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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된 아들이 고열 증세로 입원했던 병실에서 처음 티비로 소식을 접했습니다.전원구출에 안도했던 것도 잠시, 400명 가까이 갇혀있다는 말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나네요.위증자들, 본인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무책임한 것들은 (그들이 부르짖는대로) 법대로 공정하게 심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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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저는 그날을 기억합니다첫아이를 품에안고 버스에 앉아 선박사고와 전원구조라는 뉴스를보던 나를 기억합니다" 전원구조.." 요즘세상이 어떤세상인데 당연한결과라 믿고 뉴스를 닫으며 버스에서 내린기억을 생생합니다몇시간후 다시본 뉴스에는 너무나도 가혹했었습니다 무책임하게 우리의 아이들이 차가운물속에 잠기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고있어야하는..내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그 안타까운 시간을 어떻게 잊을수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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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제 생일 하루 전날 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놀러갈 생각에 하루종일 들떠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은 뉴스 보도를 통해 접하게 되었고 정말 심장이 쿵 할 정도로 놀랐고, 걱정했으나 곧 모두 구출되었다는 뉴스를 보고서는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거짓 보도인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분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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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쯤인가 일을하고있는데 여객선 한 척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주위 동료분들에게 처음들었습니다. 그 여객선이 세월호였죠. 그리고 쉬는 시간에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그땐 전원 구조햇다는 오보가 나오고있어서 같이 일하는 분들이랑 "저렇게 큰 배가 침몰햇는데 벌써 다 구했데" 라면서 대단하다며 이야기를 햇고 그런가보다 하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게 오보라고 나오면서 일반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평생 아파할 유가족분들....그런데 나라는....그리고 예전에 국민 한 명의 목숨도 지키지못하면 그게 대통령 이냐 라던 대통령님은... 묻고 싶네요.. 당신이 대통령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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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근무하다 인터넷상 뉴스를 보고 의국내 TV를 켰고 기우뚱한채 가라앉고있는 큰 여객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헬기에 타고 상황보고를 하며 시시각각 몇도 기울어져있다고 생중계 뉴스를 하던 기자를 기억합니다. 사람들이 배에 갇혀있는데 왜 구조는 안하고 저리 중계만 하고 있는거지?? 저게 진짜 실제상황인가...제 눈을 의심하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배가 순간 훅 가라앉은것도 아니고 몇시간을 아이들의 죽음을 생중계하고 ..... 그걸 보고있는 내가슴도 찢어지는데 , 그걸 보고있을 부모들은 그 순간이 1초가 지옥아니었을까요?그날이 기억안나신다구요?저는 그날 뭘했는지 생생히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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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오보...가 기억납니다.그 7시간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에어포켓이 있기를 바라며, "에어포켓은 고압일텐데" 생각한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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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수학여행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되었다는 소식.. 전원 구출되었다는안도감.. 오보라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너무 맘이 아파 일이 손에 안잡히고안타까워하던 그 무거운 공기를 기억합니다.지금까지도 세월호 말만 들어도 괜히 미안해지고 맘이 아픈데.. 아들이 고1때라그 안타까움이 더 가슴아프게 다가왔습니다.한동안은 세월호 뉴스를 일부러 멀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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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학교에서 수업 중 이였습니다. 선생님 몰래 다들 폰을 안내고 몰래 핸드폰을 하는 와중에 세월호 기사를 봤습니다. 같은 지역 가까운 위치에 있는 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제 친구들의 동생, 저의 오빠의 스승, 제 후배들의 친구들 모두가 타고 있던 배였습니다. 전원구조라는 말을 듣고 다들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며 다음교시 수업을 준비하고있었습니다. 그때 까지는 정말 다들 구조되었다고 생각하고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친구들의 동생들과 선생님들이 아직 배 안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 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나오는걸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입을 막고 울었습니다. 그날의 기억 뿐만이 아닌 그 날 이후의 일들 모두 기억합니다 장례식장을 찾던 친구들 동생을 발견했다면서 뛰쳐나가던 친구와 선생님의 뒷모습 모두 기억합니다. 일주일 전에 무얼 먹었는지 뭘 했는지는 기억은 안나지만 2014년 4월16일 아주 똑똑히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기도밖에 할 수 없었던 제 자신이 미웠던 그날 모두가 기억하는 그날을 왜 기억을 못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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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고등학교 3학년 6반 교실에서악동뮤지션의 인공잔디라는 노래를 듣다가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그때 노래가사가 너무나도 슬프게 느껴졌습니다."나도 숨쉬고 싶어 "라고 할때 정말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이런일이 다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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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길 배가 침몰 됐다는 기사를 보고 "곧 구조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다른 기사로 눈을 금방 돌렸었습니다. 그러고서는 곧 전원구출이라는 기사가 뜨길래 "역시 금방 다 구출 됐구나" 생각하고 업무를 보던 중 오보였다는 기사와 함께 승객 구출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제 자신을 책망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저 배안에서 어서 구조 되어야 할텐데 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점점 가망은 희박해 졌지만, 아니야 곧 생존자가 나올거야.. 나올거야.. 하루종일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날이 기억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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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희 인근 동네의 학교 학생들이 그 배에 타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 한 구석이 저릿 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오보는 그런 마음을 잠시 달랬지만 몇 분 후 다시 뜬 속보에는 오보라고 나왔습니다. 