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날 귀금속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종로3가 도금공장에 출근을 해서 도금 다된 제품을 공장에 배달을 하고 가게에 들어오니 사장님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시며 말해주기에 내폰을 꺼내 확인해 보았다 배달을 다니면서도 걸으며 핸드폰 뉴스를 계속 지켜보았던 날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야기들 이었다 7시 퇴근 할때까지 머릿속은 온통 그생각 뿐이었다우리 큰애가 바로 고2 였기에 더 맘이 아팠다
-
밥을먹다가 관련뉴스를보면서 너무나도큰 인명피해숫자에 충격에빠졌었다
-
그 날은 평일이니 일을 했고, 평소처럼 업무 메일 처리를 했습니다. 업무 중에 인터넷 뉴스를 보지 않기 때문에 소식을 바로 접하지는 못했고, 10시~11시 사이에 주위 동료들이 선박 침몰 소식을 얘기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조금 기울어졌고 침몰 위기여도 연안이기도 하고 타이타닉 같은 사고 때보다는 기술력도 발전했을 텐데 설마 구조를 못하겠어 라고, 지금 돌아보면 조금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점심 시간에 식당 내 TV의 뉴스를 통해서는 전원 구조라고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밥을 먹던 동료들과도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납니다.하지만 오후에는 오보가 정정되면서 아직 많은 사람이 남아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제발 구해지기를 오후 내내 기도했고, 퇴근 무렵에는 절망적인 상황임을 보았습니다.그냥 평범한 업무를 했던 저도 이 정도는 기억하고 있고, 절대 잊을 수도 없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람은 뭔가요? 거짓말이 아니라면 사이코패스 아닐까요?
-
어느순간 이제 지겹다.슬픔에 너무 빠졌으니 나서야 한다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생겼습니다.사람이 죽고, 뒤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런말이 오고간다는게 충격적이였습니다.잊으면 안되고, 지겨워해서는 안됩니다.
-
현역 복무중이전 공군 병사였습니다.아침에 활주로 점검차 공항 차량을 몰며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고, 승객들은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배 한 척 날린 것으로 끝날 해프닝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심상치 않은 뉴스가 흘러나왔고, 구조 임무를 하는 헬기 조종사가 긴급 이륙 신청을 운항실로 보내왔습니다.저녁에 나오던 뉴스의 오른쪽 귀퉁이에는 아침까지만 해도 모두 구조되었다던 사람들이 300이 넘는 숫자가 되어 올라있었습니다. 실종으로 나온 수가 어찌나 많던지 실감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 많은 생명들이 공허한 숫자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던 배가 바다 위에서 돌아다니도록, 사람들을 싣도록 한 무능한 혹은 부패한 국가의 국민이었습니다. 시급한 구조 명령이 아쉬운 때에 보이지 않았던, 미필의 군통수권자에게 경례를 올려야만 했던 군인은 무력했습니다. 그 때 느꼈던 감정이야말로 자괴감이었습니다.절대로 제2의 세월호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
인천 송도 간척지에서 번식하는 바닷새를 보러 가고 있었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던 오전 10시 쯤 라디오에서는 전원 구조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는 다행이다. 다행이다. 했었습니다. 바닷새 관찰을 끝내고 돌아오는 오후 4시 쯤 아까 그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아까 그 라디오에서 거짓말 같은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아이들이.. 꽃 같은 아이들이.. 아직도 배와 함께 바닷속에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황패한 간척지에서 바닷새를 보고 있던 그 날의 7시간 동안 세상이 변했습니다. 그 7시간 동안 온 나라, 온 국민의 가슴에 커다란 바윗돌이 내려 앉았습니다. 저는 이 날 내려 앉은 바윗돌이 너무나 무거워서 내려 놓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찢어져서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지낸 날들도 있었습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날, 그날 이후 하루 하루..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어른이라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바윗돌은 더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온 국민이 숨쉬기도 힘들 만큼 무거운 바윗돌을 품고 살아가는데, 그날 그분들의 가슴속엔 바윗돌이 내려 앉지 않은 모양입니다.
