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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은 정말 봄을 머금은듯 따뜻했었습니다. 생활관 안에서 동기들과 그날 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중 티비속에서 배가 침몰 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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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16살,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국어시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면서 지금 학생들이 탄 배에 사고가났다고..아마 제 기억으론 지금 사고가 난 학교가 전에 계셨던 학교라고 말씀해주셨던것 같습니다. 그때 어린 저희들도 상당히 놀랐었습니다. 저는 그날 선생님이 저희에게 하셨던 말씀까지도 기억이납니다. 그리고 그날을 기억하고자 세월호배찌를 항상 가방에 차고다닙니다. 그 날은 우리모두가 알아야하고 기억해야할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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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고등학교를 다니던 당시 제주도로 갔던 2박3일 승선실습 마지막날 아침 고향인 완도로 향하던 배안에서 저희는 조타실에모여서 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그런데 갑자기 조타실에있는 무전기가 갑자기 매우시끄러워지더니 선장님이 한연락을받고 오셔서 진도해상에서 배가 출몰하고있다고 하더군요. 그후 바로 핸드폰에 특보 알람기사가 뜨더니 방금들은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너무나놀랐지만 해경들과 주위어선들이 도와주러 간다는소식에 마음이 노였습니다. 저희들은 배안이라 진행되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여 큰일이라고는 생각하지않았습니다.그러고는 완도에 도착하자 제 핸드폰과 친구들의 핸드폰에는 가족들에게 전화가 많이 와있어서 무슨일인지 전화를했더니 뉴스를보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가던 고등학교학생들이탄 배가 출몰중이란소식에 혹시나 저희일까 걱정되어 전화가와있었던것이었죠.집에 도착하여 뉴스를틀어 심각성을알고 너무나 심란했습니다.아직도 조타실에있을때의 그기억..그리고 그날의 잊혀지지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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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기위해 아침부터.분주하게 움직였다. 씼고 나와서 항상 그랬듯이 거울 앞에 앉아 로션을 바르는데 tv를 보던 누나가 큰일이 났다며 배가 뒤집혀 바다 속에 빠져있다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고 구조하겠지 하며 무심히 나는 나의 할일을 하고 있었다. 뉴스에서 교통사고 나 살인사건등이 일어나듯 이러한 같은 사건들과 같은 취급을 했다. 공부를 다 마치고 집에가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나 자신을 한없이 비판했다. 세월호의 그 아이들 입장이되어 생각해보았다. 무서웠다. 슬펐다. 원망했다. 그래서 잊을 수가 없다. 더욱 더 최선을 다해 기억을 해내야겠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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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정치학 수업의 중간고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아침부터 공부를 했고, 틈틈이 뉴스도 보았습니다. 시험은 10시 30분. 9시 즈음에 그런 뉴스를 보았습니다. 배가 침몰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어선이 침몰해서 구조하고 그런 일들은 간혹 있어왔던 일이었으니까요. 일단은 시험이 눈 앞에 있어서 당장의 시험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시험을 보고 나와서 12시 즈음 점심을 먹으며 뉴스를 보았습니다.탐승자 전원 구조.그럼 그렇지, 당연히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당연하겠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배가 뒤집힌 모습이 중계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심각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꽤나 혼란스러웠겠구나.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오후의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갔고, 그 수업 이후에도 다른 강의가 있어서 6시까지 뉴스를 볼 새가 없었죠.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그 사이에 이런저런 조치를 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와서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아까 분명 전원 구조라고 했는데 실종자가 300명이 넘는답니다. 침몰은 일찌감치 했다는데, 아직도 물에 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고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너무 어두워져서 더 이상 작업이 불가능해서 철수한다는 등의 얘기와 동시에 아직 살아있을 수 있다며 공기를 주입한다는 등의 얘기를 보며 더욱 혼란스러웠지요. 아무리 봄이라고 해도 저녁이면 물이 얼마나 차가운데, 저게 말이 되는건가.. 그런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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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고 그저 뉴스에 크게 나오는걸 보고도 무관심했던 내가 이제서야 왜그랬는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지금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듭니다.이제야 알아서 늦었다는걸 알지만, 항상 기억하면서 언니오빠들의 명복을 기리며 두번다신 같은일이 일어나지않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나라에 관심을 가지며 후회없는 날만 만들게요 언니오빠들 정말 죄송해요 .. 좋은곳 가서 따뜻한 빛으로 가득한 다음생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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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처럼 네이버 뉴스를 켰는데, 세월호가 침몰했고 아이들이 갇혀있다고 했어요. 