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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역 한의사고, 마침 책을 출간해서 충주에 있는 "책이 있는 글터" 서점에서 책 홍보 차 강연이 잡혔던 날입니다. 하루종일 무거운 마음으로 방송을 들으면서 진료를 봤고, 그날 저녁 강연 때문에 진료를 일찍 마치고 충주에 갔습니다. 가서 자리에 모이신 참석자 분들과 함께 안타깝게 희생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생존자를 한 분이라도 더 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묵념을 올렸습니다. 2년 하고도 7개월이 더 흘렀지만, 그날 그 기억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자들이 동료 의료인이라는 게 너무나 기가 막히고 속이 뒤집어집니다. 어떻게 감히 의료인이란 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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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오전에 뉴스가 떴어요.바로 구조가 된걸로 나와서 "아 다행이다~" 하고 안심했어요..점심 먹으러 갈 때 쯤이었나 그때부터 뭔가 심각한 상황이라는걸 인지했고 오후에 수업받는 틈틈이 뉴스로 확인을 했었어요..그 후로 며칠간은 뉴스보면서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고 화나는 마음에 울기도 했었네요..당시에 "내가 위험에 처하더라도 나라에서 구해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했던게 기억나네요.지금도 세월호 사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그 후로 우리나라는 좀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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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관련 뉴스를 본 것은,학관에서 선배들과 밥을 먹으면서 였습니다.놀랐지만, "전원구조"되었다는 소식에 다시 다행이라며 웃으며 밥을 먹었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전원구조"가 거짓이었다는 것은 시험공부 때문에 온 도서관에서 였습니다.모두 같이 티비앞에서 기적과 희망을 기도했습니다.우리들은 카톡으로 소식을 공유했고,같이 슬퍼했습니다.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닙니다.하지만 그날은 저에게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는길, 나의 사회적 무력함에 눈물을 흘렸던 일도 , 그 먹먹함도 기억합니다.지금 저는 3학년입니다. 저 혼자 이렇게 자랐네요. 저는 이렇게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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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출장중이었습니다.쉬는 시간에 폰으로 기사를 접하고 너무 충격적이라 다른회사에서 오신 교육생분들께 얘기했더니 의외로 다들 태연하셔서 충격이었던 기억이 나네요.저 혼자 패닉되서 계속 기사 검색하는데 다른 한분도 검색 하시더니 "다 구조했대요"라고 하시더군요. "아, 정말요? 진짜 다행이네요. 생각보다 박근혜정부가 일을 잘했나봐요."라고 하고는 그래도 워낙 큰 사건이라 계속 검색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전원구조는 오보라는 기사도 봤었구요. 다시 패닉에 빠져서 교육은 뒷전이고 계속 검색만 했었네요. 전 그날이 너무 생생합니다. 저에겐 삼풍백화점과 대구 상인동 지하철 폭발사건, 그리고 대구 지하철참사 이후로 가장 큰 사건이었거든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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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고소식을 듣고 당연히 모두 구조가 될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옆 동료가 오후가 되기전에 해군,해경 모두 도착해서 전원구조가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저랑 동료들은 역시 우리나라 군인들 해경들 대단하다 하면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지나지않아 너무 말이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에 모두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고 서로 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유가족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먹먹해지네요.. 끝까지 함께 기억하고 함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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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무심히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봤던 게 생각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죠... 그 때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가 자라나는 걸 보면서 점점 더 비극의 무게를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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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하루인줄 알앗다 .. 교대근무로 인해 아침잠을 자다가 본 속보에는 침몰이 잇엇고 찾아본 정보에는 전원 구조가 잇어 안심하고 깬 잠을 다독이면 잣더라 ........ 그 날 오후 3시 출근길은 충격이엿다 제발 빌엇다 ... 좀 더 힘내시라고 구할수 잇을꺼라고 .... 그러나 정부의 구조 모습이 아니라 언론의 남탓과 보여지는 것 없이 하고 잇다던 말뿐이더라 .그날 .... 내가 저런일 당해도 내나라는 나를 못구하겟구나 ... 내가족을 못구하겟구나 ... 내친구.. 내 이웃.. 이웃의 이웃 .... 우리를 ...................그런 날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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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시간에 나는 해저유물에 대한 수업 과제를 하고 있었다. 제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를 찾고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처음에는 소식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만 막연하게 "곧 구출되겠지"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편의점에 간식거리를 사러 가면서 잠깐 뉴스를 보는 와중에도 아이들에 대한 걱정보다 "그 해역에는 어떤 유물이 있더라" 같은 생각만 있었다. 당연히 모두 구출될거라는 생각 때문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내가 사고에 대해 알아갈 수록 상황은 나빠져만 갔다. 언론은 오보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여전히 있었으며 구조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윽고 나는 과제를 덮고 뉴스를 제대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더이상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저 몸이 떨리고 눈물이 휴지를 적실 뿐이였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아이들을 놓쳤다. 시간을 놓치고, 손을 놓치고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나는 아직도 그 날, 그 시간을 기억한다. 너희와 같이 나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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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뉴스를 접하고 무척 놀랐지만 전원 구조라는 뉴스에 안도했었다.몇시간후 오보임을 알게 됐고 가라앉는 배를 보며 나 역시 깊은 절망감에 침몰했었다..모두가 마찬가지 였으리라...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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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사고 소식과 허둥대는 언론과 정부.... 그 날의 기억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TV에는 점점 가라앉는 세월호가 보이고 모든 국민이 희생자들의 가족이 되어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식을 가진 아버지로서 그러한 상황이 나의 일처럼 이입이 된 것은 단지 나만의 일이 아니었겠지요...