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은 야간당직이 있었던 날입니다야간당직이 끝나고 9시 퇴근인데너무 놀라서 활동가들가 티비앞에서 몇시간을멍하니 있었습니다.12시가 지나고 때때로 포기하는 발언도 했다가에어포켓이 있을거라며 서로 안심시켜주고점심도 먹는둥 마는둥..해경은 왜 문을깨고 들어가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는가너무도 마음아픈시간을 아니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
지금 잘지내고 있는 내가 미안하지만..그때 컨설팅 투입되서 현업 담당자와 처음 식사를 하려고 음식을 기다리는데...배가 침몰 중이라고..이어지는 속보 모두 구했다고..그렇게 해피엔딩인줄 알고 식당을 나섰습니다무능력한 나를 느낌니다..미안
-
그날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작은 분식점에서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잠시 휴대폰을 들었는데 세월호소식이 보였습니다.그래서 집중하는데 거의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며 지인과 함께 하다가 장사를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청와대관계자는 어떻게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워낙에 큰 사고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인데 말입니다. 부디 이제라도 양심선언하는 사람이 쭉쭉 나오기를 바랍니다.
-
딸 출생신고 하려고 아침에 일아나서 뉴스를 보는대 배가 문제가 생겼다고 했습니다.하지만 뉴스에서는 전원 구출이라고 되어있어서 아 다행이다 라고 하고 있었지만..안타까운 소식만 접하게 되었습니다.평생 기억에 남는 날입니다...그날 이후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TV에 분명히 전원 생존 구출이라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아니였더라고요. 뭔가 큰 움직임이 없이 왜? 구조하지 않나라는 생각뿐...정부를 믿고 있었는데... 서해 기름 유출때 보여줬던 그런 하나된 모습이 연출되지 않을까 안심했었는데죄송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없었네요. 그래서, 끝까지 응원 할께요.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
점심 때쯤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하였다. 안산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원이라서 아는 친구들중 단원고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선 모두 무사구조했다고 티비에 나왔다 정말 무사구조 인준줄만 알고 밥을 먹으러갔다. 하지만 그 다음시간 수업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모두구조가 아니란다. 심지어 선생님들중 아시는 선생님도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공부를 하지못한 하루가 지나갔다. 죽은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지인이고 따뜻했던 사람들이였다. 그들을 쉽게 잊어서는 안된다.
-
함께 일하던 가장 아끼던 동료가 오전에 사고 소식을 전하며 사촌동생이 저 배에 타고 갔었다고 했다. 좀 놀라기는 했지만 전원구조 소식이 뜨고 별로 걱정하지 않으며 계속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그게 아니라는 말이 들렸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동료에게 당장 내려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그렇게 사건은 시작되었고,하루에도 몇번씩 뉴스를 통해 상황을 보고 현장에 있는 동료에게 그 아비규환의 상황을 전해들었다.그렇게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던 촛불은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이 되고, 미수습자의 수습과 인양을 위한 촛불이 되고, 이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촛불이 되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결국 우리는 아직도 2014년 4월 16일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하루빨리 억울하게 떠나간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모든게 밝혀지고 보다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도해본다.그렇게 되지 못한다면....그날의 비극은 또 다시 나와 함께 이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앞에 다시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
옆집 아줌마들과의 티파임 중 배가 침몰됐대...라며 들어오며 얘기하는 아줌마의 말을 들으며...다들 어머어머..어떻게..TV 좀 틀어봐...하며 TV로 추이를 보기 시작햇습니다.그냥 먼 얘기로...당연히 다 살겠지....(죽음이란 단어자체는 생각도 못했습니다.)저거봐..다 구했대...어머..다행이다...하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고 바쁘게 지내다 점심 이후에 다시 들은 이야기..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이돼? 구명조끼를 입었고..하늘을 향해 다 열려있는 배인데...뛰어내리면 되는데..왜?왜?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그 안에 있던 들떠있던 아이들..가족들..많은 분들..어떻게해어떻게해...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뉴스특보에서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정말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미안하고 미안하고 ...ㅜㅜ20140416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네요..
-
학교를 가는 길이었다. 앉지못해 서서가던 그 경춘선 안에서 내가 할 일이라고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 뿐이었고, 그 때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접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본 그 기사는 2016년 최악의 오보였다. 역사에 남을 그 최악의 기사는 결국 오보로 판명되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경춘선 안에서 쏟아지는 정정기사들을 바라본 채 나는 그저 울먹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때의 눈물과 분노를 나는 기억한다. 잊을 수 없다. 잊지 않을 것이다.
