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사에서 근무중에 인터넷으로 사고를 접했습니다 사고를 접하고 상황을 지켜 보면서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좋아 했는지... 그런데 거짓이더군요 화가 났습니다 우리 나라의 재난관제 시스템을 비난했습니다 정부의 대처에 화가 났습니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비보에 슬퍼하고 분노 했습니다
-
아침에 사고소식을 듣고 중간중간 기사를 확인하다가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동료들과 기뻐했습니다.그 때 들었던 생각은 그래도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이 정도 사고쯤이야 하는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그러나 단 며칠만에 그 신뢰와 안도감은 분노와 절망으로 바뀌게 되었죠.늦게까지 생존했던 아이들이 남긴 페이스북과 카톡글을 모두 허위글 로 몰고 급기야 카카오톡회사 압수수색까지 하여 그 흔적을 지우려는 정부,구조전문이 아닌 인양전문업체를 현장에 보내고 국내외 다른 도움의 손길을 모두 거절한 채 아이들을 모두 수장시킨 이 정부는 어찌 이리도 뻔뻔할 수 있나요?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잊지 않을겁니다.이제라도 관련자들은 양심고백하여 유가족과 국민에게 백배사죄하고 죄값을 치루기 바랍니다.
-
말년병장이었죠. 군대에서 설마...하면서 TV만 보고 있었어요.후임들이 다행히 전원구조했다고 하길래"역시! 그래,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는 오보였고, 믿을 수 없는 참사가 결국 일어났어요.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채 피지도 못한 꽃송이들이 물에 잠겨 있는데 그 누구도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얼어가는 꽃송이들과 꿈에 그리던 제주여행으로 한껏 마음이 부풀어올랐던 승객들에게 아무런 말도 도움도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우리 국민들. 아이들 살려내라고 안 할 테니 진실만이라도 제발 밝혀달라고 울부짖는 유가족과 이를 무시하는 박근혜씨와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새누리당 의원들. 저는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박근혜가 세월호를 침몰시켰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야 하는 박근혜씨는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 지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었던 만큼,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면 생존자는 훨씬 많았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그림자에 기댄 추악한 악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더 이상은 되지 않도록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당신들의 더러운 만행을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수준 높은 국민 여러분, 이 7시간을 잊지 말아주세요.
-
점심으로 친구랑 둘이 찜닭을 먹고 있었어요. 2년도 더 지난 날인데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당시 식당 뉴스에서 세월호 소식이 나오고 있었어요. 어떡해 하며 보다가 바로 전원 구조라고 뜨기에 "아 다행이다! 사고가 났지만 다 살았으니 나중에 오히려 재미있는 추억거리로 남을 거야" 라고 얘기하며 식사를 마쳤는데... 그게 오보일 줄은... 아니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그렇게 많은 생명이 빛을 잃을 줄이야... 얼른 모든 것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은 책임을 져서 그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학교가 마치고 친구들과 같이 있는데 그날따라 잘 들어가보지도 않는 네이버에 들어가보고 싶었어요. 들어간 네이버에는 기사들이 많았고 밑에 조그맣게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가 있었죠. 사진 상으로는 배가 그리 커보이지도 않았고 이런일이 있을 수도 있지 곧 구조될거고 아무일 없을거라 생각해서 친구들에게 "배가 침몰했데"라고 말했던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학원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족들이 뉴스를 보고있더군요. "세월호 침몰" 사실 이것만 봤을떄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뉴스를 자세히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꺠닫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탑승객분들 그리고 유가족분들께는 평생 마음에 안고 살아가야할 사건이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모두가 잊고 살아가는 듯해서 슬프네요. 세월호의 진실 꼭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잊지 않겠습니다.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세요.
-
항상 4월 20일인 제 생일 즈음에는 기분이 좋지 않기 마련인데, 그 어떤 해보다 가장 우울한 해였습니다.흐린 아침학교에 가는 지하철에 앉아서 가던 길에 보았던세월호 사건.그 아침 아니 그 날 오후,그 날 저녁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단원고 300명이 살아나올 수 있겠지하고 믿었었는데그 많은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 묻게 되었습니다기억하고 또 기억합니다.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컴퓨터로 소식을 접해서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놀란마음에 호들갑을 떨며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직원이 다 구조 됬다고 걱정안해도 된다며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그 후 오보가 났다는걸 보고 아무렇지 않게 생했던 그 순간이 누군가는 생사른 오가던 시간이었던것을 알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쩌면 잊어버릴수 있는 평소와 똑같은 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7시간도 꼭 알고싶습니다.
-
학교 오전 수업 시간에 인터넷기사와 페이스북의 기사로 통해 알게되었어요. 제가 예대생인데,학교에서 들리는 음악소리들이 다른 날보다 많이 위축되어있었어요. 다들 손에 안잡히는거죠. 많은 오보속에서 ,좋은 소식만 기다리는 상황이 마음이 아펐어요. 한명 한명 구출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심장이 덜컥 덜컥거렸네요. 우리는 기억합니다 .
