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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전 평소와 다름없이 가게로나가 문을열고 장사준비로 바뿐시간이였다. 항상 9시만되면 듣는 라디오방송이있어 그날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들으며 일을하고있는데 갑자기 라디오에서 학생들을태운 제주로가던배가 기울고있다는 소식을듣고 라디오를끄고 9시반경 tv를 켰다..배는 계속 기우러져가고있고 해경은 승객 구할생각은 안하고 배 주위만 뱅뱅 돌고....보고있으려니 속이타들어가고 대체 왜 구할생각을 안하는지 멏시간동안 지켜보면서 너무답답하고 분통터지고 안타깝고 .... 배안에서 어른들 믿고 기다리던 아이들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너무 가슴 아프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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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회사를 관두고 쉬고 있을 때였어요. 느즈막히 일러나 티비를 틀었고 사고소식을 보았습니다. 남편이 부스스 일어나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사고가 났다고... 하지만 다 구조했대. 라고 했습니다.그런데 잠시 후, 계속 실종자수가 늘어나더군요. 대수롭지 않게 티비를 보던 우리는 점점 더 두려워졌습니다. 설마 어떻게 이런 일이...제가 뉴스를 본 이후부터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믿기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네요. 정말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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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시간 잠시 짬이나 들여다 본 스마트폰에선 사고가 났고 전원구조라는 속보가 떳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먹으며 내 오른편에 틀어진 KBS에서 300명이 구조 되었단 뉴스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날을 기억합니다. 내가 그 뉴스를 보던 그때 그날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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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새벽마다 출근전 티비로 뉴스를 봐요. 함께 뉴스보면서 "저거 어째.. 바닷물도 아직 차가울텐데, 얼른 구조해야지"" 하다 바쁘게 작은 아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큰아이 유치원에 가서 수영하는 거 보면서, 모바일 뉴스 검색하니 오전 9시가 넘어서 "전원구조" 속보보고는 안도했으나, 낮에 다시 찾아보니 오보였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속상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그걸 어떻게 잊나요? 그게 어떤 날인데 기억이 나지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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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종일 티비를 보며 발을 동동 굴리던..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부터 저녁까지 저희 식구들은 같이 티비를 보며 지인들과 통화했던 기억, 오보에 경악하던 기억, 전부 다 납니다. 하물며 진료를 했던 의사나 청와대에 있던 사람들이 기억이 안난다는건 국민을 우롱하는 그 이상의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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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타업체 사람들과 함께 할일이 있어서 오전업무를 하고난 후 밥을 먹다가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안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에이 배만 아깝게 됐네 그래도 애들이 다 살았다니 다행이지 라며 이야기 했던것도 기억나네요... 오보 번복 후 하루종일 뉴스 검색을 하며 애를 태웠었습니다... 말할수 없는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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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주일 전, 심지어는 어제 먹은 점심 메뉴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4월 16일, 그날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 저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 당시엔 주변엔 해경도 있을거고 전부 무사히 구조됐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갔지만, 첫번째 강의가 지나도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고 그 세월호에 친척이 타고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배 한 명이 울고있는 것을 보고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핸드폰만 붙잡고 구조되었다는 기사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저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기억이 나지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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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에서 틀어진 TV 생중계를 보며 점심 시간내내 회사동료들과 곧 구조되겠다며 순진한 희망을 담아 얘기나누며 식사를 마쳤는데, 구조하지 않은 우리나라 대통령.. 