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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몰래폰하면서 뉴스를 보고 친구들과 무슨일이냐고 물어봤던 기억이나네요 살아있엇다면 대학교가서 즐거운 대학생활했을 친구들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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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 도중에 선생님이 자료 보여주신다고 네이버를 켰었다. tv로 실시간 검색어와 메인에 배 침몰이 떠있어서 다들 놀라서 봐보니 전원 구조,,라고 떴다. 다들 다행이다며 수업을 재개하였고 그렇게 학교가 파하고 집에 와보니 뉴스에는,,, 뉴스에는 세월호 이야기로 가득이였다. 뉴스를 봤던 시각도 기억이 난다. 10시 반,, 2교시 사회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정말 다 구출될 것이라 말하길래 그런 줄로만 알고 나라를 믿고, 윗 분들을 믿고,,, 몇 주 내내 구조자 실종자 사망자의 수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 어째서 사망자 수만 늘어가는지. 바다 위의 학생들이 고통스러워 할 동안 나라는 무엇을 했는지. 학생이라서 더 두렵다. 만약 내게도 그런 일이 닥친다면 과연 나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마지막 순간까지도 긍정적으로 밝았던 학생들,,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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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뉴스로 두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았습니다..아니 믿고싶지 않았습니다. 배가 전복되기 직전까지도 구해질거라 믿고해맑게 웃으며 동영상을 찍었던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고 슬픕니다. 저는 다른 이유로 작년에 사랑하는 남동생을 떠나보냈습니다. 그 슬픔은 이루 말 할수 없습니다.세월호 때문에 사랑하는 언니.오빠. 동생 . 자녀들을 잃은 유가족분들의 슬픔과 분노를 누가 감히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사건의 진상은 꼭 파헤쳐내야합니다. 7시간동안 대통령은 무얼하셨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바다에서 무서움에 떨고있을때 대체 무엇을 하셨나요.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우리가 너무 미안하다 얘들아. 부디 하늘에서 못다핀 꽃 피우고 그곳에선 웃는일만 가득하길바래. 유가족 여러분 저희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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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백일을 넘긴 아이를 재워두고티비를 켜고는충격적인 소식에 (아이가 깰까봐) 소리죽여 눈물을 흘렸었어요.아이를 낳고 조금씩 건망증이 온다고 생각했는데도이 날, 소리죽여 울었던 모습은 생생하네요.지금도 그 때의 화면을 접할 때면마음 깊숙이 아려오고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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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세월호 뉴스를 봤어요다들 놀라 사무실 뉴스를 음소거로 켜두고 있었죠모두 구조되었다는 자막을 보고"그럼 그렇치~" 하고 다시 바쁘게 일했는데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고한동안 가슴이 너무 아파어떤 뉴스도 기사도 볼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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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온 기사로 갑자기 세월호가 뜬 거야 그래서 뭐지 하면서 봤는데 처음에는 다 전원 구출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기사가 잘못난 거였어 계속 보면서 눈물이 났어 아직도 꿈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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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일어난지 시간이 지났지만매년 4월 16일은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그날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해주듯이..그 무서운 시간동안 얼마나 울었을까 아이들의 눈물은 매년 흐르는데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건 없으니그 억울함에 아이들은 아직도 매년 우는게 아닐까다시 찾아오는 4월 16일에는 더이상 아이들이 하늘에서 울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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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막 꿈을 꾸기시작한 어린학생들.. 형님 누나들 좋은곳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당신글을 잊지않을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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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티비에서 속보영상 보고는 큰일이다.무사히 구조되어야 할톈데 . 하는 마음이었고긴급속보로 전원구조!!! 라고 뜰때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행이다라고 했는데.오보라니, 이런일에 오보라니 너무 어의 없었어요. 자녀와 가족을 잃은 사고 유가족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온국민도 너무 아픔니다.근처에 미해군함정이 구조지원을 허용해달라고 했는데도 차단하고 통영함발진도막아놓은 정부 유력자가 누구든지반드시 처벌되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참여할 것입니다.납세자가 세금을 내는 것은 안전확보를 정부가 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세금을냅니다. 