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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앞다리를 한근 사서 고추장에 무쳐 먹을까 했던 아침TV를 트니 속보라고 세월호의 모습이 나오더군요.돼지고기를 무치면서 애들 어떡하나, 다 구해져야 될텐데. 세상에. 부모님은 정말 힘드시겠다.무친 돼지고기를 냉장고에 넣으니 전원 구출이란 오보가 떴습니다. 순간 안심했고 다행이다 생각했지만..뭔가 이상하게 애들이 나오지 않았던 그 시간.하물며 해경도 뭔가 미적거리며 겨우 나온 애들을 건지는거 같았던 영상들그리고 지금 더 믿을 수 없는 국정농단을 보고 있습니다.힘을 내세요. 기억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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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11시에 처음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심먹을때 식당 TV에서 전원구조 소식을들었죠. 그날 먹었던 식당, 거기서 안도의한숨을내쉬며 먹은 수정과도 다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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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다가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주로 가는 여객선이 사고를 당했다며 자료화면이 나오는데 선체가 기울어져 있기는 했지만 날도 밝고 날씨도 좋은 편이라 "다행히 금방 구조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습니다.그런데 저녁뉴스에 전원구조는 오보이며 아직도 아이들과 승객들이 배 안에 남아있다는 소식을 듣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놀랐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이후 연일 뉴스에 나오는 구조소식에 실망감을 넘어 의구심과 분노만 점점 커져가며 과거 큰 재난들을 떠 올리며 한명이라도 더 살아서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이 글을 쓰며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치밀어 자고 일어나면 꿈일것만 같지만 믿기 힘든 지금이 현실이라니 그저 속상하고 황망스러울 따름입니다.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저지른 죄의 댓가를 받아들이고 진실을 밝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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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전화로 소식 듣고 남자친구만나러 가는 길에 뉴스 검색해서 일원동 도착해서 어떡하냐 얘기하다 까페감 다 기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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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는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그날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핸드폰을 받았습니다. 한 친구가 핸드폰을 보더니 사람들이 어딘가에 깔려있거나 갇혀서 못나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라는 이야기에 안산에서 전학온 친구가 크게 충격을 받았고요. 그 친구는 한동안 충격에서 쉽게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는 언니, 오빠들이 갇혀서 나오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친구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나네요.저는 그 날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그 날은 우리 모두에게 슬픈 날이었잖아요. 그 날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들에게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도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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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전원구조 소식 이후 안심하고 잊고 있었습니다. 점심먹고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탔는데 모니터에서 전원구조가 오보임을 확인하고 오후부터 밤까지 야근하는 와중에도 구조상황 수시로 확인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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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ᆞ생사의 갈림길에 그 끈을 놓치않으려는 환자들의 순간과 함께할 때, 차가운바다에서 그저 삶과 죽음의 생각조차 하지못한 채 이별을 먼저 맞딱뜨린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ᆞ누군가에겐 어떠한 방법조차 해보지도 못한 현실속에서 아무도움이 되지못하는 저와, 이 나라가 너무 싫었습니다 ᆞ아직 펴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살아야 할 권리조차누리지 못한 지금 , 또 다른 갈림길에 놓여진 그들을 위해 외칩니다ᆞ국민은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힘 입니다 !국민을 지켜야하는 것은 의무이구요!잊지마세요 !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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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살아돌아올거라는. 마음으로 지켜봤던 기억이 납니다..차가운 바다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안되요..