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같이 직장을 다니다 보니, 한 달 전 이 시간엔 뭐 했지?란 물음에 쉽사리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도 "그 날"의 기억만큼은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8시쯤 처음 뉴스속보가 떴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걸 보지는 못했고,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해 일할 준비를 하고, SNS를 켰는데 그 뉴스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조를 하고 있겠지, (당연히 대부분은 구조가 될 거라 생각하고) 실종자나 사상자가 많지는 않았음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근처 시래기밥집으로 동기와 점심을 먹으러 갔어요. 그곳에서도 TV로 속보가 나오고 있었고, "전원 구조"라는 보도에 그럼 그렇지, 하고 안심하며 웃으며 점심을 먹었습니다.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왔어요. "오보"라는 겁니다. 방금까지 봤던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오보래요. 어떤 나쁜 찌라시를 본 것보다 속상하고 이상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SNS를 새로고침하며 업데이트되는 소식을 찾아보았습니다. 점심을 같이 먹은 동기가 수원 사람이라, 피해를 입은 학교의 교직원 중 건너 건너 지인이 있어 지금 그쪽도 난리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이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제가 "어떤 평일 하루"를 이 정도로 세세하게 기억하고 묘사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누가 2014년 4월 16일을 그렇게 아무 날도 아니었던 것처럼 잊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 아무리 잊으라고 해도, 심지어 유가족 분들이 이제 됐다고, 그만하자고 하실 지라도, 제게는 "치매"가 아니라면 절대로 잊혀질 수 없을 그 날의 기억입니다.
-
전원구조, 구조작업이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선체를 인양하는데에 드는비용 논의.. 그날 아침을 기억합니다. 계획된 진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끝까지 기억하고 죽는날까지 가슴에 각인하고 기억하다 먼저 간 그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그 날은 일을 그만 둔 후라 집에 있었다.아침에 뉴스를 보고 늦은 밤까지 제발 한 생명만이라도 구해주길 애타게 기다리며, 기도하며그 자세 그대로, 그날은 밥도 먹지않고 물도 먹지 않고 티비앞 그 자리를 지켰다.그 날 밤도 밤을 새며 트위터를 했다.늦은 밤까지 새벽까지 잠 못이루며 간절한 사람들이 많았다. 어떻게 그 날을 잊나?정말 내 목숨이라도 내달라면 그래서 그 아이들이 살아날 수 있다면 주고싶다고 생각했던 그 날.정말 끔찍한 살상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그 날,어떻게 잊나?
-
생떼같은 아이들이 바닷속에 갇혀 죽어가고 있던 그 시간, 구조되었다는 속보가 올라오길 기다리며 뉴스창을 새로고침하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한 번도 보지 못 했던 아이들이지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지만 미안했어요. 어른들이 이런 세상을 만들어놓고 죄 없는 아이들을 죽게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곳에선 편안하길 빕니다. 그리고 우리는 잊지 말아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책임자가 처벌받는 모습을 보고야 말도록 같이 힘냅시다.
-
그 날도 평상시와 똑같이 회사에 출근해서오랜만에 친한동료와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했습니다.오전에 사고가 났다는 속보를 보면서 마음 졸이다가 전원 구조라는 속보에 안심하였지요.하지만 그 시간에도 배는 침몰중이었고 미리 정해놓은 약속에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향하긴 하였지만, 뉴스속보를 보면서 어른으로서의 미안함에 차마 밥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그리고 돌아와 구조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구조현장을 계속 찾아보았습니다. 퇴근길에는 구조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함과 제발 살아남아달 라는 희망을 가지고 해가지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바랬던 날이었습니다.