-
늦은 아침을 먹었습니다 만두국을 파는 식당이었습니다. 천장 가까이 붙어 있는 텔레비전에서 사고 화면을 보았고 학생들이 모두 구조 되었다는 자막과 말을 들었지요. 씨부렁 씨부렁. 왠 큰 사고야.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다. 궁시렁거리며 밥집을 나오고 그렇게 몇 시간 후. 다시 켜 본 텔레비전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멍해지며 믿지 못할 말을 쏟아내는 화면을 보며 내 마름은 굳어 갔습니다. 이 글을 쓰며 조금 풀어 봅니다. 나는 그날을 기억합니다. 늘.
-
고등학교 마지막 체육대회였다. 점심시간,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봤다. 구해내겠지, 다 살겠지하는 사이 체육대회는 중간에 취소되었고 배가 완전히 침몰했다. 고3 마지막 행사가 어영부영 취소되었는데 교실 안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나는 벌써 대학교 2학년생이 되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18살이고 일반승객들의 시간 또한 멈췄다. 4월 16일을 모두가 기억하고있다. 진실규명이 끝나는 날까지 절대 잊지않겠습니다.
-
하루종일 회의를 했었네요...온종일 회의를 진행하면서도 힐끔힐끔 기사 올라오는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네요오보를 보고 안도를 했던 미안한 사긴도 생각이나네요잊지 않을꼐요
-
아침에 사무실에서 배가 침몰한다는 기사를 보고 사무실 사람들이 모두 걱정을 하다가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에 모두 환호를 질렀습니다.하지만 점심을 먹고 들어왔을 땐 기사내용이 바뀌어 있었고, 저는 서울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반차를 내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와야 했습니다. 오후 늦게 도착한 서울은 황사로 뒤덮인 잿빛하늘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이 내 마음 같았습니다. 그날부터 며칠동안 뉴스 보기가 겁나서 주위사람들한테 얘기로만 들었던 것 같습니다. 끈 하나만 놓치면 내 삶도 무너질 것 같아서 일부러 피해다녔습니다. 그때의 무능력함이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놓치지 않는 끈, 진실의 힘을 믿습니다.
-
본과2학년 수업중이었으며 앞의 학우가 폰으로 뉴스를 보다 깜짝 놀라 말해준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참사가 일어났을때 당시 뭐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다니요.
-
오전 업무를 하고 있을 때 컴퓨터 화면에 여객선 침몰 중이라는 검색어가 순위에 올라와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죠. 크게 걱정은 안 했지만 그래도 학생들도 있다는데 사망자가 나오면 어떡하나 하면서. 점심을 먹으러 회사 앞 순대국집을 가는데 모두 구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순대국을 먹고, 사고뉴스를 보고, 동료들과 정말 잘 됐다며 이럴 줄 알았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즐겁게 나누었는데. 하루 종일 잊고 지내다가 퇴근하면서 전해들은 사고 소식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집에가서 뉴스를 보고 혼자 방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평소에는 기도를 참 안 하던 저였는데 말이죠.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그날의 일들입니다.
-
저런 ~~어떡하나 놀라는 마음에서잘 되겠지 잘 될거야 하는 마음으로 지켜 보다가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이내는 가슴을 쥐어 뜯는 듯한 절절함으로 보내던 시간들입니다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제대로 펴 보지 못하고 저버린안타까운 청춘들유가족님들께 의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
대학교 2학년 수업을 듣던 그 날.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수학여행을 갔던 학생들의 배가 기울었다고 한다. 수업이 아수라장이 됐다. 교수님조차 수업을 잠시 중단하며 뉴스를 봤다. 전원구조. 그 한마디에 다들 안심하며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하지만, 아니었다.대통령은 사라졌고 아이들은 여전히 물 속에 빠져 있었으며 진도는 지옥이 되었다. 7시간 후 나타난 대통령은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질문을 한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지옥의 7시간을.
