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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잔 날이었습니다. 다른 때보다 조금 늦게, 9시가 조금 지나서 집을 나서려고 운동화를 신던 중이었고, 어머니는 제게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시고는 거실 TV를 켜셨습니다. 화면 가득 푸른 바다와 기울어진 거대한 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가방을 메고, 보온물병을 한 손에 든 채로 현관에 멍하니 서서 TV를 봤었습니다. 엄마는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하셨고,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냐, 아직 물이 많이 차가울텐데, 구명조끼랑 구명정은 충분히 실려있기나 할까 저 사람들을 어쩌면 좋으냐 걱정하셨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저는 선박사고라는 낯선 상황에 놀라긴 했지만, 잘 수습될 수 있을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걱정하지말라고, 어딘지 모를 망망대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육지 가까운데고, 방송사헬기가 이렇게 생중계를 할만큼 위치도 정확하니 금방 구조할 수 있을거라고, 밤이 아니라 아침이라서,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금방 구할거라고 바보같은 말로 엄마를 안심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캠프간 애들이 죽고, 리조트가 무너지더니, 배가 뒤집힌다고. 대통령 잘못 뽑아놓으니 나라에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며 배가 저렇게 큰데 주변에 구조하는 사람도 너무 없고 구명정 떠있는 것도 없는 게 이상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게 서로 무슨 상관이냐고, 기우제 지내던 고대국가도 아닌데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말라고 금방 구한다고 어머니를 타박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속보로 나오길래 안심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끔찍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고, 저는 다시는 그 날 이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날 아침 집에서의 짧은 대화, 점심시간 식당에서의 공기, 물 속으로 가라앉는 세월호의 모습과, 계속해서 정정되던 탑승자 수 구조자 수에 당황해하는 것 같던 뉴스앵커의 목소리,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시래기된장국과 계란말이, 호박나물, 볶음김치 식판까지 모든게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당신은 그날의 일이 기억나지 않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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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등원시킨후, 뉴스로 접했습니다...그 이후론 가슴을 쓸어내리며 무능한나라, 힘없는 국민, 구조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말들 또한 되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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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메가박스에서 영화보러 들어가기 전 시간이 비어, 바로 건물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세월호 관련 뉴스를 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원 구조였었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더 영화같은 소식들이 티비를 통해 들려왓습니다. 그날은 결코 잊혀지지않는 생생한 하루였으며 믿음을 잃은 결정적인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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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워크샵으로 남이섬가는 길이었어요 ㅜㅜ 첨에 침몰소식이 속보로 떠서 놀랐다가 전원구조가 다시 떠서 안도했었는데! 그날 남이섬 들어가는 배타며 직원들과 얘기한것들도 기억나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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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사고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제목을 보고서 넘어갔습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와 일을 하다가 본 뉴스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믿기지않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지금도 그 사건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진실이 꼭 밝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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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둘째가 태어날날짜보다 늦어져서 산부인과에 갔다가 뉴스를 봤어요. 전원구조가 됐다길래 떨리는 맘 진정시키고 진료를 했죠. 그런데 집에 왔더니 오보라네요. 그래도 설마 구할수있겠지 하며 걱정스런 맘으로 티비만 바라보고 있었죠.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간은 흘러가는데 구조소식은 없고.그후 삼일후 둘째가 태어났고 벌써 31개월이 됐어요. 아직도 둘째를 보면 그 뉴스장면이 떠올라요. 아마 이 기억은 오래오래 기억될듯. 잊을래도 잊을 수 없을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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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tv앞에 고정되어 아무 것도 못했지요.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지 못했더라면 덜 아팠을까요? 어떻게 이런 오보를 전할 수가.. 어떻게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보고있는데.. 그 많은 아이들을.. 우리 국민들을 처참히 포기하는 것인지.. 3살된 둘째 밥도 제대로 못챙기고.. 학교끝나고 집에 온 큰 아이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마음이 무너졌던 날입니다.일개 국민 중의 힌 명도 몇날 며칠을 마음이 아파.. 눈물 흘렸던 그 날을... 어찌 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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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저는 평범한 전업주부여서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청소와 집안일을하며 티비를 켰는데 속보라고 뜨면서 사고소식을 보도하고있더라구요..자막으로 전원구조라는 글씨도 보았고..그래서 안심했는데 오보라고ㅡㅜ그때부터 티비앞에서 떠나질 못하고 울면서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친정이 안산이라 더 남일같지 않았구요..친구의 친구 동생도 있다하고 엄마의 지인의 자녀도 잇다하고...자식을 둔 부모마음을 알기에 정말 가슴이 찢어질듯 아프고 자꾸 시간만 흘러가는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지금도 세월호 얘기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져요저 양심도 없는 썩어빠진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밖에 모르는 무능한 짐승만도 못한것들..