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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가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추운 바다 속에서 7시간 동안 처참하고 잔혹하게 죽어간 형, 누나들을요. 그때 저는 2학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바다 아래와 위에서 벌어진 일을요. 있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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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잊을수가 없습니다.여느날도 다름없는 평화로운 날이었어요. 남편도 출근하고 아이ㅣ들도 학교간 그 시간.. 믿을수 없는 뉴스가 났죠. 당연히 다 구출하겠지 모두 무사히 돌아오겠지 하며 청소하며 뉴스를 틀어두고 봤어요. 많은 아이들이 배에 태워져 나와야하고, 물속이 배와함께 있다면 에어포켓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죠. 눈앞에 펼쳐지는 뉴스속 이야기가 가슴속에 파고들었어요. 한동안 아무일도 못하고 뉴스에서 사망자 숫자가 실종자 숫자가 늘고 있는 뉴스를 보는 내가 달려가 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그대로 있을수 없어 팽목항에 갔죠. 부모님들 가족들 모두 지치고 온 몸으로 아픔이 병이 되어가는 것을 설겆이 하며 감히 눈물 흘리지 못하고 움직임을 느꼈어요. 내 마음에 이런 상처가 생겼는데.. 가족들은 오죽할까 싶어서... 또 몇주를 뉴스만 바라보면 눈물 훔쳤어요. 저는 그날을 아직 잊지 못했습니다. 아니 기억해야죠. 함께 기억하려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죠. 반드시 바로 잡아야죠. 배가 왜 그리 됬는지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왜 거짓말 했는지, 뭘 숨기고 싶었던 건지 왜 아직도 밝히지 않는지 그 모든것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기억하고 또 기억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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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의 슬픔을 담아내겠습니다 7시간의 고통을 같이 참아내겠 습니다7시간의 시간들을 영원히 7년이 지나도 700년이 지나도 마음에 세겨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만약 일어나더라도 더 좋은 대처와 결과를 찾기위해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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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순천에 특강이 있어 창원에서 기차를 타고 순천역사에서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하였는데.... 그후 진도 추모관에서도 가족들과 다녀왔습니다. 앳된 아이들의 사진이 그득한 방에서 저는 그만 그들이 "저희 살아 있어요"하며 외치는 소리처럼 들렸어요.기억할게요.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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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복되는 기사에서 어리둥절했던, 어떻게 그렇게 상반된 기사가 나올 수 있는지 아직도 의아하기만 하다. 누구의 계획인지 의도인지 우린 몰라도 다 아시는 분이 계시니 소망을 잃지 않는다.얼굴 한번 본 적없어도 4월이 되면 이렇게 가슴이 먹먹한데 가족들을 생각하니 정말 맘이 저려 옵니다. 오늘이 제 생일이지만 기쁨을 미뤄야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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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합 고등학교 영어 듣기평가가 있던 날나는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나 또한 같은해 4월 1일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세월호를 타고 2일에 제주도를 도착했다. 4월 16일 오전 시험보기 전에 다른반 친구가외쳤다. "우리가 탔던 배 침몰했데!". 우리는 수업종이 울리고도 교탁에서 인터넷을 켜서 진실을 알아보았고 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보았고 선생님들은 자세한것은 모르니 조용히 하라며 학생들을 잠재웠다. 만감이 교차했다. 몇시간 뒤 나는 뉴스에서 배 안에서 친구 손에 가시를 빼내어주던 승무원 누나의 사진을 보았고 많은 학생들이 내가 있던 그날 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게 있던 동영상을 보았다. 그 배에 구조도 알고있던 나는 그날 내가 침몰하는 악몽을 꾸었다. 몇일 간 구조 전 학생들이 찍은 동영상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팠다. 진실을 찾고싶어 많은 자료들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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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날 을 기억하고 추모 하겠습니다청소년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간 그날 오늘도 비가 오네여 청소년들을 추모 합니다https://youtu.be/pOW6rbKMsoE추모영상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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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부모님과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고 있는 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세월호를 타고 단원고 수학여행을 간 학생 언니 오빠 선생님들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라는 뉴스와 그 선장이었던 해양경찰부 관련된 사람들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내용과 함꼐 나왔습니다 그 7시간동안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나왔습니다 그 이후로도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고 세월호 추모영상을 볼때마다 마음에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4.04.16 잊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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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 저는 그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초등학교1학년때 기억이라 그런지 잘 기억이 나지않지만 아마 세월호 소식을 듣고 어렸던터라 배가 침몰했다는거를 잘 모르고 그냥 이런일이 있었구나 대충 이렇게 생각했죠 그날엔 세월호 희생자분들이었던 언니들,오빠들,선생님들,선원분들,일반인 승객분들이 그 큰배 안에서 점점 배가 기울어 공포감을 느끼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시고 마지막 침몰하기전까지 구조요청을 했지만 해경들은 구하지못했죠 그 많은 골든타임이 있었는데 배안에 있는 사람 한명도 살려내지 못한 해경들한테도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선장도 자기만 살겠다고 승객들을 배안에서 가만히있으라고하고 자기 혼자 탈출하고 얼마나 무책임한겁니까 ...침몰했을때 희생자분들이 얼마나 춥고 무섭고 살고싶었을까 이 생각만하면 마음이 찢기는거 같고 미어집니다...