그 시간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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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두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한 주부인 제가 그날을 기억하는게 무슨 도움이될까요얼마살진 않았지만 무력감이라는게 바로 이런거구나 라는 생각이 그날이후지금까지도 관련 뉴스를 접할때마다 계속 됩니다전 기다리던 둘째를 임신한지 몇주 되지않은 매우초기였고그날은 오전에 지인에 집에가서 대화를 나누고 점심쯤 집으로 가려는데 남편으로부터 전원구조 소식을 듣고 다행이다했고집에 티비가 없어서 어린이집에 간 첫째가 돌아올쯤인 3시정도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휴대전화로 뉴스를 보고서 오보인것을 알고 그때부터 아이와함께 전화기로 뉴스를 보기도하고 밤새 뒤척였고 그다음날인가는 태아보험을 계약했는데 아이들은 뱃속에 있는데 세상은 그대로이구나절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아무것도할수없어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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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저는 군 복무중이었고 근무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월호에 가족이 탄 사람 이 있는지를 말이죠 그 사건 이후 초반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다가 어느순간부터 비난으로 여론이 이동해가지고 당황스러윘습니다 여기저기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너무한다, 보상금 욕심때문이다 등등 그런이야기를 들을때 저는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럴수도 있다생각했었죠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죄송합니다그리고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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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지금 한국에서 수학여행간 아이들 배가 사고가 나서 큰일이 났다고요그 후 계속 TV 를 보면서 배가 저렇게 뒤집어져 있는데 도데체 구조는 안하고 뭐하는지 답답해 하면서 배가 물에 갈아 앉을때까지도 구조가 되지 않는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을 계속 TV로 보고 있었습니다.만약 미국에서 저런일이 일어났다면, 우리 아이들 다 살았을겁니다.이런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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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처럼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저녁때는 예전직장 입행동기들과의 간만의 저녁약속 자리가 있었었고.오전에 고교 수학여행단을 태운 연안 여객선이 침몰중이란 뉴스는 이내 전원구조로 바뀌어서 그런가보다 다행이다 그러고 있었는데 연안 여객선 침몰중이란 뉴스가 포털사이트에서는 내려지지 않고....어 이러다 대형참사 일어나는거 아냐? 하는 불안감이 불현듯.....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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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에 선생님이 배하나가 침몰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아마 4교시쯤이였던거 같네요. 점심시간 급식실에 친구들을 만나 침몰소식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한 친구가 전원 구조되었다고 말하더군요. 밥을 다먹어갈 때 본 뉴스는 "오보"였다, 아직 배에 사람들이있다, 단원고 학생들이 있다, 구조 중...... 이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들려오는 영웅의 이야기, 울분터지는 이야기, 답답한 이야기.선배들이었습니다. 언니고 오빠였습니다. 17살이던 전 19살이 되어 곧 졸업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18살에 멈춰있습니다. 이제 동생이네요.그곳에 있었던 언니, 오빠, 선생님, 탑승객, 선원 분들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걸 믿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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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을 하는 저는 2014년 4월 16일 아침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1호선 전철을 탔습니다. 항상 제 시간에 오지 않는 전철이 참 짜증났었는데, 그 날은 늦게 출발한 전철 덕분에 놓치지 않고 겨우 탈 수 있었죠. 그런 사소한 일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석계역에서 내려 6호선 플랫폼으로 갔을 때, 처음 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고, 그 안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갇혀있다고. 어떡해 하며 걱정이 됐지만 이내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세월호의 상당 부분이 수면 위에 있었고, 저는 "요즘이 어느 때인데, 요즘 기술로는 금방 구할 수 있겠지" 하는 정말 굳은 믿음이 있었거든요. 또, 안에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리고 곧 핸드폰으로 “전원구조” 속보를 봤고, ‘역시, 이 정도는 구조하는 구나’ 하면서 새삼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했다니 뿌듯함까지 느꼈어요.그렇게 학교에 도착했고,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들렸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있는 TV에서 나오는 사고 장면, 그리고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자막. 전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자리에 정말 얼어붙어서 뉴스를 봤어요. 응? 이게 뭐지? 그럼 사람들은? 아직 저 안에 있다고? 엄청 가라앉았는데? 에이, 설마... 근데 왜 구조를 안하지? 구조하러 온 사람들이 저게 다야? 뭐지? 이건 무슨 일이지?혼란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후로 계속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진도팽목항, 에어포켓, 다이빙벨 등등 생소했던 단어들은 일상 언어가 되었고, 애타게 기다렸던 생존자 소식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이 기억하는 그 날도 이렇게 생생한데, 참사 책임자들은 왜 2016년 4월 16일을 왜 기억에서 지워버렸을까요.2016년 한 해가 끝나가는 요즘 조금씩이나마 세월호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알고 싶었던 진실인데 이제 더 알기가 너무나 두렵습니다. 또, 인양을 그렇게 외쳤는데 물 밖으로 나오는 세월호를 솔직히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세월호가 온전하게 인양되고, 모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잊지 않고, 지켜보며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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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흘러 내아이들은 중2 초등4학년을 마무리하고 며칠있으면 한살을 더 먹습니다.2014년 4월 16일 09시 30분경이었을까요? 업무에 필요한 자료검색을 위해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는데 긴급자료가 떠 있었습니다대형선박 침몰.