-
당연한 듯 출근하고, 당연한 듯 점심을 먹으러가서 생중계되고 있는 침물 중인 배를 보며 전원구조 속보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야근 탓에 저녁을 먹으며 속보에는 전원구조는 오보이고 아직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에, 그래도 대부분이 수학여행간 아직 체력도 좋고 젊은 고등학생들이니 지금이라도 구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2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7명의 시신은 수습도 안되고, 사고 원인 규명이 안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사고 피해자 가족 여러분께 마음의 빚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막내아들을 낳고 한달 십일이 흘러 한창 산후조리 하느라 바빠던 40대가 넘은 늙은 엄마. 늙은 엄마에게 태어나준 아들이 너무나 예쁘고 예뻐서 잘 나오지도 않았던 젖을 짜내고 있던 어느날.. 오전 세월호가 사고났다고 ..그러다 곧 속보로 전원 구출이라고 했다. 다행이다 라고 안도하고 있던 시간도 잠시.. 열두시가 지나자 200명이 넘는 사람이실종 이라고 하더니 다시 170명정도 구조 라고 하고 한시간 한시간이 다르게 그 숫자가 바꼈다. 다수가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라는 소식과 함께 ..한시간 한시간 나오던tv속 배를 탔다던 인원수 조차 확실한게 하나도 없었다. 믿을수가 없었다. 가장 믿을수 없었던건 누구도 아무런 조치를 치하고 있지 않았다는것이며.. 대통령이 소집해야하는 회의도 명령도 아무것도 없었다는것이다. 불안하고 공포였다. 이나라에서 우리 아이들은 과연 안전하게 살수있을까? 그날 첫째 둘째 아이의 학원도 가지말라고 이야기하고 tv앞에서 난 움직일수 없었다.난 지금도 믿을수가없다. 이 무능력한 나라와 정부를 믿고 내소중한 아이들을 키워내야 한다는게.. 얘들아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보고만 있어서 아줌마가 너무 미안해. 하지만 싸워줄께. 너희들의 진실을 밝혀주기위해서 싸워줄께.. 얘들아 미안해
-
별일 아니라고 보도 되었습니다.전원 구조 되었다고 해서 안심 했었습니다.그런데 사실이 아니었고 아이들이 탄 배가 가라 앉아버리는 것만살해당하는 것만지켜봐야 하는......비극이 계속 재방송 되었습니다.꼭밝혀야 합니다.3년이 걸리든30년이 걸리든300년이 걸리든...왜 살해당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
저는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현고3학생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는 고1이였고 제 위의 선배들 나이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었죠. 그래서 주변에 직접 돌아가신 분들의 관계자들이 많았고 그래서 더 와닿았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많이 울었고, 아무것도 할 수없는 저를 보며 많이 슬퍼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또 울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저는 당시 학교에서 처음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반 애들 다같이 믿든 안믿든 그들을 구해달라고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주동안 무기력한 저를 보며 참 후회도 많이하고 지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잊어가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지내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보면 정말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몇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고 수십년이 지나도 절대 잊지않고 가슴 속에서 새기며 그들을 기억하고 기억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대한민국이 가장 나약했던 그 순간을 역사속에서 영원히 기억되어져야 한다.7시간의 무관심으로 그 고통을 키워낸 그 누군가들은 수명이 다하여 죽어서라도 이에 상응하는 고통을 받게 되어야 한다.
-
일하면서 흘끗 본 티비에서 세월호 탑승자 전원 구조 자막이 나왔습니다.잠시 일을 멈추고 참 다행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전원 구조라고, 참으로 대단하다며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외부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티비를 계속 볼 수 없는 환경이라 사무실 밖으로 나왔지만 걱정 없었습니다. 전원 구조니까요.편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순간 주변 분위기가 이상해지더군요.확인해보니 오보랍니다.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탈출 했는데 아이들과 다른 몇몇이 남아 있다고...선장이 탈출했는데 안에 사람이 남아 있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며 가지고 다시 한번 확인해보니 사실이더군요.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선장을 욕하긴 했지만 다들 구조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사고 소식을 들은지 오래 되었고 시간은 남아있었으니까요.우리나라가 그들을 그 아이들을 구해줄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그런데 구하지 않더라구요...못구한게 아니라 안구하더라구요....사고는 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사고니까요.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다 구조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정부가 그 아이들과 남은 사람들을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저희 집 앞엔 초등학교가 있습니다.지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 종종 드는 생각이 이 아이들을 이 국가가, 현 정부가 지켜줄 수 있을까? 최소한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이 시스템이 너희를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부끄럽습니다.창피합니다.전 최소한 아이들을 보면서 창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그래서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어떤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곤 생각치 않았습니다. 그냥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봤습니다.지치지 않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것.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머리에 새기고 이어나가고 있습니다.나중에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희는 이 사회 안에서 안전하다고 진심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이 수장되던 그 날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사람은 그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압니다. 나는 그날. 지난 대선 그 추웠던 겨울 세상을 떠난 아이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
여의도 한투 지하 동원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먹으면서 식당에 있는 TV를 통해 처음 본 기억이 납니다.당시 뉴스상에는 큰일이 아닌듯 보였고, 저 큰 배가 설마 가라앉기하겠어 얘기를 나누면서 식당을 빠져나왔습니다.오후 일정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저녁에 집에와서야 현황을 알아서 놀란 기억만 있는 것으로 보아....