기필코 이아픔 이겨내고 앞으로국민의 안전권이 항구히 최고의 국정지표가되도록 참여하고 감시감독하는 시민의한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하면서 이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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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수출/입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고,성삼일 하루전,, 부활 성야 세례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저혈압이 심했어서, 날이 안좋으면.. 정신이 오락가락했는데뉴스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게 꿈인가.. 진짜 일어난 일인가 믿을수가 없었다.이상하다.수많은 화물선과 FERRY들은 기상 악화 때문에 입/출항이 하루 이틀씩 지연되었고화주들도 모두 이해를 하는 그런 상황속에서도왜 안좋은 날씨 속에서도 출항을 해야 했는지.그리고 해경들은 왜 세월호 주위만 빙빙 돌았는지..아직도 궁금하고,화가난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답답하다..성삼일을 눈물로 보내고, 세례식때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그리고 세월호참사에 대한 기억은 더 또렷해진다.예수님의 죽음..세월호참사...세월호 고박업체인 우련통운이란 회사랑일을 할 일이 있었다.정말이지 그때 이 업계를 떠나고 싶었다.박여인 말처럼.. 자괴감 들었다.그 회사는.. 지금도 인천에서 잘 운영되는데..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수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아파하고 있는데...그래도 지금 세월호에 대한 진상 규명이 다시 한번 떠올라서,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많은 분들이 한마음인것 같아다시 한번 더 일어나 기도하고 행동해야 함을 느낀다. 형제 자매님들..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진실은 꼭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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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준비로 가족 모두가 바쁜 시간이었어요. 보통 다른 회사보다 둘다 출근시간이 늦는 관계로 저는 엄마랑 티비를 보고있었고,오빠가 화장실로 들어가 나갈 준비를 하고있었죠.속보가 떠서 배가 침몰되었다는 소식을 보았고,어떻게하냐고 가족들이 잠시 걱정하는사이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이어 뜨더군요.모두 너무 다행이라고 가슴 쓸어내리고는가족들끼리 웃으며 계속 와 너무 놀랬다..너무 다행이다...전원 구조 되어서 너무 다행이다..사람들 많이 놀랐겠다..이야기 하다가티비 끄고 각자 출근하고 할 일 했어요.그리고는 일하고있는데 들려온 소리가전원 구출이라는 속보가 오보였다는 것이었죠.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습니다.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계속 세월호 소식을 주고받으며 진행사항을 지켜봤어요.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죠.그렇게 그 날이 지나갔던 것 같아요..제가 퇴근 할 때까지 뭔가 해결해내지못하고있다는 것이 참 답답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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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수능을 마친 고3이지만 2년전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아직 적응을 마치지 못한 학생이었습니다...쉬는시간에 침몰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기사로 확인하였고 모두 구조하였다는 사실을 접한 후에 평소처럼 수업을 임하였습니다점심을 다먹은 후에야 그 기사는 오보라는 것을 알았고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과 뉴스를 지켜보았던 기억이 납니다원래는 핸드폰을 다 꺼놔야하는 야자시간에도 모든친구들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그다음날 야자 감독선생님께선 핸드폰을 하는 친구들이 모두 세월호 뉴스를 보고 있어 차마 핸드폰 집어 넣으란 말을 못했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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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였지 , 휴대폰도 안들고 다녀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 방법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동아시아사 시간에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다 구조되었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슨 일이 있었구나 짐작만 할 수 있었습니다. 무지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었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 힐 만한 일이 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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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대학교 수업 공강이었지만 시험 공부를 위해 친구들과 학교 도서관에 갔었습니다.스터디 룸에서 공부하던 중 친구 한 명이 지금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믿기지 않는 일에 다들 공부때문에 덮어두었던 핸드폰을 켰는데 다른 친구 한 명이 전원 구조 되었다고 말했습니다.그럼 그렇지, 그 큰 배가 침몰해서 사람이 죽는다는게 21세기에 가능해? 다행이다. 얼른 돌아와서 가족들 품으로 왔으면 좋겠다.안도하며 수다를 떠는 것도 잠시.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는 기사가 뜨고, 초조해 하던 우리들은 곧 희생자 0명, 00명, 000명 이라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그 날 하루는 모두가 공부에는 손대지 못하고 눈물 짓고 우울해 하며 보냈습니다.유족들의 울음에 함께 울고, 아직 발견되지 못한 이들을 함께 찾으며 하루 종일 눈물 지으며 보냈습니다.아직도 우리는 얘기 합니다.