허둥지둥 사무실 티비를 켰습니다.수학여행중인 학생들이 탑승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덜커덕... 뱃속에 있는 아이들이 전원되기를 기도하면서 학교에 아들들이 너무 보고싶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조금있다 전원구조되었다는 소식에 티비를 끄고 일하면서도 벌렁가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던건 그게 오보일지도 모른다는 걱정때문이어서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기획부서에 근무해서 일을 해야하는데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겨우 퇴근해서 아이들 구출이라는 소식을 기다리며 밤새 티비를 봤었는데..얼마 시간이 지난후 전국민이 뜬눈으로 날을 지새우던 그날 구출시도도 못했다는 아니 안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욕을 해댔는지 모릅니다.며칠전 이런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세월호로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가 쓴 글이라고 합니다."거리에 교복입은 학생들이 쫙 깔려있다. 오는 길에 야채를 사서 양손에 들고 오는데 더 무겁게 느껴져 발길이 더뎌졌다. 힘들어 죽겠다 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어느 여학생이 존나, 씨×, 병×새×끼가 어쩌고 저쩌고, 열받아 지나가는데 여학생가방에 리본이 달랑달랑. 그걸보는 순간 내 마음이 여학생 편에 선다. 그래... 어떤××가 예쁜 너를 열받게 했을까? 나는 우리 아들 보고픈 거 삭히느라 가슴에 열이 나 숯덩이가 된단다. 휴~"나는 그날을 다 기억합니다. 점심도 거르고 침몰한 배를 티비에서 보면서 저녁을 먹을 수도 없었고.. 귀하디 귀한 아이들 구출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시간을요...우린 절대 잊어버려선 안됩니다. 진실이 밝혀진다해도 우린 기억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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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이 무슨 요일이었지? 하고 찾아보려는데, 수요일이었나? 하는 생각에... 내가 어떻게 그런것까지 기억하겠어..하며 달력을 찾아보고 놀랐다너무나 충격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정확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전에 난 출근을 하였고, 회사에서 그저그런 일상을 보내다가 뉴스를 보고 배를 탄사람들은 힘들긴하겠지만, 구조는 되겠지... 설마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다음순간 접한 소식, "전원구조". 휴우, 다행이다 하며 점심먹을때가 되어 슬슬 나섰다.그런데 그날 오후, 오보였다는 사실이 전체 사고 소식모두가 오보인건가? 말이되나? 라는 생각이 들게했고...언론이 그런 기본적인 확인조차 하지도 않고 보도했을리가! 라는 생각에 믿지 못했다.그때부터였나... 언론도 못믿겠고, 이 정부는 더더욱 못믿겠다.저녁쯤...되자... 한두명이 아닌 수백명이 당한 참극이 현실로 다가왔다.낮동안엔 설마....설마... 만 반복하다가 그게 사실로 굳어진 그날 저녁, 많은 사람들이 다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정말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구나... 정말이구나... 아이가 있는 한 부모이기에, 뉴스를 듣고 눈물을 줄줄 흐를 수 밖에 없었다. 다키워놓은 아이를 의지와는 상관없이 잃어버린 부모들....절대 이런 참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며, 정부가 하지 못한다면 나라의 국민들이 도와서라도 꼭 이상황을 헤쳐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박근혜 퇴진도 중요하지만, 첫시작은 세월호의 덮혀버린 시간부터 찾는 것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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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회의를 마치고 동료와 함께 식당에 갔다가 뉴스에서 반쯤 기울어진 세월호를 봤습니다. 그렇게 큰 배 주변에서 아무런 구조활동도 없는데 화면에는 탑승자들 대부분이 구조되었다는 자막이 나왔습니다. 저는 동료에게 "말도 안돼.. 저 큰 배가 저렇게 기울어졌는데 주변에 구조선도 없이 어떻게 몇백명을 구조했다는거지.. 구조된 사람들은 다 어디있는거지?..." 밥도 안 넘어가고 사무실에 들어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계속 뉴스만 찾아봤습니다. 7시간이 아니라 17시간이라도 저는 다 기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날을 단 1분이라도 잊을수가 있겠어요... 기억하지 않으려는 자는 그러려는 이유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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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구조했다고. 모두 모여 뉴스만 보고있었는데, 그랬잖아요.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요.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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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구했다고 그랬잖아요.구조를 기다리던 그 아이들을 모두 구했다고,우리에게 그랬잖아요.그 뉴스 하나 보고 웃었던 나는 그 뉴스가 오보라는 말에 울었어요.7시간이에요, 7시간.구조가 가능할 수 있었던 7시간.절대로 잊지 못하는 그날의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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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 누군가를 통해 전해진 소식에 다들 놀랐습니다. 다행히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에 안도한 채 오후 훈련을 받았죠.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 큰 충격에 계속 라디오를 들으며 간절히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으로 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가 의무를 다하고 있을 때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우리에게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있다면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의 의무는 우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킬 수 없는 것이 많은 세상이라 가슴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