-
그 날 나는 군인으로 휴가 복귀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집에서 복귀전 TV뉴스를 보다가 세월호 사건을 처음 접하였고 그런 상황을 실제로 본 것에 대한 놀라움과 동시에 구조 중이니 탑승객 모두가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조자 명단만 보며 상황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늘어날 것만 같았던 구조자 수와 반대로 중간중간 나오는 정부의 어이없는 뒷북 대처와 총체적 부실로 늘어나는 사망자 수만 보며 복귀하는 버스로 올라탔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복귀중 지금 이 상황으로 부대 분위기가 무겁진 않을까 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있진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문득 하였고... 부대 생활을 하면서도 뉴스를 통해 상황을 접하였지만 내 생활 하는데 급급하여 한번더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것 같습니다.지금이라도 이런 기회가 있게되어 고맙고 잊지않고 앞으로도 항상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그리고 전원구조...그리고 오보...이런 무기력한 재앙같은 뉴스는 처음이었다.초기대응실패...그리고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는 수많은 의혹들...이젠 독하게 용서없이 낱낱히 밝혀야한다.누구도 그러지 못하게...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단 하나의 의혹도 남지 않을때까지 잊지 말아야합니다.
-
그 때 내가 고3이었다는 것도, 봄이었다는 것도,전원 구조라며 그제서야 안심하시던 국어 선생님의 목소리와, 나중에는 "세월호 사건"이라는 명목으로 줄줄이 취소되던 크고 작은 행사들, 기사 하나가 더 나올 때마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지고 슬퍼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티비로 보며 엉엉 울던 나날들, 공부하려 자리에 앉았어도 살고 싶어서 처절히 기도했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생각하며 자꾸 눈물만 흘리던 날들을 기억한다. 사고가 일어난 주의 주말은 부활절이었다. 부활은 원래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인데. 부활 성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눈물이 젖어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그 시기만큼 내 모든 진심을 담아 그렇게 처절히 기도해본 기억이 없다. 매일 밤을 묵주와 함께 했고 그렇게 슬펐던 기억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사고 후 지금까지 유가족들이 얼마나 차가운 현실과 외면이 부딪혀왔는지에 대해서는 함께 슬퍼해주지 못했다. 꽃같던 우리 친구들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슬픔까지 이제 나는 기억하려 한다.
-
버스를 타고 가면서 사고 소식을 봤습니다.작은 분식집에서 비빔국수를 먹으며 작은 TV를 통해 배가 반쯤 가라앉고 있는걸 봤어요.대낮에. 온국민이 생중계로 보고 있는데 별일 있겠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잠시 후 전원 구출됐다는 속보를 보았고. 함께 있던 지인에게 "것봐, 별 일 없잖아" 라고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그리고는 더이상 보지 않았어요.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가라 앉았다는 뉴스를. 그리고 이제까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라앉는 동안 저는 "별일 아니잖아"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그래서 너무 죄송합니다.그래서 기억하려 합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나이 딸아이가 있습니다. 4월 16일 일주일 후 쯤 딸아이도 제주도로 수학여행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침몰해 가는 현장을 생중계로 바라보며 이렇게 무능할수가 있는지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이게 진정 나라입니까.어찌 꽃같은 아이들을 그렇게 보낼수가 있습니까.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세월호 말만 들어도 노란색만 봐도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밝혀야합니다.왜 그랬는지누가 그랬는지....ㅠㅠ
-
우습게도 그 기억은 출근길에 차 속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안심했던 소식이었습니다. "전원이 구조되었다" 모두가 구조되었으니 다행이다 하며 출근했고 얼마 후 그 소식은 오보였음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물에 잠긴 배 속에서 나오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죠. 그 무력함이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포로 다가왔죠.어쩌면 그 속에서 나오지 못한 생명들이 나일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그리고 그 것을 어쩌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이. 그게 어쩌면 나일수도 있었다는 것을.내가 아니어서 안심할 수 없었고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무력해서 미안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힘이 될 수 있게 곁에 있겠습니다.