반드시 죄값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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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티비 속보를 보고 이야기하며 깨운 기억이 나요. 흐린 날씨에 어쩌니 했는데 전원구조라기에 다행이라며 인터넷을 했는데 점점 소식이 달라져서 당황했었고 황당했습니다. 그 이후에 다른 일을 무언가 했는데 그 일 자체는 기억이 안 나지만 구조자 수가 늘기는 커녕 줄어드는 거에 밤새 같이 기도했었어요. 정말 에어포켓의 존재를 믿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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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고3이었어요. 핸드폰이 없다보니 아침부터 소식을 듣지는 못했는데, 애들이 쉬는시간에 수근거리던 분위기는 기억나요. 한 친구가(이름도 기억나네요 지원이) 배가 물에빠졌대~ 이랬었고, 밥먹고 돌아와서 5교시 수업이 일본어였어요. 그래서 일본어선생님보고 세월호 어떻게됐냐고 여쭤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다음날에 이유는 기억이 안나지만 학교를 오전수업만 마치고왔는데 집에있던 언니랑 내내 뉴스 구조작업 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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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에 살고 있습니다. 잠들기전, 사고가 났었고 전원구조 되었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그냥 작은배의 단순 해상사고려니..하는 생각과 함께요. 새벽에 일어나 습관처럼 핸드폰을 켜고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배와 함게 가라 앉다니.. 정신도 차리기 전에 아내와 함께 눈물부터 났던 그 날을 전 또렷이 기억합니다. 과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시기에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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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환자보고 있었죠.속보가 이어지면서 구조소식이 이어지면서 설마설마 했는데...2014년에 이런일이 벌어지리라곤...손석희님 말씀대로 김관홍 잠수사님 유언대로 뒷일을 잘 마무리해서 유족분들 마음에 진정한 위로와 평안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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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을 나갔죠. 직원이 사고 났었는데 전원 구조 됐다고 그러길래 신속한 구조 작업이 이뤄졌나보다 생각했죠. 저녁 무렵 주차하고 무심결에 티비를켜고서야 끝없는 비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30년 전 수학여행 코스가 지금도 관례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죠. 2만원도 안되는 비행기값으로 제주를 가는 시대인데 어떻게 지금도 가는 편은 배편, 오는 편은 항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지.....누가 이런 상품을 기획하고 지속하고 있는지부터 분노가 일었습니다. 왜 쓸데없이 비행기보다 비싼 연안여객 상품을 이렇게 고집스럽게 하고 있는지... 그 뒤로 몇달은 이 사회에, 우리의 무감각과 욕망에 분노하고 자책했었네요.우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걸까?....사람으로 살고 싶기는 한걸까?...아이들의 죽음조차 갈등과 대립의 매개로 삼는 저 권력에 왜 무관심할까? ...슬프네요. 아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미안하다. 너무 너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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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요항상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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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희에게 뒷일을, 사회를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너희를 구하던 이가, 남겨진 이들에게 뒷일을 부탁하였다.일상을 되찾고자 잊었던 지난 날을 후회하고그래서 나 스스로 "넌 무엇을 하였느냐." 라고 물었을 때 부끄럽지 않고자 한다.나 혼자 많은 것은 할 수 없겠지만, 촛불이 퍼져나가는 긴 징검다리의 작은 돌이 되리라.다시 타오르는 진실의 빛이 넘실대는 광장의 목소리에 내 마음 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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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뉴스를 접했을때 평소의 사건사고 뉴스처럼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면서 사건이 심각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얼마나 심각한일인지 제대로 느끼고 있지 못했습니다. 분주한 내 일상이 먼저였습니다. 제때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지 못한 미안함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일이 우리의 일터와 일상에서 반복되지 않게 기억하고 일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구하고 죽였던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겠습니다. 각자의 앞가림을 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벅찬 삶일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더 사랑할 용기를 내겠습니다. 아이들이 죽음으로 우리게 알려준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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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에 대한 기억근처 학교에서 학점교류를 마치고 설입 나주곰탕에서 다른과 동기친구와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TV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으나 전원구조됐다는 뉴스를 보고 안도한채 나머지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습니다수업을 마치고 동아리까지 마저 마친 후에 뒤풀이를 갔었는데 TV에서는 많은 이들이 실종되었으며 구조자들은 실종자에 비해 없다고 들었습니다.기숙사에 돌아가서 놓쳤던 뉴스를 보는데 눈물이 계속 흐르더군요. 한창 공부하고 곧 대학생이 되어 인생을 즐길 아이들인데, 아이들을 한참 가르치느라 재미를 붙인 사람들인데, 그리고 아직 인생을 다 즐기지못한 사람들인데 하는 마음에서요꼭 진상규명되어서 책임자들이 처벌 받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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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딴짓하다가 접한 첫기사. 고등학생 탑승 배가 침몰중이고 전원구조됨...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안산이어서 더 관심이 갔던 것 말고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는데 점심먹고 다시 접한 충격적 소식 그리고 분노 눈물.. 이 나라는 무얼 하나 그 어린 생명하나 못구하는. 윗 대가리들의 변명 정치인이 기념사진 찍겠다고 눈도장 찍으러가는 현장. 부모의 아픔이 느껴져서 너무나도 먹먹했던 그 날