속보에만 집중 했던 저로썬 희망이 사라지는 듯 하였습니다. 제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했습니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그리고 전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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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희는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공항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표를 받아들고 게이트 근처에 집결해서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탑승을 기다리던 와중, 공항에서 속보를 보고 탑승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이 티비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는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는 말에 더욱 슬퍼하며 빨리 구조되길 한마음으로 바랬고, 이어 나온 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김포에 도착해서 제대로된 소식을 듣고는 참담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도 수학여행을 온 입장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저희는 한마음 한뜻으로 뉴스를 주목하며 무사귀환을 바랬습니다.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건만, 관련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됩니다. 단체로 까마귀 고기를 먹은건지 단체로 입을 맞춘건지..... 국가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면 책임감을 갖고 진실을 밝혀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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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생활을 하다 봄방학을 맞아 한국에 갔다.한국에서 기러기 생활을 하시는 아빠가 국물떡볶이를 끝내주게 하는 집을 안다고 하셔서 오랜만에 둘이서만 점심을 먹으러 갔다.내 뒷쪽의 티비에서 세월호의 뉴스가 나왔고, 계속 머리를 돌리며 화면을 보느라 아빠와의 간만의 재회를 즐기지도 못하며 점심을 후딱 먹고 나왔다.아빠껜 죄송하지만 국물떡볶이 맛은 잘 기억이 안난다. 그저 매워서, 그리고 안타까워서 훌쩍거리는 코를 닦던 기억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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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어요그날 그시간을 그충격을.새벽부터 교회 집사님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옥상에 교회 식구들이 모여서김부각을 만들고 있느라뉴스를 늦게 접했어요10시쯤 넘어서 한분이 "어 수학여행 가던 배가 가라앉았대"그때부터 수시로 뉴스를 보면서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드렸는지.제 아들 딸도 고1.중3이었던때라저녁에 집에돌아온 아이들 껴안고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어떻게 잊습니까어떻게 외면합니까우리아이들,승객들.선원들.선생님들모두다시 살려주세요제발요절대잊지못합니다왜 정치인들은 기억을 못해냅니까저보다 훨씬 똑똑한 분들이시잖아요기억좀 떠올려보세요,제발요너무나 똑똑해서기억을 안하고 싶으신건지 ..그러다 천벌받습니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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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뉴스를 보던 직원이 큰 사고가 터진거 같다고 그래서 사무실에 있는 티비를 바로 켰습니다. 기울고 있긴했지만해경도 도착했고 주변배들도 돕고 있으니바로 구조가 이뤄질거라 생각했습니다. 전원구조 속보가 뜨고 다들 다행이다를 연발했었습니다. 그러나.. ㅠㅠ 전직원이 일이 손이 밥히지않는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의문투성이였던 정부대응들.. 대통령은 어디로?. 이제 그날의 7시간이 명확히 규명되고 안타깝게 하늘나라로 간 생명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은 제대로 처벌 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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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있었던 중이었다. 우리학교는 타지역 곳곳에서 많은아이들이 와서 안산에 사는 친구도 있었다. 그사실을 안 안산사는 친구들은 단원고다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연락이 안돼자 펑펑 울고있던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그 못된 사람들을 대신 아직도사고당한 친구들 에게 미안하고미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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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다는 방송나오는 첫 순간부터 하루종일 지켜보며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들ㅠㅠ전원구조 오보가 났을땐 다행이라고 안도했다가 다시 시작된 분노 어떻게 잊을수있고 어떻게 외면할수있을까이순간도 눈물이 가슴이 아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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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어린이날 맞이하여 물류매장 오픈한다고해서 가서 물건 사고 집에 오는 버스에서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랏는지 어떡해 어떡해만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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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출장중이었고, 오전에 운전중 라디오로 전원구조 소식을 들었음.오후에 미팅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음.저녁에 집에 귀가하여 뉴스를 통해 참사가 벌어졌음을 정확히 알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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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고 일반적인 선박사고인줄만 알았어요. 종종 뉴스에 나오는 그런 사고들. 말예요. 매일같이 지나치는 뉴스 중 하나. 그렇겠거니. 당연히 곧 구조될거라 생각하면서,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제가 무심했던 이유만은 아닐거에요. 전원 구조되었다는 보도도 나오고, 포털사이트엔 현재까지 00명 구조- 이런 배너도 띄워져있었으니까. 설사 보도에 몇명의 오차가 있다 쳐도, 다 구할 수 있을 정도니까 저렇게 보도 했겠지. 하며 습관적으로 입으로는 어떡해- 하면서, 머릿속으론 바삐 과제를 하던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그 일곱시간동안 저는 세월호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절박함과 막막함이 기사 한줄에 담겨있었을지, 단 1 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때의 제가 부끄럽습니다. 친구들은 열여덟에 멈췄고, 저는 스무살의 겨울에 서 있습니다. 열여덟의 봄이라는 건바쁘고,사사로운 일들로 많이 웃고, 많이 아픈. 겨우 마음에 솜털이 보송보송 난 떡잎이 틔기 시작하는 계절이었습니다. 그만큼 너무 아쉬웠던 4월의 봄에, 같은 길에서 만났어야 했을 친구들이,또 함께 벚꽃을 보며 그해의 봄을 추억해야했을 사람들이. 섬뜩하도록 까만 물 속으로 가라앉아버리다니. 운이 좋아 살아남은 나를 친구들이 용서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친구가 엄마가 사준 말을 타고 훨훨 나르를때, 가라앉아버린 친구들. 가방안의 컵라면을 끝내 먹지못한 친구. 그리고 어쩌면 함께 가라앉고 있었던 나. 내가 아무 죄책감 없이 봄 햇님 아래서 붉게 얼굴을 태울때, 먹먹한 바다 아래 파랗게 물들었을 손발들을 생각하면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어집니다. 겨울에도 꽃은 핍니다. 하루하루 나이먹음이 미안하고 미안해서, 바람 막으며 밝힌 촛불에서 꽃이 핍니다. 사진속의 얼굴들이, 금새 웃음을 터트릴듯 봄이라서. 추워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