당시 독일에서 지내고 있어서 시간차를 두고 세월호 소식을 접했는데, 출근 하자마자 텅빈 사무실에서 눈물만 흘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하면 아프고 여전히 세월호를 생각하면 눈물나지만, 결코 아이들의 죽음과 가족들, 그리고 국민들의 아픔이 헛되지 않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 완전히 바뀌는 우리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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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제 체육복이 아크릴 물감에 더러워져학교 건너편에서 우리학교 체육복을 사고있었습니다.그 가게의 TV에서 마침 세월호 사건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사망자는 없다기에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별 걱정없이 집으로 갔습니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고학생이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그 때는 그렇게 원통했는데 지금은 잊은 채 잘 살고있는 제가너무나도 밉습니다.이 캠페인으로 저 뿐만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분들이이 일을 가슴깊이 새겼으면 좋겠습니다.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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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시간 이였다. 우리는 휴대폰을 내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들어오신 선생님 분들이 지금 수학여행을 가던 배 하나가 바다에 잠기고 있다며 살짝만 가볍게얘기해 주시고 어떤 선생님은 걱정을 하며 자신이 어릴 때 겪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말씀해 주셨다.우리는 배가 침몰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가볍게 넘겼지만 종례시간에 받은 핸드폰을 켜보니 나라가 뒤집혀 있었다...지금 생각해도 우리는 정말 남의 일이라면 가볍게 인식하고 쳐다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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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번일이었기에 이른 아침 웅진코웨이 코디님 오셔서 정수기 점검 받으면서 이게 무슨일이야!! 해경이 구하겠지하며설마했지요....걱정가득 tv를 보면서도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종일 tv 앞에서아무것도 못하고 애태우다가 고2딸아이가 11시 넘어서 야자 끝나고 오는 밤시간에 마중나가서 어깨를 토닥이며 공부못해도 좋으니까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울먹였습니다. . 뜬금 없다는듯 구하겠지 하며 피곤해하는 아이의 말. .. . .. 그게 그말이 지금껏 세월호 부모님들께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죄송합니다..딸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볼때마다 문득문득 죄책감이듭니다... 지난 여름날 픽미를 춰줄테니 용돈달라 애교부린다거나 수시논술을 보기위해 가슴졸이며 대기하고 있을때 문득 아이들이 생각나면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러하겠죠, 치유될수 없는 트라우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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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난 출근을해서 평소와 같이 네이버를 밑에 깔아두고 일하고 있는데갑자기 실시간검색어에 세월호가 떴다.기분이 괜시리 이상해 클릭했는데세상에 배가 침몰되었다니......그 날 회사엔 세월호 소식보는 사원들이 대부분이였고다들 무사구조 되었으면 했는데...... 왜 당신들만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겁니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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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기 3개월째 어디를봐도어디를가도 세월호만나온그날 배가물속에 가라앉을때 뱃속우리아기도 알았는지 배가당기든 아프고 감사하게도우리아기는 건강히잘태어났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차가운물속에 너무나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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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친구의 생일이였습니다. 학교에서 휴대폰을 걷어서 오전에는 배가 침몰한지 몰랐는데 , 방과후 친구의 생일을 같이 축하해주던 친구가 " 야 배 침몰했데" 라고 말했습니다.그때 네이버에 정말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가 있었고 전원구조라고 하여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저녁에 엄마랑 밥먹다가 뉴스보고 엄마는 우시고 저는 제발 무사히 구조되길 기도했던것이 생각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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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기기 8개월쯤. 한국에있는 가족들과 함께 지낼쯤이였죠. 뉴스를 보며 기기막혀 미국에 있는 남편에게 당장 전화에 실시간 뉴스속보에... 벌써 3년이라니... 아직도 끔찍한 말도 안되는 사건을.. 어찌 잊을까요꿈이라고 믿고 싶습니다...제 맘이 이리 찢어 지는것을.. 부모님들 마음은 감히 헤라리지 못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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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동안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했지만 막상 대학에 오니 길을 잃은 기분이 들던 22살의 나. 한 발자국도 못 나아갈 것 같은 기분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지는 괴로움에 잠시 쉬어가기 위해 휴학을 했다. 봄날의 어느 아침 늦잠에서 일어나 늘 하던 것처럼 TV를 켰을 때 내가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 가려고 탔던 배가 반쯤 기울어져 있는 걸 봤다. 현실감이 없었다. 