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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지하도를 지나가는데 어느 가게에서 튼 티비에 여고생들이 나와 얘기를 하고 있고, 자막에 전원구조 이렇게 뜨기에 별일 없겠지 하고 지나갔다. 일을 보고 점심을 먹고 나니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고,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내 생각이나 마음 속 생각도 아직 기억나는데....어떻게 그 날이 기억나지 않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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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가 많은 인원을 태우고 제주도를 향하다 돌연 침몰! 하지만...전원구조라는 뉴스를 접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건만... 그것은 오보! 생방송 카메라에 쌍욕을 하던 이상호기자... 그제서야 세상이 달리보이더라. 그 후 같은 뉴스도 여러 채널을 돌려 재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제 아무리 팩트여도 일단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기래기들은 멀리 떠나고 정직하고 올바르며 정의감 있는 뉴스는 언제쯤 모든 채널에서 공통분모로 적용될까? 그 날이 조속히 와 세월호 같은 일이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소망한다. 또 이러한 나쁜 인간들이 다시는 세상에 활보하지 않았으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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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때문에 해외로 나온 저는 시차로 인해 점심 이후에 알았습니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인 아이들이였기 때문에 현실이 너무 와 닿았고 바닷속에 있을 아이들과 살아나온 아이들의 죄책감,그 상황 속에서 아이들의 의연함과 침착함이 타국에서 매일 눈물 흐르게 했습니다.사실 지금도 그러구요....사건 직 후 아들한테 전화해 많이 생각난다고...잘 지냐구....통화하면서 터지는 울음을 참아가며 했던 생각이 납니다전 4월 16일 그 날을 엄마된 심정에서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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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시간, 한창 공부해야할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던 나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방과후 수업을 듣고있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없던 윤리와 사상 수업이었던지라 맨뒷자리에 앉아서 책 밑에 휴대폰을 숨겨놓고 몰래 페이스북을 하거나, 네이버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이것저것 뉴스를 탐독하던 중, 나와 동갑내기인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를 보았고 얼마가지않아 전원구조라고 뜨길래 별일 아닌줄 알았다. 하지만 그 뉴스는 오보라고 정정되었고,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온갖 지상파와 종편 뉴스에서는 떠들썩하게 가라앉는 세월호를 다루고있었다. 이것이 내 그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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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고 있습니다. 쌍둥이 제 딸들이 그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갈 수도 있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나 사회에 나와서나 그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그래서 애들에게 말합니다. 두 몫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팽목항으로 내려가던 그 길이 진실로 가는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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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3이었다. 학교에서 폰을 걷어가서 몰랐지만 국어시간에 알게되었다. 구조자 명단이 계속해서 바뀌었고, 안산에서 전학 온 친구는 수업시간에도 계속 폰을 확인했다. 아는 이름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울면서 계속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날의 분위기, 하굣길에 본 저녁 뉴스, 집에 온 날 안고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눈물 흘리셨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하루가 생생한데 왜 그날을 덮으려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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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미안합니다.. 아침뉴스부터 하루 꼬박 이 채널 저 채널 돌려가며 소식만 듣고 발만 동동 구르고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해주지못해 죄송합니다.. 왜 그렇게 충분히 구조할 수있음에도 이유도 영문도 모른채 억울하게 마음먹지도 않은 생을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을 밝혀내야 할 일은 우리의 몫인데.. 미안해요.. 염치없지만 하늘에서 조금만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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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들놈 군대간다고 먹고싶은거 없냐 해서 장어 먹으러간 날이었어요. 