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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취준생이라는 명목으로 집에만 쳐박혀 있던 저는 그날 아침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다가 자막으로 나오는 속보를 보고 긴급하게 ytn 채널로 돌려 하염없이 기도를 하며 아이들이 구조되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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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운전을 하다가 눈물 때문에 갓길에 차를 세워야 했고 펑펑울었다.집사람에게 전화해서 우리 아이들이 옆에 있는 것으로 고마워 하자고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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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TV 켜놓고 안절부절느닷없이 눈물만 울컥울컥했던안타깝고 화나고 ...지금도 눈물부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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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평소처럼 고2의 일과였던 야자전의 방과후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반의 자리도 그 친구가 보여주었던 기사의 내용도 생생하다. 창가에 가까운 1분단의 앞에서 둘째줄에서 친구가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학생들이 모두 구출되었다는 기사였다. 그러나 그 후 학생들이 전부 구조되지않았고 사망자 수가 늘어날수록 학교 친구들과 걱정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그 날 저녁에는 다 구해지지 못하고 물 속에 있는 친구들 생각에. 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모여앉아 핸드폰으로 하염없이 뉴스를 보고 기도하며 펑펑 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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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담임선생님 전담과목 수업시간 도중에 갑자기 선생님 휴대폰이 울렸다. 선생님은 평소에 전화가 와도 잘 받지않으셨지만 그날은 전화기가 울리자 고개를 갸웃하시곤 우리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전화를 받으셨다.이때의 통화내용을 정확히 알려주시지 않으셨지만 전화를 거신분이 우리 담임선생님이 안산에서 교사를 하시는걸 알고있었고 안산의 단원고가 탄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보시곤 담임선생님이 떠올라 전화를 거신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어디선가 라디오를 가져오셔서 세월호 관련 뉴스내용을 틀어 다같이 라디오를 경청했다. 침몰소식을 들었을때 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점심시간쯤 들려온 전원생존 소식에 반 아이들 모두 다행이라며 안심의 숨을 내뱉었다. 오보소식과 함께 절반도 생존하지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땐 믿기지가 않았고 나중엔 배는 침몰하는데 아무것도 한게없었던 정부에게 화가났었다.그리고 집에 도착할 즈음에 내 안부를 묻는 문자와 전화를 받았고 그들을 안심시키며 "우리학교는 3월말에 다녀왔어 걱정하지마" 라고 했고 문득 "우리학교 수학여행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내가 저기 저 배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미치자 그로서 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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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다녀와 다구조되었다고 헤프닝이라며 웃었던거같아요 그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요 그시각에 생사를 오가며 싸우고있던 아이들..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그생각하면 아직도괴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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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고3 쉬는시간이였다 우리반아이들은 모두같이 티비를 키고 선생님과 발을 동동구르고 울었다. 배가 기울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와 내친구들은 아직도 그날을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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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에서 캠프를 가 외지에서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점심을 먹으려 식당에 왔는데 배가 침몰 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왈칵 나더군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는데 불구하고.마치 가라앉은 배를 미리 본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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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청소를 하고 있다가 남편이 세월호 관련 소식을 전해주어서 바로 tv를 켜고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조금 후 학생들 전원 구출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뉴스를 계속 지켜보니 구출이 아니고 아직도 세월호에 갖혀 있다는 뉴스를 확인하면서 세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입장으로 눈물이 흘려 내렸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눈물이 납니다. 하루종일 뉴스를 끄지도 못하고 tv 앞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어포켓이 있으니 생존자가 있을수도 있으니까 빨리 1명이라도 더 구출되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랬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모든 의혹과 권력형 비리들이 이번 기회로 모두 밝혀지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않는 나라다운 나라가 되길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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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은 정말 봄을 머금은듯 따뜻했었습니다. 생활관 안에서 동기들과 그날 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중 티비속에서 배가 침몰 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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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16살,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국어시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면서 지금 학생들이 탄 배에 사고가났다고..아마 제 기억으론 지금 사고가 난 학교가 전에 계셨던 학교라고 말씀해주셨던것 같습니다. 그때 어린 저희들도 상당히 놀랐었습니다. 저는 그날 선생님이 저희에게 하셨던 말씀까지도 기억이납니다. 그리고 그날을 기억하고자 세월호배찌를 항상 가방에 차고다닙니다. 그 날은 우리모두가 알아야하고 기억해야할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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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고등학교를 다니던 당시 제주도로 갔던 2박3일 승선실습 마지막날 아침 고향인 완도로 향하던 배안에서 저희는 조타실에모여서 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그런데 갑자기 조타실에있는 무전기가 갑자기 매우시끄러워지더니 선장님이 한연락을받고 오셔서 진도해상에서 배가 출몰하고있다고 하더군요. 그후 바로 핸드폰에 특보 알람기사가 뜨더니 방금들은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너무나놀랐지만 해경들과 주위어선들이 도와주러 간다는소식에 마음이 노였습니다. 저희들은 배안이라 진행되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여 큰일이라고는 생각하지않았습니다.