지금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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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와다름없는바쁜일과중뉴스속보에너무놀라고당황했던것도잠시이후쏟아지는오락가락하는뉴스점점빨려들어가는배를보며눈물만흘리던아무것도할수없었던무력함잊을수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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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우울해하고 있었는데,여객선 사고를 알리는 속보가 TV에 나타났습니다.전원 구조되었다는 문장이 당당히 떠오른 화면을 보며, 다행이네, 그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적어도 오전까지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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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이였고, 점심특선으로 만원대에 맛있게 밥을 먹을수 있는 한정식집으로 지인과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인천 계산동에 위치한 주유소 옆 한정식이였고, 한상 푸짐하게 나오는 반면 리필은 안된다는 식당 아주머니에 작은 푸념도 해보았습니다.티비에는 큰 배가 뒤집어져있었고 다행스럽게도 전원구조라는 뉴스 헤드라인이 몇분째 올라와있었습니다.안도의 한숨이였지만 그것은 곧 두려움의 숨소리로 이어져갔습니다. 그때 그날을 나는 뚜렷히 기억합니다.왜 당신은 기억을 하지 못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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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해서보니 다른 분들 말씀이, 안산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기위해 탔던 배가 사고 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저도 교단에 서는터라 쉬는시간마다 기사를 살펴보았지요. 곧이어 이어지는 "전원구조" 소식.아.. 정말 다행이다 천만다행이야 리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보라는 소식에 얼마나 마음이 참담했던지요.저는 그 날 퇴근 후 막바지 벚꽃구경을 가기로 약속이 있었습니다. 새하얀 벚꽃잎이 무수히 떨어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었지요.그 때는 별 생각없이 찍었던 사진인데, 돌이켜보면 세월호 사고와 오버랩 되어 너무나도 슬픈 사진이 되어버렸습다.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은 4월 16일의 기억이 또렷한데, 도대체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을 아는 이는 하나도 없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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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 실에 있었어요. 컴퓨터로 뉴스를 확인하고 친구에게 여객선이 침몰 했는데 전부 구조 되었다고 말하고 계속 과제를 했죠. 그런데 구조가 되지 않았다고 보도가 나왔어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와서 뉴스만 한 없이 계속 봤어요. 아직도 너무 슬퍼요. 아침 마다 눈물이 나요. 16학번들을 제대하고 처음 만났는데 돌아오는 길에 그아이들이 살아 있으면 여기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요. 분노해요. 무엇이 도대체 이렇게 우리의 가치를 더럽히고 있는 지. 그 사람만 알고 있겠죠.7시간의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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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날 외부 미팅이 있어서 본부장님과 길을 나섰다. 세월호가 좌초되었고다행히 수학여행 중이었던 단원고 학생들도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들려온 소식은 참담했다. 나는 황망히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본부장님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운전을 했다. 우리는 그 날도 어김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참사는 내 일은 아니었으나 마치 내 일인 것 처럼 두렵고 아팠다. 누군가는 대변인의 입을 빌어 자신의 자리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바로 발뺌하였으나-백번 양보하여 아니라고 치더라도. 아니, 양보해도 아니라고 볼 수가 없다.-정직하게 제가 맡은 일과를 치뤄내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 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리 없다.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고 거짓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데 그 날 저녁 -어쩌면 다른 날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후의 날들은 내게 감정적으로 다 엇비슷했다- MBC에서 어떤 기자가 단원고 학생들에게 가입된 여행자 보험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인터넷에서는 배에 에어포켓이 있니 없니, 어두워 구조가 어렵다고 하는데 오징어배를 빌리는건 어떤지, 바지선을 보내는 건 어떠니.. 하며 설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동부화재 - 휴대폰 분실시 20만원 보상. 혐오라는 감정을 확실히 알았다. 3. 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그 날의 일을 분 단위로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서면 보고든 카톡 보고든 직접적으로 상황을 들은 적이 없으며그저 언론을 통해서만, 인터넷을 통해서만 파악하면서도촉각을 세우고 새 소식을 기다렸다. 