-
따뜻한 바람에 나른해지는 4월 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 된지 시간이 꽤 흘렀고 우리는 여느 날 처럼 각자의 삶을 바쁘게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 부리나케 택시에 올라 등교하며 보았던 그 길에 사람들은 유달리 평화로워 보였다. 택시기사의 짜증섞인 한숨 소리와 함께 들려온 속보.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들을 태운 여객선이 기울어졌다." "구조중이다." 수업시작까지 5분 남짓한 촉박한 시간에 사고속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서둘러 강의실로 향했었다.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 구조 되었다고 했다.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그랬으면 했으니까 당연히 그래야 했으니까. 모두 안전하게 다치지 않고 구조되어 별일 아니었다는 듯 다시 친구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게 밤새 웃고 장난치고 떠들어야 했다. 다시 집으로..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들 딸로 둘도없는 형제로 돌아가야 했다. 강의가 끝난 후 교실 밖 TV화면에선 배가 반쯤 잠긴채 가라앉고 있었다. 오보였다. 그날, 우리의 7시간은 아이들과 함께였다. 무너지고 무너져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켜봤다. 그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과 미안함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건. 우리 모두가 기적을 바랬기 때문이었다.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제발...제발...기적이 일어나길 바랬다. 그 곳에 있진 않았지만 모두가 밤새 뉴스 속보를 틀어놓고 희망의 소식이 들리길 기다렸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딸이고 형제였다. 유가족들의 절규와 몇 안되는 구조된 아이들의 울음소리... 충격과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담아내려는 기자들의 셔터 소리.. 그 사이를 허둥지둥 왔다갔다 하는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 급박하고 정신없는 육지상황과 대비되게 바다는 조용히 빠르게 배를 집어삼켰다. 미동도 않는 배의 끝머리가 완전히 잠겼을 때... 그때... 아이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은 멈췄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누가.. 누가 감히 잊었다 하는가.. 아직도 숨이 턱 막히도록 믿겨지지 않는 그날의 시간들이 이렇게 아픈데 누가... 그 어느 누구가 그만 잊자고 하는가.. 그날, 아이들은 국민들의 가슴에 묻혔다. 지금 쯤 이면 대학가 어딘가에서 친구들과 술한잔 기울이며 아름다운 청춘을 꿈꾸고 살아갔을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이 세상에 두고 먼저 떠난 선생님.. 부모님의 자랑스런 딸이었던 한 사람.. 누구보다 국가는 이 참사를 잊혀질 때마다 잊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 "기억이 나지 앉는다"가 아니라 "기억하려 애쓰겠다"여야 한다. 진실은 완전히 묻히지 않는다 잠시.. 가리워져 있을뿐.
-
그날은 딸의 생일이었어요. 평소와 똑같이 출근을 하고 점심시간에 뉴스를 보는데 배가 뒤집어졌다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했는데... 그날 식당 메뉴도 다 기억이 나는데...몇시간 뒤 오보라는 소식을 듣고 하루종일 심란해서 일도 잘 안됐지요.어린 딸에게 생일 축하해란 말도 미안할 정도로... 우린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네요..미안하다얘들아...
-
여느때와 다름없는 주말이었습니다.뉴스속보"세월호 침몰..단원고 학생 전원구조"사상자없이 모두 구조됐구나..싶었습니다.그 이후..오도..오도..또 오도..정말 뉴스 왜 하나..개 욕이란 욕은 다했습니다.. 지긋하고 정떨어져안봤습니다.. 그때는 싱글이라 그저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도 잊혀져 가고있었습니다..세월호 2주년 되었을때 몰랐습니다..벌써 그렇게 흘렀나.. 저는 결혼을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습니다..다시금 되새겨보게됩니다..정말 정말 정말 못 구한것이아니라 구하지 않으려 한 닭대가리,개같은정부..이 모든걸 조정한 강남아줌마..잊지맙시다..그리고 싸웁시다..우리의 후세 그 후세에도 일깨워줍시다..같이 함께 하겠습니다..
-
여느 때 처럼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간단히 뉴스기사를 훑어보고 "전원구조"라는 제목에 안심한 후, 사무실에 가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점심때 쯤 팀장님이 아직 배에 아이들이 있다고 하길래 무슨 말씀이시냐고, 아침에 제가 기사 봤다고,, 했지요그러고 나서 나오는 기사들은 정말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안타깝고 가서 구하고 싶고,, 그런 날들이 몇 주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날은 2014년 4월 16일이었고 그 느낌, 아픔, 다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기억이 안 날 수가 있나요
-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복권방에 들어서는데 TV에선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종일 바빴던터라 인터넷기사도 핸드폰 검색도 찾아볼 틈이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화면하단에 표시된 뉴스속보를 보고는 요동쳤던 심장의 떨림을 잊을 수 없습니다. 퇴근버스에서 기사를 검색하며 울컥했던 순간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 그 무력했던 시간의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