그러고는 완도에 도착하자 제 핸드폰과 친구들의 핸드폰에는 가족들에게 전화가 많이 와있어서 무슨일인지 전화를했더니 뉴스를보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가던 고등학교학생들이탄 배가 출몰중이란소식에 혹시나 저희일까 걱정되어 전화가와있었던것이었죠.집에 도착하여 뉴스를틀어 심각성을알고 너무나 심란했습니다.아직도 조타실에있을때의 그기억..그리고 그날의 잊혀지지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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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기위해 아침부터.분주하게 움직였다. 씼고 나와서 항상 그랬듯이 거울 앞에 앉아 로션을 바르는데 tv를 보던 누나가 큰일이 났다며 배가 뒤집혀 바다 속에 빠져있다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고 구조하겠지 하며 무심히 나는 나의 할일을 하고 있었다. 뉴스에서 교통사고 나 살인사건등이 일어나듯 이러한 같은 사건들과 같은 취급을 했다. 공부를 다 마치고 집에가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나 자신을 한없이 비판했다. 세월호의 그 아이들 입장이되어 생각해보았다. 무서웠다. 슬펐다. 원망했다. 그래서 잊을 수가 없다. 더욱 더 최선을 다해 기억을 해내야겠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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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정치학 수업의 중간고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아침부터 공부를 했고, 틈틈이 뉴스도 보았습니다. 시험은 10시 30분. 9시 즈음에 그런 뉴스를 보았습니다. 배가 침몰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어선이 침몰해서 구조하고 그런 일들은 간혹 있어왔던 일이었으니까요. 일단은 시험이 눈 앞에 있어서 당장의 시험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시험을 보고 나와서 12시 즈음 점심을 먹으며 뉴스를 보았습니다.탐승자 전원 구조.그럼 그렇지, 당연히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당연하겠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배가 뒤집힌 모습이 중계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심각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꽤나 혼란스러웠겠구나.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오후의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갔고, 그 수업 이후에도 다른 강의가 있어서 6시까지 뉴스를 볼 새가 없었죠.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그 사이에 이런저런 조치를 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와서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아까 분명 전원 구조라고 했는데 실종자가 300명이 넘는답니다. 침몰은 일찌감치 했다는데, 아직도 물에 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고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너무 어두워져서 더 이상 작업이 불가능해서 철수한다는 등의 얘기와 동시에 아직 살아있을 수 있다며 공기를 주입한다는 등의 얘기를 보며 더욱 혼란스러웠지요. 아무리 봄이라고 해도 저녁이면 물이 얼마나 차가운데, 저게 말이 되는건가.. 그런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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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고 그저 뉴스에 크게 나오는걸 보고도 무관심했던 내가 이제서야 왜그랬는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지금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듭니다.이제야 알아서 늦었다는걸 알지만, 항상 기억하면서 언니오빠들의 명복을 기리며 두번다신 같은일이 일어나지않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나라에 관심을 가지며 후회없는 날만 만들게요 언니오빠들 정말 죄송해요 .. 좋은곳 가서 따뜻한 빛으로 가득한 다음생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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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처럼 네이버 뉴스를 켰는데, 세월호가 침몰했고 아이들이 갇혀있다고 했어요. 당시 독일에서 지내고 있어서 시간차를 두고 세월호 소식을 접했는데, 출근 하자마자 텅빈 사무실에서 눈물만 흘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하면 아프고 여전히 세월호를 생각하면 눈물나지만, 결코 아이들의 죽음과 가족들, 그리고 국민들의 아픔이 헛되지 않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 완전히 바뀌는 우리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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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제 체육복이 아크릴 물감에 더러워져학교 건너편에서 우리학교 체육복을 사고있었습니다.그 가게의 TV에서 마침 세월호 사건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사망자는 없다기에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별 걱정없이 집으로 갔습니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고학생이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그 때는 그렇게 원통했는데 지금은 잊은 채 잘 살고있는 제가너무나도 밉습니다.이 캠페인으로 저 뿐만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분들이이 일을 가슴깊이 새겼으면 좋겠습니다.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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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시간 이였다. 우리는 휴대폰을 내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들어오신 선생님 분들이 지금 수학여행을 가던 배 하나가 바다에 잠기고 있다며 살짝만 가볍게얘기해 주시고 어떤 선생님은 걱정을 하며 자신이 어릴 때 겪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말씀해 주셨다.우리는 배가 침몰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가볍게 넘겼지만 종례시간에 받은 핸드폰을 켜보니 나라가 뒤집혀 있었다...지금 생각해도 우리는 정말 남의 일이라면 가볍게 인식하고 쳐다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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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번일이었기에 이른 아침 웅진코웨이 코디님 오셔서 정수기 점검 받으면서 이게 무슨일이야!! 해경이 구하겠지하며설마했지요....걱정가득 tv를 보면서도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종일 tv 앞에서아무것도 못하고 애태우다가 고2딸아이가 11시 넘어서 야자 끝나고 오는 밤시간에 마중나가서 어깨를 토닥이며 공부못해도 좋으니까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울먹였습니다. . 뜬금 없다는듯 구하겠지 하며 피곤해하는 아이의 말. .. . .. 그게 그말이 지금껏 세월호 부모님들께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죄송합니다..딸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볼때마다 문득문득 죄책감이듭니다... 지난 여름날 픽미를 춰줄테니 용돈달라 애교부린다거나 수시논술을 보기위해 가슴졸이며 대기하고 있을때 문득 아이들이 생각나면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러하겠죠, 치유될수 없는 트라우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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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난 출근을해서 평소와 같이 네이버를 밑에 깔아두고 일하고 있는데갑자기 실시간검색어에 세월호가 떴다.기분이 괜시리 이상해 클릭했는데세상에 배가 침몰되었다니......그 날 회사엔 세월호 소식보는 사원들이 대부분이였고다들 무사구조 되었으면 했는데...... 왜 당신들만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겁니까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