그 후로 사건을 덮기 위한 정부와 청와대, 여당의 노력은 결국 유병언의 죽음으로 마무리되었고, 진실 규명을 원하는 모든 국민의 열망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덮였습니다. 문제는 이 사건은 안전 후진국인 대한민국의 침몰의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이제는 모든 국민이 소망하는 안전하고 투명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탈바꿈하여야 하며 그 주역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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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식당에서 지상파 뉴스를 하고 있었어요.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였으나"전원 구조" 라는 큰 자막이 뜨길래아, 정말 다행이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보라는 소식이 전해져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정말 너무 놀랐습니다.더구나, 배가 그렇게 기울어진 상황에서배 주변에 구조 인원이 전혀 없어 더욱놀랐었죠기울어져가는 배 안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듣고 가족/친구들에게 연락하는 학생들 사진을 보며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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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에게 미안하고미안한 마음 뿐입니다.그 어린 것들이 공포에 떨었을 시간을 생각하면...그리고 차가운 물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바랐을 시간을 생각하면..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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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그날은 지금의남편이 남친이었을때 살던집인 곡반정동에있었고, 자고일어나서 비몽사몽한상태로 티비를켜고 핸드폰을확인하는데 친구들과하는단톡방이며 티비채널들 다 세월호소식으로 떠들썩했어요그소식에 비몽사몽하던잠도다날아가고 그뒤로몇일내내 집에서 티비로든 핸드폰으로든뉴스만봤어요 몇명을구조했는지 몇명이나구조하지못했는지하루하루가슴졸여가며 뉴스만봤던게아직도생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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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뒤집혀 있는 화면을 보면서도 구조 못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아침이었잖아요. 밝은 대낮이었잖아요. 폭풍우도 없고 파도도 높지 않았잖아요. 안개도 없었고요. 우리 모두 두 눈 부릅뜨고 보고 있었잖아요. 배 안에 있을 아이들과 사람들의 두려움이 전달됐지만 그래도 조금만 기다리면 모두 구조될 거라고 믿었어요. 내 눈 앞에서 304명이 산 채로 물에 잠겨 수장됐는데 어떻게 잊어요. 어떻게 당신들은 잊었다고 말하고, 잊으라 말하나요? 설사 우리의 기억은 희미해질지라도 역사는 기록할 거예요.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촛불이 되어 제 마음속에 있을 겁니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미안합니다... 그래도 진실은 밝혀지도록 노력할게요. 약속해요. 진실까지 침몰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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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세월호 좌초소식과 수학여행중인 고등학생이타고 있는 뉴스를보고 시간이흘러 점심시간에 전원구조 뉴스를보고 아 그럼 그렇지 당연히 다 구조 했을꺼야하고 식사후 다시들은 뉴스는 ......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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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당시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뉴스 속보를 보고 놀라 옆 동료와 같이 얘기를 나눈 것으로 기억해요.하지만 곧 모두 구조했다는 뉴스에 "아 다행이다" 생각하고 다시 몰려드는 환자분들을 응대했는데요. 그날 야간 당직 근무였던 저는 모두가 퇴근한 후에도 병원에 남아있었습니다.하지만 속속들이 올라오는 뉴스에서는 구조는 커녕 사망자 숫자가 올라가더군요. 언론을 통해 지켜보는 입장에서 정부의 대처가 기억에 남습니다. 우왕좌왕하는 것과 정보 공유도 안되었으며, 메뉴얼은 있는지 메뉴얼대로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습니다. 야간 당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17일 오전. 뉴스를 통해 전해들은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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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 날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출근 이후 10시가 좀 넘어 동료들과 담배 한대 태우러 나왔다가 무심코 "다음"에 접속해보니,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승객 전원 구조" 라는 보도가 올라와 있더군요.. 다행이구나 생각하며 다시 업무에 집중하다, 오후 1시쯤엔가 다시보니 기사가 바뀌어 있었습니다..그 이후로 간절하게 구조 소식이들려오길 바라며 틈날때마다 인터넷에 접속했었죠.. 그러나 없었습니다.. 더 이상의 구조 소식은... 결국 304명이란 안타까운 생명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 한동안 뉴스만 보면 눈물흘리던 기억이 생생하네요..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아마 죽을때까지 못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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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앞에서 한번도 운적없는데..텔레비젼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제게4살된 아들녀석이 손등으로 제 눈물을 닦아주었어요.그리곤 텔레비젼을 손바닥으로 때리고는절 꼭안아주었네요.아이를 끓어안고 어찌나 울었던지.....그날은 생생히 기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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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보면서 내내 제발제발 이말 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있어서도 있을수도 없는일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모습에 정말 소름이 끼치더라구요 아직도 가슴히 먹먹해짐니다 이것밖에 안되는 나라 이런나라에 두아이를 키워야한다는게 답답합니다 밤새 잠설치며 뉴스보고 더더 많이 구조되길 바랬거늘 현실은 참담했어요 고귀한 아이들을 잃은 부모 보다 덜하겠지만 슬픔니다 잊혀지지않는 시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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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중 도무지 알수없는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비오듯 흐린 날씨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현장 상황 중계는 절망으로 바뀌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추운 바다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누군가에게 단 7시간이. 그들에겐 평생의 시간을 앗아갔습니다. 단 1분도 채 버티질 못하는 시간을 누군가 7시간을 앗아갔습니다. 뉴스 한편에 나오는 실종자 수. 사망자 수. 그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나타내는 긴 세월의 수. 대한민국 군대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그저 국민 한사람. 누군가의 가족 한 사람. 누군가의 소중한 그 한사람으로서 그들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우리가 대신 함께 기억하며 대신하고자 합니다.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