-
친정언니가 전날 놀러와서 같이자고,아침에 일어나서 김밥 만들어 먹고,10시쯤 티비틀었다가 처음 사고를 접했어요.당시 언니와 저는 10개월 6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지라.. 티비속 전원구출 소식에 안도하고 다시 티비를 껐네요그리고 남편과 통화하면서 다 구했데, 다행이다라고 통화했던 기억이 있네요아이들과의 하루는 빨리갔고 오후 2시가 넘어서 남편의 전화티비보고 있어? 큰일이야.. . 애들이 아직 안에 있데...그 이후로 브라운관 앞에서 계속 같이 울었던 기억만 있네요.. 4시간 가량 아이들의 아픔을 모르고 있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 시간 생각하면 미안한데. 죄스러운데.. 7시간 꼭 밝혀지길 바랍니다.
-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보던 중에뒷자리에 계시던 과장님이"애들이 탄 배가 바다에 빠졌단다."라는 뉴스를 알려주셔서 기사검색을 했었다.배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난파된 것도 아니고위치파악도 됐으니해경이나 해군이 가서 바로 구조하면 되겠구나 라고 해프닝처럼 여겼다곧이어 "전원구조"라는 오보에당연하지 라는 생각으로 넘겼는데.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고나라의 무능력에 한탄하며우리는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봐야만했다.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왜 아이들이 구조돼지 못했는지미친듯이 알고 싶다.우리는잊지않으며알아낼 것이다.
-
설마 했었다.금방 구조되겠지...설마설마 했지만, 나라를 믿었다.하지만 그날 설마는 너무도 잔인하고 처참한 현실이 되었다.아직도, 여전히,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오늘을 보면,살아온 날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누려야 마땅한 꽃다운 인생들에게 한 없이 미안해진다.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그날까지,이 시간은 절대 잊지않을 것이다.
-
아침에 뉴스속보로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했다. 가슴이 덜컹했지만 그래도 곧 구조하겠지 싶었다. 아직 배는 많이 가라앉지 않았었다. 곧 전원 구출이라는 자막이 떴고 난 기쁜 마음으로 친구와 만나러 나갔다. 친구와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 다 구했대! 다행이다!"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와 놀고 집에 들어왔다.그런데 집에 들어와 뉴스를 틀어보니 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머리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선 하루 종일 뉴스만 봤다.멍하니 뉴스를 보다가 화면이 흐릿해졌다.
-
여느날과 다르지 않은 날이였어요. 그 속보가 뜨기 전까지.. 구조중이라고 하고, 전원 구조될거라고 하기에 다행이다 했었어요. 점심시간이 되어서,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그 식당 티비 화면에, 오전기사로 접했던 것보다 선체가 훨씬 더 많이 기울어진 화면이 보였어요. 자막에는 "전원구조"라고 해서, 같이 점심 먹는 사람끼리 정말 다행이라고..정말 다행이라고..바쁜 오후근무를 마치고, 퇴근길에 접한 뉴스에 아직도 그 배에 수학여행을 간 아이들이, 일반인들이 있다고.. 배가 서서히 침몰되어 가는걸 지켜봐야만 했던 그 무력감.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미안합니다. 미안해하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줄게 없어 정말 미안합니다.
-
저는 한 중학생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이날, 저는 12시 쯤이 되어서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흘러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친구들과 급식을 먹기 위해 달려 나갔죠,그리고 3시, 그날 감기에 걸린 저는 약국에 들렀다가 전원 구조가 오보였음을 알리는 정정 기사를 보게 됩니다. 그 날 밤까지 계속 TV를 틀어놓고 혹시 생존자가 늘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습니다. 저처럼 어린 학생도 이렇게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대통령께서는 국가의 원수로서 약사에 기록될 대참사였던 세월호의 7시간이 기억하지 못하시는지 의문이 듭니다. 저의 이 조그만 7시간이 모두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