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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의 모든일을 항상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그리고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당하신 분들 삼가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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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저희가 마음 속에 새기고 있겠습니다.. 저는 그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학교이서 그 소식을 처음 접했고 집에 오니 엄마께서 뉴스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셨습니다. 지금은 제가 자라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네요... 그때의 언니오빠들과 같은 나이가 되어 바라보니 더 무겁고 가깝게 다가오네요. 항상 잊지않겠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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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저는 초등학생이였습니다. 그 날을 뉴스에서 보게 된 순간은 그 날의 날씨 마저 잊지 못 할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새기고 살아가는 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시간이 지나 제가 고등학생이 될 정도로 자랐습니다. 아름답게 피어날 어여쁜 꽃들이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났다는 사실은 잊지 못 할 것입니다. 잊혀져서도 안 될 일입니다. 항상 기억하고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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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년이나 지나버린 그떄 그 악몽 형 누나들이 무서워 하고 공포에 떨 떄 아무 힘도 되어주지 못 해서 너무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아무 힘이 되어주지 못한 마음에 너무 가슴이 아플 뿐이네요 그래도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잊지 않고 항상 가슴에 새겨두고 살아갈게요 거기 가서는 불안해 하지 말고 무서워 하지 말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잘 사시길 기도 드릴게요 사랑합니다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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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이 날은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이 일의 무게를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무게를 깨닫게 되었네요.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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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뉴스에서 배가 침몰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뉴스에 눈을 뗴지 못한 채 보고 있었습니다.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며,유가족분들이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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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무리 아파하고 힘들어해도 형, 누나들 보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 분들 보다 힘들겠습니까... 그곳에서 만큼은 힘들지 마시길... 남겨진 가족 분들도 꼭 나중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현생을 행복하게 살다가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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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라 정확히 그 사건에 대해 파악하고 있던 건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큰 사고였고, 많은 언니 오빠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날 제가 무엇을 했는지는 확실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날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고, 유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이 발생하고 저도 크게 되면서 점차 더 많은 뉴스 영상 등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를 볼 때마다 뼈저리게 슬펐고, 분명히 다 구할 수 있었던 상황이였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는 분노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천개의 바람이라는 노래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사고가 생긴 언니 오빠들 모두가 가사처럼 밝게 빛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가족분들께서도 힘들지 않으셨으면 좋겠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슬픈데 언니 오빠들과 가족분들께서는 얼마나 힘드실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만약에 보신다면 이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언니 오빠들과 가족분들 모두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꽃을 보면 가장 이쁜 꽃을 가져가고 싶듯이 언니 오빠들도 가장 아름다운 존재여서 그랬었다고요. 조금이라도 제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절대로 언니 오빠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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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초등학교 1학년이였어요.그날 아무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지냈어요.그런데 1년뒤 2학년때 그런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늦게 알아버린만큼 오래 기억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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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날씨가 조금 흐렸고, 오전 열 시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 중간에 다른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을 불러서 속닥이시는 걸 들었습니다. 배가 침몰했다고, 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슬픕니다. 