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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사건 티비에서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믿고싶지도 않았고 꽃다운 사람들이 산채로 배 안에서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고 내가 낳은 아들딸도 아니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쌩판 모르는 사람인 저도 가슴아픈 기억인데 가족들의 마음은 지옥속이겠지 싶었습니다. 사건 보고 홀리듯이 안산 분향소도 가봤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았을 청춘들의 사진들이 보여서 아깝고 운명이 원망스러웠습니다. 300여명의 소중한 목숨을 떠나보내고 생존자 역시 끔찍한 악몽속에서 살아가겠지요. 그런 세상을 만든 한명의 어른으로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 세상에서라도 앞으론 다시 이런 일들이 벌어지 않는 세상이 되도록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분들이 하루속히 가족들 품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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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땅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지금 생각만 해도 너무 안타깝고 화나고 마음 아파서 눈물이 납니다.진실은 곧 떠오를 것이라 믿습니다.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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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이던 저는 2014년 4월16일 당시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서 오전내내 자고 있었습니다. 잠결에 침몰사고 뉴스를 들었습니다.수학여행가는 학생들이 많이 타있다고..얼마 지나지않아 학생들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뭐야..노랐잖아 다행이다" 이생각으로 다시 잠을 잤습니다.근데 낮에 잠을 깨어보니 그 뉴스속보는 오보였고 수백명의 학생들과 승객들이 배안에 갇혀있다는 뉴스를 보고 기겁했습니다. 무능하고 못배운 일개 취준생도 그날의 일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똑똑하고 많이배운 공무원님들 정말 기억이 안나시는건가요..?솔직히 말하세요 기억이 안나는게 아니라 기억하기 싫은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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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라는 세글자만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하면서 눈앞이 흐려지는것을 느낍니다. 억울한 죽음이었기에 더욱 슬픈것 같습니다.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그리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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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날과 다름 없이 출근하여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는 중 세월호 뉴스 속보를 보았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타고 있다는,.세월호 정말 별일 아니라 생각했고 몇년 전 천안함 사건도 있었으니 이번에는 신속하게 대처해 모두 구해낼거라 안심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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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나이 아들 생일이었어요. 잊지 못할 날짜에요. 아침 7시 30분경 항상 아침프로 채널7을 보면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화면 아래 자막으로 수학여행 배 침몰이라는걸 보고 너무 놀라 큰일이네 ~하면서 직장을 출근 해 직원들과 얘기했었죠. 두어시간후 전원 구조란 상태보고 안도했다가 사실이 아니란걸 알고 하루종일 업무도 못하고 있었어요. 온라인상 티비 자막으로 떴었던 게 삭제됐다는걸 알고 출근준비중 보았던 자막을 사진 찍어둘걸하고 엄청 후회했었어요. 너무 맘이 아프더라구요. 지금도 그 부모님들,아이들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박근혜. 김기춘무조건 구속을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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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할수 있을꺼야 설마 설마 저대로 가라않지는 않겠지 그런일은 상상도 할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이 되어가는 뉴스속 가라앉는 세월호를 보면서 두아이의 엄마 이나라의 국민으로써 참담했고 안타까워 숨이 턱 막혔습니다 티비속이라도 뛰어들어가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피한방울 안섞인 남도 이런 심정인데 그런 광경을 지켜봐야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어떠했을까...결코 진실은 가라앉지 않습니다우리 아이들에겐 생사의 갈림길이었던 7시간그어떤 이들에겐 감추고 덮고만 싶은 7시간 모든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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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은 개인적으로 만감이 교차하던 때였습니다.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믿었던 것이 점점 악연임을 알게 되고 아픔과 고통이 극에 달하기 시작하고... 텔레비전 화면으로 침몰하는 배를 보면서, 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지, 왜 배를 인양하지 않지, 분노와 실망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 반성합니다. 세월호 이후 개인적 아픔에 매몰되어 아픔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사죄합니다. 유족들에게 너무 오랫동안 무관심했습니다. 팽목항에도 안산 분향소에도 한번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동거차도에서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세월호를 감시하며 발을 동동 굴리고 계신 유족분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안산 기억교실에 곧 가보려고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미력하지만 눈물이라도 함께 흘려드리고 싶습니다. 박근혜 당선 이후 정치에 환멸을 느껴 관심을 딱 끊었던 잘못이 이렇게 큰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정치적 실천을 꾸준히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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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학 중인 저는 같이 사는 한국인 룸메이트에게 처음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여객선 사고가 났는데 전원 구조 중이라고... 그래서 구조가 되고 있다니까 다행이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몇시간 후 인터넷을 통해 다시 확인한 사고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실종자 수가 정말 말도 안되게 너무도 많았습니다. 오보였다는 것이, 그리고 아이들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것이 너무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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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무실에서 인터넷 뉴스로 사고를 접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동료샘들과 함께 뉴스를 보다가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다행이구나 안심하고 수업 들어갔다 오니 그게 오보였다고,, 수백명이 갇혀 있다는 말에 이거 큰일났네 라며 서로 걱정했는데 그 학교가 하필이면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단원고 ㅜ ㅜ. 