그 날은 우리 시험 기간 중에 가장 우울했던 날 이였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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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들어온 교수님이 배가 침몰했다는데 무슨일인지 모르겠다 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순간 장난하시는건가?말이되는 이야기를 하셔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재가 침몰한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기에 핸드폰으로 찾아본 후에서야 사실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그후로 대학교 시험기감동안 살아있는 한명의 학생이라도 더 있기를 바라면서 도서관에서 나오면 바로 집으로가 티비를켜놓고 잠이들고,일어나면 다시 확인하는 생활을 한동안 했습니다.우리는 2016년을 보내고있지만 그들은 영원히 2014년4월16일에 머물러 있습니다.2년이 넘게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정확한 진실을 모르고 입습니다. 그런 지금의 제가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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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일어나자마자 지각을 직감한 날이었습니다. 허둥지둥 준비를 하며 티비를 틀었는데 세월호 속보가 나오고 있었어요. 사실 별생각 없었어요.제주도로 가던 배이고 해경이 있는데 다들 무사할 것이라 생각했고 준비를 거의 끝낼쯤 전원구조 속보가 떴습니다. 걱정하던 그 당시 남자친구와 괜찮을 거라고 보라고 전원구조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학교에서 돌아와 상황을 짐작하고 내 일도 아닌데 왜이리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주말내내 컴퓨터를 붙잡고 기사를 기다렸습니다. 잠수부가 학생들을 구조했다는 기사를..학생들이 살아서 페이스북을 하고 그 당시의 유언비어를 믿으면서요...저번주에 광화문 집회에 다녀왔어요. 세월호 유가족 미수습자학생 어머니의 발언을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창피한줄도 모르고 오열했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창피했어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우시고 계셨거든요. 다들 기억하고있어요.제 동생은 저번주에 군대를 갔어요. 동생은 아이들과 동갑이예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제 동생과 같은 친구들.. 절대 잊지않아요. 그리고 꼭 밝혀내겠습니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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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선생님이 너네 또래, 너네보다 한살 어린 애들이 배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에 가다가 배가 침몰했다고 하셨다. 모두 걱정하는 가운데 영어수업이 끝날때쯤 영어쌤이 다행히 전원 구출됬다고 하셨다. 집에 와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전원 구출이 아니었다.저녁때 가족들과 그 아이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잠자리에 누운 그날 새벽은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 내내 인터넷 속보를 보며 잠을 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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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티비나 인터넷과 거리가 멀어 오후가 되어서야 알았다. 딱 그 나이또래의 동생이있어서 그런지 온갖 인터넷이며 티비를 지켜봤었다. 그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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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우리반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있었다.인터넷 뉴스- 전원구출이라는 기사를 보고 안심하고 핸드폰을 끄고 아이들과의 시간에 집중했다.신나게 웃고 재미난 게임을하면서....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청소까지 끝낸뒤 인터넷뉴스를 다시본 나는 화가나고 또 화가났다.왜. 아이들은 전원구출이아닌데 전원구출이라고 기사를냈는지 아직도 안구하고 뭐하고있는지 마음이 찢어지고 우리나라현실에 절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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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첫 회사에서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져서 지병이 심해져서 기분이 너무 안 좋은 날 이였습니다.아침에 회사에 들어가서 남들과 떨어진 제 자리에 앉아서 일을 했습니다.일을 시작하고 웹에 들어가니 세월호가 뉴스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 기분도 안 좋았고 구조가 잘 되고 있다 는 식의 기사 였기에 저는 아 또 뭔일이야.. 이러면서 그냥 무시했고 그날 점심을 먹으면서 회사사람들과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보았고 그 날 간식먹는 시간에는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하지만 전 그때 제 기분이 너무 중요했기에 그리고 몸이 너무 아픈시기였기때문에 구조되겠지 하고 그냥 집에 들어가 잠들었습니다.그 이후로 세월호 소식은 점점 안 좋아졌고 제 몸도 안 좋아져서 전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는데 그 입원한 10일동안 저는 매일 매순간 티비만 보고 살았기에 울기도 했지만 4월 16일에 제 자신에게 실망한 날 이기도 했습니다.제 기분과 몸상태때문이라며 아이들을 별거아닌 시끄러운 일 취급했던 그 날의 저에게그 이후로 세월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 날 했던 생각이 지워지지않아서 아이들에게 너무 죄스러워서 눈물이 납니다.저는 기억할겁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모든 억울함이 사라질때까지 전 잊지않을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