그 날의 제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잊으려고 해도(그럴 일 없겠지만)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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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봄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봄이 왔네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그곳은 편안한가요? 저는 편안하지 않아요. 보고 싶어요 언니 오빠들. 그리고 선생님들. 모두모두 보고 싶어요. 그런데 당신들에게 있던 미래가 잠긴 걸까요? 그 빛나는 미래들은 우리가 소중히 잘 간직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려주세요. 당신들의 미래와 함께 찾아갈게요.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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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직4학년이였을때 티비를 보다 뉴스를 접하게 되었고 전 그 뉴스를 보고 아무것도 할수 없었습니다 그냥 빨리 구조 되었으면 좋겠다와 제발 무사하길 기도했습니다하지만 구조된 사람보디 희생한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전 이 사고를 절대 잊을수 없습니다 잊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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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저는 아직 어렸습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믿을 수가 없었고 후에는 눈물도 나고 화도 났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잊지 않을 것이고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기억하고 그리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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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의 싸움 언제나 기억합니다 부모님 이랑 사이 안좋을때도 그7시간일은 기억합니다 추억과 뛰어놀면서 형아랑 싸웠던 기억부모님 말씀 잘 안들은거 우리는 함께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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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가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추운 바다 속에서 7시간 동안 처참하고 잔혹하게 죽어간 형, 누나들을요. 그때 저는 2학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바다 아래와 위에서 벌어진 일을요. 있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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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잊을수가 없습니다.여느날도 다름없는 평화로운 날이었어요. 남편도 출근하고 아이ㅣ들도 학교간 그 시간.. 믿을수 없는 뉴스가 났죠. 당연히 다 구출하겠지 모두 무사히 돌아오겠지 하며 청소하며 뉴스를 틀어두고 봤어요. 많은 아이들이 배에 태워져 나와야하고, 물속이 배와함께 있다면 에어포켓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죠. 눈앞에 펼쳐지는 뉴스속 이야기가 가슴속에 파고들었어요. 한동안 아무일도 못하고 뉴스에서 사망자 숫자가 실종자 숫자가 늘고 있는 뉴스를 보는 내가 달려가 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그대로 있을수 없어 팽목항에 갔죠. 부모님들 가족들 모두 지치고 온 몸으로 아픔이 병이 되어가는 것을 설겆이 하며 감히 눈물 흘리지 못하고 움직임을 느꼈어요. 내 마음에 이런 상처가 생겼는데.. 가족들은 오죽할까 싶어서... 또 몇주를 뉴스만 바라보면 눈물 훔쳤어요. 저는 그날을 아직 잊지 못했습니다. 아니 기억해야죠. 함께 기억하려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죠. 반드시 바로 잡아야죠. 배가 왜 그리 됬는지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왜 거짓말 했는지, 뭘 숨기고 싶었던 건지 왜 아직도 밝히지 않는지 그 모든것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기억하고 또 기억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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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의 슬픔을 담아내겠습니다 7시간의 고통을 같이 참아내겠 습니다7시간의 시간들을 영원히 7년이 지나도 700년이 지나도 마음에 세겨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만약 일어나더라도 더 좋은 대처와 결과를 찾기위해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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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순천에 특강이 있어 창원에서 기차를 타고 순천역사에서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하였는데.... 그후 진도 추모관에서도 가족들과 다녀왔습니다. 앳된 아이들의 사진이 그득한 방에서 저는 그만 그들이 "저희 살아 있어요"하며 외치는 소리처럼 들렸어요.기억할게요.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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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복되는 기사에서 어리둥절했던, 어떻게 그렇게 상반된 기사가 나올 수 있는지 아직도 의아하기만 하다. 누구의 계획인지 의도인지 우린 몰라도 다 아시는 분이 계시니 소망을 잃지 않는다.얼굴 한번 본 적없어도 4월이 되면 이렇게 가슴이 먹먹한데 가족들을 생각하니 정말 맘이 저려 옵니다. 오늘이 제 생일이지만 기쁨을 미뤄야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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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합 고등학교 영어 듣기평가가 있던 날나는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나 또한 같은해 4월 1일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세월호를 타고 2일에 제주도를 도착했다. 4월 16일 오전 시험보기 전에 다른반 친구가외쳤다. "우리가 탔던 배 침몰했데!". 우리는 수업종이 울리고도 교탁에서 인터넷을 켜서 진실을 알아보았고 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보았고 선생님들은 자세한것은 모르니 조용히 하라며 학생들을 잠재웠다. 만감이 교차했다. 몇시간 뒤 나는 뉴스에서 배 안에서 친구 손에 가시를 빼내어주던 승무원 누나의 사진을 보았고 많은 학생들이 내가 있던 그날 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게 있던 동영상을 보았다. 그 배에 구조도 알고있던 나는 그날 내가 침몰하는 악몽을 꾸었다. 몇일 간 구조 전 학생들이 찍은 동영상들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팠다. 진실을 찾고싶어 많은 자료들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