그 근처 학교 아는 샘과 통화했던 기억도... 뒤집힌 채 점점 가라앉는 배를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했던 시간들. 분명 출근하는 날이었는데 대통령은 왜 출근조차 안 하고. 무얼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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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그 날 해경이 아닌 소방대가 출동했다면 당연히 배안에 들어가서 빠리 나오라고 하면서 구할텐데... 정말 소중한 생명.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잊지 못합니다. 다시 한번 눈물이 납니다. 유가족의 마음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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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생 아들을 키우는 맘입니다.그날 몸이 아파서 한의원에 가있을때 뉴스를 보고 집에오는 지하철 안에서하염없이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그날 뉴스보는게 두려워서 티비도 켜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부끄러운 어른이라서....미안합니다.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이 없던 어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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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를 여행하고 있던 중 비보를 들었습니다. 퀘백시티의 한 호스텔 지하 식당에는 그 전에 서로 본 적도 만난적도 없었던 한국인 여행자 둘과, 워킹할리데이 중 퀘백시티에 놀러온 한 명, 셋이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약속 한 것도 아닌데 그냥 한 명 한 명 다이닝룸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나가서 관광을 할 수도, 웃고 떠들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충격과 슬픔에 너무 놀라 서로 말을 잊지 못하면서도 그냥 그 식탁에 같이 둘러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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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우리 동네 엄마들과 독서모임 하러 모였을 때 사고소식을 듣고 웬일이야. 괜찮데??? 한사람이 검색해보고 다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독서모임 시작. 모임 끝나고 오보라는 얘기를 하면서 집에 들어가 몇년만에 티비뉴스를 계속 보았다. 제발 다 구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두아이가 또래라 더 아팠고 한동안 위장병에 우을증이 생겼었다. 치유받지 못할 슬픔과 상처. 이런저런 참여로 치유받고 싶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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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2014년4월16일 수학여행을다녀왔습니다.왜같은수학여행인데 단원고언니오빠들은 왜아직도 돌아오지못할까요 왜!무슨이유로 죄가없는 학생들과여행자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버스에서뉴스를보면서 전원구조 이글을보면서 친구들과함께 다행이다 말을하였지만 그게실수?라고요? 사람들목숨이장난입니까? 사람목숨이장난이면 박근혜대통령과 최순실관련된사람다 죽어도 슬픈사람몇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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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실습 중에 소식을 듣고 당연히 구조되겠지 저렇게 티비에서 생중계를 해주는데...했지요. 전원구조라길래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삼백명이나 실종되었더라구요. 그래도 곧 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는 이 나라와 정부에 대한 그런 믿음이 있었어. 그런데 밤이 되도록 찾지를 못하고 다음날 그 다음날 기다려도 구조자 한 명 없는걸 보고 패닉에 빠졌지. 다시보니까 박근혜 정부는 아예 구할 생각이 없는 거였어. 다시봐도 눈물납니다. 그 생떼같은 애들 보내고 부모님들은 어찌 사시는지. 기억합니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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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는 친구가 그날 단체주문이있어 일손이 부족하다해서 아침일찍 그 집에 갔습니다. 가기전 아침에 단신으로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기사를 본듯도... 친구집 거실에서 열심히 도시락에 과일도 담고 오랜지 주스도 짜고 있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티비를 켜놓아 뭐라고 한마디 하면서 티비 화면을 보는데 계속 여객선침몰 이야기가 나오면서, 전원 구조되었다는 자막이 뜨더군요. 안심하며 도시락싸던거 마져 싸고 배달하고...배달한 도시락을 그곳(병원이었어요. 강동성*병원)에서 모두 먹기를 기다렸어요. 병원 근처 커피솝에서, 그 후 용기를 찾고, 친구집에 들러서 반찬 남은거 싸갖고 오후 4시 넘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그 날의 그 도시락에 음식 담으며 티비 화면에 보이던 세월호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사진처럼 머리속에 찍혀있는데, 어찌 저 파렴치한 인간들은 기억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누구의 말처럼 그 전날로 돌아가서 아이들 한명한명에게 절대 그 배에 타지 말라고 말하고 다니고픈 마음. 눈물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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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이 되어 남습니다.대한민국 모두의 부모와 모두의 친구 동생들이 똑똑히 지켜봤습니다.더러운 정치의 희생양들을 우리는 평생 기억 해야 됩니다.박근혜를 능지처참 하여 21세기의 임당수에 빠져 희생 당한 우리 자식들의 넋을 달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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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릴 수 있었음에도 구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리고 여전히 진실을 밝히지 않는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알리지 않는 청와대 권력자들과 거기에 빌 붙어사는 자들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그 아이들의 부모들의 차이는 단지 그 아이둘이 나의 친 혈육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우리들의 자식이었다.누가 자식을 죽인자를 용서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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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가 나는 해외였고, 밤에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보고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무 생각 없이 국내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그때부터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잠에 빠져있던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과의 사투를, 또한 얼마나 무책임 한 사람들이 자기 직무를 모른 척 했었는지.. 저는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