이였다. 그들을 쉽게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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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던 가장 아끼던 동료가 오전에 사고 소식을 전하며 사촌동생이 저 배에 타고 갔었다고 했다. 좀 놀라기는 했지만 전원구조 소식이 뜨고 별로 걱정하지 않으며 계속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그게 아니라는 말이 들렸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동료에게 당장 내려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그렇게 사건은 시작되었고,하루에도 몇번씩 뉴스를 통해 상황을 보고 현장에 있는 동료에게 그 아비규환의 상황을 전해들었다.그렇게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던 촛불은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이 되고, 미수습자의 수습과 인양을 위한 촛불이 되고, 이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촛불이 되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결국 우리는 아직도 2014년 4월 16일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하루빨리 억울하게 떠나간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모든게 밝혀지고 보다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도해본다.그렇게 되지 못한다면....그날의 비극은 또 다시 나와 함께 이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앞에 다시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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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아줌마들과의 티파임 중 배가 침몰됐대...라며 들어오며 얘기하는 아줌마의 말을 들으며...다들 어머어머..어떻게..TV 좀 틀어봐...하며 TV로 추이를 보기 시작햇습니다.그냥 먼 얘기로...당연히 다 살겠지....(죽음이란 단어자체는 생각도 못했습니다.)저거봐..다 구했대...어머..다행이다...하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고 바쁘게 지내다 점심 이후에 다시 들은 이야기..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이돼? 구명조끼를 입었고..하늘을 향해 다 열려있는 배인데...뛰어내리면 되는데..왜?왜?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그 안에 있던 들떠있던 아이들..가족들..많은 분들..어떻게해어떻게해...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뉴스특보에서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정말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미안하고 미안하고 ...ㅜㅜ20140416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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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가는 길이었다. 앉지못해 서서가던 그 경춘선 안에서 내가 할 일이라고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 뿐이었고, 그 때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접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본 그 기사는 2016년 최악의 오보였다. 역사에 남을 그 최악의 기사는 결국 오보로 판명되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춘선 안에서 쏟아지는 정정기사들을 바라본 채 나는 그저 울먹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때의 눈물과 분노를 나는 기억한다. 잊을 수 없다.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