휴학하고 집에서 여느때처럼 늦게 일어나 장어집으로 가던길에 소식을 들었죠.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를 듣고 아효 다행이네~, 별 생각없이 장어를 먹었었네요. 그러다 사실은 사람들이 배에 갇혀있었다는 걸 알았고 지지부진한 구출성과를 뉴스를 통해 들으며 훈련소에 들어갔었던 것 같아요. 그냥....되돌릴 순 없지만 잘못한 사람은 잘못한대로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그정도의 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형벌일지, 양심일지, 아니면 후세의 심판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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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납니다9시에 근로장학생이라 과사무실에 출근했습니다항해를 배우는 저였습니다과사무실에 전화가 빗발쳤습니다.기자들의 인터뷰요청 전화였습니다, 교수님들과 만나서 사고 원인을 선박운용학적으로 듣고싶다했습니다.다 구조되었다고 그래서 진짠줄알았는데.그렇게 제 동생과 동갑내기인 예쁜아이들과제 꿈이었던 해양경찰 전공이었던 항해술모두 날려가는것을 허무하게 바라보았습니다.7시간, 왜 기억이 안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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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16 일...지금도 그날에 삽니다. 처음 보도를 접하고 큰배가 버텨주기를 구조될때까지 바라고 있는중 전원구출 이란말에 용수철 튕기듯 일어나 박수를치고 만세를 부르고 정말기쁜마음 으로 언니랑 늦은아침을 먹던중 오보란보도에 티비앞을 못떠나고 잠 도오지않는 날들을 보냈 습니다 공중파 종편의 보도는믿을수 없어서 인터넷 방송 찾아 들으며 실시간으로 모든것을 지켜봤습니다. 분노하고 울다가 한숨쉬다가 ..차마 가족분들께 는 힘내세요 라고 건넬수가 없습니다 그냥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그날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지나가는데 기억은 그날에 멈춰서 있습니다 옆에서 누가..아이들 이 있었으면 대학생 인데 재수한 학생도 있었을텐데 이럽니다 그런데 저는 응? 벌써 그렇게 됐어? 어제일 같은데... 그렇게 대꾸하고 시간만 너무 빨리 가는구나 ... 느끼지요 잊혀지지 않는 세월호 라고 하는것이 맞겠네요 우리모두의 사건이 되어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날은 나 입니다 이렇게 저는 세월호 아이들과 매일 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실 ... 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밝혀지는 날 을 기다리며 곁에 있어 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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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중 티브에서 애들 전윈 구조라고 나온때부터봐는데 이번선거는 새누리당 완승 이라고 직윈들 에게 했는데애들은 못구하고 죽어야할 선윈들과 국정윈 간첩만구하고 난 울었습니다 진짜로 많이 울었씁니다그리고 많은걸 내려놓고. 많은걸 용서했습니다그런 당신은 무얼해씁니까청화대에서. 수술 피로폰. 비아그라. 이제 뮈가 나올까요내려오세요. 개성공단은 왜 패쇄합니까 당신이 뮈대 순실이가 하라고 하니까당신은 그자리에 있으면. 안되는 사람 입니다차라리 청화대 뒷산에 올라가세요그리고 뛰어내리세요 아쉬울것도 없잔아요잃을것도 없고. 아~~~. 혹시 애들 때문이라면 나중에 순실이랑 순복이랑 잘 해준거니까 먼저가세요기시기전에 동생분들게. 꼭 사과하고 가세요그래야 엄니랑 아부지 얼굴보제. 알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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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들으러 가야하는 날이였고 준비 도중 어머니와 전화를 하는데 뉴스 봤니? 학생들이 많이 탄 배가 침몰해서 구조중이야 어쩌면 좋을까.. 하고 말씀을 하시기에 처음 뉴스 속보를 찾아 보았고, 하루종일 동기들과 함께 핸드폰으로 속보를 확인했습니다. 그 날의 제 기억입니다.절대 잊지 않으며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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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수업이 공강인 날이라 조금 늦은 시간까지 늦잠을자고 거실으로 나왔습니다거실에 나오니 엄마가 티비를 보고 계셨고 어떡해 라는 말만 반복하고 계셨습니다그날 저는 한참 티비를 바라봤죠...아이들이 무사하길 기도하면서요.지금 생각하면 저는 그날 엄마와 함께 집밥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는데 그 친구들은 얼마나 무섭웠을지 도움이 못되서 미안한마음이 가득합니다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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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서 여느 때처럼 일을 시작하려던 차, 아침 뉴스에서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다. 굉장히 큰 배가 가라앉은 것 치곤 사상자가 하나도 없다길래 기적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곧 잘못된 보도라는 정정 보도와 함께 안타깝게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생명의 불빛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라. 계속되는 뉴스 보도를 보면서 왜 저렇게 답답하게 구하지 못할까, 아직 갇혀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울까, 부디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나길 바라고 또 바랬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현 정권은 대응이 늦은 것 뿐 아니라 남아 있는 유가족들의 넋조차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다. 