내게 도울 수 있는 힘이나 어떤 장비나 조직을 움직일 권력이 있는게 아닌데도 도울 방법을 찾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우리는 그랬는데. 정작 권력 있는 자는 셀프감금이라도 당했는지"참다참다 견딜 수 없어" 대략 일곱시간만에 중대본에 행차하고한술 더 떠 배 안에 갇혀 있는건지 되물을 줄이야..4. 그래서 한없이 참담하다.사고와 더불어 정부의 무능에 놀라 한달 가까이 충격에 빠져 지냈다. 온 세상이 다 불쌍하면서온 세상이 다 무서웠다. 이제 머지 않았다. 머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자꾸만 이 이야기를 해야하고진실을 알아야 하고 반드시 치유 받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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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일하느라 소식을 전혀 모르다가 잠시 회의 하느라 동료들과 모여서 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그 소식이 꼭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일처럼 느껴졌던 그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직장동료들과 이게 무슨 일이냐며 세월호 탑승자 전원이 얼른 구출 되기를 바라고 다시 일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할 줄은 몰랐네요. 물론 매듭이 지어져도 잊지 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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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학교를 다녀왔습니다. 학교에서 배가 침몰했단 얘기를 들었지만 곧 구조됬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야자가 끝나고 집에와서야 그것이 오보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였고, 그렇기에 더더욱 잠을 쉬이 이룰수없었습니다. 기억할게, 잊지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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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동네병원에 건강검진 결과보러 갔다가 병원 대기실 tv에서 나오는 세월호를 보며 너는 당연히 구조가 됬을거라고 생각했고 전원구조라고 방송도 나왔고 그래서 수요오전예배도 드리고 장례식장에 위로 예배도 다녀오고 했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전원구조가 오보라고...그래도 너만은 구조되었을거라 확신하고 안산 단원고를 갔는데 그 강당에서 내가 본것은 두려움...공포...설마설마...아니기를 아니기를 그날의 그 두려움은 평생 잊지 못한다그날의 미안함은 평생 잊지 못한다그 미안함이 지금도 길위에 있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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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큰애 급식봉사하러 큰애 학교에 가야하는 날이었어요. 빨리 나가야하는데 워낙 큰 일이라 뉴스를 틀어놓고 나가질 못하다가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자마자 튀어나갔어요. 혹시나 싶어서(우리나라 뉴스를 못믿는 병) 가는길에 cnn을 듣는데 브레이킹 뉴스로 이름이 뭐라는 항공모함 함장(?)이 세월호 바로 옆에서 모든 장비를 준비하고 인명구조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있다 허가만 떨어지면 들어간다...한국정부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땐 왜 자꾸 한국정부의 허가를 기다린다는 말을 반복하는지 이해를 못했어요...유난히 정신없던 하루를 보내느라 인터넷 한번 확인 못하고 밤늦게 집에 와서 tv틀고 정말 몇주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올수가 없었어요...그 항공모함이 세월호 정말 바로 옆에 있었어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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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분명 기억납니다!아이들 등교시키고 쇼파에서 커피한잔하고라디오를 듣고있다가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들배가 침몰했다고해서 뉴스를 틀었더니..세상에ㅜ 속보로 모든방송으로 나오고 있었어요.심장이 뛰고 빨리구조되길 기다리던 중전원구조라는 자막을보고 울면서 박수를 쳤었죠.그리고 다시 오보라는 슬픈소식이 전해지고ㅜ그때부터 티비를 보지않는 나는 계속 티비만보면서 생존자확인만 기다렸어요그때 내가입고있던 옷,커피종류,카톡내용도기억이 납니다.분명히 기억납니다!7시간의 비밀을 하루빨리 풀어주세요!!애들이 왜 차디찬 바다에 있어야만 했는지를요!!숨기는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지금도 세월호 말만 들어도 눈물이납니다..꼭 밝혀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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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서 워홀러로 지내고 있을때였다.간혹 한국 소식이 궁금해 웹뉴스를 보곤 했는데 그날은 단원고 아이들을 태우고 수학여행을 떠나던 세월호가 침몰 했다는 소식이였다.놀란 마음에 자세히 보니 "전원구조" 안심하고 창을 닫았다. 그리고 몇시간 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너희 나라 큰일난거 아느냐?"그럼 알지 전원 구조 했다는데."무슨 소리냐 거의 대부분이 못 빠져나오고 침몰 됬다는데"순간 내 눈을 의심 했었고 내 귀를 의심했다.다시금 뉴스를 보니 사실이였다.배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고 아이들도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허망했다, 슬퍼했다, 분노했다.그날의 슬픔도 분노도 나는 뚜렷이 기억하는데왜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기억이 안난다는 것인가?꼭 끔찍한 벌 받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