-
회사에서 업무관련 회의를 하던 중 뉴스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접했습니다.그 동안 늘상 있었던 사고처럼 곧 구조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그 동안 많은 사건사고를 봐 왔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을 봐 왔습니다.길지 않은 삶에서 이처럼 대책없고, 책임없는 사건은 없었습니다.그렇게 무능하다고 탓했던 몇몇 정권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역대 최악의 정권이며, 후세에게도 창피한 시대로 남을 것 같습니다.절대 창피한 역사를 물려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어느 때 보다 우리 모두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 중이었습니다.사무실의 누군가로부터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얘기를 듣고 인터넷 포털 기사를 보았을때,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정말 아무런 의심없이 구조가 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 것이 뚜렷히 기억납니다.그래서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처음 났을때 기쁜 마음에 뒤 쪽에 앉아계신 부장님을 향해 "전원 구조되었데요!" 라고 소리치며 말씀드린것도 기억이 납니다. 오보임이 판명되었고, 슬픈 소식의 기사들을 접하면서 왜 모든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업무 중간중간에도 새로고침을 누르며 인터넷 기사를 확인한 것이 생각납니다.그 날은 집에 가서 새벽까지도 잠이 들기 어려워 깜깜한 방안에서 핸드폰을 보며 기사를 본 것도 기억이 납니다. 평소 잘 하지 않던 기도까지 하며 누군가는 부디 살아서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 안기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그 다음날 오전 출근하여,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가지신 차장님께서 업무 도중에 오열을 하며 안타까워 하신 얼굴, 사무실에서 그 차장님자리의 위치, 그 차장님께서 휴지로 눈물을 닦으신 제스처까지 기억합니다.저는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한 두 번 본 정도의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그러나,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 느낀 먹먹함과 간절한 바람,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 그 날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저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뚜렷한 성향도 없어서 정치적인 잣대로 그 날의 책임들을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한 인간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것도 아직 세상을 다 살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져물어 간 그 슬픈 날의 기억을, 2년채 되지 않은 기억을 어떻게 모른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의 슬픈 기억들에서 헤어나지 못했는데 말이죠....
-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당시 했던 말을 기억힙니다.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는 나에게 가족은 국민 여러분입니다." 국민이 가족이라는 당신은 새파란 아이들이 차디 찬 바다 속에서 명을 달리 할 때 무엇을 했나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들이 너무나 가엽고 불쌍해서 지금도 떠올리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추모하러 갔을 때도, 고 박예슬 학생의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에도 노란 리본을 여전히 달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과 유족들만이라도 짐을 덜어주길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을 위한, 우리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 세대가 기억하고 우리 다음 세대가 기억할 것입니다.
-
저는 그 날 일하고있었어요 컴퓨터 하다가 기사보며 거의 실시간으로 침몰한거 봤었고 구조됐다는 오보도 봤었고....참 당황스럽고 안타까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
시차가 달랐고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그때의 세월호는 저녁이였고 나를 비롯해 모든 유학생들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관심을 가져줬다다 함께 슬퍼했고 아직도 그날을 잊지못한다.잊지말자 세월호 리멤버0416
-
저는 그 날 학교에 갔습니다.초등학교 6학년 이였던 저는 그 당시 뉴스를 즐겨 보지도,신문을 즐겨 보지도 않던 놀러만 다니던 그런 아이였습니다.아침에 혼자서 훌쩍훌쩍 우는 저희 엄마를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배가 가라앉았다고, 학생들 그리고 승객들이 탄 배가 가라앉았다고 울고 있었습니다.저는 애석하게도 그 자리에서 "에이~별 일 없겠지~"하고 넘어갔습니다.정말 죄송해요.차가운 바닷물에 익사했을 언니 오빠들 승객분들을 알아주지 못 해 정말 미안하고 죄송스럽습니다.저는 그 참사 이후로 remember20140416이란 말을 항상 가슴 속에 새기고 다녔습니다.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주지도,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저였기 때문에 더 죄송해서 항상 새기고 다니고 있습니다.저는 그 7시간이 자세히 기억은 나진 않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박ㄹ 보다는 훨씬 더 잘 알고 떳떳하다고 생각됩니다.저런 개,돼지 만도 못한 사람때문에 희생 된 승객분들 정말 죄송하고 안타깝습니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습니다.이 역사를 저흰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remember 20140416?
-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시험기간이었습니다.도무지 공부가 되질 않았어요.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충격.그들은 우리의 친구이자 언니였을 수도 있습니다.아시죠,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
병원에서 밤샘쉬프트하고 환자들이 보는 티비를 보고 무슨 영화보길래 이러냐고 물었던 기억이난다.
-
학원을 마치고 아는 형 사무실로 놀러갔습니다. 12시가 조금 넘었을 시간이었죠. 사무실에 가자 마자 점심을 먹으러 형과 식당으로 바로 이동했었죠. 그리고는 식당 내부 TV로 나오는 세월호 뉴스를 봤어요. 내용은...어렴풋한 기억으로 전원? 아니면 300명 이상 구조했다 라고 나왔던 자막이 떠올라요. 그 때 속으로는 그래도 많이 구조했네 라며 내심 다행으로 여기며 밥을 먹었던 것 같아요.그런데 아니었죠.ㅜㅜ잊지 않을께요.
-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 전날부터 했던 당직근무로 인해 파김치가 된 몸으로 집에 기어와 제일 처음본 뉴스가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 "전원구출" 이었음을. 정말 다행이라며 안도했던 그 마음을 가지고 피곤에 절은 몸을 잠시 뉘였다가 정확히 7시간 뒤, 알람에 겨우겨우 일어난 내가 마주한 것은 304명의 귀중한 목숨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것. 그 이후로 나에게 있어서는 그동안 내가 알던 세상이 뒤집어졌으며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신념과 자긍심이 깨지고 부서졌다를 반복하다가 어느순간부터는 "누군가들" 을 향한 부끄러운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또 다른 "누군가" 를 향해선 알수없는 적의와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
저는 그때 중학교3학년이였습니다 다음수업을 위해 책을 챙기고있는와중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구조되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다같이 안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뉴스봤을땐 오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갔었고, 친구들과 떠들고 있었고, 너희의 소식을 들었어. 전원구조가 사실이 아닌 오보였고, 아직 많은 친구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뉴스에서 나오고 있었어. 그 때의 전혀 심각하지 않았어. 당연히 그 오보가 곧 사실이 될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질 않았지. 그 날은 하루종일 공부가 안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