한 나라의 원수라는 사람이 7시간동안 그 행적이 묘연한데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신에게 일말의 모래알만큼의 양심이, 인간으로의 존엄이 남아있다면 자진해서 해명하고 죄를 지었다면 죗값을 치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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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들어가기 전에 동기들이 수학여행가던 배가 가라앉았는데 다행히 전원 구조가 되었다라는 말을 들었었다. 하지만 수업마치고 나서 내가 본 뉴스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저녁내내 휴대폰과 티비를 보면서 제발 한명이라도 구조가 되기를 기도했었다. 너무 허무했고 화나고 우울했던 날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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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들이 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어요아이들이탄배가 침몰중 전원구조 그후 난 내아들 에게 정신이 팔려 늦은시간 다시 뉴스 보며 그부모들의 오열과 분노를 보고 그고통이 고스란히 배가되어 나의 심장을 찣어놓았습니다 내현실과 맞물려 정말 숨막히는 고통에 병원구석에서 바닦을 구르며 소리도 못내고 목구멍이 아프도록 울고 또울었습니다 어찌잊을까요 그날을...나에게 그날의 기억은 흐려지지도 않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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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시, 컴퓨터를 써야 했던 국어 수업에서 자료를 찾던 도중 포털 사이트에서 사건을 접했습니다.그 당시 고2였던 저는 동갑인 친구들, 다른 탑승객들이 걱정되었지만 무사히 구조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평상시처럼 공부를 했습니다.그리고 저녁 6시, 급식을 먹으며 급식실에 있는 tv를 본 순간 믿을 수 없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전교생이 tv 앞에 모여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그 날 하루는 야간 자습도 집중이 되지 않아 인터넷으로 계속 구조의 진척상황을 지켜봤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제가 대학생이 된 지금도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네요. 국민 300여 명이 수장될 동안 국가는 무엇을 했나? 우리는 진실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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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고된 사회생활에 지쳐 일을 그만두고 본가에 내려가 쉬고 있던 때였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티비를 켜고 뉴스를 보는데 선박이 침몰했으나 전원 구조되었다는 속보가 뜨더군요. "이게 무슨 일이야..그래도 구조되었으니 다행이네." 라고 한 숨 돌리던 차에 전원 구조는 오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저 아무일도 없기만을 바라며 종일 발을 동동 구르며 인터넷과 티비에서 새로운 소식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4월16일, 걱정으로 가득했던 7시간 이후 기적을 바라던 그 후 며칠, 그리고 비통함에 우울해했던 한달, 그리고 일년. 해외 이민을 결정할 정도로 제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슬픈 일이었는데 그 날의 기억이 어떻게 안 날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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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친구와 함께 떠났던 제주 여행의 마지막 날 이었다.서귀포에서 달리는 수상보트를 보며탈까 말까 하다가너무 비싸다며 우린 맛있는거 먹자며 돌아서성산일출봉으로 발길을 돌렸다.가는길에 친구가배가 전복되었다며 인터넷 기사를운전하는 나에게 읽어주었고,나는 우리 아까 그 배 안타길 잘했다며역시 촉이 좋다며 ㅋㅋ 거렸다성산일출봉 앞 허름하지만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티비를 보는데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저렇게 큰 배가 전복 됐다는 거에도 놀랐고점점 잠기는데사람들이 아직 그 안에 있는거도상상이 안됐다..왜 저렇게 될때까지 못 구했을까....공항으로 가는 길너무 놀라 운전이 제대로 안됐다나도 죽을 것 같았다.공항에서 서울로 오던 비행기안나도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무슨 사고가 나도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구할 수 있었는데..못구했고 애들도 어른도 죽었다..나도 그 어떤 사고로 부터 안전하지 못하다.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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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몸이 조금 아파서 늦게까지 자고 있었다.일어났는데 세월호 뉴스로 떠들썩하더라. 뉴스에서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보았으나 오보란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세월호 소식에 우울해서 기분이 안 좋던 내게. 그당시 남자친구는 네가 그 소식이랑 무슨 연관이 있느냐며. 기분이 왜. 안 좋냐고 ? 말같지도 않는 말을 하던 분노로 가득찬 그 날은 잊혀지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