-
학생시절 친구들이랑 치킨먹고있었는데 속보로 나오더군요. 그렇지만 배가 잠기지도 않았고 기울여져있는 상태에 주변에 배와 헬리곱터도 있기에 전 거의다 구조되고 한두명이나 못구하려나 생각했습니다. 오 근데 이상하게 밤늦게까지 거의 못구하고 배는 반정도까지 심하게 가라앉았더군요. 그 때부터 뭔가 잘못된걸 알았죠.대수롭지 않아보이던걸 재난으로 바꿔버림
-
그날 학교 후배겸 회사 동료인 동생과 함께 지금은 없어진 회사 근처 분식집에서 잔치 국수를 먹고 있었습니다. TV에서 세월호 사고에 대한 얘기가 나오더군요. 놀라서 배가 사고가 났네... 라고 서로 두어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전원 구조 라는 얘기가 들리고 그렇게 다행이다, 큰일날 뻔했네 라고 이야기 하면서 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말이 거짓일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했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조하기 위해서 주변에 돌아다니고 있었고 TV로 생중계 될 정도의 상황인데 당연 구조대가 가서 최대한 노력하여 구조를 할거라고 믿었으니까요...언젠가는 나몰라라 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꼭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기억해야 합니다잊지 말아야 합니다진실이 우뚝설때까지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그건 우리가지금도내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그날 100일이 안된 아기를 안고서 얼마나 울었나 모릅니다. 아이들의 한이 조속히 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직장에선 TV를 틀어 놓기 때문에 그날 방송 뉴스를 전부 볼 수 있었습니다. 뉴스에선 전원 구출이라는 방송을 하다가 나중에는 튕겨 나가거나, 지시를 듣지 않고 탈출한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원 죽었다고 하더군요.무슨 연극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그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져가는 배에서 승무원, 사회, 국가라는 시스템을 믿고, 또 믿고 기다리다가 얌전히 수장된 것이요.물에 빠져보신 적 있습니까?마시려는 공기 대신 물만 들이키고, 이대로 죽는다! 라는 생각만 듭니다.아니 죽는다는 생각 자체도 못 합니다.살기 위해! 공기를 마시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죽을 힘을 다하니까요.기다리라는 개소리를 믿으며 나갈 구멍이라곤 없는,그 거대한 강철관에서 절망에 빠진 채죽어 간 사람들,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속에서 평생을 살아갈 사람들,가족을 잃으신 사람들,자신의 일상도 마다하고 한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현장에서 분골쇄신하신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기억 안납니다.""기억 나지 않습니다."누가 죽인 겁니까?이 것은 국가, 정부에 의한 대량학살입니다.옳은 것을 옳다고 못하고,바른 것을 바르다 못하고,흰 색에 검은 색을 섞고,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세상을 만든 싸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들이 사회에 군림하게 둬서는 절대 안됩니다.
-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그 참사를....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진실이 규명될때까지 언제까지나 잊지 않겠습니다. 그 험한 세월을 살아 남아주신 유족분들께 너무나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
4월 16 일 오전 9시 20분쯤~난 언제나 처럼 그날도 유치원생 아이들을 태우기위해 운전대를 잡고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그때 라디오에서 들리는 세월호 소식!뒤에 타고있던 선생님이 걱정이되서 "어떻하냐?"며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박근혜를 부정선거로 정권을 훔쳐간 여자라며 계속 집회를 쫒아다니던 내가 어떤 부분을 믿었는지 그 순간 선생님에게 라디오에 이렇게까지 나왔는데 곧 구조가 되겠지요~ 라며 그냥 지나가는 말을 하고 그날 일에만 열중했다.그리고 한참을 지나서 라디오를 다시 틀었을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이게 과연 현실인가?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한심한 나라였었나?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상적인 나라라면 일어날수 없는 일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면서 아주 살짝 고민을 시작했다.지금 집회에선 부정선거를 말하고 있는데 이 사건때문에 혹시라도 이슈가 넘어가지는 않을까?혹시 국정원에서 이런 노림수로 학살을 벌인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접해 졌다.하지만 그것도 잠시!저 수 많은 생명이 이 세상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떠난게 아닌가. 그런데 난 뭘 생각하는거냐? 한심한 놈!그래서 그날후로는 내가 가능한 시간이면 빠짐없이 세월호 집회에 참석을 했다.오늘날까지도...덕분에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집회는 빠지게 되었지만 상관없다.이 세상에서 생명보다 소중한건 없으니까!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올때까지는절대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