선장이 승객분들께 바다로 뛰어내려야한다고 대피해야한다고 이 말만 했어도 전원구조가능할수도 있었고 이렇게까지 많은분들이 희생하는 일은 없었을수도 있습니다 진짜 다 살수도 있었는데라는 생각때문에 너무 안타깝습니다 벌써 희생자분들이 하늘나라에 간지 7주기가 되는해입니다 4.16만 되면 희생자분들의 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줄줄 나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하고 그 차가운바다안에서 희생하게해서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대형침몰사고가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희생자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나라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희생자분들의 희생 절대 잊지않겠습니다 2014.04.16 그날 희생자분들의 희생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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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학생과 그등등분들에게 미안합니다 차가운 바다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빨리 구조못해줘서 많이 미안해 미안합니다 그리고 탈출하라고 방송을 해야하는데 가만히 있으세요 해서 미안해 미안합니다나도 어쩔수가 없었어배선장이고 뭐고가 우리먼저 도망가자해서 난 일을해야겠고 말을 안들으면 뭐라고 할것같아서 방송을 그렇게 해버렸어 나도 차라리 같이 하늘에 갔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해서 살아도 사는게 아니야 유가족들 여러분들 에게 미안합니다 반성하면서 살겠습니다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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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근무중이었고 테레비에 침몰과 관련된 뉴스가 나왔는데 전원구조라고 했습니다. 국가가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판단과 무능력에 의해 이렇게 될수 있구나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이런 모습보려고 대한민국에 그 동안 세금내고 한건지 실망감들고 서운하고 신뢰감이 크게 저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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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로 들어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하는 도중 포털메인에서 뉴스를 접했다. 그때의 장면이 기억난다. 나는 5513인지 5511인지를 타고 왼쪽 창가에 앉아있었고 버스는 서울대 정문 앞 로터리를 들어서고있었다.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고 비현실성에 머리는 멍해졌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연구실에 도착하자마자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속보 사이사이에 속속들이 올라오는 슬픈 사연들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날 먹먹한 슬픔에,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져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종일 심란하고 뒤숭숭했다. 하필 그날은 또 엄마의 생신이라 우리 가족은 한 파스타집에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밥을 먹는 동안 티비속의 배가 서서히 침몰하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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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서 웹서핑 중, 전원 구조 속보를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했다. 기사 보니까 다 구조됐다더라고, 그래도 다행이라고, 웃으면서 말했었다. 모두에게 정말 미안하다. 누군가가 바다 가운데서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 책상에 앉아 다 구조됐다며 안도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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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의경이었습니다. 근무를 갓다와 내무반 tv로 소식을 접했고 어떻게 저런 일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네요. 이후 자대 내 외출 제한, 운동 금지 등 조치가 내려졌고 한 간부는 "지금 모든 공무원이 죄인의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너희도 고생해 달라."고 하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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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미국에 있었어요 공부하며 다른 날과 다름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소식을 듣고 나서 페이스북 상주하면서 구조소식이 들리길 기다렸네요... 이렇게 큰 비극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어요 외국에서 듣는 조국의 비극적인 소식... 두렵고 모든 게 믿어지지 않고 꿈을 꾸나 싶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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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수업이 없어서 집에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속보를 먼저 보고 바로 TV를 켜서 계속 뉴스 중계를 봤어요. 전원중계 속보를 보고 다행이다 생각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심각해지는 상황에 TV앞을 떠날수가 없었어요. 너무 믿기지가 않고 뉴스를 보면서도 현실인거같지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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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로 식당에 가서 티비를 보는데 큰 배가 침몰된 상태로 있었다. 내가 티비로 보고 있을 정도면 모두가 지켜보는 상황이고 벌건 대낮이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모두 다 쉽게 구조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데 당연한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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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일하고 있었는데, 사고 소식을 들었고, 일에 집중은 못한채 계속 뉴스만 새로고침 했어요. "전원구조"란 말에 다행이다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오보라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산소를 넣는다 만다 소리가 있어서, 천안함 당시 해외에서 밤새 초조하게 기다렸던게 생각이 나며, "아마 정부가 산소를 넣는다고 하는건 거짓말 일거야. 그때처럼 또 넣지 않겠지" 생각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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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교사. 오전 중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 배가 가라앉았는데 다행히 모두 구조됐다더라"라고 얘기하고 그대로 수업함. 점심 시간 때도 선생님들하고 식사하면서 구조돼서 다행이다-라고 얘기했었는데 막상 오후 되니 그게 오보였고 엄청난 실종자 수... 그 이후부터는 계속 뉴스 새로고침.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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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최순실과 관련된 체육계의 재단 중 한 곳에 컨설팅을 가서 그 곳의 인사담당자와 점심을 먹다가 tv를 보았어요. 그곳의 인사담당자도 저도 우리가 최순실과 연관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는데 ㅠㅠ 전원 구조된 것 듣고 다행이라면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나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