자막에는 전원구조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단순사고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배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뒷목의 서늘함이 쉽게 가시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TV를 등지고 부엌에서 대충 먹을 아침을 차리고 먹으면서 나는 그 뉴스를 내 머릿 속 한켠으로 밀어두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했다. 12시쯤 되었을 때 웹툰을 보려고 네이버를 켜다가 아까 느꼈던 서늘함이 이번에는 등 뒤로 이어졌다. 다시 뉴스를 켜봤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워서 TV를 더는 보고싶지 않았지만 끌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꿈에서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 광경을 그냥 그렇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봄인데.. 봄 같지가 않았다. 너무 추웠다. 내가 아는 이가 그 배에 타고 있던 것도 아닌데 나는 내 동생이 내 아버지 어머니가 내 선생님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고통은 유가족에 비할 수 없겠지.. 나는 그 날 안전하게 집에서 고통의 7시간을 보냈다. 그 날 나는 안전했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이 나라가 정말로, 완전히 안전하다고 믿을 수는 없게 되었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학교 가는 길에 탄 지하철에서도,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면서도 문득문득 불안했고 여전히 불안하다. 우리는 정말 안전할까. 우리에게는 그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수 있나. 정말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잠시아마 망설였다면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2의 세월호가 있어서는 안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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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교사이다. 아침에 전원 구조 오보를 듣고 선생님들과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곧이어 오보라는 것이 알려지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은 "어떡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오후 공강시간에 교무실에서 실시간 속보를 틀어두었을 정도로 선생님들에겐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 수학여행 참사... 정말 비극이 아닐 수없다. 그런데 그 시간에 피부시술을 받았다니! 평소 공무원 행동에 대한 철저함과 윤리성을 특히나 강조하는 이번 정부다. 비단 그 시간에만 시술받은 건 아니겠지... 항상 업무시간에 그걸 받아온 거겠지. 정말 치가 떨린다. 처참하게 죽어라. 천벌을 받는다해도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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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슬펐어요 아이엄마로써마음너무아파서뉴스조차들을수가없었어요이더운베트남에서차가운물속에가라앉은아이들생각하니온몸에한기가느껴질정도였던기억이나요너무슬프니까가슴이찌릿한느낌으로,,,그날아무것도못했던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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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저는 중학교 2학년이였습니다. 지난주 있던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저이지만 4월 16일은 그날의 날씨까지 정확히 기억납니다. 가끔씩 살랑살랑 불던 봄바람이 봄을 확인시켜주며 기분을 좋게했습니다. 일주일뒤에 잡월드로 현장체험학습이 있었고 그날 종례시간에 선생님께서 잡월드에서 할 체험을 컴퓨터로 신청하라 하셨습니다. 인기가 많은 체험은 접수가 일찍 끝나기에 종례가 끝나자마자 학교 도서관에 내려가 컴퓨터를 켰는데 포털에는 세월호 관련 기사가 올라오고 있더군요. 그때의 시간이 3시 30분쯤이였습니다. 학교에서는 핸드폰을 소지할수 없도록 했기에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어보고 싶지만 컴퓨터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너무 많고 어린나이에 얼마나 큰 일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그저 넘겼습니다. 집에 오는길에 핸드폰으로 계속 뉴스와 기사을 읽었고 눈가에 눈물이 고인채 하교를 했습니다. 평소에도 시사에 관심이 많았고 무슨일이 생기면 주변친구들에게 그일의 대한 핵심을 소개하고 알려주는것을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집앞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했고 결국 둘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채로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행했습니다. 이렇듯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납니다. 집에와서 티비를 틀면 왼쪽 위편에 나오던 실종자와 사망자 수.. 실종자 수가 줄길 바라고 있었는데, 실종자 수가 줄면 사망자 수가 늘어나더군요. 엄마와 저는 그날 저녁도 먹지 않고 티비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뉴스를 봤습니다. 이렇듯 하나하나 기억납니다 잊을수 없는 기억입니다. 그날 나의 어깨를 치고가던 바람의 느낌 마저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잊을수 없습니다. 그날이 매우 선명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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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tv에 서 눈을 못떼며 애들 구조 돠기만 가도했는데다른건 모르겠으나애들 구하지않고방치한거무슨 변명을 해도 절대 용서 안됩니다.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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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복도에서 휴대폰으로. 기사를접하고 낌짝놀라서 친구들하고 사고났다고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나는데 나랑동갑인 친구들이 사고가났어서 더 충격이였다 하지만 곧 괜찮다는 얘기들을 듣곤 마음을 놓고있었는데 그게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